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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 1월 설날과 떡국 쌀과 포도당의 끈적한 관계
hanjy9713
2023.09.05. 03:47조회 2
설날과 떡국
쌀과 포도당의 끈적한 관계
넉넉하고 푸짐하게 시작하는 새해
정월 초하루, 열두 장이 꽉 찬 달력의 표지를 뜯어내는 것은 어쩐지 그득 찬 곳간의 문을 여는 것처럼 든든하고 뿌듯하다. 그래서일까? 설날 아침 밥상 역시 유난히 풍성하고 푸짐하다. 질 좋은 소고기 사태에 밤과 표고버섯을 넣고 푹 쪄 낸 사태찜이 상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녹두를 곱게 갈아 기름에 지져 낸 녹두전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젓가락을 유혹한다. 부엌 찬장 선반 위에는 예쁜 색과 모양을 뽐내는 다식(茶食)1)과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약과가 달콤한 기쁨을 더해 주기 위해 대기 중이다.
하지만 이 맛난 음식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바로 떡국!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뜻한 떡국이 상 위에 올라왔다. 부리나케 숟가락을 들고 한술 떠 넣었다. 꿩고기를 고아 만든 진한 육수는 감칠맛이 돌고 뽀얀 가래떡은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갈 정도로 부드러워 혀에 착착 감긴다. 이 순간, 이 귀한 떡국을 더 먹을 수만 있다면 나이야 몇 살쯤 더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떡국, 설날의 대명사
한 해를 맞이하는 첫날답게 설날 아침은 분주하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설빔으로 곱게 단장하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린다. 만수무강에 대한 기원과 자손의 앞날을 축복하는 덕담이 오가고 나면, 어린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주시는 단것에 한껏 입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새벽에 다녀간 복조리 장수에게 후하게 값을 쳐주고 산 복조리를 마루에 걸어 놓고 한 해 동안 우환 없이 복만 굴러 들어오길 빌었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그 어느 날보다 푸짐한 아침상을 받았다.
설날의 대표 음식, 떡국
어른들이 데우지 않은 차가운 도소주2)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제 몫을 비운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네 골목으로 몰려 나갔다. 한쪽에서는 팽이가 쌩쌩 돌아가고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의 볼이 빨갛게 얼어 갔다.
파르라니 사금파리를 먹인 연줄이 팽팽하게 연싸움을 벌이다가 한쪽이 견디지 못해 끊어져 날아가도 연을 잃은 아이는 그리 분에 겨워하지 않았다. 연은 송액영복(送厄迎福, 나쁜 운수를 보내고 복을 받아들인다)의 꼬리표를 달고 한 해의 액운을 멀리 날려 버리는 임무를 수행하러 떠났기 때문이다.
그보다 조금 나이 든 처녀들은 탐스러운 머리채 끝에 달린 빨간 댕기가 너풀대며 춤을 추도록 널을 뛰었고, 더벅머리 총각들은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차가운 식혜를 한 사발 들이켜고 즐거운 명절날이 기울도록 손을 재게 놀렸다.
설날의 풍경은 흥겹고 즐거우며 풍성하다.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기도 하지만 새해를 여는 첫날이므로, 이날 하루만큼은 한 해 동안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며 형편이 닿는 대로 최대한 상을 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날의 세시 음식으로 꼽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설날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떡국이다. 멥쌀을 물에 불려 곱게 빻은 멥쌀가루를 반죽해 시루에 쪄 낸 뒤 뜨겁고 몰캉몰캉한 반죽을 두 손으로 비벼 길게 늘인 것이 가래떡이다. 이 가래떡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그늘에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뒤 먹기 좋게 썰어 꿩고기로 낸 육수3)에 넣어 끓이면 더없이 부드럽고 맛있는 떡국이 된다.
포도당의 이중생활, 녹말과 셀룰로오스
떡국의 주재료인 가래떡은 쌀로 만든다. 쌀로 떡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쌀 속에 다량의 녹말(綠末, starch)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녹말은 포도당 분자가 수백에서 수천 개 이상 길게 연결되어 이루어진 다당류(多糖類)의 일종이다. 포도당이 단맛을 지닌 것과는 달리 포도당 분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순수한 녹말은 맛도, 냄새도 없는 흰색의 가루 형태4)를 띤다.
