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 3. 15. 예슈아 비전교회 토라포션 티칭 나눔 포스팅입니다.
주님은 내 교회를 반석위에 세울 것이다란 표현을 하신다.
주님의 교회가 계속 세워져 가고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운것이 아니라 교회로 세우기 위하여, 교회로,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되어져 가기위해 모인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그것을 더욱 깊게 본다. 교회로,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되기 위해서는 [테루마]가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께 [테루마], 예물을 가져오게 하시기 위해 출애굽의 긴 역사를 시작하신다.
- 유월절 어린양, 홍해, 바로의 세력을 잠재우시고 새생명 가운데 행하고 속사람을 살수 있게 해서 속사람이 만들어낸 예물로 교회, 하나님의 집을 짓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성막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이런 예배당이 아니다. 교회라는 것은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삶이다. 원래 생명, 삶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겉모습을 생명, 삶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속사람이 [테루마]를 가지고 와야지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 [테루마]는 성막 재료, 예물이다. 이것은 반드시 속사람이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속사람을 다시 살려놓으신다. 이것을 영적 예물이라고 한다.
영적 예물은 자기 중심성, 자기 사랑이라는 것들이 없어지지 않으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다.
[테루마] : 금, 은, 동등..
- 우리는 금을 모으는 중이다. 은도 모으는 중이다. 그런 삶을 반세겔이라고 한다. 반세겔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주님이 출애굽기 역사를 길게 진행하셨다. 동은 놋, 삶속에서 시험과 시련을 기꺼이 거치면서 겉사람을 십자가 죽이고 단 것이다.
이것들이 다 모여서 주님의 성전이 건축되어간다. 주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을 가슴떨림으로 보고 있다. 그것이 반드시 건축되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떤 교회를 근사하게 짓는 것이 교회일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어떤 일을 하고 근사하게 하고 조직을 갖추는 것이 교회가 아니다.
Ex ) 교회에 대한 가장 큰 고민을 14년 전부터 했다. 그런데 정말 어렵다. 주님이 토라를 가르치시면서 교회건축을 알게되었다. 영의 토라를 모르면 교회 건축법을 모른다. 교회 예물들이 또 교회를 건축한다. [봐야크헬], 드디어 지난주에 교회로 모였다.
교회 :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사람이 모인것.
언약궤 : 하나님의 언약을 진리로 알고 얼마나 그것을 사랑하냐. 얼마나 그것을 삶속에서 진리로 알아낸 사람이 있으면 이 교회의 언약궤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생명으로 사랑하고 사는 사람이 이 교회의 언약궤이다
그 날이 곧 올 것이다. 우리가 언약궤를 조립할 날이다. [테루마]가 가져온 조각목,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변화된 성품, 이전에는 부인이 한마디 하면 두마리 쳤는데, 한마디 했을때 내가 죽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체험했을때 그것은 하나의 조각목이 된다. 오늘도 조각목을 가져왔으리라고 확신한다. 지난주간에 내가 죽는 체험, 그것을 싯딤나무라고 한다. 그 조각목이 모여서 성막을 만들고 귀하디 귀한 하나님의 언약을 담을 수 있는 언약궤를 만든다.
교회는 물질과 공간이 아니기에 그 어떤자도 교회를 부술 수 없다. 교회는 영원하며 가장 영광스럽다. 그래서 교회는 가장 우주적이고 살아있는 것이다. 교회를 유기체라고 한다. 교회는 왜냐면 우리 삶을 통하여 세워지기 때문이다.
교회를 세우는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멋지게 교회를 세워보자. 이것은 무엇을 가지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님만이 우리가 어느정도로 세워져 가는지 보여주실 수 있다.
교회에 대한 영의 가르침이 없이는 아무도 우린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지난주간에 교회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이번주간에 레위기가 시작된다.
토라에 5가지 책이 있다. 5가지 책 중에서 우리가 하나를 택하라면 뭐가 제일 맘에 드는가?
- 레위기는 토라의 중간에 있다.
* 사실 토라의 구조는 이렇게 되어있다.
창 출 레 민 신
-----> <------
레위기 : [봐이크라 ויקרא](그가 부르셨다)
어디서? : 회막에서 부르셨다.
- 회막건설의 목적이 부르기 위해서란 것이다.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레1: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누구든지 : [아담 אדם]
이 말씀은 아담의 부르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담의 부르심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부르심이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과 사는 목적이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다.
