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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서는 갈매기도 모국어로 운다 (외 19편)
독도에서는 갈매기도 모국어로 운다.
가갸거겨 뱃전에서 모음과 자음으로 끼룩대다가
ㅅㅅㅅ 커다란 날개 저으며 저희들끼리 대오를 이룬다.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맨 먼저 어루만지는 한반도의 등.
독도의 깨진 정강이를 쓰다듬는 파도의 울음 하도 간절하여
빳빳하게, 조선의 팔뚝 힘으로 흔들리는 풀잎들.
섬의 젖꼭지를 물고 있던 섬말나리꽃 다홍색 입술이 짜다.
새들이 죽을 때 제 고향으로 머릴 두는 것처럼
그리운 것들을 향해 제 그늘을 내어주는 해송처럼
저녁이 오고
독도는 바람의 결이 빚어낸 바위의 모진 角을
지긋이 한반도 쪽으로 기울이다가, 분연히
다시금 홀로 일어서는 것이다.
역린
逆鱗, 거꾸로 박힌 비늘이라니... 가지런히 누워 있는 수많은 은색 비늘 사이에, 내심 반란을 꿈꾸며 물결을 거스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당찬 녀석이 있다는 말이다
갑자기 나는 짜릿한 애교를 느끼며 흥분한다 하다못해 냉동고에 꽁꽁 언 조기를 꺼내서라도 찾아내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떤다
왜 이렇게 길이 굽은 거야, 거꾸로 박힌 활자처럼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왜 이렇게 내 생이 자꾸만 삐걱거리는 거야, 그냥 얌전히 걸어가게 놔두면 될 것을 누가 내 발목을 걸어 엉덩방아를 찧게 하는 거야,
나는 안다, 生이여 내게도 그런 까시래기가 있어 너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수많은 다른 비늘들 상처입어 찢겨나간다 해도 나는 한번쯤 내 생의 물살을 거슬러 가보고 싶은 거다 내 속에 단 한 개만 장전하고 있는 뜨거운 총알로 너의 관자놀이를 명중시키고 싶은 거다
봄, 붉어지다
봄날에는, 여자에게 어딜 가느냐고
묻지 않는 거란다
어디 가서 무얼 하느냐고도
물으면 더더구나 안 된단다
한바탕 낄낄대기도 하고
십중팔구는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심각하게 짜기도 하다가
마른손 비비며 돌아서는 저 중년의 어깨들
반쯤은 지워지는 얼굴 사이, 쟁쟁
애꿎은 귀만 붉어졌다
먼 산 어느 골짜기를 타고
진달래군단이 북상하는 중인지
밤인데도 하늘 한쪽이 불그스름하게 물든다
단단히 채워두었던 지퍼를 연다
가방을 챙겨야겠다
봄날에는 미루지 않는 거란다
당신에게로 가는 일에 핑계대지 않겠다
흐뭇하다
저녁이 흐뭇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아늑해지는 노을빛
구부러진 해변의 모래톱이 흐뭇하다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내 마음이
흐뭇하다, 오히려
흐뭇한 것은 여리지만 오래 붙잡고 싶은 것이다
딱딱했던 마음이 왠지 흐물흐물 부질없어질 때
‘흐뭇하다’ 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순간이다
흐뭇하다, 가만히 발음해보면 마음이 먼저 빗장을 푼다
그런 기미는 입가를 보면 안다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눈 꼬리와 가장 가까워진다
꼬리와 꼬리가 가깝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것인데
모서리 풀며 서로 손을 잡는다는 것인데
희미해지는 저물녘의 산등성이처럼
서로에게 등을 내어준다는 것과 같다
흐뭇하다 흐뭇하다 자꾸 되뇌어보면
뾰족했던 내안의 가시가 어느새 흐물흐물해져
삭은 가오리뼈처럼 입안에서 녹는다
한낮의 햇살이 가파를수록 그 아래 그늘은 흐뭇해져
어둠이 올 때까지 백만 개의 별들을 숨기고 있다
산수유
- 이제 좀 슬퍼해도 되겠다
저 봄꽃에 기대어 울어도 되겠다
따귀 한 대 맞은 것처럼 울고 싶은 마음 누르며 길을 나선다
깊은 산골 마을 어디쯤에 은둔하고 있다가 터져나오는 봄꽃, 파르티잔
