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촉촉하게 적신 봄비 탓인지 며칠 전부터 벚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예년엔 4월 초쯤에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4월 중순에나 벚꽃이 만개하는데, 올해는 1922년 관측 이래 100년 만에 조기개화를 했다고 한다. 잠시 지나면 물러 갈 것 같던 코로나도 2년째 계속되고 있고, 자연의 순리대로 어김없이 다시 찾아 온 봄의 벚꽃 인파가 전국 곳곳에 넘쳐난다고 한다. 불안에 떨며 봄꽃을 즐길 강심장이 되지 못한 나로서는 다른 방도를 찾아 한적한 숲길, 호젓한 벚꽃 길을 찾아 길을 나선다.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세검정으로 가는 1711번 버스로 갈아탔다. 세검정으로 가는 방법은 자하문터널이나 자하문 로(청운동고개)를 넘어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상명대 정류장에서 북악터널방면으로 걸어가면 세검정 정자가 나온다. 정자를 처음 지은 것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영조24년(1748)에 고쳐 지으면서 세검정 현판을 달았다. 현재의 건물은 194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겸재 정선이 그린 세검정도(洗劍亭圖)를 바탕으로 1977년 복원한 것이다. 그림의 세검정은 정자 뒤로 나지막한 담장이 둘러져 있고 길 쪽에 문이 있으며, 개울 쪽으로도 작은 문이 있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세검정을 바로 지나 연산군이 경치가 좋은 이곳 일대를 연회장소로 삼고 시냇물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위에 탕춘대를 지었다는 누대(樓臺)를 지나 신영교를 건너 마주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서 잠시가면 ’현통사‘란 절에 이른다.
’현통사‘의 자연 그대로의 바위와 계곡 물이 흐르는 나무데크 길로 오르면 북악산 북사면에 위치한 백사실계곡의 깨끗하고 주변 숲 또한 잘 보존되어있어 체계적인 보전 관리를 위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이란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은 지금까지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터 라고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석동천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심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연한 산골마을의 형태로 이뤄져 도심 속의 두메산골로 통한다. 백석동천을 벗어나면 북악산 길과 창의문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창의문 가는 길로 내려서면 카페들이 있는 부암동이 나온다. 창의문을 통과해서 자하문 길을 건너면 윤동주문학관이 있는데 윤동주가 인왕산자락에 올라 자연과 더불어 시정을 더듬었다는 윤동주언덕이 있다.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건너편 언덕아래 한옥으로 지어진 청운문학도서관을 지나면 서울의 내사산의 하나인 인왕산 중턱에 길을 낸데서 비롯된 인왕산 길이 계속되는데 창의문을 기준으로‘북악산길’과 인왕산길로 분리하였다.
인왕산 길을 걷다보면 안평대군이 무릉도원 꿈을 꾼 뒤 그 정취를 안견에게 전해 천하의 명품 ‘몽유도원도’를 세상에 남기게 하는 한편, 자신은 부암동 골짜기에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어 그 꿈을 실현했다는 무계정사 터가 있는 수성동계곡을 지난다. 수성동계곡을 지나면 단군성전과 인왕산 갈림길이 나온다. 인왕산과 인왕산성벽의 전경을 바라다보며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무악재하늘다리를 건너 안산자락길로 들어선다. 개나리가 만개한 안산자락길을 다른 길동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벚꽃이 만발한 서대문구청 뒤편 벚꽃광장이 나온다. 구청 뒤편에 자리한 안산 벚꽃 길은 다른 곳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게 산길을 걸으며 벚꽃구경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벚꽃 광장에서 산자락을 내려오면 홍지천에 이른다. 종로구 평창동에서 발원해 서대문구 중심부를 가로질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홍지천은 우수기에 만 잠시 물이 흐를 뿐 연중 물이 메말라 있는 건천으로 생태환경까지 파괴돼 사실상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세검정에서 현통사~백석동천~창의문~인왕산길~수성동계곡~무악재하늘다리~안산자락길로 해서 서대구청 뒤편 벚꽃광장에서 내려와 홍지천에서 오늘 걷는 발걸음을 멈춘다.
부암동 백석동천
백석동천은 조선시대의 별서가 있었던 곳이다.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터와 연못 등이 남아 있으며, 인근에 ‘백석동천’ ‘월암’등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백석동천은 지금까지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리면서 이항복의 별장지였다고도 전해지는데, 이는 이항복의 호가 ’백사‘인 것에서 유래하여 구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명승 경관자원 조사연구사업‘을 통해 백석동천 일대가 한 때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소유였음을 입증하는 문헌자료를 확인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백석동천은 백석정, 백석실, 백사실 등으로 불리어 왔으며, 조말기 박규수의 ’환재집‘에 수록된 시에 ’백석정‘이란 내용이 전한다. 추사의 ’완당전집 9권‘에 “선인 살던 백석정을 예전에 사들였다”라는 내용 이외에도 관련 시들을 분석한 결과, 추사가 터만 남은 백석정 부지를 사들여 새로 건립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뒤의 높은 곳에는 사랑채와 돌계단과 초석이 잘 남아있다. 그뒤로는 안채의 초석 등이 잘 남아 있으나, 보호를 위해 흙을 덮어두었다.
*별서: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유유자적 생활을 즐기려고 따로 지은 집을 말한다.
https://blog.naver.com/mp3tjdgh/222297247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