예물 [코르반 קרבן] (예물이란 것을 설명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쓰는 것이다)
- [카레브 קרב] : 점점 더 가까이가다. Drow near. Close.
아담의 부르심은 [코르반]이다. 인류, 인생이란 가까이 가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부르심대로 산다. 부르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부르신 대로 그렇게 된다.
창1에서 하나님이 뭘 만들어놓고 부르신다. 하늘이라 땅이라 부르신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은 그것을 벗어날수 없다. 한번 그렇게 부르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부르심을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심은 찾아가야한다. 그래서 인류, 모든 사람들은 가까이 가는 일을 한다.
* 인류가 가까이 하는일 3가지
1) 어떤 목적을 세워놓고 거기에 끊임없이 가까이 간다.
Ex ) 성경1독(1독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계속 끊임없이 읽는다). 올해는 결혼하자(결혼하기 위해 계속 레이더를 작동시킨다)
왜 삶의 목적을 세우고 가까이 갈까?
가까이 가야하는 목적, 발견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life style이 있는 것이다. 인류는 창조의 목적을 발견해야한다.
인간이 창조의 목적을 발견하는 순간 인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이 결국 이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이유. 왜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자아에서의 탈출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 자아 : 모든것이 존재하는 목적을 내가 결정한다.
자아에는 대책이 없다. 모든것을 내 중심으로 결정한다. 자아의 세계의 중심엔 내가 있다. 내가 신이다. 이것을 바로라고 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를 처리하는 것을 배운다. 바로가 모든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여기서 짓는 가장 큰 죄가 금송아지 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좋은 교회, 나쁜 교회(목사)도 내가 결정한다.
자아의 세계에선 좋은 목사라고 하더라고 그것은 악이다. 이 세계에서 나한테 좋은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싫은 사람도 있다. 왜냐면 이 사람한테만 좋게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겐 서운한 것이다. 이 세계에선 해결이 안난다. 결국 이것을 한마디로 하면 나로 사는 한, 우주의 모든 창조물을 내가 규정하는 한, 나는 이들과 화합할 수 없다. 조화를 이루고 살수 없고 평화가 있을 수 없다.
- 인간들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자아의 세계에서는 생태계는 인간에게 무의미하다. 내가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한 세계를 악한 세계로 만든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내맘대로 만들어서 주님 빨리 오셔서 빨리 불태워서 나만 데리고 영원한 세계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굉장히 좋은 소리 같지만, 이런 개념까지도 만들어낸다.
나만 데리고 가면 심심하니까 내가 아는 사람들 같이 라면사고 생수사고 가자고 한다.
출애굽기에서 여기서 나오지 않는 한 부르실 수 없는 존재들임을 알려주셨다. 부르심을 줘도 소용없다.
* 자아의 세계
부르심 : 나의 비전과 부르심이 뭡니까?
하나님 음성듣기? 나 때문에 듣는 것이다.
교회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하나님 음성 한번 들은 사람은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누가 충고를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 바로 밑이라는 것이다. 이 자아의 세계에서 음성을 들으면 그렇게 된다. 하나님 음성을 듣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세계를 나오지 않고 이 사람들이 예슈아 비전교회를 만들었다면 나를 위해 짓는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토라가 없으면 교회를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서 나오지 않으면, 출애굽기를 진정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교회를 내가 좋아하는대로 짓는다. 그렇게 해놓고 교회라고 한다. 아니다.
우리는 어디로 다가가게 되어있냐면, 창조의 목적을 알 때 이 존재하는 세계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한 reality, 실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때 이들과 평화를 이루고 영원한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떤 존재에 대해서 창조의 목적을 제일 모르는 존재가 누구일까? 그것을 마누라라고 한다 (웃음)
- 부부의 관계에서는 창조의 목적을 모르고 반드시 날 위해 존재하고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날 위해서 존재하지 않으면 악한 웬수가 된다. 남편과 웬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창조의 목적을 가장 왜곡하는 곳을 부부관계라고 한다.
그러나 또한 반대로 그렇게 어려움이 있다면, 창조의 목적을 가장 잘 알수 있고 회복할 수 있고 가까이 갈수 있는 키는 부부관계에 있다. 그래서 토라는 부부관계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아는대로 계속 가까이 간다. 창조의 생각과 목적을 안다면 인간은 완전한 행복과 샬롬을 누리게 된다.
2) 어떤 존재와 형상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것. 어떤 존재가 되고싶다. (하나님의 형상이 되고 싶다)
Ex ) 온유한 존재(그런 존재, 형상이 되고싶어서 가까이간다)
내가 결국 달성하고 싶은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래서 창조주에게로 가까이 가고싶은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존재와 형상을 정해놓고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어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떠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어한다.
