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88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난 12월 5일은 ‘무역의 날’이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억 달러를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64년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한 것이 기원이다. 정부는 1990년부터 수출의 날을 무역의 날로 바꾸고, 2012년부터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기념해왔다.
작년 한국의 무역은 12,666억 달러에 달한다. 수출이 6,308억 달러이고 수입은 6,358억 달러다. 무역 규모로는 세계 7위에 해당하고 수출액으로는 세계 8위의 국가다. 신생 독립국이며 분단국의 부흥이라는 측면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무역의 날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이는 많지 않다. 나라는 정치꾼들의 이전투구로 어지럽고 젖 무는 강아지도 탄핵이라고 짖어댄다. 왜 우리 정치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상식의 시민은 지긋지긋하고 울화통이 터지고 혈압이 오른다.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그대들이 즐겨 쓰는 말대로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고상한 말이 필요 없다. 이웃 나라가 주먹질 못 하는 통일 된 나라, 배부르게 먹고 등 따습게 자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사기꾼이 사라져 교도소가 텅텅 비어있고 나도 살맛 나고 너도 살맛 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고 가끔은 노래하며 춤도 추고 싶다. 커피 향이 배어있는 책장을 넘기며 사색에 빠질 때면 말귀 통하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선진 시민답게 사는 나라 좀 만들어 보자. 지켜보건대 정치인인 그대들은 틀렸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의 신념도, 의지도, 능력도 개뿔이다. 기대가 없으니, 감동 없는 연극무대에서 모두 퇴장하시길.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지난 8월 6일 입국했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젊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고졸 이상의 학력자로 ‘케어기버’라는 육아 및 노인 돌봄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이 태를 묻은 조국 땅을 두고 한국행 비행기를 탄 이유는 단 하나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현대사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보다 더 깊은 눈물이 골을 파고 있다. 멀지 않은 과거다. 한국의 산업화에 있어 1966년은 의미가 있는 해다. 우리 간호사들이 외화를 벌기 위해 서독으로 처음 파견된 해이기 때문이다. 파독 광부는 그보다 3년 전에 비행기를 탔다. 경제개발 초기의 인적 자원 수출이었던 셈이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25달러인 반면, 필리핀은 200달러였다.
파독 간호사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중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시신 닦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지 못한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잘랐다. 같은 해 가발을 만들어 판 돈이 1천 62만 달러다. 수출 1억불의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가발은 수출상품 3위에 올랐던 효자상품이었다.
무역의 날 현수막엔 눈물 자국이 배어있다. 가난의 눈물이고 감격의 눈물이고 결의의 눈물이었다. 민관이 한데 모여 수출상황판을 그려놓고 1억 달러 수출에 만세를 외쳤던 날이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환희로 들떠있던 날이기도 하다. 이제 아랫배가 여의도 의사당의 돔만큼이나 튀어나와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고 만세도 부르기 거북하게 되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더니 더러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를 눈을 깔고 내려본다.
내년 수출 규모가 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대미수출에서 철강과 자동차, 가전제품과 반도체 등은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수입품에 대해 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이는 미국의 이웃 나라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압박에 비춰 괜한 걱정이 아니다.
우물 밖의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냉전 종식은 역설적이게도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했다. 마르크스의 무덤에 콘크리트가 덧씌워진 줄 알았지만, 네오막시즘이란 바이러스는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중국의 부상과 나토의 확장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모험적 군사행동은 세계를 새로운 냉전체제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유훈인 고려연방제를 포기하고 한국을 제1 주적으로 삼았다. 더는 평화롭게 통일해야 할,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한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용산과 여의도 상공엔 먹구름이 걷힐 날 없다. 머리채 잡힌 대통령 부인이 끝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일면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되나 계엄령은 당최 납득하기 어렵다. 많은 이가 국민과 직접 소통하라고 일렀건만 우이독경이었으니 자업자득이다. 최고 권력자가 되면 왜 하나같이 낮달의 도그마에 빠져 눈이 멀고 귀를 막는지 신기한 일이다.
여의도 의원 나리들께 묻는다. 우리 누나들이 파란 눈의 시신을 손 떨며 문지를 때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의 형님들이 이국땅 끝 모를 막장에서 빵조각을 탄가루에 비벼 먹을 때 그대들은 어디에 서 있었는가?
이제 그만들 하시라. 여기서 멈추시라. 권력, 아무것도 아니다. 물어뜯고 용쓰며 뺏어 본들 지나 보면 바람에 나는 보릿겨와 같은 것, 역사에 오욕의 이름으로 남지 않으려면 모두들 내려놓으시라. 그리고 K팝을 흥얼거리며 AI와 대화하는 청춘들에게 여의도의 문을 열어 주시라. 지금의 한국 정치는 여야 모두 유통기한이 지났다.
필자의 바람은 대통령의 퇴진과 국회 해산이다. 더는 그들의 이름을 혐오의 대상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다. 소망은 늘 허망이란 낙엽으로 두터워지는 법, 대통령의 퇴진은 코 앞인데 의원들 감투를 벗기는 일은 어불성설이니 산책길이 착잡하다.
아내가 집을 비워도 밥때가 되면 의사당 지붕 돔만큼이나 쌀밥으로 배가 찬다. 이만하면 무역의 날을 기억하지 않아도 될 텐데 걱정도 팔자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대한민국이란 함선의 항해가 위태롭다. 정말 함장다운 리더는 없는 걸까? 산책길에 유달리 낙엽이 차이고 밤은 동지만큼이나 어둡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