저미면서 울음 우는 소리가 있다면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슬픔 속인데
조용히 궐기하는 저 꽃그늘에 묻어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각개전투로 피어나는 봄꽃들 중 제 먼저 맨발로 나와, 화르르
*화전리 초입에서 서성이다가 급기야, 계곡이며 산등성이로 번지고야 마는
저 꽃보살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여, 노오란 꽃잎 속에 오글거리면서 들끓고 있다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산수유마을
환한 막간
곡우(穀雨) 근처, 여러 날 비 내린다
꽃이 가고, 이제 열매 오려나보다
간혹 햇살이 얼굴 내밀다 말고
담장에 걸려 곤두박질 칠 때는 환한 막간(幕間)이다
나무의 존재이유는 꽃 피우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열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비야, 내려라
온몸으로 젖어주마
세상에 젖지 않는 나무란 없다
잠시라도 화관을 얹어 달콤했으니
드디어 생살 찢어 열매 앉힐 생각으로
겨드랑이 안쪽부터 팽팽하게, 부풀기도 한다
모두 다 초록이지만 전부 초록은 아닌데
나무는 다만, 작은 잎새마다 살뜰한 우주를 담고 골똘해진다
이른 아침 수목원에는
비가 오는데도 자꾸 비가 내려 더 젖으라 한다
구름 의자
구미 지나 선산 가는 길은
풋풋하다, 푸른 유리병처럼 투명하다.
천천히 바퀴를 밀며 나아가는 길들.
꼬마가 돌아앉아 손짓하는
검정 에스엠 파이브, 뒤에
돼지떼들 겔겔겔, 쎄렉스 기를 쓰고 간다.
하얀 카니발 앞세우고 가던
구팔년형 은색 소나타 멈칫, 한다.
어라, 의자가 날아가네?
흔들흔들, 의자가 허공에 뜬다.
아슬아슬, 가로수 잎들 스친다.
휙휙, 휘파람불며 들판을 가로지른다.
다릴 꼬고 앉아서, 구름 의자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돈 워리 비 해피!
누군가의 삶처럼 남루한 세간살이
이삿짐 트럭이 덜컹거리며 국도를 달린다.
어디엔가 다시 머물러야 할 각오로
단호해진 가장의 옆얼굴을, 뜨겁게
가로수들이 혓바닥으로 핥고 있다.
허공에서 네 다리가 버둥거리는
의자를,
구름이 한입 덥석 베어 문다.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며
푸르름의 중심에서 구름의자 흐른다.
땡볕寺院
참 빽빽하다, 이 여름
가로수들 비장한 녹색 숨결이 그렇고
나뭇가지에 붙어서 악을 써대는
매미들의 가쁜 울음소리가 그렇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촘촘한 햇살이
피라미 한 마리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완강하게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천천히
길을 걷는 저 등뼈에 내리꽂히는
따가운 말들의 세례
여름 땡볕은 차라리 고행이다.
제 몸의 물기마저 다 내어주고
한 점 그늘이 되려는 생애의
刹那,
희고 커다란 손이
투명한 성채 하나 들어올린다.
달팽이, 길고도 느린 길이 풀린다.
바다 책장
겨울 채석강, 책장 넘기는 소리 분분한 밤. 파도는 행간을 자꾸 지우는데 무언가 읽어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듯 일몰에 먼저 젖었던 옷자락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젖은 책장 겨우 떼어내며 해풍에 내어 말리는 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다발처럼 너무 말라서 바삭거리거나 해감이 달라붙은 몇 페이지는 얼룩이 져서 맥이 뚝, 끊긴 읽다만 책이 빼곡하다.
반생의 쓰다만 책 한 권, 여기 또 있다. 끈질긴 투병의 시간 더듬어 보면 온통 멍투성이였지. 언젠가는 그 상처 위에 꽃 피울 날 있을 거라 믿었지. 덜컹거리며 반나절을 달려와서야 엑스레이 찍히듯 내 늑골까지 환하게 읽히고 마는,
걸어온 길 다 지우고 새로 쓰라는 건지, 앞으로 써야할 문장들 저 짠 바닷물이라도 찍어서 쓰라는 건지 발목까지 어느새 밀려드는 물결.