그 형상과 하나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가 가까이 못가서 안달이다.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지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 그게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Ex ) 직장 상사, 권력자, 돈많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도한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창조주에게로 가까이 가지 않는 한 우리가 가까이 가고자 하는 존재와의 모든것은 실패한다.
인간을 지으신 이유는 창조주와 가까이 하게 하기 위함이다.
3) 삶의 레벨
인간은 삶의 레벨이 있다. 인간은 어떤 삶의 레벨로 계속 가까이 가려고 한다. 인간의 삶은 그냥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모든 창조물은 인간의 삶의 레벨을 이야기한다.
* 삶의 레벨
- 광물질의 삶
- 식물의 삶
- 동물의 삶
- 인간의 레벨
우리는 광물질에서 인간 레벨로 계속 가까이간다. ('인간이 되라' = 인간레벨로 가까이 가라)
- 희생제사 : 동물적인 삶을 계속 교정하는 것. 인간 레벨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되었을때 창조의 목적에 가까이 가서 창조주와 같은 형상이 되고, 창조의 목적대로 살고, 인간의 삶의 레벨로 올라가서 살게되면 이것을 영원이라고 한다. 이런 삶을 영생, 완전한 행복, 지극한 행복이라고 한다.
지극한 행복을 누려본 적이 있는가 ?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우리에게 이 영생과 완전하고 지극한 행복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 전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영원한 행복, 지극한 행복)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과 싸우도록 준비된 것이 아니다. 도데체 왜 그러고 사는가. 왜 맨날 싸우고 사는가.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지 않았다.
이세상에 있는것이 우리를 대적하는 것 같은가? (돈없으면 못살것 같은것은가? 나는 왜 이렇게 없고?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위해 예비되었고 우리를 부르신다. 부르시는 이유가 이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형상을 주시기 위함이다.
가까이 감은 어떻게 완성하는가? 이 세가지 영역의 핵심은 하나님, 창조주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두가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주님이 다 포장해서 옛다 줘서 한번에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마법을 제일 싫어하신다. 마법사들은 다 돌로 쳐서 죽여야한다. 교회는 항상 돌이 많아야 한다.(웃음) 주님은 마법을 싫어하신다. 우리의 삶은 다 가까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이 주시려고 하는것에 가까이 가느냐?(How?)
@출애굽기 :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목적과 형상이며, 이 삶이 우리가 성취해야 할 가장 높은 단계의 삶이다.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고귀한가를 출애굽기가 다 이야기 한다. 그리고 너희는 성막에서 살라고 한다.
@레위기 : (HOW)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얻는가?
토라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악한 경향성으로 창조했다고 한다. 여기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두면 반드시 악한 경향성으로 기운다.
아직도 나는 언제나 선한 쪽으로 기운다는 사람은 정말 악한 것이다.
Ex ) 언제나 우린 둘이 싸우면 항상 너는 어찌 악한 경향성으로 기우냐고 하면서 나는 아니라고 한다(나는 악한 경향성이 아니다고..)
Ex ) 오늘날 제일 힘든 직업중 하나가 변호사이다. 오늘날은 다 애굽이기 때문에 심판을 할 수 가 없다. 누구나 상대방이 항상 악한 경향성으로 기울고 나는 조금 덜 기울었다고 한다. 도저히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주님이 창조한 악한 경향성을 우리의 본성, 옛 자아라고 한다. 이것을 더 깊게 이야기하면 우리에겐 이기적인 욕구가 있다. 613가지의 욕구이다. 이게 다 이기적 욕구이다. 자기중심적인 욕구이다.
* 예물 [코르반]
예물을 드린다 : 이기적인 욕구를 하나하나 교정해가면서 이것을 바꾸는 것. 한번에 하나씩이다.
예물은 한번 드리고 마는것이 아니라 평생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예물을 평생 드리면서 하나씩 교정해나간다.
레위기의 예물 [코르반] : 이기적인 욕구를 교정하는 것
- 이것을 예물을 드리고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내가 드리는 모든 제물은 다 이기적 욕구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우린 하나님의 목적에 한발한발 다가간다.
* 매일 해야하는 [코르반]예배
우리가 드리는 모든 욕구에는 매일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매일같이 주님께 [코르반]을 드려야 하는데 매일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긴다. 우리도 세상에서 매일 해야하는것, 잠을 안자면 큰 문제가 닥친다. 우리도 매일 교정해야 하는것이 있다.
