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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속프란치스코 야고바형제회 원문보기 글쓴이: 세베리노
내가 태어나고 자라 온 조국의 날씨 답지 않은 요즈음, 사계마저 불분명하다. 여름이 아무리 열기가 가득한 계절이라 하지만 열기 안에서도 견딜만한 공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달라졌다. 원시 안에서는 생명에 빛이 보인다. 그 빛이 지닌 선함과 여유로움이 여름 날씨 안에서도 분명 존재했었다. 공간 여유로움의 상실 시대! 그 많던 여름의 싱그럽고 가득했던 청량감은 누가 다 앗아 갔을까? 그건 바로 치열한 소비지향적 문화와 기계문명에 예속되어 버린 현대문명 주인공인 우리 자신들이다. 문명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일, 그것이 바로 프란치스칸의 삶이며, 사부님께서 실천하셨던 영성의 길이셨다.
물질로부터 벗어남, 자연과 어울림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하느님과 소통, 생명을 존중하는 정체성을 통하여 바람처럼 자유롭게 열혈하게 기도하며 자연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행위가 바로 야고바 트레킹이 지닌 속성이다. 문명을 벗어나야 원시의 세계로 접근이 가능하고 비로서 모든 생명에 빛을 만날 수 있다. 문명을 잠시 떠나 생명의 빛과 만나기 위한 설레는 마음을 공유하며 약속된 장소에 모였다. 트레킹 계획란에 제가 일정을 올리면서 상단에는 7시30분 출발, 하단에는 8시30분 출발이라 잘못 기재한 바람에 약 30분 이상의 혼란과 잘못된 지체가 있었다. 일정표를 검색하시다.착오가 발견되면 바로 댓글이나 핸폰 메일로 시정요구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 우선 사과드리며 강화트레킹 순례자들의 걸음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래 강화는 한문으로 표기할 때 江下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고려시대 고려가 강화로 천도하면서 고려궁을 짓고 왕과 그 신하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이름도 업그레이드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江下에 하자에 화려화 자가 붙어 강화(江華島)로 바뀐 것입니다. 동서고저의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는 한반도에 강의 원류는 대부분 강원도 태백준령 깊은 계곡에서 발원합니다. 그래서 강의 원류를 지닌 지역이라하여 강원도(江原道)라 부르는 것입니다. 동에서 서쪽으로 흘러 물길을 만들었고 그 물은 들판에 물을 공급하여 사람과 자연과 그 안에 깃든 생명들에게 생명의 젓줄이 되었습니다. 강 주변에 촌락을 이루고 삶을 이어온 5천년의 역사는 고단하고 험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강화 유역으로 유입되는 강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입니다. 인문학을 우린 인간 가치를 조명하는 학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 내에 있었던 여러 역사적 궤적을 추적하다 보면 인간가치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곳이 바로 강화섬입니다. 몽고와 항쟁, 강화도령의 비극사, 대원군의 척화비와 천주교박해, 그리고 열강들의 통상요구, 거부와 전쟁, 프랑스 대박의 침공으로 문화재는 털리고... 주문모 신부님의 내 방으로 철종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리아란 세례명으로 성사를 받는 일과 참형을 받는 일,그리고 철종의 조부 또한 참형으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압록, 두만강 길이 막히자 김대건 신부님이 라파엘이란 목선을 타고 황해를 건너 가는 기점 또한 강화유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백령도 부근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해주로 압송된 후 다시 한양으로 이송되어 갖은 고초를 겪다 새남터에서 순교의 길로 떠나시게 됩니다. 그리고 외방전교회 소속 여러신부님들도 강화유역에서 중국으로 오고 가기 위하여 황해를 넘습니다. 이러한 나라의 위태로움과 천주학쟁이들 또한 위태로움이 가득했던 역사적 배경이 바로 강화도입니다. 지붕 없는 우리 민족의 역사 박물관이 바로 강화도임을 알고 있기에 강화도 순례의 목적은 바로 역사를 통하여 올바른 신앙적 가치를 찬양하고 그 의로움을 자신의 삶 곳곳에 물들이며 프란치스칸으로서의 실천적 의지를 굳건하게 세우는 일환으로 강화도로 순례 길을 잡은 것 입니다.
