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18
조국이 무너진 건 그가 알고 보니 위선적인 586 운동권 출신의 대표적 인물이었다는, 벗겨진 가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를 모르고 정치에 관심 두고 싶지도 않은 보통 생활인들, 특히 여성들부터 분노를 크게 산 것은 입시비리 역린(逆鱗, 용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란 말로 임금의 노여움을 의미)을 건드린 탓이 더 직접적이다.
그들은 평등의식이 유난히 강한 한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DNA를 보유, 돈과 빽이 부족해 불이익을 받는 건 욕은 내지를망정 체념하지만, 점수 조작으로 자기 자식이 떨어지게 되면, 또는 자기 자식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도저히 참지 못한다. 법무부 장관을 1개월 하고 사퇴한 조국과 그의 아내 동양대 교수 정경심의 딸 조민은 부모의 스펙 조작에 의해 대학(고려대)과 의전원(부산대)에 합격했으므로 점수를 조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선희, 임정엽, 권성수)는 작년 연말 조국 사태로 기소된 정경심(그의 남편 조국은 생업을 위해 되도록 부부 동시 구속은 피하는 관행 등으로 집에서 쉬며 서울대 로스쿨 월급을 일부 받고 있다)에 대한 재판에서 그녀의 딸이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에 제출한 7가지 스펙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건망증이 심한 필자 같은 사람들은 그동안 크게 이슈가 된, 엄마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서 받은 걸로 돼 있는 동양대 총장 표창장만 가짜인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다른, 대학 합격에 도움이 되는 확인서들이 6가지나 더 있었고, 이게 또 모두 위조 또는 허위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단국대 의과학연구서 인턴 및 체험활동 확인서,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및 체험활동 확인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및 확인서, 호텔 실습수료증 및 인턴 확인서, KIST 분자인식연구센터 인턴 및 인턴 확인서, 동양대 보조연구원 연구활동 확인서...
참 재주도 좋고 대담하기도 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가 모두 서울대를 나온 수재들이니 그 딸의 머리가 돌연변이가 아닌 한 매우 명석했을 텐데도 왜 이렇게 많은 스펙(원래 사양, 규격, 명세서라는 영어 Specifications의 줄임말이나 특별한 자격, 경력이란 의미로 쓰이는 한국식 조어)이 필요했고, 그것들이 하나같이 다 가짜였을까?
엄마 정경심이 가짜 스펙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딸 조민은 듣자 하니 용모가 뛰어난 여학생이었다고 하는데, 공부에 열중하진 않았던 것 같다. 부산대에서 유급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관련 학칙들이 우연의 일치로 개정돼(그녀의 아버지 입김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총 1200만원의 장학금까지 받으며 무사히 졸업했다.
그리고 이번 의사고시에 합격해 조국 일가의 숙원인 집안의 의사 면허 획득이란 위업(偉業)을 달성했다. 조국이 위기 상황에서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다가 지금은 흐지부지된 부산 교외의 웅동학원 부지는 조국 일가가 미래에 병원으로 바꿔 지을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한국의 의사 면허 시험 합격률은 약 95%다. 공부는 뒷전에 두고 술 먹고 개망나니 짓이나 일삼아도, 용모 가꾸기에만 열심이다 밤낮 유급을 해도 졸업 학점만 따면 벼락치기 준비로 시험은 합격,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선진국의 의사 면허 합격률은 대개 85% 이하이다. 변호사 시험은 약 25%가 떨어진다.
이런 지나치게 느슨한 최고 전문직 시험 관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성과 양심의 전당이라고 해야 할 대학의 눈치 보기, 정권에 대한 굴종이다. 조국 딸 스펙에 관한 의혹들이 언론 보도에 의해 거의 사실로 드러났을 때 그녀를 합격시켰던 대학들로써 다수 국민들로부터 합격(입학)을 취소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은 고려대와 부산대는 매우 비겁하고 정파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해하기 어렵고 한심한 일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가 점점 더 불리해지니 법원 판결 이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조민의 의사 면허 자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당사자인 부산대 의전원은 1심 판결 이후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학칙과 모집 요강에 근거해 심의기구를 열어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판결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인데, 필자는 대법원의 대법관들(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9명이 문재인 정권 임명)이 위조된 서류를 위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할 사람들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 중 다수가 아무리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건 어쩌건 판사는 판사이고 대법관은 대법관이다. 개인의 명예와 대한민국의 법치(法治)를 위해 그들이 양심을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의 말로를 보라. 그는 대법관 3명을 비롯해 재임 중 항소법원과 지방법원 등에 200여 판사들을 자기 사람들로 임명했으나 이들은 결국 지난 대선이 사기로 도둑질당했다는 그의 허위 주장을 냉정하게 각하했다. 명백한 진실 앞에서는 정파도 의리도 전혀 소용없는 것임을 보여 주는 웅변적 사례다.
지난해 말 서울행정법원 판사 조미연과 홍순욱, 서울중앙지법 판사 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다섯 명은 검찰총장 윤석열 징계와 조국 정경심 부부 관련 재판에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의 앞날에 희망과 확신을 주는 역사적 판결문을 썼다.
필자는 정경심 항소심을 심리할 고등법원과 대법원도 법과 양심, 상식으로 “조 씨(조민)의 최종 점수와 최종 합격을 하지 못한 16등의 점수 차이는 1.16점에 불과해 (동양대) 표창장 수상 경력이 없었다면 합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1심 결과를 뒤엎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부산대는 그제야 조민의 입학 취소 결정을 할 것이고, 의사 직업을 능멸(凌蔑)한 그녀의 의사 면허는 따라서 무효가 될 것이다. 정의는 지각하더라도 오기만 하면 더 값진 것이 될 수도 있다.
정기수 /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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