- 이것을 안하면 일주일 동안 안자는 것 같이 매일 해야되는 것을 매일 있게 하는 파워가 가만두지 않는다.
Cf ) 오늘날 성도들은 겉사람이 매일 해야하는것은 기가막히게 안다. 예를 들면, 오늘 세수 안하고 온 사람은 몇명 없다. 대부분 다 매일한다.
그러나 속사람이 매일 해야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그러면서 속사람이 강하기 바란다. 속사람이 매일 수면을 취하는것이 뭔지를 모른다. 속사람은 매일 먹어야한다. 매일 먹이지 않으면 영양실조를 걸리는 것이다.
매일 교정해야하는 것, 매일 나의 이기적인 욕구를 교정해야한다. 이런 것들을 레위기는 가르쳐준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욕구중에 교정할 수 없는 욕구가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 교정할 수 없는 욕구
Ex ) 은밀한 죄, 습관적인 죄.
- 이것들은 내가 하고 싶으나 교정 할 수가 없는 욕구이다.
이것은 자기 사랑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은밀히 죄를 짓는 것은 다 자신 때문이다. 다른사람을 사랑하면 혼자 죄 짓는 것이 성립을 할 수가 없다.
교정할 수 없는 욕구 즉, 이기적 욕구를 다른 사람의 이타적 욕구로 바꿀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쌓이고 쌓여서 일정한 시기가 되면 반드시 우리가 말하는 삶의 문제로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이것이 엄청난 존재적인 위기라는 것을 가져온다.
나를 부술 수 있는 위기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 위기가 왔을때 비로소 내가 할수 없다라고 했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평소에는 이건 안되, 원래 그래 어려서 부터 그랬어 하면서 포기하고 그냥 둔다. 그것은 그냥 두어지지 않고 반드시 쌓여서 삶의 위기를 가져온다. 이 때 그것을 교정할 수가 있게된다. 위기는 찬스다.
반드시 이 위기에 [코르반]을 가져와야 한다. 그것을 교정하여 가져와야 한다. 어떻게 할 수 있게 만드느냐?
위기라는 것은 이전의 패러다임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줘야한다. 이 세상사랑, 물질주의, 자기사랑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이것이 교정된다. 절대로 위기 상황에 누구 때문에, 다른 외부적 요인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하는한 그 사람은 절대로 영적 예배, [코르반]을 드릴 수 없다.
이 위기 상황에서 원인을 물질중심, 자기중심, 세상중심이라고 하는 옛자아의 패러다임이 문제를 낳았다고 했을때 하나님은 이것을 교정할 수 있다.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교정하는데에는 다 질서대로 해야한다. 다가가는 질서, 방법이 있다. 아무렇게나 하면 안된다.
[코르반]도 아무거나 가져가면 안되고 가져 가서도 아무렇게 드리면 안된다.
- 처음에 안수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이게 오늘날의 큰 문제다. 우린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데 교회는 코르반을 드리는 곳이다. 하나님은 이사야서에서 너희들이 소를 메고 오는 발걸음 소리가 너무 싫다고 한다. 제발 그런것좀 하지 말아라. 난 희생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물질적이고 감각적이고 겉사람에 속한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예배는 영적 예배이다. 이 모든 것들을 영적으로 해석함이 있어야만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영적예배는 그것들을 토라 끝났다고 하면서 다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수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야 영적 예배를 드린다. 속사람으로 안수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알아야 그대로 할 것 아닌가.
안수 : 손을 머리에 얹는 것.
- 손을 번제물(소나 양)의 머리에 얹는다. 이 소리는 앞으로 내 손은 번제물의 머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모든 코르반은 하나님이 열납하신다.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것은 오로지 이 코르반 뿐이다.
열납하다 [라쫀 רצון] :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그리스도만 열납하신다. 모든 코르반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나님께 코르반을 드릴 수 없다.
히10:5-7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5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제사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다.
- 모든 제사와 예물은 그리스도를 가르친다.
6 번제와 속죄지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 번제와 속죄제가 지칭하는 다른 무엇이 있다.
7 두루마리 책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번제물은 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 (=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 하나님의 뜻만을 열납)
코르반 : 인간의 교정
하나님께서 고르반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교정한 것을 가지고 나갈때 받아들이신다.
