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CrIkf-7AT0?si=1unGCZqmh3OEmiIv
안녕하세요 화정입니다
소박한 제 시와수필낭독방을 찾아와주시고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나마 마음의 산책길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백서른아홉번째 글은 변명 이라는 수필입니다. 텃밭 농사를 이십여 년간 짓고 있지만 매년 결과가 다릅니다. 풍작은 어렵습니다. 옥수수 농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들어보세요.
변명 2026 7 6
비가 오다 말다 변덕을 부리는 날씨다. 토요일이라 고속도로가 막힐 것은 뻔했다. 막혀봤자 이십 분 정도 더 걸리는데 뭘. 괜찮다고 큰소리치면서 남편은 종자골 텃밭으로 달려갔다. 분명 밭에 엎드려 토마토 줄기를 묶어주든가 참외 순을 따 주든가 텃밭 일에 몰두할 것이다. 무섭게 자라올라 뒤란을 컴컴하게 만드는 영산홍을 전지하고 꽃이 지고 있는 꽃대를 잘라내는 일도 할 것이다. 후덥지근해서 땀은 줄줄 흐를 것이고 모기는 배고픈 늑대처럼 악착같이 덤벼들 것이다. 열심인 사람은 두려울 게 없다.
옥수수 농사로 말할 거 같으면 성공한 적이 드물다. 우습게 보았던 탓이다. 처음에는 옥수수 나무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줄 알았다. 밭 가장자리 풀 사이에 씨를 아무렇게나 묻었다. 풀들과 함께 옥수수 싹이 돋아났다. 잡풀 사이라서인지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사람처럼 비실비실 자라났다. 옥수수알은 듬성듬성 이빨 빠진 모양새로 생겨나 겨우 여물었다. 옥수숫대 크기만큼 옥수수가 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또 한번은 옥수수는 잘 자라나서 잘 열렸는데 옥수수가 크지 않았다. 길이가 딱 아가 손바닥만 했다. 보통의 옥수수 알 크기의 삼분의 일이었다. 옥수수 알은 꽉 들어차 있었고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옥수수 씨앗 봉지에는 분명 찰옥수수라고 씌어 있었다. 뒤늦게 씨앗 봉투를 자세히 보니 미니 옥수수였다. 작아도 너무 작았다. 맛은 쫄깃했는데 옥수수알을 따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옥수수 종자를 잘 선택해야 함을 알았다.
작년이었다. 옥수수대가 튼실하게 자랐고 옥수수도 제법 크게 열렸다. 기대가 부풀어갈 무렵 옥수수 수술이 검게 변하였다. 저게 뭐지? 왜 그러지? 그래도 옥수수는 잘 여물었다. 삶았더니 검은 물이 나왔다. 옥수수 맛이 아니었다. 깜부기병이란다. 그렇다고 내내 실패만 한 것은 아니다. 서너 번 성공하였다. 밭에서 따서 바로 쪄 먹었던 옥수수 맛에 홀딱 반한 것은 물론 옥수수를 먹던 그 시간까지 달달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소확행의 재발견
화정
첫물 옥수수 두 개 쪄서 마주 앉았네
어머니 옥양목 앞치마 빛깔이었던 옥수수 알이
잔칫날 어머니 연노랑 저고리 빛깔로 바뀌었네
첫 알갱이 맛보는 순간부터
마지막 알갱이 씹어 삼키는 순간까지
맛있지? 응 맛있어!
처음 말을 익힌 아이처럼 그 말만 되풀이 하였네
그 말은
행복하지? 응 행복해! 같은 무늬의 마음결이어서
사랑해? 응 사랑해! 같은 빛깔의 마음결이어서
다음에는 어떤 첫물을 먹게 될까 기대해보는 것이었네
지나간 일들도 가만가만 되짚어 보는 것이었네
안성맞춤으로 익은 배추김치 쭉쭉 찢어
식구들 밥숟갈에 척척 올려주던
개봉동 언니네 그 저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었네
맛있지? 응 맛있어!
올해는 그동안 경험을 바탕 삼아 물이 잘 빠지도록 둔덕을 만들고 거름을 충분히 준 뒤 모종을 심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허구가 아니다. 튼튼한 아이처럼 자라났다. 몸피가 굵고 키가 컸다. 잘 여물은 옥수수를 기대해 볼만 했다. 의젓하게 하늘을 향해 힘껏 팔을 벌린 줄기마다 회색빛 수술꽃이 다닥다닥 피어났다. 옥수수 대마다 아가 머리카락처럼 윤기가 반지르르한 붉은 암술이 두 개씩 갸웃이 고개를 내밀었다. 올해는 제대로 옥수수 먹겠는데. 동시에 우리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딱 알맞게 익은 옥수수를 쪄서 처음 입에 넣었을 때처럼 단맛이 도는 웃음 말이다.
