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
해월은 이 새로운 제례법인 향아설위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식고(食告, 밥 먹을 때 행하는 심고)를 예로 들었다.
해월은 “너희들은 식고할 때에 한울님이 감응하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
라고 한 제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제자가 답을 하지 못하자
“그러면 식고할 때 한울님이 감응하지 않은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
고 다시 물었다. 그 제자가 아무 답을 내놓지 못하자 해월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사람은 다 모신 한울님의 영기(靈氣)로 사는 것이니, 사람의 먹고 싶어 하는 생각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마음이요, 먹고 싶은 기운이 곧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기운이요, 사람이 맛나게 먹는 것이 이것이 한울님이 감응하시는 정(情)이요, 사람이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한울님이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니라.
사람이 모신 한울님의 영기가 있으면 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은 것이니라.
죽은 사람 입에 한 숟가락 밥을 넣어드리고 기다려도 능히 한 알 밥이라도 먹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한울님이 이미 사람의 몸 안에서 떠난 것이니라.
그러므로 능히 먹을 생각과 먹을 기운을 내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한울님이 능히 감응하시지 않는 이치니라.
사람이 음식을 접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한울님의 영기가 나에게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것이 다름 아닌 시천주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해월은 향아설위를 하면 상기는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마음으로 백년상(百年喪)이 옳으니라.
천지부모(天地父母)를 위하는 식고(食告)가 마음의 백년상이니,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부모의 생각을 잊지 않는 것이 영세불망(永世不忘)이요,
천지부모 네 글자를 지키는 것이 만고사적(萬古事績)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면서 앞으로 동학 교단에서는 향아설위의 제례법을 시행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물을 차리는 것과 상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 가지를 차리어 벌려 놓는 것이 정성(精誠)이 되는 것이 아니요, 다만 청수(淸水)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옳으니라. 제물을 차릴 때에 값이 비싸고 싼 것을 말하지 말고, 물품이 많고 적은 것을 말하지 말라.
제사 지낼 시기에 이르러 흉한 빛을 보지 말고, 음란한 소리를 듣지 말고, 나쁜 말을 하지 말고, 서로 다투고 물건 빼앗기를 하지 말라.
만일 그렇게 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옳으니라.
굴건과 제복이 필요치 않고 평상시에 입던 옷을 입더라도 지극한 정성이 옳으니라.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굴건을 쓰고 제복을 입고라도, 그 부모의 뜻을 잊어버리고 주색(酒色)과 잡기(雜技) 판에 나들면, 어찌 가히 정성을 다했다고 말하겠는가.
해월은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많이 차리고 형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수 한 그릇을 떠놓더라도 정성을 다하고 조상과 부모의 유훈과 뜻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해월이 1897년 4월 5일 시작한 향아설위의 제법은 이후 의암 손병희를 통해 1900년대 초반에 동학 교단의 의식으로 공식화됐다.
천도교단에서는 손병희는 당시 향아설위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같은 날 여주 전거론의 임순호의 집에서 이 방식으로 창도기념식을 지냈다고 전한다.
향아설위를 통해 해월과 의암이 하나로 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