鄕居自歎(향거자탄) 고향에 살며 탄식하네
-조국빈(趙國賓, 1570~?)
玉露凋傷金井梧 九秋佳節亦須臾
옥로조상금정오구추가절역수유
乾坤有意生男子 歲月無情老丈夫
건곤유의생남자 세월무정노장부
少日交遊俱寂寞 異鄕蹤迹復江湖
소일교유구적막 이향종적복강호
家貧衆口多鵝雁 赤貧荒年活計迂
가빈중구다아안 적빈황년활계우
맑은 이슬에 우물가 오동잎 지고
가을 좋은 시절도 또한 잠깐이구나
천지에 뜻이 있어 사내아이 태어났지만
세월은 무정하여 노인이 되었네
어린 날 사귄 벗들은 모두 적막하고
타향을 떠돌다가 다시 고향에 왔다네
가난한 집에 식구 수는 많아 기러기 떼 같고
없는데 흉년들어 살아갈 일 막연하구나
옥로(玉露): 맑은 이슬 조상(凋傷): 시들어 상함
구추(九秋): 가을 수유(須臾): 잠시
교유(交遊): 벗과 사귐 적막(寂寞): 쓸쓸하고 외로움
강호(江湖): 세상을 의미 아안(鵝雁): 집오리와 기러기
적빈(赤貧): 몹시 가난함 황년(荒年): 흉년
활계(活計): 살아갈 계획 우(迂): 멀다. 물정에 어둡다
조국빈(趙國賓, 1570~?) 조선 중기의 문신. 자: 경관(景觀). 호: 설죽(雪竹). 1606년(선조 39)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에 임용되었다. 그 뒤 언관으로 활약하다가, 1618년(광해군 10)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인조반정으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1632년(인조 10) 형조참의를 지내기도 하였으나, 반대파의 박해로 벼슬에서 물러나 충주에 은거하였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 중에 저렇듯 가난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불과 1970년대 전까지만 해도 늘 빈궁 속에서 살았기에, 설죽(雪竹)의 한탄이 바로 우리 아버지의 한탄이었다. 부모님은 서울로 이사해서 온갖 고생 다 하시며 4형제를 키웠다. 밥 굶는 일은 사라진 세상에서 그 네 형제가 이제는 생의 겨울에서 저 설죽의 한탄과는 또 다른 탄식을 하고 있다. 먹고 살 만하면 나라가 분열되고 외침을 받아 처참히 짓밟히던 우리 민족의 역사가 되풀이되려 한다. 이 풍전등화의 안타까운 순간에 서 있는 데도 방법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