Ex ) 주님께 번제를 가지고 나간다. 내 자신이 십자가를 깊이 체험한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힐 때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용서하고 참고 그렇게 나의 중심적인 것을 교정할 때 이것이 나의 코르반이 된다. 이것이 offering이다. 이것을 가져가면 여호와께서 받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코르반이 더 많아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여호와께서 받으실지 아니할지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다 참았다고 한다.
Ex ) 내가 정말 용서했다고 코르반이라고 가져 나갔는데 용서했다는 상대방도 와있다. 저 인간은 다르게 생각한다. 서로 잘난척 하는 그 인간을 내가 참았습니다고 한다. 그러면 어느것이 열납될까?
주님은 진정한 코르반이 되신다. 주님이 바로 한 새사람이다. 한 몸을 예비했다는 것의 몸은 육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틀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한 새사람의 틀이 되었다. 모든 인류가 교정되야할 원형이 되셨다.
그래서 그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가야 하나님이 받으신다. 코르반은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코르반이다. 코르반에서 내가 교정하는 것은 없다. 무엇을 보고 뭘 어떻게 교정하는가? 오직 하나님 눈에 참 인간은 에하드 이신 그리스도만 있다.
우리가 사는 삶, 나는 어떤 삶을 살고싶다고 말한다. 이런 삶들은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것은 삶의 원형이 있다. 어떤 하나의 삶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나와서 이런 삶 저런 삶을 개별적으로 누리는 것이다.
제1근본 삶, 원형이 있다. 그 삶의 원형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내가 살고싶은 삶은 어디서 온 삶인가? 내가 창조해낸 삶이 아니다. 다 그리스도 에게서 나왔다. 이 그리스도의 삶을 원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교정하려고 하면 교정틀이 필요하다. 뭔가 standard. 다림줄이 있어야 교정을 한다.
이 교정 틀을 [쎄 שה], 어린양이라고 한다. 그분이 교정틀이 되신다. 내가 교정되기로 했을때 그분이 틀로 딱 해주시는 것이다. 결정은 내가 하지만 사실 진짜로 교정해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코르반 : 나의 이기적인 욕구가 이타적인 욕구로 교정된 것을 주님께 가져간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이 열납하시느냐 안하느냐는 어디에 달려있는가?
레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 기쁘게 받으시다 : 열납하다
기쁘게 받으셔야만 여호와께 가까이 간다. Ex ) 선물을 했는데 기쁘게 안받으면 가까이 안간다.
기쁘게 받는다는 것은 나와 결합, 연합하자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신것 만큼 우리의 속사람의 시스템이 그분의 형상으로 바뀌어져 간다.
기쁘게 받으시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이 어린양, [쎄], 틀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의 틀에서 나온 교정이냐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가 교정해 준 것이냐는 것이다. 너 어디서 교정받았어? 라는 소리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만큼 코르반을 드릴 수 있다.
벧전2: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면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려라.
- 레위기의 말씀을 영적 토라로 풀면 영적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영적 제사는 아무렇게나 하는것이 아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두신 이유는 레위기의 말씀을 영적 제사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어라. 우리의 데스티니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영적 제사를 드리려면 나의 이기적인 욕구를 다 교정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대로 교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없이 레위기를 공부하면 애굽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클난다. 그리스도 없이 내가 원하는 내가 되고 싶으면 큰일난다. 반드시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인간은 레위기에 들어갈 수 없다.
인간이 어떻게 교정되야한다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아신다. 모든 인간의 교정이 한데 모인분이 그리스도이다. 어느 누구도 교정의 끝과 목적은 모르지만 그리스도는 아신다.
인간이 코르반을 가져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이기적임과 죄인됨을 시인하는 것이다. 나에겐 방법이 없다('의인은 아무도 없나니'). 창조주이신 당신만이 나를 교정시킬 수 있습니다. 나에게 오셔서 교정해주십시요.
- 그래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된다. 그것을 체험할 때 비로소 여호와께 가지고 나가 코르반으로 드린다.
- 여호와는 그것으로 나를 사람되게 하신다. 나의 시스템이 되게 하셔서 건축하신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오셔서 그것을 행하도록 시인하는 것 밖에 없다. 그것을 어린양, 틀이라고 했다
롬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몸을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재물로 드리라
- 몸 : 삶
삶을 산 제물로 드리라. 코르반으로 드리라. 여전히 우리는 영적 예배이다.
* 영적 예배와 실제적 예배의 차이점.
신약 성경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이냐? 레위기를 없애는 것이 신약성경이 아니다. 영이란 것은 레위기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의 모든것이 실제적인 희생제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것은 그리스도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의 속사람, 영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을 알아내면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다.
