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령풍차길, 겨울 끝자락을 걷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 끝 무렵의 선자령풍차길. [村스러운 걷기 여행] 강원 평창 선자령풍차길 눈 덮인 숲길은 청량한 기운 가득 걷다보면 은백색 꽃 핀 ‘설산’ 한눈에 동해전망대서 본 바다·산맥 ‘장관’ 큰 풍차 지나 반환점 선자령 도착 골짜기 바위틈 사이로 개울물 졸졸 봄으로 향하는 계절의 샛길 걷는 듯
이번 겨울엔 유독 눈이 드물었다. 끄트머리에 좀 내렸다곤 하지만, 하얀 세상을 고대한 이들에겐 영 부족한 느낌이었을 터. 그러나 찾아보면 전국 곳곳에 작은 설국(雪國)들이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일어나 움직여볼 일이다. 이번에 걸은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선자령풍차길도 그 작은 눈의 나라 가운데 한곳이다. 해발 1157m의 봉우리까지 다녀오는 길로, 시작점이자 도착점인 대관령마을휴게소가 840m 높이에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만하다.
겨울 산행, 미지의 세계로
차 밖의 풍경이 갑자기 달라졌다. 영상 기온의 맑은 날씨였던 걷기 당일. 눈이라곤 볼 수 없는 마른 도로를 달리다, 대관령면에 이르자 어느새 설산이 주변을 둘러쌌다. 눈 쌓인 산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이런 날 눈이 있을까 싶던 우려는 어느새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바뀌었다. 길이 시작되는 대관령마을휴게소엔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적잖았다.
뽀드득 빠드득 눈 밟는 소리.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줄지어 비탈진 산길을 오른다. 차가 다닐 정도의 너른 오르막길. 머리 위 파란 하늘만큼이나 하얀 눈밭이 시야에 들어찬다. 눈 덮인 숲길은 무취하다. 그러나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푸른 소나무와 잎이 진 나무들이 눈길의 양옆에서 걷는 이를 맞는다.
그렇게 걷기를 40여분. 어느덧 두세자 너비의 오솔길로 접어들면 눈이 조금 더 깊이 패는 구불구불한 숲속이다. 머리 위로 우거진 잣나무 가지엔 며칠 전 내린 눈이 쌓여 있다. 햇빛이 가려진 고요한 숲길. 폭신폭신한 눈의 감촉이 걸음마다 한결 더 가까이 와닿는다.
장쾌하게 펼쳐진 하얀 풍경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아빠.”
이제 예닐곱살 정도 됐을까. 등산복으로 단단히 무장한 아이의 말이 꽤 성숙하다고 느끼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덧 설산의 풍경이 바뀌었다. 양옆의 나무는 그 키가 낮아지고 왼쪽·오른쪽 아래로 모두 비탈진 곳이다. 점차 산의 등줄기를 걷는 능선길. 은백색 꽃이 핀 건너편 산면이 시야에 가득, 주변으로 펼쳐진다. 크게 꺾인 능선의 굽이에선 삼면이 온통 그 풍경에 감싸인다.
곧이어 닿는 동해전망대. 이곳은 이름처럼 정면으로 마주한 강릉 앞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이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푸른 바다가 있고, 그 밑에 오밀조밀한 강릉의 시가지가 자리했다. 아래론 겹겹이 넘실대는 파도 같은 산맥이 흐른다. 그 풍광의 규모가 너무도 장대해 한눈에 모두 담기 어렵다.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는 능선길. 겨울 끝자락의 경계를 걷는 길
“저희는 사실 양떼목장 찾아온 건데, 사람들 따라오다보니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근데 경치가 너무 좋아요. 오히려 잘된 것 같아 계속 가보려고요.”
등산화를 신지 않은 가벼운 차림의 청년들. 뜻밖의 행운을 마주한 듯 경쾌한 걸음이다. 그런데 사실 운동화만 신고 걷는 건 미끄러질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다만 전체적인 경사가 완만하긴 해, 준비만 잘하고 온다면 쉬이 즐길 수 있다. 걷다보니 쌩하고 자전거 무리가 지나간다. 승마를 즐길 줄 아는 이라면 인근 목장에서 말을 빌려 타 눈길을 거닐어볼 수도 있다.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는 하얀 대지. 목초지로 쓰이는 너른 부지를 지나 길의 반환점인 선자령에 닿는다. 이곳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이 나온다. 올라온 능선길과 달리 돌아가는 길에선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싼 골짜기를 걷는다.
적막한 산골길에서 들려오는 소리. 눈 덮인 바위틈 사이로 개울물이 흐른다. 차분했던 공기에 생기가 돈다. 사방은 여전히 하얀 눈밭이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봄이 올 것만 같다. 졸졸졸 소리에 뽀드득뽀드득. 겨울 끝자락에서 봄으로 향하는, 계절의 샛길을 사박사박 걷는다.
선자령풍차길은? 12㎞ 산길 4시간 소요…가파른 구간 거의 없어
선자령풍차길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선자령풍차길은 약 12㎞를 걷는 산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절반씩 있는 순환코스로, 걷는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얼마간 경사가 있지만 크게 가파른 구간은 많지 않다. 다만 겨울엔 눈 쌓인 길을 걷게 되므로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걷는 게 안전하다. 등산 스틱을 가져가는 것도 좋다.
길은 대관령마을휴게소(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14-111)에서 시작한다. 이곳 휴게소에 주차하면 되는데, 만약 공간이 부족하면 건너편 신재생에너지전시관에 차를 대도 된다. 대관령마을휴게소에서 북동쪽의 샛길로 향하면 선자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군데 나온다. 순환코스이므로 어느 곳으로 향해도 된다. 왼쪽은 골짜기, 오른쪽은 능선을 오르는 길이다.
중간중간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길 헤맬 염려 없이 다녀올 수 있다. 다만 중간에 음식을 구할 곳이 없으므로, 산행 중 먹을 물과 간단한 간식 등을 챙겨 오르는 것을 권한다.
농민신문 202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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