책으로 가득 찬 저 검은 바다 앞에서 나는, 일몰처럼 붉어지는 간절함으로 무릎 꿇고 싶어진다.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결혼축시
오늘, 아름다운 이 날에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합니다.
이토록 高貴한 만남을 허락하신 주여.
동쪽에서 태어난 처음의 한 남자와
그의 가슴으로 불러낸 한 여자처럼,
세상에서 가장 純潔한 손
마주 잡게 하여주옵소서.
한 여자가 허락받은 어여쁜 姿態와
한 남자에게 허락하신 勇氣 있는 피가
이 한날, 뜨겁게 용솟음치며
첫눈에 알아보게 하시고,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 만남이
다시 나뉘지 못할 峻烈한 運命을 주시옵소서
축복의 문이 열리는 이 날
오직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합니다.
사랑 이상으로 사랑한다 할 눈부심으로
향기로운 꽃, 피어나게 하시어
저들의 품안에 참으로 여럿이게 하여 주소서.
아브라함의 祝福으로,
솔로몬의 知慧로,
다윗의 겸손함으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영혼의 純情함과,
그 육신의 康健함으로
행복한 집, 주의 나라 이루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집의 세월이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로울지니
처음과 끝이 하나이게 하소서.
그리운 집
- 소록도
사랑은, 마음이 먼저 와서
네 눈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말을 걸고,
우주를 조금씩 떼어 나누며 그 따스함으로 서로 기대다가
마침내 그 사랑은 서로의 마음 안에 집을 짓는다.
그 집의 세월은 음악처럼 흘러 지붕을 덮는다.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 아래, 가끔 노을을 끌어당겨 무릎을 덮고 앉아
오래도록 마주보며 웃는 사람들
세상 모든 저녁이 다 내려와, 옹기종기
고즈넉하게 낮은 집들 즐비하다.
11월, 우륵
지극한 마음 추스려 우륵 간다
겨울 초입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사라지는 것들에도 빛이 있다는 걸 알겠다
산 너머 굽이 돌 때마다
그 빛은 있는 힘을 다해 등을 어루만진다
해마다 그 자리는 먼저 추워서
새들도 서둘러 제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저만치 앞선 이의 어깨는 적막하여
말을 걸까 하다가 그만 둔다
무슨 소리 들렸는지 그가 한번 돌아보았고
바람의 마른 혀를 빌려
스무 해 전의 어투로 내게 말 걸어온다
저녁이 와서 가만히 나무의 등을 껴안는다
사소한 흔들림에도 손을 놓치는 마른 잎들
뚜둥,
먼 기억낭의 열한 번째 줄 낮은 음계를 밟고
어두워져가는 숲에서 가얏고 소리가 났다
지난 우륵, 그곳에 과거와 미래가 오롯하다
무게에 대하여
온천 간다.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 네 해 아래의 어머니, 두 살 터울로 여든 지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왕고모 둘, 거기다 만만찮은 내 나이도 보태니 합이 삼백아흔셋.
십사만삼천사백사십오일,삼백사십사만이천육백팔십시간이 씹고, 뜯고, 맛보고, 삭힌 가죽부대는 온통 주름투성이다.
무게란 물질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수용되어지는 것만큼의 양인데,
왜 이리 가벼운가. 켜켜이 어깨에 내려앉던 그 많은 세월의 무게 다 어디에 두고 하얗게 바스러져가는 누에고치처럼 빈속 쓰다듬으며, 쿨렁이는 바퀴 위에서 저리 쉽게 흔들리는가.
읍사무소에서 나눠준 경로목욕티켓 빨간딱지의 무게는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며 김 서린 탕 속으로 들어간다.
- 점심은 제가 살게요, 괜한 헛돈 쓰지 마라 손사래 치며 한사코 마다하시더니 널찍한 온천뷔페식당 햇볕 따스한 창가에 합죽한 웃음 부려놓고 실눈을 뜬다.
나이 먹는다는 건 수북하던 접시를 천천히 비우는 일, 오늘 식탁 위에 놓인 하얀 접시 저 여백의 무게가 참 환하다.
산책
문 닫힌 미술광장,
천지간 고요 속에 흰빛을 끌고 오는 그림자만 가득하다.
그저 자박자박 발걸음 옮기다가 멈춰서는 사뿐한 발치에
소소한 비명소리, 달개비꽃 그림자가 반쯤 발등을 덮을 뿐이다.
