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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구 서라벌 시가지 한가운데 지금은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공간에 깃든 서사로부터 비롯된 의미들은 상당히 고풍스러웠으며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여운이 한가득 남아 있었다. 깊어져 가는 가을과 우리 내들 곁에서 떠나는 가을을 증명이라도 하듯 보문호에서 분황사로 가는 버스정류장 주변으로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황량하게만 느껴지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시가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주박물관과 월성지구 쪽을 지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성인 기준 입장료 2,000원은 텅 빈 공간을 대변해 주는 듯했고 뒤편으로는 과거 신라시대에 황룡사가 있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당간지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과거 신라 왕실 불교의 중심 역할을 하던 황룡사와 원효대사의 주요 활동터로 유명한 분황사는 사잇길 하나를 두고 사이좋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1. 분황사, 그리고 원효대사
과거 약 80m 정도에 이르렀다는 황룡사를 모티브로 만든 황룡원을 바라본 뒤 찾은 분황사는 짙어가는 가을빛에 경내에 깃든 황제의 그 향이 더욱 화려하면서도 고혹스럽게 다가온다. 때마침 나무에 매달려 있는 단풍과 밑에 깔린 은행잎이 대비를 이루며 텅 빈 분황사 지를 더욱 수려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입장권 구매 후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전석탑과 대웅전 뒤쪽에서 은행잎을 배경 삼아 사진을 담고 있는 사람들까지 1,000년 후의 경주의 빈 공간들은 방문객들에 의해 새로운 모습들을 조심스레 건네줬다.
당 태종은 선덕여왕이 왕 위에 오르는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신라 왕실에 사신을 보내며 모란꽃을 선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의미는 축하가 아닌 모란꽃에는 벌과 나비가 없어 선덕여왕이 배우자가 없음을 조롱하는 의미로 보냈다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에 선덕여왕은 사찰을 지으며 '향기가 나는 왕의 절'이라는 의미의 '분황사'로 지칭으로 맞받아 치며 그와 동시에 사찰의 역사도 함께 시작된다. 잠시 모전석탑 주변을 돌며 그녀의 재치 있는 대응을 되새겨 본다.
더불어 분황사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깨달음을 얻어 신라로 돌아온 승려, 원효대사 해골물 로도 유명한 그 원효 대사의 주요 활동터로도 매우 유명하다. 일생의 대부분을 분황사에서 활동하며 여러 작품을 남기기도 한다. 여담으로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던 의상은 그대로 당나라로 직행, 이후 화엄종을 연구하고 신라로 돌아와 10개의 사찰을 건립하고 원효와 함께 시대의 대사로서 협력관계이자 라이벌로 활동하게 된다.
원효대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아들 '설총'이 유해로 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봉안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래전 월정교를 건너며 되뇌었던 인물들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나니 시간의 텀을 두고 호흡을 함께 하는 듯했다. 건너편에 자리한 황룡사는 왕실의 사찰이었다면 분황사는 어땠을까? 과거 서라벌에 살았던 민초들과 불심으로 소통을 도모했을까? 아니면 위정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을까? 깊어져 가는 노을빛과 함께 호기심도 고조되어 간다.
935년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항복을 청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와 동시에 경주의 중요성도 동반 하락하게 되며 몽골군의 침입과 이 땅에 찾아온 역사의 곡절을 함께 겪으며 지금은 모전석탑과 경내에 가람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짙게 깔린 가을빛은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과 어우러지며 세월의 무상함을 논하는 듯했고 지난 수백 년 간 되풀이했을 계절의 변천사에 한 페이지가 이렇게 채워져 가는 것을 바라보며 문득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지난 세월들을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텅 빈 공간은 여백의 미가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스며든 이야기로부터 흥미로움이 전달되는 듯하다. 온전히 보전되고 있는 이 터에 어떤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갈 수 있을지 분황사에 잠들어 있는 각종 이야기들을 활용해 이 공간을 어떻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미래가 펼쳐질 것만 같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경주의 특색을 가득 담은 '강강술래'라는 노래처럼 내국인들도 문득 떠나고 싶은 순간을 선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지금 이 순간 나 홀로 느끼고 있는 이 시선과 감정들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려면 어떻게 풀어가야 될지 쉼 없이 고민을 이어갔다.
2.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경내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가람 앞으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감의 무게를 간신히 견디며 나뭇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 나뭇가지 뒤편으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사찰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양식의 석탑이 눈길을 끌었고 극적으로 바뀌어가는 하늘의 수려함에 녹아들며 그 이름 모를 고풍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노을빛이 석탑을 노랗게 만들어줬으며 석탑 주변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사자상이 그윽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재는 3층으로 이뤄져 있는 이 석탑은 오래전 추정 최대 높이 48.5m로 학자들은 짐작하고 있다. 분황사에만 있을까? 싶었던 양식의 모전석탑은 다른 곳에도 자리해 있다는 사실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지금 내가 두 눈에 담고 있는 이 석탑이 모전석탑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자리해 있다는 사실 또한 순간의 특별함을 부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무리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을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난데 요즘은 시간이 부족해서 못 돌아볼 정도라니. 갈수록 여행의 순간들이 풍성해지고 있음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문을 통해 분황사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모전석탑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벽돌로 이뤄진 탑의 구성부터 탑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자상과 각종 수호신들까지 뭐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고 더불어 겨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간신히 매달려 있는 단풍잎과 앙상한 나뭇가지가 프레임 역할을 훌륭히 해주고 있어 자연스레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담장 하나를 사이로 둔 채 황룡사 바로 옆에 자리해 있는 분황사는 왕의 향기가 가득했다면 지금은 그에 고풍스러움이 더해져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치명적인 매력을 가을빛에 담아 조심스레 건네줬다.