녹말을 다른 말로 전분[앙금 전(澱), 가루 분(粉)]이라고 하는데, 찬물에 녹지 않는 데다가 비중이 물보다 커서 찬물에 넣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구마나 감자를 갈아 체에 걸러 낸 뿌연 물을 가만히 놓아두면 아래쪽에 하얀 가루들이 가라앉는데 그것이 바로 전분(녹말)이다.
녹말(혹은 포도당)은 녹색식물이 태양에서 얻어 낸 최초의 에너지이자 생태계를 떠받치는 근본적인 에너지이기도 하다. 식물의 엽록소는 빛을 받으면 탄소를 고정하는 광합성을 하고 그 결과 포도당이 만들어진다. 이를 저장하기 쉽도록 하나로 길게 이어 붙인 것이 녹말이다. 벼 역시 엽록소를 지닌 녹색식물이기 때문에 빛을 받으면 광합성이 일어나 결국 녹말을 만들게 된다.
광합성은 빛을 이용해 공기와 물을 밥과 빵으로 바꾸는 놀라운 마법이다. 식물에 듬뿍 든 초록 색소인 엽록소는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기공을 통해 받아들인 이산화탄소를 기본 재료로 삼고 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포도당을 만들어 낸다.5)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가 발생한다. 산소는 식물이 광합성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만들어 내는 일종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 과정을 공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식물 세포의 내부 기관 모습
이 중 엽록체가 광합성을 하는 곳이다.
화학 교과서에서 흔히 녹말을 (C6H12O6)n로 표현하곤 한다. 앞서 말했듯 녹말은 포도당(C6H12O6) 여러 개가 결합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개수가 수백에서 수만까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6)이다. 녹말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포도당은 육각형의 고리 모양 구조를 가지는데 그 구조에 따라 사슬 모양 포도당, 알파 포도당, 베타 포도당,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알파 포도당과 베타 포도당 모두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의 종류와 수는 동일하지만 원자의 구조 형태가 약간 다르다. 마치 같은 색과 같은 길이의 털실로 만들어진 오른쪽 장갑과 왼쪽 장갑처럼 말이다.
알파 포도당
베타 포도당
1번 탄소 자리에 결합되는 수소(H)와 수산화기(OH)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이 작은 차이가 두 포도당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위 그림처럼 알파 포도당과 베타 포도당은 물질의 구성 성분은 동일하지만, 6개의 탄소 중 1번 탄소에 결합된 수소(H)와 수산화기(OH)의 결합 위치가 다르다. 알파 포도당의 경우 수산화기가 아래쪽으로 결합된 반면, 베타 포도당은 수산화기가 위쪽으로 결합되어 있다.
포도당들을 모아 길게 이어 붙여 녹말을 만드는 경우, 첫 번째 포도당의 1번 탄소 부위의 수산화기(OH)와 다음에 올 포도당의 4번 탄소 부위의 수산화기(OH)가 결합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길게 이어지게 된다. 포도당에는 탄소가 6개나 있지만, 이들이 결합할 때는 반드시 앞선 포도당의 1번 탄소와 뒤에 오는 포도당의 4번 탄소가 손을 잡는다. 하필 수산화기의 위치가 차이가 나는 1번 탄소가 결합에 참가하기 때문에 알파 포도당은 알파 포도당끼리, 베타 포도당은 베타 포도당끼리만 결합할 수 있다.
그런데 포도당 수준에서는 알파형이든 베타형이든 큰 차이가 없지만, 이들이 결합하여 중합체가 되는 경우 알파와 베타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알파 포도당이 길게 이어지면 녹말이 되지만 베타 포도당이 길게 이어지면 흔히 섬유소 혹은 섬유질이라고 불리는 셀룰로오스(cellulose)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녹말은 주로 생물체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되지만 셀룰로오스는 식물을 구성하는 일종의 뼈대로 작용한다. 물에 녹지 않는 건 녹말과 셀룰로오스의 공통점이지만, 셀룰로오스는 여기에 동일한 굵기의 강철과 맞먹을 정도로 질기고 튼튼한 특성이 추가된다. 뼈가 없는 식물이 오징어처럼 흐물흐물거리지 않고 제법 꼿꼿하게 설 수 있는 이유 역시 이 셀룰로오스 때문이다.