조용한 산책이 끝나고 오래된 벚나무 아래, 구름의자 당겨놓고 앉는다.
자꾸 달아나는 마음 한쪽을 다스리는 중인지, 그 여자
지척을 바라보면서도 눈빛부터 멀어지는 참 애잔한 모습
해질녘, 노을을 걸어놓고서야
또 가야할 먼 길 생각난 듯 손수건을 접고 일어선다.
마음의 집은 늘 흰빛이다.
유월
1
새벽 이슬에 젖은 채, 어머니 맨발로 돌아오신다
검은 섬 하나 껴안고 잡풀처럼 쓰러지신 어머니
유월, 그 푸른 새벽을 돌아누우신다
산등성이를 타고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찔레덤불 속, 어머니 하얗게
은가락지로 반짝이다가
낡은 고무신 벗어놓고 길 떠나신다
발끝에선 기억 속의 길이
무명 옷고름처럼 풀어진다
2
어머니, 이 땅의 어머니이신 어머니
이제 그만 좀 잊으세요
긴 겨울밤보다 짧은 여름밤이 더 무서워요 해마다
유월이면 무너지는 그 어깨, 핏발 선 그 눈빛
그럴수록 자꾸만 살아나시는 아버지
어떻게 해요, 이젠 어머니도 죽이세요
그러게 살아서 누구 멱살을 잡겠다고 그러세요
왜 어머니의 유월만 칼을 문 채
등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해요
유월은 내년에도 또 그 다음에도 새순처럼
자꾸자꾸 돋아날 게 뻔해요
보세요, 저렇게 모두들 태평하잖아요
(징그러운 태평성대라니!)
3
수많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물려주신
아픈 집의 세월이 텅! 비어 있다
따뜻한 종이컵
종이컵이 따뜻하다
공원 한 귀퉁이에 허름한 중년처럼
앉아 있는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다가, 문득
객쩍은 생각을 해본다
짚둥우리 속에서 막 꺼낸 달걀은
암탉의 항문으로 나온 게 안 믿어질 만큼
희고 따뜻하다, 매끈하다
혓바닥 아래 고인 침처럼 상긋하게
피어난 옥잠화의 흰 살결
벌의 항문을 거쳐서 피어난 꽃들
그 향기도 대저, 항문의 그것이니
쿰쿰한 엄마를 열고 나온
신생의 애물단지들아
희고 아름다운, 향기롭고
따뜻한 것들의 떠나온 문은 하나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슬쩍
만져본다
청동우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의 아내와 지나간다
댕기머리 아들이 천자문을 끼고 지나간다
헛기침하며 교자 탄 나으리가 지나가고
농사꾼 방물장수 유기전의 사내들이 떠들며 지나간다
쪽진 머리의 그의 아낙들 젖통을 흔들며 지나간 뒤
소와 말, 돼지와 홰를 치던 닭들이, 쥐새끼들이 지나갔으리
천체박물관 전시실 안, 仰俯日影* 청동의 육중한 원을 따라 하염없이 감겼다가 풀리는 소리들이 있다. 웅웅거리며, 무수한 결을 따라 돌다가 전시실을 가득 채운다. 그 소리는 푸르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란 때로, 소리가 되어 떠돌기도 하는 것인지, 저 깊은 시간의 우물 속을 들여다보노라니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사소한 기억까지도 담고 있는 청동우물.
손바닥을 대어보니, 사라진 것들이 속속 돌아와 울음 섞인 노래를 풀어놓는다. 자꾸 슬픔 쪽으로 기울어지며, 무중력의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나는 문득 어디서 왔는지 한 점 서러운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본다.
비와 바람과 햇빛들이 일렁이는 심연에서, 이윽고 아득하고도 맑은 종소리 울려나온다.
어느 사원인들 저토록 깊을 수 있을까.