습도가 높고 이른 아침부터 푹푹찌는 듯한 폭염이지만 종일 구름이 가득하다는 일기예보를 주시하며 반포를 출발하여 김포 강뚝길을 가로 질러 갑곶성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옛적 호젓한 목가적 풍경은 사라지고 지극히 영성적 분위가 물씬 풍기는 현대적이며 도시적 젊음이 가득한 흰빛 색채가 이채로운 건축물로 바뀌었습니다. 성전과 부대시설인 카폐와 식당, 해우소 중앙에 위치한 큰마당 입구에서 도착을 알리는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큰마당으로 자리를 옮겨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흰선으로 그려놓은 벽화를 배경으로 야고바트레커들은 손을 마주 잡고 섰습니다.
야고바트레커들은 순례시작 전 항상 성가를 부르고 주모경을 바치는 일을 정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형제적 친교와 사랑과 평화, 은혜의 나눔을 갖는 시간이기에 소중한 순간입니다.
다함께 우리는 형제로 ~~~ 성가를 부른 후 손을 풀고 마음에 손을 얹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평화의 마음으로~~~~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고 가난,겸손, 단순한 마음으로 그리고 글라라처럼 열혈한 마음으로 오늘도 당신의 길을 찾아 걷겠다는 결의가 가득한 기도의 순간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대화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인천교구의 자부심이 바로 강화도내 일만위 현양탑을 비롯한 성지들 입니다. 갑곶성지 50주년 행사로 인천교구에서는 성경, 성가를 통한 치유 피정을 하기 위한 영성센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 입니다. 영성센타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제 세상을 떠나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오늘 "하루" 하루를 사랑하는 하루 愛 마음으로 다가 가는 갑곶 영성센타는 다음과 글을 나누며 지친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습니다.
휴~~~ 쉬어라
휴(休) - 나무 그늘 아래 기대어 서 있으라
잘 쉬어야 삶이 쉬어진다.
몸이 따듯해지고, 편안해 지고 단순해 진다.
홀로 있는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
쉬어야 다시 차 오르고,
쉬어야 깊어지고,
쉬어야 멀리 내다보고
근본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하루 일정(매주 월-금)
10:00 체크 인 오리엔테이션, 입실, 말씀받기.
11:00 영혼- 휴1 - 미사(하느님 안에서)
12:00 몸 - 휴2 - 갑곶 참살이 식사( 토속된장과 두부, 제철야채)
13:00 마음 -휴3 - 걸음명상(Walking Meditation)
15:00 데라피 하나 - Mentoring(영성생활지도사 도움)
16:00 테라피 둘 - Ten Minutei 면담 고해성사(Spiritual Counselling)
17;30 테라피 셋 - 안수 파견.
그리고 1박2일, 2박3일 . 갑곶 스테이 1, 2가 있습니다.
한국카돌릭사에서 무척 중요한 인적자원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분들 가족이 없었다면 순교자들에 대한 순교이 후 행적에 대하여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성지에 대한 존재감이 상실 되었을 것이며 지금처럼 성지에 순교자들을 모실 수가 없었을 것 입니다. 순교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증거자는 다름 아닌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 였습니다. 평신도 영성의 모범이시며 순교자들의 행적의 증거자이신 박순집 베드로 선조께서는 1830년10월9일 서울 전생서에서 출생하셨습니다. 지금 지명으로는 용산구 후암동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훈련도감 소속 군인이셨습니다. 훈련도감이란? 한양성을 지키는 부대로서 그 부대에 포수(捕手) 직책을 갖고 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박순집 베드로 또한 훈련도감 군인이 되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새남터 형장 관리와 지킴이로서 참여한 증거자는 파리외방전교회소속 앵베르 주교, 샤스탕, 모방 신부님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등등 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서 아버지 박바오로의 뜻을 이어서 몇몇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안장하는 증거의 삶을 살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선산이 있던 삼성산에 순교자들을 안장하기도 합니다. 훗날 작은형제회 소속 오기선 신부님에 의해 발굴되어 오늘날 삼성산 성지로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분명 박순집 베드로 선조의 증언록과 오기선 신부님의 의지가 큰 역활을 한 것입니다. 병인 박해 때 1866년 10월부터 1868년 4월 까지 그의 일가 16명도 순교를 당했으며 한불통상조약으로 시작된 박해의 중지 후에는 자신이 경험하고 들은 일들에 대하여 정리하고 증언하여 박순집 증언록, 성황석 루가 서원으로 엮었습니다. 