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정말 대단히 중요한 법문입니다.
용수보살이 이래서 천재시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지경입니다.
보리살타, 즉 보살이 보살행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를 어떻게 제어하고 없애는지에 대한 아주 다양한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분노조절장애, 줄여서 분조장을 치료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생은, 이 분노라는 감정이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자라고 여기는 데,
이것이 진짜 속는 것 입니다.
분노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남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분노가 자신에게 이득을 전혀 안주고,
오로지 해악만 끼친다는 사실을 아는게 우선입니다.
아래 법문은 너무나도 고귀하고 중요한 법문입니다.
자세히 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 보살은 비록 모든 누(번뇌)가 다하지는 못했으나
큰 지혜와 예리한 감관으로 능히 사유해,
성내는 마음을 제거해 버리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에 귀[耳根]가 소리 곁으로 가지 않거늘 욕하는 소리가 어디에 붙으랴.
또한 매도하는 소리를 들어도 못들은 채 곧장 지나가나니,
만약에 분별치 않는다면 누가 성을 낼 것인가.”
범부들의 마음은 나[吾我]에 집착되어서 시비를 분별하고는 성내고 억울해 한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말이란 좇아 일어나고 좇아 사라져서
앞과 뒤가 함께하지 않는 줄 알면 곧 성낼 일이 없어진다.
또한 모든 법이 안으로 주체가 없음을 안다면 누가 꾸짖고 누가 성을 내겠는가.
가령 어떤 사람이 다른 지방말[異語]을 들었을 때에 자기네 말은 좋게 여기고
다른 말은 나쁘게 여기거나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비록 꾸짖는다 해도 성내지 않게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이 말이나 소리에 정해진 것이 없는 줄 알면
성내거나 기뻐할 일이 없게 된다.
마치 친하고 사랑하는 이가 꾸짖으면 비록 꾸짖어도 원통하지 않지만,
친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이가 꾸짖으면 듣자마자 성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
비바람을 만나면 집으로 들어가거나 우산을 들고, 땅에 가시가 있으면
가죽신을 신고, 날씨가 크게 추우면 불을 피우고, 더울 때에는 물을 구하나니,
이러한 모든 환란에 다만 막는 법만을 구할지언정 성내지 않는다.
꾸짖거나 욕하는 이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해야 하니,
오직 자비로써 모든 악(惡)을 그치게 할지언정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그 성품이 모두 공한 줄 안다.
가령 어떤 이가 성내고 꾸짖거나 혹은 때리거나 혹은 해치려 하더라도
꿈같고 환[化]같이 여기나니, 성내는 이가 누구이며, 꾸짖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또한 어떤 사람을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겁 동안 중생들이 찬탄하고,
의복, 음식, 와구, 의약과 영락 등으로 공양하더라도,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라면 그 마음이 흔들리거나 기뻐하거나 집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