*앙부일영(仰俯日影) ; 세종 때의 해시계. 저자거리에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함
그녀, 그녀들
마뜨료쉬까*, 할머니 거기 계셨군요
둥그런 통치마 마름 펼쳐놓고
반짇고리 꺼내어 바느질하다가
잠깐, 배 아파니 엄니를 낳았니라
한 사흘 베틀 위에 앉을 일 면해서
편할 줄 알았는데, 한밤중에도
철커덕 탁, 탁, 베틀소리 잠 깨셨다지요
삼십 촉 알전구가 하품을 해대는 새벽녘
어렴풋한 잠결 머리맡에, 물레를 돌리시는
할머니와 처녀 엄마
사각사각 목소리도 닮으신 당신들은
밤을 새우실 요량이신가요
무명 흰 치마 입으시고 할머니
오늘은 광화문에 계시는군요
아침이면 마이니치신문에 전송되는
사진 속에서, 소리 없는 울음 혼자 우시겠지요
밤새워 돌리서던 물레로 짠 그 치마
아직도 입고 계시는군요
오늘은 행진하는 촛불 속에서
소녀들이 울고 있네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할머니를 열고
어머니를 꺼내니, 어쩌면 좋아요
그 속에서 또 한 다발의 할머니가
꾸역꾸역
*마뜨료쉬까; 인형의 몸통을 열면 겹겹이 같은 인형이 들어있는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
물 먹는 하마
어서, 하마를 치워야 할 텐데
저 하마를 밖으로 끌어내야 할 텐데
늦장마 끝나고 서늘한 바람 분다.
커튼을 갈아 끼우다 문득 떠올린 하마 사냥.
장롱 속, 창문도 없는 독방에
켜켜이 쌓아 놓은 이부자리 베개들.
햇살 대신 물 먹는 하마 한 마리 들여놓고
짐짓, 눈 감아 버렸다.
하루에 두어 번, 하마의 안부를 확인할 뿐
여름 늦장마를 견디고 있었다.
누군가의 속을 열어보면
저럴까, 보이지 않게 젖어 있던 속내
눈물로 차올라 있구나
소리 없이 일가를 이루던 곰팡이
지독한 슬픔의 감옥이었구나.
제 몸 안에 늪을 가두고
물소릴 듣고 있던 하마
그래도 웃고 있구나.
(전국 고등학교 국어교사 협회 선정; <국어시간에 시 읽기> 수록시)
감포
갯마을에는 뿌리 없는 소문이 파도처럼 들끓었다. 대낮에도 바다는 안방까지 밀고 들어와 잠든 아이의 고추를 어루만진다고 했다. 그 아이 훗날 자라서 바다의 종이 된다고, 절대로 뭍으로는 떠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갈매기들 끼룩끼룩 높이 날고, 아무도 돌아가는 바다의 뒷모습을 볼 수 없었다. 갈기 세운 파도는 밤이면 더욱 거칠어져 바다 한가운데서 성기처럼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섬들을 보았다고도 했다. 더러는 섬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우기는 쪽도 있었다. 완강하게 부인하던 사람들도 밤이면 출렁이는 바다 쪽으로 귀를 세우곤 했다.
그러나 아침이면 모두가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부풀어 오르는 해 아래서 뒤척이며 젖은 모래알들이 몸을 말리고, 바다는 다시 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갯바위 사이에서 파래 속 같은 아낙들은 이마의 소금기를 닦아내고, 사내들은 검붉은 얼굴로 좀 더 먼 바다를 향해 노 저어 갔다.
<강문숙>
*199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
*시집; <잠그는 것들의 방향은?><탁자 위의 사막><따뜻한 종이컵>
<보고 싶다(사진공동시집)>등
*오페라 대본; <광염소나타><무녀도><유랑> <배비장전> <독도판타지> 등
*가곡 <낮달> <등불> <길> 등 30여곡 작시
*대구예술가곡회 시분과 이사
*방송프리랜서; MBC FM <강문숙의 소소한 문학 산책> 진행
*영진전문대 사회교육원 강사. 대덕문화원 청도도서관 강사
*현, 푸른방송문화센터 강사. 대구시교
첫댓글 '유월'을 성산고 2학년 김지민 양과 합송을 해 볼게요.
"환한 막간 " 차옥경 전임회장님 신청 하셨습니다.
감포 낭송신청합니다
산수유 신청합니다
회장님외 네분으로
6월목시 낭송신청 마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준비에 수고많으시겠습니다~^^~
메르스 확산이 우려되는 관계로
6월 목시를 7월 목시로 그대로
연기함을 양해 바랍니다^^
부장님 발빠른 홍보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김금주 네~
총무님
건강조심하세요^^~
흐뭇하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