또한 셀룰로오스는 소화액에 저항하는 특성을 보인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녹말을 얼마든지 소화시킬 수 있지만 셀룰로오스는 소화시키지 못한다. 이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체내에, 녹말을 구성하는 알파 포도당을 떼어 내는 효소를 가지고 있지만 셀룰로오스를 구성하는 베타 포도당을 떼어 내는 효소는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녹말이든 셀룰로오스든 그 구성 성분은 모두 포도당임에도 동물에게 녹말은 줄줄이 사탕처럼 하나씩 빼어 쓸 수 있는 좋은 에너지원이 되지만 셀룰로오스는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다. 그저 대변이 잘 나오도록 장을 자극하는 길고 거친 섬유일 뿐이다. 요즘에는 셀룰로오스의 이런 특징을 응용해 변비 치료제나 다이어트 식품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물에게 셀룰로오스는, 달콤한 포도당으로 만들어졌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녹말(위쪽)과 셀룰로오스(아래쪽)의 결합 구조식
녹말의 경우 알파 포도당이, 셀룰로오스의 경우 베타 포도당이 결합된 구조로 형성된다.
심지어 풀만 뜯어 먹고 사는, 즉 주로 포도당을 셀룰로오스 형태로 섭취하는 초식동물조차 셀룰로오스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초식동물은 소화관 내부에 셀룰로오스를 분해시키는 효소인 셀룰레이스(cellulase)를 만드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미생물은 셀룰로오스를 분해하여 얻은 포도당을 집주인과 양분해 이용하여 살아간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초식동물이 셀룰로오스 분해 미생물을 소화관에서 잃어 버린다면 아무리 풀을 많이 먹어도 셀룰로오스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얻지 못해 결국은 굶어 죽게 된다.7)
셀룰레이스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는 효소를 이르는 말이다.
셀룰레이스를 만들어 내는 미생물은 초식동물의 위장관 안에 자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미의 보살핌을 통해 만들어진다. 초식동물의 어미는 소화관 내에서 반쯤 소화되어 셀룰로오스 분해 미생물이 풍부히 들어 있는 먹이를 토해 어린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새끼가 젖을 떼고 나서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어미의 토사물을 새끼에게 먹이는 행위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매우 불결한 행위이지만 초식동물의 경우 새끼의 생존을 위해 어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녹말을 구성하는 이란성 쌍둥이,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사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 낸 포도당 중 절반 이상을 녹말이 아닌 셀룰로오스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해마다 지구상의 식물들은 약 10조kg에 달하는 셀룰로오스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식물 전체 질량의 33%를 차지하는 양이다. 만약 인간이 셀룰로오스의 베타 결합을 풀어내는 효소를 만들 수 있다면 인류는 기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 불가능하므로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녹말을 섭취해야 한다.
우리가 쌀을 식량 작물로 이용하는 것은 바로 쌀 속에 녹말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녹말도 역시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이렇게 두 종류가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녹말은 앞선 포도당의 1번 탄소와 뒤에 오는 포도당의 4번 탄소가 결합되어 사슬 모양으로 이어진 중합체다. 이런 식의 평범한 녹말을 아밀로오스라고 한다.
아밀로오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튀는 사람들이 존재하듯이, 포도당 중에서도 종종 튀는 분자들이 나타난다. 1번~4번 탄소가 결합되어 이어지는 긴 사슬에서 대략 포도당 25개마다 한 번꼴로 1번 탄소가 다음 포도당의 6번 탄소와 결합하는 '튀는' 행동을 보이는 포도당 무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녹말을 아밀로펙틴이라고 한다. 아밀로오스가 규칙적인 결합으로 인해 포도당이 긴 사슬 모양으로 늘어선 것이라면, 아밀로펙틴은 '튀는' 결합을 선택하는 포도당들로 인해 25개에 한 번꼴로 구조가 꺾이는 것이 반복되어 전반적으로 복잡한 나뭇가지 모양의 구조를 가진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녹말의 70%는 아밀로펙틴이며 나머지는 아밀로오스다. 단순하지만 재미없는 아밀로오스보다 복잡하지만 톡톡 튀는 아밀로펙틴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은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더 선호한다는 무언의 신호처럼 느껴진다.
