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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19.
사이키델릭을 통한 신비로운 경험은 이중의 가치를 지닌다. 먼저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또 하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좀 더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 올더스 헉슬리, 소설가
난 LSD를 통해 심오한 체험을 했어요. 정말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었지요. 사물에 숨어있는 새로운 면들을 봤거든요.중략) 이제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좀 더 인간의 의식과 역사에 의미 있는 것들을 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Addiction Center.com
지난주 TV 뉴스를 보다 좀 놀랐다. 얼마 전 국내로 마약을 들여오다 걸린 전직 국회의원의 딸이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는 내용이다. 판사의 선고가 아니라 검사의 구형이므로 형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초범에 미성년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중형이다. 대마초뿐 아니라 여러 마약을 들여왔고 특히 ‘강력한 환각제로 알려진’ LSD가 포함돼 있는 게 결정적인 요인 같다.
작년 여름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별일이다’라며 혀를 차고 지나갔을 것이다. 필자 역시 LSD는 대마초와는 ‘급이 다른’ 마약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며 깊은 충격을 받았고 어느 날 대학 학과 선배와 점심을 하다 책 내용을 얘기한 뒤 “과학카페에 서평 형식으로 소개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가 “자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조언을 듣고 접었다.
그런데 지난달 약학자 박성규 박사가 펴낸 책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를 읽다가 5장 ‘각성과 환각 그리고 행복’에서 LSD를 꽤 자세히 다루고 있는 걸 발견했다. 사실 작년 여름 필자가 읽은 책도 워낙 유명한 사람이 쓴 거라 작년 연말쯤이면 번역서가 나올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직도 소식이 없다.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마약'으로만 알고 있는 LSD가 재평가되고 있어 머지않아 명예(LSD는 등장 당시 기적의 치료제로 칭송받았다)를 회복할 것이다’로 요약된다. 마약으로만 알고 있던 대마초의 추출물이 지난해 뇌전증(간질) 치료제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했던 일이 조만간 LSD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구형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에 담기도 꺼리는 약물 ‘LSD’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보자.
▲ 미국 작가 마이클 폴란은 지난해 출간한 ‘How to change your mind’에서 환각제의 과학을 흥미진진하게 다뤘다. 지난 10월 출간된 약학자 박성규 박사의 책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도 환각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 강석기 제공
환각제라는 표현 잘 안 써
지난해 봄 학술지 ‘사이언스’의 서평에 표지가 독특한 책이 소개됐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창고 안에서 위에 뚫린 창을 통해 파란 하늘을 보는 각도다. 그런데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 어려워 페이지를 넘기려다 저자가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인 걸 알고 멈췄다. 폴란은 과학과 꽤 관련이 있는 주제로 여러 책을 펴 명성을 얻은 논픽션 작가다. 지난 2001년 펴낸 《욕망하는 식물》로 주목을 받았고 2006년 출간한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대표작이다. 국내에 번역된 책만 8종이다.
주문한 책이 와서 좀 읽어보니 환각제의 과학을 다룬 이 책 제목 《How to change your mind(당신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법》에서 ‘mind’는 단순히 ‘마음’이나 ‘정신’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마음가짐’ 또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으로 옮겨야 자연스러울 것 같다. 환각제가 우리의 인생관을 바꿀 수 있는 이유를 과학으로 설명하고 본인의 체험을 포함한 다수의 임상 사례를 소개한 책이다.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환각제라는 용어부터 정리해야겠다. 복용했을 때 지각과 의식을 변화시키는 LSD 같은 약물은 영어로 할루시노겐(hallucinogen)과 사이키델릭(psychedelic), 엔테오겐(entheogen)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할루시노겐의 번역어가 환각제인데 뜻밖에도 과학 문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환각이 이런 약물의 작용 포인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엔테오겐 ‘내면의 신(entheos)’과 ‘일어나다(genesthe)’의 합성어로 ‘영신제(迎神劑)’로 번역된다. 박성규 박사는 책에서 이 용어를 채택했는데 “내면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영적인 면모를 의식 표면 위로 일어나게 해주는 약”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이키델릭은 폴란의 책과 대부분의 과학 논문에서 채택한 용어로 그리스어 ‘정신(psyche)’과 ‘발현하다(deloun)’의 합성어다. 이런 약물에 관여한 과학이 화학과 신경과학, 심리학, 정신의학이므로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사이키델릭을 환각제로 번역하는 건 맥락을 벗어나는 것 같고 마땅한 번역어도 없어 그냥 ‘사이키델릭’이라고 부르겠다.