1888년 샤르뜨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자 자신의 세째 딸 박향월을 최초 다섯명의 수녀중 한 명으로 봉헌하였으며 1890년에는 인천 교우의 요쳥으로 제물포로 이사를 하였으며 인천교구 최초본당인 답동성당(주교좌 성당)에서 박 베드로는 초대주임신부 빌렘신부의 사목을 도우며 전교에 힘썼습니다. 인천교구 초석에 많은 일을 한 박베드로는 1911년 6월27일 82세 나이로 예수 마리아를 크게 외치며 선종한 후독쟁이 용현동에 묻혔다가 1961년 절두산 성지로 천묘되었으나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 요청에 따라 갑곶성지로 2001년 다시 천묘되어 오늘날 갑곶성지 성역을 더욱 더 빛 내고 계신 것 입니다.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는 인천교구의 자부심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야고바트레커들은 성지 높은 곳에 안장되어 있는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그리고 박순집 베드로 선조의 묘역을 참례하기 위하여 올라 섰습니다. 세분의 순교 이유는 1871년 강화해역에 미국함대 4척이 나타나 1866년 미국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서 불탄 사건의 책임을 물어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대원군이 이를 거절합니다. 이 사건은 신미양요 사건으로 대원군이 천주교박해를 시작하게 됩니다. 미국함정이 물러 간 후 고종은 5월29일 천주교인들을 철저하게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므로서
미국함정을 몰래 찾아간 세 사람을 체포하여 효수하게 된 것입니다.
순교자 삼위비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늘 품어 안아주시는 주님,
갈 길을 찾으러 온 저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소서
+ 목적지가 아니라
길이라 하신 말씀을 따라
제 시선을 결과에서 과정으로 돌리게 해주소서
* 박상손, 유윤집, 최순복 3위가 걸어갔던 순교의 여정이
주님께 맡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길이었듯이
제가 붙잡고자 했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겨두고 가게 해주소서
밑기고 나서 생기는 미련마저도
이곳에 남겨두고 가게 해주소.
+ 주님께서 맡겨둔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소중한 과정임을 믿게 해주시고
속단의 어리석움을 깨닫게 해주소서
또한, 그것이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마련해 주시는
최선의 길임을 받아들이게 해주소서
* 느낌을 원했던 저희를 꾸짖어 주시고
물음표의 십자가를 지고, 안고 가게 해주소서
아니, 또 생기게 될 물음표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지혜를 갖게 해주소서
+ 고요한 곳에 오면 더더욱 커지는 제 안의 소란함을 죽여 주시고
이 곳 순교자들처럼 침묵하게 해주소서
++. 마침내 이 순례를 통하여
저희의 영역에 주님들 모시려 했던 어리석움을 깨닫게 해주시고
당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순교자들의 모후님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아멘.
황영진 세례자 요한 형제님처럼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로 떠났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화해엽의 바닷물을 보고 짠내음이 살풋이 풍기는 갑곶성지 오솔길, 그곳에 설치된 14처와 다가가는 길, 그 길은 신앙의 길이며 진리의 길이 었습니다.
불현듯 사부님의 음성이 다가 왔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인간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14처의 십자가의 길을 마무리하는 마침기도를 드리며 순례의 첫걸음을 매듭졌습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미사참례를 위하여 계단을 올라 성당으로 갔습니다.
갑곶성지 전담 지성용 가브리엘 신부님이십니다.
미사를 참례한 후 평화와 은총의 마음으로 제단 앞에 모인 오늘의 야고바 트레커들, ^*^. ^ㅣ^ 극히 아름답습니다.
백색의 아름다운 여백의 제대, 재속의 어지러운 마음을 전부 내려 놓고 순백의 마음으로 위로받고 은혜를 받으며 물러서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갑곶성지 쉼터에서 휴식을 갖으며 점심을 챙기려 하였으나 사전 방문 끝에 쉼터는 안부라 바람이 안들고 해수면 열기까지 더해그곳에 머물며 식사를 한다는 자체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사무실에 들러 의논 끝에 식당을 빌려 점심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심 후 총무님의 배려로 커피로 후식의 여유를 갖았습니다. 총무님 땡큐~~ 그리고 사로 서로 싸온 도시락의 찬들을 나눔하며 맛있게 챙긴 후,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 2번으로 순례와 트레킹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