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이야기
며칠 전에 올린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강좌는 1차, 2차 모두 그 다음날로 마감이 되었습니다.
원하는 분들이 더 계셔서 2월 마지막 주말(25~26일, 토~일) 과 주중인 16~16일(수~목)에 각각 한 차례씩 진행하려고 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로 신청하고 문자를 주십시오.(010-4325-1877)
마지막 주말에 12명, 주중(15~16일)에 7명이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4일 전( 26일)에 제가 올린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에 나와 있습니다. ..............................................................................
28년 전인 1989년에 남편은 일본에 있는 ARI(Asian Rural Institute)에서 1년 과정의 연수를 받았다.
아시아농촌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이었다. 그 때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이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세계의 비정부기구(NGO)에 지원을 많이 했다. 그 지원 덕택에 ARI에서는 1년 간의 교육비는 물론, 생활비와 용돈까지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ARI에는 정규 스텝들이 충분히 있었지만 특강 형태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연수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강사로 청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느 날 <이구사>라는 사람이 ARI에 와서 육가공 강의를 했다.
그는 자칭 <햄, 소시지 전도사 >였다. 그는 토쿄에 있는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던 중에 외국에 나가서 육가공을 배웠고, 은퇴하고 나서는 일본 곳곳을 다니면서 육가공을 가르쳤다. 화학물질을 넣지 않고 천연양념만을 쓰면서 햄, 소시지, 베이컨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그 일을 보람과 낙으로 여긴다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그는 남편이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왕복 비행기표값만 내주고 육가공 강습에 필요한 일주일간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에 가서 햄 소시지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1년 간의 연수를 마치고 풀무원 공동체로 돌아온 남편은 장인 어른인 나의 아버지께 그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는 바로 그 사람을 초청하자고 하셨다.
그 해 겨울에 이구사 선생은 아버지의 초청을 받아 소시지 가는 기계까지 싸들고 한국에 왔다. 아버지는 풀무원 공동체 식구들은 물론, 정농회의 회원들도 여럿 불러서 햄, 소시지, 베이컨 만드는 방법을 함께 배우게 하셨다.
아버지는 농장에서 기르고 있던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이구사 선생은 돼지 한 마리를 부위별로 해체하는 법도 알려주면서 함께 작업을 했다.
베이컨을 만들 삼겹살 부위, 햄을 만들 부위 등을 떼어놓고 나머지 부위로는 소시지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부위 별로 양념과 소금간을 해서 재워놓고 이구사 선생은 훈연상자를 만들자고 했다. 돼지고기를 갈아서 소시지를 만들고, 햄 부위는 싸서 묶은 다음에는 밀패된 공간에서 6시간 정도 연기를 쐬는 훈연 과정을 하려면 필요한 도구였다.
시중에 나오는 소시지 중에 이러한 훈연 과정을 거치는 제품은 없다. 다 연기 냄새가 나는 맛를 넣어 훈연한 소시지 맛을 낸 것들이다. 고급 호텔에서 한 시간 정도 특수 훈연기에 넣어 만들어 손님에게 내는 소시지는 있다고 들었다.
남편은 목제소에 가서 커다란 합판을 몇 장 사 왔다.
이구사 선생의 지시대로 합판을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못질을 해서 옷장같이 생긴 훈연상자를 만들었다.
남편은 나중에 자신의 육가공 강좌에 온 사람들에게 이런 상자를 만드는 게 어렵게 생각되면 못 쓰는 나무 장롱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했다.
이구사 선생은 일 주일간 머물면서 육가공 시범을 보여주고 저녁 시간에는 강의도 해주고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햄, 소시지, 베이컨 만들기는 그것으로 끝인 것 같았다. 배운 사람들은 아, 이런 게 있구나, 하였을 뿐 이러한 육가공을 집에 가서 해보거나 보급할 엄두는 내지 못 했다. 풀무원에서 두어 번 돼지를 잡아 햄, 소시지를 만들어 식탁에 올리거나 손님 대접을 했다.
몇 년 후 전국귀농운동 본부가 발족하였다.
전국귀농운동본부는 여러 농업단체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이병철 선생님이 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지금에야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귀농교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때는 귀농이란 말도 새로운 말로 들릴 때여서 농촌에 가서 농사 지으려는 사람들은 귀농본부에 와서 강의를 들었다.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귀농본부는 당연히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교육 과정을 짰고 남편은 주강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주로 < 자립하는 소농>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고 한다.
어느날 강의 중에, 귀농하게 되면 돼지를 몇 마리 길러서 직접 햄, 소시지로 가공하여 판매하면 농가 수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어느 여 간사(요즘의 활동가) 가 말로만 하지 말고 자기들에게 직접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남편은 그러자고 했고 그 해 겨울에 여자 간사 여럿이 포천으로 육가공을 배우러 왔다. 그 때 나는 나는 양주에서 아이들과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집도 없는 포천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때 포천에는 막 구입한 땅만 덩그라니 있었다. 콘테이너 하나와 그 후 남편이 흙벽돌을 찍어 만든 조그만 흙집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남편은 주로 포천에 있으면서 양주의 집을 오가며 포천 농장을 일구고 있었다.
남편은 육가공 실습 전날 동네에서 돼지 한마리를 사서 잡아놓고 귀농본부 간사들을 기다렸다.