폴란은 세 가지 일을 계기로 사이키델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교수(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언론학과)로 명성과 지위를 얻었지만(돈(인세)도 꽤 벌었을 것이다) 50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의욕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졌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남성 갱년기’다. 삶의 의미를 되찾아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저녁파티에 초대를 받았고 이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또래의 여성이 “최근 LSD 여행(투약을 이렇게 표현한다)을 했다”며 “지적으로 자극을 받았고 연구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편견이나 기존 경험에서 자유로운 어린이의 마음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책 뒤에 나오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발달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 교수가 아닐까 한다. 그는 1955년 생으로 폴란과 동갑이다.
그리고 문득 수년 전 받은 한 이메일이 떠올랐다. 아마도 ‘욕망하는 식물’을 읽은 사람이 폴란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 자기 논문을 보낸 것이다. 참고로 ‘욕망하는 식물’은 사과, 튤립, 감자 등 식물 네 종과 인간과의 공진화를 다룬 책으로 그 가운데 하나가 대마초다.
당시 바빠 열어보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사이키델릭 실로시빈(psilocybin)에 관한 논문이었다. 휴지통에서 이 메일을 찾아 논문을 읽은 폴란은 깊은 인상을 받고 결국 사이키델릭의 과학을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우연히 효과 발견
▲ 1938년 스위스의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이 LSD-25를 합성하면서 사이키델릭의 시대를 열었다. 호프만은 LSD를 ‘나의 말썽꾸러기 아이(my problem child)’라고 부르며 1960년대 히피들이 LSD를 선택하면서 LSD가 몰락하게 된 과정을 아쉬워했다. 지난 2006년 그의 100세 생일을 기념해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다. 호프만은 2년 뒤 102세에 사망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이야기는 1938년 스위스의 제약회사 산도스의 연구실에서 시작한다. 이곳의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은 맥각의 유효성분인 리세르그산(lysergic acid. LSD는 원래 이 분자를 가리키는 약자다.)의 구조를 변형한 일련의 화합물을 합성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리세르그산은 분만 후 출혈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독성이 컸기 때문이다.
호프만이 25번째로 만든 분자(LSD-25)는 동물실험에서 탈락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1943년 4월 어느 날 호프만은 LSD-25의 구조가 떠오르며 이토록 아름다운 분자에는 뭔가가 있을 거란 예감에 다시 합성반응을 했다.
퇴근해 집 소파에 앉은 호프만은 환상적인 이미지가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꿈 같은 상태를 경험한다. 실험을 하다 피부에 묻은 LSD-25가 흡수돼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호프만은 다음날 자신을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했다(당시 과학자들은 종종 이랬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투여량을 차츰 늘린다는 계획을 짠 호프만은 1차로 보통 약물의 1000분의 1 수준인 250㎍(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분의 1g)을 물 한 잔에 녹여 마셨다. LSD의 전형적인 투여량이 100㎍이므로 지금 생각하면 꽤 과량이다.
몸에 이상을 느낀 호프만을 조퇴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쓰러졌다. 의사가 다녀가고 몸이 회복돼 정원을 산책하던 호프만은 만물이 빛나고 세상이 새로 창조되는 듯한 놀라운 체험을 하면서 LSD-25가 마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정신의학 분야에서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예감했다.
1947년 산도스는 LSD-25를 델리시드(Delysid)라는 상품명으로 내놓으며 요청하는 연구자와 의사들에게 나눠줬다. 1950년대와 60년대 세계 여러 곳에서 LSD(LSD-25가 유명해지면서 약자 LSD의 자리를 빼앗았다) 임상시험이 이어졌다. LSD는 각종 약물 중독,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기적의 신약’으로 불리게 된다.
