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봉헌식
설교 중심 사상: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된다.
몇 년 전에 "중국 남아 선호 사상이 낳은 비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남자 아기를 선호해 남녀 성비가 심각하게 깨진 그래서 노총각이 많은 중국의 마을들에 여성들이 팔려간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이 노동력과 가문의 상속, 제사 등을 이유로 아들을 선호해 왔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도 아들을 선호했는데 약속된 구주께서 아들로 오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A. 하늘의 장자,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
예수님이 탄생하신 지 약 40일이 지난 후, 요셉과 마리아는 그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맏아들이 태어나면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민수기 3:13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 와이니라"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은 뿌려진 양의 피로 인해 이스라엘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쳤고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다시 사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께 장자를 바치던 규례는 출애굽 때의 구원을 기념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는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를 위해 하늘의 장자를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각가정은 그분의 약속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장자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따라서 그 규례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상징하며 하나님이 주실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가장 소중한 하늘의 장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귀한 것을 받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입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출근길에 알지 못하는 한 고등학생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친구와 맛있는 것 사 먹어라."갑작스러운 호의에 학생은 당황했지만 그 남자에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누군가가 똑같이 만 원을 주며 똑같은 말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는 친구와 함께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며 하루 종일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했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었고 그날 그 학생에게 똑같이 했던 것입니다.
받은 것이 있는 사람은 나누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하늘의 장자를 주신 것은 그분을 통해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므로 약속된 장자가 사람으로 오셔서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매우 뜻깊은 예식이 되었습니다.
B. 성령 충만과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께 봉헌되는 날, 예식을 주관할 제사장은 한 초라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가난한 모습 때문에 제사장은 그들을 주목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바쳐진 후에 장자의 명부에 이름이 기록된 그 아기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분이 천사들이 찬양하기를 기뻐하던 만왕의 왕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여호와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여러 선지자가 오랫동안 예언해온 메시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제사 제도의 기초이자 원형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사장은 그저 또 하나의 봉헌식을 형식적으로 집례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봉헌식은 그렇게 의미 없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나 직업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경은 그를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라고 말씀합니다. 시므온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아기 예수님이 약속된 구주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봉헌식을 집례한 제사장이 알아보지 못한 그분을 시므온은 알아보았습니다. 그 차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의 차이였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던 것을 알아보게 되고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데살로니가전서 5:1-11까지의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깨어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5-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성경은 "깨어 정신을 차리라고 말하기 전에 신자들을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밤에 깨어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낮에 깨어 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낮은 해가 떠 있는 시간, 즉 빛이 비치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의 빛과 생명의 빛이 비치는 곳에 있으면 깨어 있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 안에 계속해서 머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날 성경을 읽는 중에 이런 것들이 한 순간에 깨달아졌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날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심을, 그분의 사랑의 빛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임을 저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은 깨닫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을 구해야 하는 이유이자, 성령 충만함 속에서 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그날 갑자기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의 삶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그날 단지 성령의 새로운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구주를 알아본 시므온은 마리아가 되돌려 받은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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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높이 들었습니다. 그날 아기 예수님은 두 번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한 번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제사장에 의해 별 의미 없이, 또 한 번은 그분을 제대로 알아본 시므온에 의해 기쁨으로 드려졌습니다. 그때 시므온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29-32).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공자가 한 말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깨달으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까요? 적어도 생명보다 더 값진 것을 깨닫고 소유해야 생명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날 시므온이 그랬습니다. 그는 약속된 구주를 보았을 때, 죽어도 좋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치를 온전히 알게 되면 시므온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위해 우리가 매일 성령의 충만을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C. 성령 충만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인식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실일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한 후에 시므온은 마리아와 요셉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마리아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시므온이 한 말이었지만 성령을 통해 주어진 예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4-35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품성과 사역을 통해 어떤 사람은 괘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흥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분을 반대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될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낼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뿐 아니라, 사탄의 마음의 생각도 드러내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에서 사람과 사탄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었습니다.
시므온이 증거한 예언을 뒤이어 들어온 여선지자 안나가 확중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언을 헛되이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었고, 그분이 하실 일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그리스도를 알아볼 뿐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됩니다. 어느 한 사람이 성령 충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없던 관심이었습니다. 열심히 성령 충만을 기도했을 때, 그녀에게 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토록 끊고 싶었던 커피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커피를 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간절히 성령 충만을 구했더니 자연스럽게 그런 결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사람을 옳지 않은 습관에서 돌이켜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이러한 일을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께 봉헌될 때 성령이 임함으로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시므온은 성령이 임함으로 그분이 하실 일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면 삶의 모든 영역에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재림 신자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이 충만해야합니다. 매일 아침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경험하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