쓸 만한 칼이나 번듯한 도마, 그릇 같은 것도 거의 없었을 때였다.
그래도 다같이 모여 돼지를 부위별로 해체하고, 마늘, 양파 등의 양념을 까서 갈아 고기를 재워놓았다. 다음날 고기를 갈아 케이싱 작업을 하고 난 후 훈연을 했다. 밥도 해먹으면서 4평짜리 흙집에 나란히 누워 자기도 하면서 3일간 작업을 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한다. 손이 시려 제대로 작업이 되지 않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손을 녹여가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돼지 내장 냄새를 맡고 산에서 산짐승이 내려와 우리집 개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새벽에 남편이 나가보니 산짐승이 개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돼지 내장을 그냥 둔 채 산으로 도망간 흔적이 있더라고 했다.
육가공을 실습해 본 귀농본부 간사들은 남편에게 그 다음해부터 육가공을 정식 생활강좌로 만들자고 했다.
귀농본부는 겨울마다 수강생을 모집하여 육가공 강좌를 열었다 처음으로 연 생활강좌였다고 했다.
이 태 후인가 그런 식으로 육가공 교육을 마치고 난 어느날 트럭 한 대가 나타났다고 한다. 교육을 마친 분이 서울 중앙시장에 가서 스텐 통, 스텐 작업대 등을 잔득 사서 실고 와서 부려놓고 갔다.
제대로 된 도구 하나 없이 육가공 교육을 받고 나니 아무래도 기본 기구를 좀 갖춰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단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 같기는 한 데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육가공 강좌 때마다 그 도구들을 잘 쓰고 있다.
몇 차례의 강좌를 끝내고 나자 귀농본부에서는 책을 내자고 했다. 남편이 그런 게 무슨 책이 되겠냐고 하면서도 그러라고 했다.
귀농통문의 홍문국 편집장은 남편의 육가공 강의와 실습을 꼼꼼하게 취재하여 글을 썼다. '생태적 삶을 위한 귀농총서'라는 타이틀로 책을 내고 있던 <들녘>출판사에서 <내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이라는 제목을 붙여 책을 냈다.
책 서문에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본부장은 <공동체를 배려하는 농사에서 바른 먹거리가 나온다> 라는 제목으로 긴 추천의 글을 써주었다.
그 마지막 부분을 옮겨본다.
"... 여기에 제시하고 있는 육가공이란 어떻게 고기를 제대로 가공하는것인가 하는 기술적인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생명의 먹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생명의 밥상을 마련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뒤에는 농업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실현하는 김준권 선생의 큰 정신을 서려 있음을 잊지 않기를 부탁합니다.
... 이 조그만 책 한권이 생태적 가치와 자립적인 삶을 일구어가는 새로운 농부들이 이 땅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충실히 열매 맺는 일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때부터 귀농본부는 남편의 육가공 강좌에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후 다른 생활강좌가 생겨나면서 몇몇에도 <내 손으로...>라는 말을 앞에 붙였다는 말을 들었다.
귀농본부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남편과 의논하여 1월 말이나 2월 초에 2박3일의 육가공 교육 일정을 잡는다. 날짜가 정해지는 대로 귀농본부에서 바로 홈페이지에 올리면 며칠 만에 15명의 정원이 다 찬다고 한다.
육가공 강좌 첫날 저녁에 남편은 유기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각자 자기 소개를 하게 하는데 2년, 혹은 3년씩 기다렸다는 사람도 해마다 여럿 있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돼지를 직접 잡았다.
참가자들 중에는 돼지를 잡는다는 말에 당연히 긴장하거나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편은 도축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참가자들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의 희생을 전제로 하여 살아간다.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일, 곧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엄중한 일이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마트에 있는 돼지고기만 보아왔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먹을 거리로 변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다."
남편이 이렇게 말을 하고 나면 참가자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서 집에서 직접 돼지를 잡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남편도 도축장에서 돼지를 잡아온다.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강좌를 연 지 20년이 되고 나니 그동안 다녀간 교육생이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자기 집에서 기른 돼지를 잡아 육가공을 하여 판매하는 사람도 있고, 소시지를 만들어 파는 가게를 열어서 잘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자기 지역에서 육가공 강좌를 열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올해는 남편에게서 배운 상주 지역의 사람들이 귀농본부와 함께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강좌를 열기로 했다고 귀농본부 사무국에서 알려와서 남편이 기뻐하였다.
육가공 강좌 초기에는 주로 귀농하려는 사람, 혹은 귀농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많이 참여하였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회지에 살면서도 바른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직접 소시지 등을 만들어보고 싶어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작년에는 한겨레 신문에서 한겨레 주주와 독자들을 위하여 <내 손으로 만드는 햄, 소시지, 베이컨> 강좌를 열고 싶다고 했다.
육가공의 전문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1박2일로 압축하여 진행하자고 했다. 1월에 두 차례의 강좌를 열었다.
우리에게 다른 일도 많았지만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정국으로 인해 이번 겨울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한겨레 담당자들도 그런 것 같았다.
정국의 급한 상황이 지나간 듯 하자 한겨레에서 육가공 실습을 진행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진행하려고 보니 한겨레 쪽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올해는 같이 하는 것을 접기로 하였다.
그동안 육가공 강좌를 언제 시작할 것이냐고 문의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날짜를 공지한 게 설 연휴 바로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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