제사장 직분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레위기에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모든 방법이 나온다. 우리를 교정하는 것은 절대 내 방법대로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된다. 그 방법들을 레위기에서 자기 세상 중심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영적방법으로 하는 것이 영적 예배이다.
영적 제사장은 아무렇게가 아니라 철저하게 질서대로 해야한다. 우린 이런 부분에 너무 무지하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은 다 자기중심, 물질중심이다. 모든것들을 물질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해석한다.
- 내가 자비함으로 권하노니 제발 이것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
새롭게 하라 : 교정
마음을 새롭게 하라. 이것을 개혁, reform이라고도 한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라. 이것이 신약의 위대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신다.
신약은 절대 내가 네 주위 환경 바꿔준다고 안하신다. 나 믿으면 국무총리 된다고 해주지 않는다. 나를 믿으면 속사람이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이 속사람, 마음을 어떻게 해야 교정하고 어떻게 해야 개혁하는지를 하라는 것이다. 오직 마음을 교정하는 일에 너희의 모든것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Ex ) 무슨 일이 벌어지면 거기서 마음을 교정하는 일을 하라. 그래야 그리스도가 역사하신다. 네가 코르반을 가지고 나가면 그때서야 하나님께서 속사람의 시스템을 주시고 사람이 된다. 이것을 안하면 속사람 자폐증이 온다. 이것이 오늘날 온 세계를 덮고 있다. 속사람이 아무 삶을 살지 않고 가둬둔다. 이 신음소리가 온 세상을 덮고 있다.
변화를 받아, 이것을 해야지, 레위기에 맞도록 코르반과 Offering을 드려야지, 매일매일 삶속에서 삶속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면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교정이 있어야지만 변화를 받는다.
변화를 받는다 [메타폴로] : 형상으로 바뀌어 간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해간다.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화해져 간다.
이 변화라는 말은 형상이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하나님이 열납하시면 형상이 바뀌어 간다.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교정과 새롭게 됨만이 우리를 형상으로 바꿔간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코르반을 이야기한다. 그것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모든 인간이 가져야할 하나님의 성품이 레위기에서 그려진다.
이 [쎄], 틀에맞게 교정해 갈때 우리는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이것이 레위기이다. 이번 한주간 레위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그런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핵심이다. 우리가 성막까지 왔어도 교회 안에 이 코르반 예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짓기 원하시는 것은 레위기 때문이다. 한주간 레위기를 기대하자. 더이상 그냥 지나가면 안된다. 이제 코르반 예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한다. 토라를 일주일 동안 공부하는 것. 단 하나라도 중요 개념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번 주간에는 코르반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만이 나를 교정할 수 있구나. 나의 이기적인 욕구가 보이면 그리스도를 불러서 체험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 화를 참을 수 있었다면 그것을 코르반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신다. 누구 이름으로 했느냐. 어느 병원에서 교정했느냐를 보신다. 절대 불법 병원에 가지 말라. 누구 이름으로 했느냐.
우리의 이기적인 욕구가 보일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그리스도는 우리를 교정해 주신다. 그 바뀐 것을 코르반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신다/열납하신다. 하나하나씩 토라적 개념을 배워가라. 거기엔 번제 속죄 속건제, 여러가지가 있다.
이전엔 생소했어도 이젠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영적 개념이 무엇인지 하나라도 알아나가면 우리 삶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기도 : 주님 레위기를 가르쳐주십시요. 주님의 부르심 속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 주님이 창세전에 예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고르반를 드리는 영적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인도하소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와 인도를 보게하소서.
창세전에 우리를 위해 모든것을 예비하시고 영원한 행복을 예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을 주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우리를 부르고 계신 그 음성을 듣게 하소서. 이제 코르반, 영적 예배, 제사장의 삶을 살수있도록 우릴 인도하소서.
모든 우리의 악한 경향성, 이기적 자아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를때마다 코르반되신 주님이 우리속에 역사하시는 변화가 있게 하소서. 새롭게됨이 있게 하소서. 그 새롭게 됨을 통하여 주님께 가까이 가기 원합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가까이 오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영적 예배를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코르반 되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고통당하시고, 모든것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주님이 아니면 이 길을 갈수 있는 생명도 없고 주님이 아니면 이 길을 갈 수도 없고, 어떤 희망도 없는 우리입니다. 우리의 코르반, 희망되신 예슈아 당신만을 사랑하고 당신의 이름만을 부르게 하소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