한편 멕시코의 마자텍(Mazatec) 인디언은 도취 상태에서 샤먼 의식을 치르는데, 1950년대 이들이 의식에 앞서 광대버섯의 일종인 실로시브(Psilocybe) 버섯을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수집가에게서 버섯을 받은 호프만은 1958년 유효성분을 분리하는 데 성공해 실로시빈(psilocybin)이라고 명명했다. 흥미롭게도 실로시빈의 구조는 LSD와 꽤 비슷했다.
▲ 우리가 광대버섯이라고 부르는 독버섯에는 환각제 성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1958년 알베르트 호프만은 멕시코에 자생하는 광대버섯인 실로시브(사진)에서 유효성분을 분리해 실로시빈(psilocybin)이라고 명명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22년 만에 임상연구 재개
그러나 영광은 잠시였다. 통제된 환경에서 의료인들이 치료제로 사용한 유럽에서와는 달리 미국에서 일반인들이 여흥으로 쓰면서 응급실에 실려가거나(호프만이 쓰러진 것처럼)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언론이 비판에 나섰다. 어차피 큰돈도 안 되는(1회 투여량이 극소량이어서) LSD에 부담을 느낀 산도스는 1965년 미국에 공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아예 생산을 중단했다.
여기에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결정타가 됐다. 당시 베트남전 반대를 이끌던 히피들을 쓸어버릴 묘안을 찾던 정부는 히피들이 반문화의 상징으로 ‘의식을 좀 더 높은 단계로 확장하기 위해’ 복용하는 LSD를 표적으로 삼았다.
LSD 불법화를 위해 미국중앙정보국(CIA)이 개입했고 LSD를 둘러싼 온갖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특히 LSD가 염색체 손상을 일으키고 복용한 임산부는 기형아를 낳을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치명타가 됐다(물론 둘 다 조작된 결과다). 미국 정부는 1970년 LSD와 실로시빈을 1급 마약으로 지정했고 이듬해 유엔(UN)도 이를 지지하자 많은 나라들이 따랐다.
1977년 임상시험을 끝으로 미국에서 사이키델릭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사이키델릭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한 심리학자와 의사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지하로 들어가 치료행위를 이어나가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존스홉킨스대의 연구자들은 실로시빈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임상시험의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22년 동안의 암흑상태에서 한줄기 빛이 비춰진 것이다. 참고로 실로시빈을 택한 건 세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경기를 일으키는 LSD를 쓸 경우 신청이 탈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6년 폴란에게 온 이메일은 바로 이 연구에 참여한 치료사 로버트 제시가 보낸 것으로 결과를 담은 논문을 첨부했다. 연구자들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연구를 설계해 진행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연구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사이키델릭의 치료제 가능성을 인정한 미국 보건당국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을 하나둘 승인했고 역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자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여러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FDA가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로시빈 요법을 지원하기로 해 주목을 받았다. 바야흐로 사이키델릭 요법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이키델릭은 뇌에서 어떻게 작용해 효과를 낼까.
▲ 2014년 영국 런던대의 로빈 카허트-해리스 박사와 동료들은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엔트로피 뇌 가설’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사이키델릭 요법은 뇌의 엔트로피가 극단적으로 낮은 상태인 우울증이나 강박장애(OCD), 중독 환자들의 엔트로피를 끌어올림으로써 치료 효과를 낸다. / ‘인간 신경과학 저널’ 제공
뇌의 엔트로피를 높여줘
LSD와 실로시빈 분자의 구조를 보면 서로 꽤 닮았을 뿐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구조와도 겹친다. 우리 몸에는 세로토닌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10가지나 되므로 그 작용도 다양하다.