암수 한몸인 옥수수나무는 벌과 바람의 힘으로 수정을 한다. 수술꽃이 피자 벌들이 시장통처럼 와글와글거리며 몰려들었다. 수술꽃에 매달려 꿀을 빨아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술 가루가 우수수 암술 위로 흩날리며 떨어졌다. 수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왔다. 옥수수대가 춤을 추었다. 수술가루가 흩날려 붉은 암술 한 올 한 올에 닿고 있었다. 옥수수나무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시간이다. 수북한 붉은 암술 마다에 옥수수알이 맺혀서 쑥쑥 자라날 것이다. 흐믓하게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화요일이었다.
종자골에 있던 남편에게서 페이스톡이 왔다. 정갈하게 잘라낸 앞뜰과 뒤뜰에 영산홍과 쥐똥나무를 보여주었다. 말끔해서 보기 좋았다. 와우 일 많이 했네요 수고하셨어요. 내 칭찬이 끝나기도 전인데 남편은 흥분한 어투로 말하였다. 옥수수가 여물었어 깜짝 놀란 나는 말하였다. 정말? 그럴 리가? 벌써? 아직 아닌데.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옥수수가 여문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화요일에 밭에 갔을 때 옥수수는 한창 수정 중이었다. 벌들은 윙윙거렸다. 옥수수알이 맺히고 있었다. 지금은 옥수수알이 자라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옥수수 수염이 말랐어 잘 여문거 같아 옥수수를 땄어.
옥수수를 땄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잘못되었구나 싶어 급하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옥수수 좀 보여줘 봐 남편이 옥수수를 핸드폰 화면 가득 넣어 보여주었다. 화면 속 옥수수는 제대로 여물었는지 빨리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보 옥수수알을 손톱으로 한번 꾹 눌러봐 쑥 들어가면 덜 여문거야. 다시 영상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옥수수알이 꽉 들어차지 않았다. 성글었다. 나는 큰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하였다. 안돼 안돼 덜 여물었네 그만 따세요 며칠 더 기다려요. 그럼에도 남편은 다시 말했다. 옥수수 수염이 다 말랐다는 건 여물었다는 표시잖아.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온 그가 수확한 것들을 자랑스레 내놓았다. 옥수수는 두 개 정도 땄으려니 했다. 토마토와 아삭이 고추와 청량 고추 그리고 블루베리 한 움큼 그리고 아뿔싸! 옥수수 두 봉지를 내놓았다. 서둘러 옥수수 봉지부터 열었다. 옥수수는 제법 길고 갸름하면서 옥수수알이 고르게 배열되어 있었다. 품종이 좋은 옥수수라 여겨졌다. 열 개는 되었다. 옥수수는 덜 여물었다. 옥수수알 사이가 성글었다. 옥수수알이 작아도 너무 작다. 손톱으로 누르니 쑥쑥 들어가고 물이 삐져 나왔다. 에구에구 에구에구 내게서 울음소리가 났다. 옥수수가 덜 여물었다는 이런 증표를 보지 못하다니. 이럴 수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알토란처럼 들어찬 옥수수를 딸 수 있을텐데.
젖은 나무가 타오를 때 연기처럼 매운 화가 내게서 피어올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화를 내면 무슨 소용이랴 달라지지 않는데. 법륜스님 말씀이 떠올랐다. 한마디는 꼭 듣고 싶었다. 여보 변명이라도 좀 해 봐. 왜 아직 여물지 않은 옥수수를 땄는지 변명하면 내가 아무 소리 안 할게. 남편이 우물쭈물하더니 답변을 하였다. 그동안 여러 번 이상한 옥수수를 보아서 그랬나봐 재작년에는 옥수수알이 작아도 너무 작았잖아 그리고 작년에는 옥수수에서 검은 물이 나왔잖아. 그런데 이번 옥수수는 크기도 크지만 빛깔도 곱고 옥수수알이 쪽 고르게 이쁘게 들어 있는거야 그리고 옥수수 술이 다 말라 있는거야 잘 여문 건 줄 알았어. 그리고 먹고 싶었어. 먹고 싶었다구? 손자와 자주 놀더니 손자의 어거지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막내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남편을 어여삐 봐 준 시가 있는데, 마지막 연 뼈가 보드라운 어린 아들이네 그아래쪽에 어리광 부리는 손자라네 라고 한 줄 더 보태고 싶어진다.
옥수수는 바로 따서 삶아 먹어야 제맛이다. 옥수수를 얼른 삶았다. 부드럽고 수분이 많고 달고 연하다. 씹어 먹을 게 없다는 게 흠이다. 옥수수를 두 개씩 먹고도 먹은 것 같지가 않으니 섭섭함이 앞선다. 먹고 싶어 옥수수를 땄다는 남편의 변명대로 옥수수를 먹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