아밀로펙틴
인절미와 가래떡, 같지만 다른 혹은 다르지만 같은
앞서 알파 포도당과 베타 포도당처럼 물질은 구성 성분이 같아도 분자 구조가 다르면 그 결과물의 특성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역시 분자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을 지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의 차이는 녹말과 셀룰로오스가 가지는 차이에 비해서 미미하다는 것이다. 즉 아밀로오스든 아밀로펙틴이든 모두 소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쌀을 물에 넣고 끓이면 밥이 된다. 바싹 말라서 그대로 씹었다간 이가 부러질 만큼 딱딱해진 쌀도 밥을 짓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워진다. 이는 쌀 속에 포함된 녹말이 호화 반응을 일으켜서 물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호화 반응이란 물이 충분한 상태에서 녹말이 적당한 열과 압력을 받으면 구조가 느슨하게 풀리면서 분자 내부로 물이 흡수되고, 결국 물을 가득 품은 그물 모양으로 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호화된 녹말은 부피가 최대 약 60배까지 증가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식감은 부드러워지고 끈적끈적한 점성8)도 생겨나기에 이를 호화[끈끈할 호(糊), 변할 화(化)]라고 부르는 것이다. 쌀로 밥을 짓는 것뿐 아니라 쌀가루로 쫄깃한 떡을 만들거나 풀을 쑤어 문풍지를 바르는 일이 가능한 것은 바로 녹말이 호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호화된 녹말은 소화 효소와의 반응률이 높기 때문에, 생쌀보다는 밥이나 떡이 훨씬 소화가 잘된다. 하지만 호화된 상태는 어디까지나 물에 의한 현상이므로 시간이 지나면 녹말 내부에 갇혀있던 수분이 증발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딱딱하게 굳는 노화 현상이 일어난다. 갓 지은 밥은 차지고 부드럽지만 찬밥을 오래 놓아두면 겉이 마르면서 생쌀처럼 딱딱하게 굳는데 그게 바로 녹말의 노화 현상이다. 그런데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은 바로 이 호화와 노화 현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죽이 밥보다 소화가 잘되는 이유는 호화된 녹말 분자와 소화 효소와의 반응률이 더 좋기 때문이다.
아밀로오스는 분자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물의 침투가 쉬워 호화도 잘 일어나지만 물을 오랫동안 잡아 두기 어려워 노화도 빨리 진행된다. 반면 아밀로펙틴은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물이 침투하기 어려워 호화가 잘 일어나지 않고 또 호화시키기 위해서는 물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호화된 뒤에는 복잡한 구조 탓에 물이 증발하기 어려워 노화도 느리게 진행된다. 이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의 차이로 인해 멥쌀과 찹쌀의 특성이 결정된다.
찹쌀은 아밀로펙틴으로만 구성된 반면 멥쌀은 아밀로오스가 10~3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멥쌀로 지은 밥은 찹쌀로 지은 찰밥에 비해 식으면 더 빨리 굳어진다. 보온 도시락이 없던 시절, 선조들이 먼 길을 떠날 때 일부러 찰밥을 지어서 가져갔던 이유는 아밀로펙틴 성분의 찰밥은 시간이 지나 밥이 식어도 덜 굳기 때문이었다. 찹쌀로 만든 인절미나 찰떡의 경우 호화 상태가 잘 유지되기 때문에 얼렸다가 녹여도 여전히 쫀득하고 부드러워 다시 찌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멥쌀로 만든 밥은 갓 지었을 때는 더없이 부드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아래쪽으로 물기가 배어 나오고 위쪽은 딱딱하게 굳어서 식감이 나빠진다.
이렇게 살펴보면 찹쌀이 멥쌀보다 더 좋은 쌀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용도의 차이다. 일례로 떡국을 만드는 가래떡은 반드시 멥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말랑말랑하고 더 쫄깃하다고 찹쌀로 가래떡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설날 아침에 떡국 대신 끈적거리고 느른한 풀국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떡국처럼 다량의 물에 넣고 끓이는 경우 찰떡은 지나치게 수분을 흡수하여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흐물흐물 풀어지지만, 아밀로오스가 함유된 멥쌀로 만든 가래떡은 적당한 수분 흡수로 모양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이번 설날에는 따끈한 떡국으로 뱃속도 채우고 동시에 쌀 속에 숨은 녹말의 과학으로 머릿속도 든든하게 채워 보는 건 어떨까?
연관목차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3/27 [네이버 지식백과] 설날과 떡국 - 쌀과 포도당의 끈적한 관계 (하리하라의 음식 과학, 2015. 06. 30., 이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