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사라질 처음 하늘과 땅
Text Ish 65,17-20
(17)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1. 유난히 오랜 기간 이어지는 더위 때문에 지내시기 많이 힘드신 줄 압니다. 아내 말을 들어보니 지난 달 전기세가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합니다. 집에 어린아이가 내려와 있어서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면서 전기세가 많이 나오겠구나 하고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훨씬 넘는 사용료가 나와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변하는 법, 조금만 더 있으면 옷깃을 여미는 때가 올 겁니다. 또 겨울이 와서 더워서 고생했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 추워서 난방 걱정을 하다가 보면 가는지 모르고 한 해가 훌쩍 지나갈 겁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게 남은 것을 알고 탄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재산을 많이 모으고서는 자기 영혼에게 이르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하겠지만 주님은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밤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니 자기를 위하여는 재물을 쌓아 두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입을 걱정만 많이 하고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눅12,16ff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성탄 강림절 전까지를 창조절 또는 왕국절이라 하는 교회력 절기가 시작됩니다. 이 창조절 혹은 왕국절이라는 절기가 바로 이 세상이 어느 순간엔가 끝이 나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다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세상이 창조되는 것을 알고 그날을 소망하면서 마25장의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준비를 잘하자는 의미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 왕국절 첫 주일에 사65,17-20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주시는 은혜를 꼭 받으시는 복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2. 먼저, 17절을 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말씀은 부분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부분적으로 성취된 약속들입니다. 즉 그들은 패망하여 황폐하였던 새로운 세계, 새로운 예루살렘에 평화로운 정착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선지자’라 일컫는 이사야의 이 예언은 영적 이스라엘인 복음 교회에서 온전한 성취를 이루게 됩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입니다.(고후5,17)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은 드디어 사탄의 꾐에 빠져 망가졌던 세상이 완전하게 아름다운, 처음의 에덴동산보다 더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로 대체될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죄로 말미암은 이전의 고통들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강력하고 행복한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어 중생한 사람들은 그 위로가 너무나 황홀하여 이전에 알았던 모든 안락을 초개와 분토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전 슬픔은 물론 이전의 기쁨도 현재의 기쁨에 압도되고 삼켜졌습니다. 성도들이 장차 얻을 영광은 전에 알던 것과 너무나 달라서 가히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불릴만 합니다.(계21,5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영화로게 된 성도들은 이 세상을 잊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 세상 것들에 완전히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사66,22에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하였고, 벧후3,13에도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약4,13-16은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란 어떤 것입니까? 안개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연 현상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안개를 보고, 몇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듯이,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길지 않으며, 우리가 계획하는 것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과 내일의 일들을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이 덧없다고 해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매일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 그날의 내 모습은 어떻게 예상이 됩니까? 혹 세상에 대하여는 부요했는데. 하나님에 대하여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삶을 만들어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말 안개와 같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날부터의 세상은 영원한 세상입니다. ”나의 모든 보화는 저 천국에 쌓였네“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 모두는 그 세상에서의 삶이 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다음, 18절입니다. ”(18)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살펴보십시오. 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도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말씀은 첫 창조 때의 창조주셨던 하나님이시기에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 이후에 새로운 창조를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는 새 세상은 에덴 동산보다도 더 완전한 질서와 회복을 갖춘 나라라는 것을 나타내며,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된 나라임을 가르쳐줍니다.
이 표현은 현재의 세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의 실현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창조와 완성된 하나님의 왕국으로, 죄와 고통이 사라지고 구속과 회복의 최종적 완성이 만들어진 세상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와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시는 세상은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세상이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 또한 완전하여 사디는 사탄의 꾐에 흔들리는 일이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 그리고 처음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부패하고 타락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부패와 타락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금의 세상은 죄와 고난 또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을 믿는 성도는 새롭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새 세상이 시작된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도와 계획이 실현되는 세상이 준비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요14,2-3에서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며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주십니다.(아멘)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시는 새 나라로 가는 길을 알고 얻었으며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보혜사도 계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4,4)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은 여러분과 저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여 주셨고 또한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삶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은 임시적이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입니다. 장차 사라질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더욱 깊은 신뢰와 의지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지금의 세상이 아무리 소중하고 귀하게 보일지라도 성도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도취되거나 이 세상이 주는 것에만 몰두하다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위의 삶은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삶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고난과 어려움, 유혹과 탐심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신뢰하며 삶의 목적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는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며,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도우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4. 19-20절입니다. “(19)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이 예언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새 삶을 시작하면서 일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그것은 완전한 회복과 행복에 대한 예시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자기들의 영화로운 날을 주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망가지고 타락한 이 세상과 아담의 후예 모두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사람이 살 세상에서의 삶이 어떠할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새 세상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거기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셔서 지난 세상에서 만들어진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니 처음 것에 속한 것들은 다 지나간 것이 될 것입니다.
옛날 한 작은 마을에, 나이 많은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앙의 중요성과 천국의 소망을 꾸준히 가르쳤습니다. 그 성직자는 가난했지만, 그의 삶은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던 어느 날, 마을에 큰 홍수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집과 재산을 잃었습니다. 성직자의 집도 홍수에 휩쓸려버렸습니다. 성직자는 자신의 집이 떠내려가고, 모든 것이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재산은 잠시 주어진 것일 뿐,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이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도우며 사랑합시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무너진 집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원과 시간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마을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한 재난을 새 세상에 대한 소망을 배우는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의 행동과 태도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많은 사람이 그의 신앙과 소망을 본받으려 했습니다. 결국 마을은 다시 일어섰고, 사람들은 더 강하고 단결된 믿음공동체로 성장했습니다. 재난을 통해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삶을 배운 소망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가 ‘왕국 주일’인 추수감사절까지 ‘왕국절기’를 사는 동안 충만하게 임하여 우리 교회를 믿음과 소망의 공동체로 탈바꿈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