탈춤
어디선가 오고 있는 겨울
사과 알 붉게 익자
시나브로 잎들 흩어지고
검게 드러난 앙상한 뼈대
나무는 비로소
스스로의 나신을 본다
수확의 계절이 끝나자
불은 꺼지고
순간의 동작으로 춤사위 멈춘
겨울 사과밭
관객들 사라진 싸늘한 무대에
눈발 흩날려
팔 다리에 쌓인다
맘껏 조소하고픈
탈춤의 자세로
징소리 울릴 때까지
내 안 어디를 헤매다 올까
갠지스 강
떠내려가는 주검을 보고 올까
말 오줌 푸른 몽골에 다녀올까
길고 긴 겨울
안으로 드리운 탈출구
내밀한
마음의 길
빈 항아리
채워지지 않은 마음
닫을 수 없어
휑하니 열어놓은
사립문
오동잎 한 잎
서걱이며 떨어진다
문풍지 댓잎소리
현(絃)을 실은 갈바람 스치다
내 안에 빠져
휘 휘 돌며
검은 뼈 어루만진다
꽃을 보러 가다
화성 우리꽃 식물원에
목화꽃을 보러간다
목화송이 따먹던 어린 시절
움츠린 작은 몸이
꽃그늘에 숨겨진다
하얀 수건 머리에 두른 어머니
솜틀 소리 들들 기침소리 콜록콜록
씨와 함께 투두둑 발아래로 떨어진다
먼 길 걸어와
목화 이불 속에서
북두칠성 머리에 인 어머니와
목화 솜 전해 주려
문 밖에서 날 부르던 큰언니의 음성 아릿하게
들려오는 저녁
꽃을 덮고 잠이 드는
깊어가는 가을 저녁
― 『빈 자리』, 고요아침, 2012.
카페 게시글
오늘의 좋은시
탈춤 外 - 강형오
에반겔리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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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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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책은 맹문재 선생님과 인연이 되신 이수산 시인께서 지인의 시집이라며 주신 것인데 시가 울림이 있어서 옮겨봅니다.
좋은 시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