LSD와 실로시빈은 주로 세로토닌 2A 수용체에 달라붙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특히 LSD는 한번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실로시빈의 수백분의 1의 양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이유다. 다만 이들 분자가 세로토닌 2A 수용체를 통해 어떻게 사이키델릭의 작용을 보이는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런던대 연구자들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실로시빈이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실로시빈이 디폴드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이하 DMN)의 활동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MN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된 영역으로 자아 정체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뇌에서 가장 고도로 발달한 DMN은 흥미롭게도 아동 발달 후기에서야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중심을 잡고 이를 총괄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인간 성인의 뇌는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위계체계가 정립되면서 우리는 점점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게 됐고 그 결과 자연에서 분리되는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
그런데 실로시빈 같은 사이키델릭이 DMN를 약화시킴에 따라 자아가 해체되는 느낌과 함께 억눌려 있던 뇌의 다양한 영역들이 깨어나 외부 자극에 대한 감수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환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이키델릭의 투여량을 늘릴수록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 먼 조상의 뇌 상태로 회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2014년 학술지 ‘인간 신경과학의 경계’에 ‘엔트로피 뇌(entropic brain)’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물리학 용어로 연구자들은 뇌의 활동 패턴에 적용했다. DMN의 지배력이 클수록 뇌의 엔트로피가 낮아지고 그 극단이 우울증과 중독, 강박이라는 것이다. 반면 DMN의 영향력이 약화돼 뇌의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의 극단이 사이키델릭을 복용했을 때다.
사이키델릭이 우울증이나 중독에 효과가 탁월한 이유도 엔트로피 뇌 가설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임상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폴란은 책 6장에서 세 분야로 나눠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순서를 바꿔 중독부터 설명한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사이키델릭 분자들의 구조에는 공통된 부분(굵은 붉은 선)이 있다. 그 결과 사이키델릭 분자들은 세로토닌 2A 수용체(왼쪽)에 달라붙어 작용한다. 특히 LSD는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잘 안 떨어져 극소량으로도 효과를 낸다. DMT는 디메틸트립타민으로 몇몇 식물과 버섯에서 발견되는 사이키델릭 분자다.
박성규/MID 제공약물 중독 치료에 효과 탁월
강력한 마약이라는 LSD는 중독성도 대단할 것 같은데 놀랍게도 중독성이 없고 오히려 다양한 약물 중독에 대한 탁월한 치료제임이 밝혀졌다. 중독이란 뇌가 특정 대상에 올인해 굳어진 상태로 자기파괴적인 증상이다. 이때 사이키델릭을 복용하면 뇌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중독된 대상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했던 기존 인식이 무너진다. 그 결과 중독 대상에 흥미를 잃게 돼 어렵지 않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금연에 성공하지 못한 15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을 보면 실로시빈을 한 차례 투여하고 6개월이 지난 뒤에도 80%가 금연을 유지했고 1년 뒤에도 67%(10명)가 담배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2012년 학술지 ‘정신약리학 저널’에는 1960년대와 70년대 수행된, 알코올의존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LSD의 효과를 본 논문들에 대한 메타분석 논문이 실렸다. 많은 환자에서 단 한 차례 투약(LSD 여행)만으로도 6개월까지 금주효과가 지속됐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알코올의존증에 대한 LSD의 유익한 효과에 대한 증거를 보면서 왜 그동안 이 치료법이 무시돼왔는지가 궁금하다”고 묻고 있다. 물론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이런 표현을 쓴 건 아닐 것이다.
우울증 역시 사이키델릭에 대한 기대가 큰 분야다. 19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세로토닌 재흡수억제(SSRI) 항우울제의 효과가 거품이었고 부작용이 크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면서 우울증의 심각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우울증 환자가 4000만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20%인 800만 명은 기존의 약이 듣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실로시빈을 투여하자 모두(남녀 각각 6명씩) 증상이 개선됐고 3분의 2는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20명을 대상으로 한 추가 임상 결과 6개월이 지난 뒤에도 6명은 건강했고 나머지 재발한 사람들도 대체로 증상이 이전보다 약했다. 따라서 6개월이나 1년 간격으로 몇 차례 사이키델릭 요법을 실시하면 꽤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실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효과다. 실존적 고통(existential distress)이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 때 겪는 감정 상태다. 사고나 심장마비로 죽지 않는 이상 실존적 고통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말기암 환자 같은 경우는 더욱 처절하게 겪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자아를 자연에서 분리하면서 갖게 된 불가피한 감정이다. 사이키델릭을 투여하면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몰려와 실존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선승들이 오랜 수행을 통해 깨달은 해탈의 경지와 비슷한 마음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폴란은 뉴욕대에서 진행한 실로시빈 임상에 참여한 말기암 환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착잡하면서도 감동적인 뭔가가 느껴지며 사이키델릭 요법이 하루라도 빨리 의료 제도권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이 책의 백미는 5장 ‘여행기’로 폴란이 몸소 사이키델릭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물론 불법으로 책에 등장하는 가이드의 이름은 가명이고 장소로 공개하지 않았다. 먼저 폴란은 900달러(약 100만 원)을 내고 3일 일정의 ‘LSD여행’을 했는데, 예상보다 극적 효과가 덜해 다소 실망한다. 그럼에도 이 경험으로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고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자평한다.