한쪽에서는 가져온 카메라와 흩어진 은행잎을 활용하여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사진을 계속 담고 있었다. SNS가 발달되고 누구든 쉽게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공간을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들이 상당히 반가웠다. 물론 역사의 의미와 경건함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들을 내려둔 채 눈에 보이는 이미지와 색에 감성을 담아 순간을 소비하는 것도 가볍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로 그 뒤쪽으로 사람들의 소소한 염원이 담겨 있는 미니 돌탑을 바라본 채 2022년 새해의 소원도 함께 담아 잠시 기도의 시간도 함께 가져본다.
3. 황룡사 그리고 9층 목탑
분황사를 그렇게 한참을 돌아본 뒤 해는 점점 하루의 막바지를 향해 저물어 가고 있었고 그 덕분에 텅 빈 황룡사지의 들판은 더욱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밖으로 나와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당간지주 덕분에 황룡사 터의 위치를 바로 가늠할 수 있었고 현재는 그 흔적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황량함이 한가득 담긴 공간으로 남아 있었고 터를 정리한 뒤 구획을 정해놓지 않으면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난번 이곳을 찾았을 때를 떠올리며 학자들이 나름의 고증을 통해 밝혀 낸 각 지역들을 돌아보며 당시의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텅 빈 공간에는 갈대들이 단체로 군무를 선사해 줬고 곳곳에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한가득 공터를 채워 넣고 있었다. 천년의 세월이 잠들어 있는 이 공간에서 지난번 이곳을 찾았을 때 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고 나름의 방식들로 공간을 향유하는 모습을 눈에 담으니 절로 행복한 미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번졌다. 누군가 연못에 조약돌을 던진 것처럼.
1969년 한진빌딩이 세워지며 그 높이와 관련된 기록을 경신했을 만큼 신라시대 만들어진 9층 목탑의 높이는 가히 경이로웠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법하다. 고려 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인해 사라질 때까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거나 기록된 자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나름의 노력들을 통해 축소된 9층 목탑을 황룡사지 발리오 옆에 위치한 황룡사 역사문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황룡사의 높이와 그 형상을 모티브로 삼은 건축물 또한 현재 경주타워로 경주의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며, 황룡원 중도 타워도 경주의 대표 건축물로 그 결을 함께 하고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그냥 9층의 단을 쌓은 게 아닌 신라를 중심으로 신라 주변의 9개의 나라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작됐는데 각각 1층은 왜국(일본), 2층 중화, 3층 오월, 4층 탐라, 5층 응유(신라가 백제를 낮게 지칭), 6층 말갈, 7층 거란, 8층 여진, 9층 예맥(고구려)을 의미한다. 당시 신라 왕실의 불교 행사를 전담했을 만큼 서라벌 중심지에 위치해 있었고 금당의 위치로 미뤄 볼 때 만약 그 모습이 현세에 등장한다면 위용이 엄청날 것으로 짐작된다.
몽골군에 의해 목탑이 사라지기 전만 해도 과거 경주를 여행했던 사람들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 자태는 가히 경외감이라는 단어로도 설명이 모자랄 만큼 웅장하고 경주에 들린다면 꼭 들러야만 하는 필수코스로 손꼽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침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시대로 시대가 바뀌면서 숭유억불의 시대 정신과 더불어 각종 사유들 때문에 황룡사 9층 목탑이 수리 및 복원은 진행되지 않았고 그 상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황룡사 역사문화관에서는 당시의 모습들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각종 유물들과 발굴과 관련된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황량했던 공터를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고 모든 관람이 끝난 뒤 전망대를 통해 여백을 상상력을 활용해 채워볼 수 있는 기회 또한 절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신라 당대의 4명의 왕 93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된 방대한 규모의 목탑. 그 모습을 목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전망대를 통해 바라본 황룡사는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모든 관람을 마친 뒤 마련된 길을 통해 가까이서 볼 때 어디가 어떤 터라는 것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이 덩그러니 자리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주춧돌 역할을 했을 법한 돌들이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내며 오늘날 나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화려했던 순간들은 기록들을 통해서만 활자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짐작과 상상력을 통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 순간 서글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짙은 수풀과 계단으로 나름의 구분을 해 둔 덕분에 설명을 읽음과 동시에 당시 황룡사지 발굴의 전반을 지휘했던 인물의 영상도 함께 즐기며 여행의 순간을 알차게 채워 넣어본다. 왕실 불교 행사를 진행했던 선덕여왕의 흔적이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것처럼 불심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무운을 기원했던 당시 세상을 휘어잡았던 인물들의 입장에서 순간을 되새기며 말이다.
여름에는 청보리 밭으로, 가을에는 갈대와 코스모스의 모습을 온전히 담기 위해 사진작가와 모델들이 이곳을 스냅의 장소로 활용한다. 분황 사지 와 황룡사의 모든 곳들을 샅샅이 돌아본 뒤 눈에 담기는 황금빛 물결들은 시간이 다를 뿐 당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기분 덕분에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상당한 흥이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다음 아이패드를 들고 황리단길 카페에 앉아 순간을 곱씹어 본다. 기억을 되새길수록 여운이 더욱 깊어져 갔고 옛 신라의 왕성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앞으로 경주에 펼쳐질 서라벌 왕경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당시의 높이와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건축물은 황룡원과 경주타워 정도가 될 듯싶은데 만약 황룡사와 황룡사 9층 목탑이 세상에 모습을 다시금 나타낸다면 과거 화려했던 신라 시대로의 재림이 연상될 만큼 경주의 스카이라인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듯싶다. 상상도 가늠도 전혀 되질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모습들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하루라도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