이어지는 ‘실로시빈여행’에서 폴란은 좀 더 확실한 효과를 보기 위해 투여량을 늘렸고(LSD 300㎍에 해당) 정말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면서 앞서 실로시빈여행을 한 암환자들이 보인, 평정심을 갖고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에 온몸으로 공감하게 된다. 폴란은 이런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당시 자아가 해체된 느낌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1인칭 대명사가 필요하다고 쓰고 있다.
미국에서 여전히 LSD가 1급 마약인데 이런 불법행위를 버젓이 쓴다는 게 한편으로는 놀랍다. 작가의 체험 취재는 처벌 예외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현장에서 걸리지 않는 이상 수사를 하지는 않는 걸까.
▲ 실로시빈을 투여한 사람의 fMRI 데이터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의 혈류량이 크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뇌의 엄격한 통제 시스템이 느슨해지며 감각의 확장과 함께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PNAS’ 제공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폴란은 책에서 사이키델릭의 부활 현장을 생생하게 그렸지만 LSD를 마약 목록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사이키델릭 복용은 적절한 환경과 전문가(가이드)의 존재 아래 진행돼야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오랜 관행을 꺾지 못해 합법화된 약물인 니코틴(담배)과 에탄올(술)로 인한 인적, 물적 손실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니코틴이나 에탄올보다 더 해로운 약물은 아니다”는 논리로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다.
다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폐해가 터무니없이 과장돼 치료제로서의 엄청난 잠재력까지 매몰된 LSD의 역사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는 만일이 없다지만 미국이 월남전에 참전하지 않았거나 참전을 반대한 히피들이 LSD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설사 마약으로 지정됐더라도 의약품으로 등록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줬다 뺐는 건 나쁜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른다. 만일 보건당국이 “그동안 의료계에서 마약인 모르핀을 써온 건 모순”이라며 퇴출시키려 한다면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르핀 없는 삶은 떠올리기도 싫다. 단지 마약이라는 이유로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진통제를 더이상 쓰지 못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약물로 대체해야 한다면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1950년대와 1960년대 LSD와 실로시빈의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던 의사들에게 이들 약물이 1급 마약으로 지정되며 치료에 적용하는 연구조차 할 수 없게 됐을 때의 심정이 이랬을 것이다. 다만 당시 대중이나 언론은 그들이 거의 받았다가 다시 뺐긴 게 뭔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1970년대 이후 한 세대 동안 임상연구를 하는 것조차 금지됐던 사이키델릭이 2000년대 들어 과학의 힘을 빌어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폴란이 ‘욕망하는 식물’에서 대마초를 다루고 17년이 흐른 지난해 FDA는 대마초 의약품을 승인했다. 작년 폴란의 책이 나온 뒤 사이키델릭 의약품이 나올 때까지 걸릴 시간은 이보다 짧지 않을까.
▲ 소설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평생 사이키델릭에 심취해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을 비롯해 관련 주제로 책을 여러 권 쓰기도 했다. 말년에 후두암으로 말을 할 수 없었던 헉슬리는 죽음을 예감하자 아내에게 ‘LSD 100㎍, 근육주사로’라는 메모를 건넸다. 1963년 11월 22일 오전 11시 20분 LSD가 투여됐고 오후 5시 20분 헉슬리는 69세로 영면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며칠 전 우연히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이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앞의 ‘현대예술’ 자리에 ‘LSD 여행’을 넣는다면 이 글의 맺음말로도 어울리지 않을까. “현대예술의 목표가 ‘감성적 쾌감’이 아니라 ‘지성적 충격’을 주는 데 있다면, 그 의도된 효과를 제대로 체험한 이들이야말로 그것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