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있는 비봉산(飛鳳山, 295m)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34~35℃를 오르내리는 폭염 경보가 수시로 스마트폰에 뜹니다. 장마전선이 오락가락 하면서 오늘도 국지성(局地性) 폭우(爆雨)가 예보된 상태입니다. 구름이 낮게 깔렸지만 집에서 출발할 때는 비는 아직도 구름 속에 머물러 있는것 같습니다. 서류바는 폭우를 걱정하는 가족을 빌미로 불참의 핑게입니다. 위짜추는 며칠 뒤에 있을 이사(移事) 준비로 부득불 참여가 불가하답니다. 1호선 안양역에 도착하여 씨모우 조단서를 만나서 2번 출구로 나옵니다. 하늘에서는 말 그대로 비를 퍼붓고 있습니다. 지기(知己)들의 사전에는 후퇴(後退)란 용납을 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뒤집어 지려는 우산을 부여잡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여듭니다. 몇 발작을 나가지도 못하고 씨모우 조단서가 황급히 역내(驛內)로 후퇴하고 맙니다. 이까짓 비 정도는 무시하고 진행을 하려 하지만 두 녀석은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거리에는 인적은 사라지고 비에 흠뻑 젖은 가로수(街路樹)들도 힘에 겨워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센 빗줄기를 뚫고 전조등(前照燈)을 밝힌 차량들만이 물 폭탄을 휩쓸고 있습니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굵은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졌습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비봉산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대림대학교 캠퍼스로 진입합니다. 뒷쪽으로 비봉산과 연결되는 좁은 산길로 올라섭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흥건하게 온 몸을 적시고 있습니다. 비에 젖고 땀에 절으니 비와 땀의 한수(汗水)로 샤워를 하게 됩니다. 자그마한 계곡 마다에는 물폭탄으로 시원한 폭포를 이루고 있습니다. 힘차게 흐르는 물속에 손을 담그며 잠시 더위를 쫒아 버립니다. 산행 중에는 산객이라곤 오직 세명의 노객 뿐입니다. 역시 오늘의 비봉산은 지기(知己)들만의 웃음소리가 산울림으로 돌아옵니다. 산새들과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노객들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고 있습니다. 낮으막한 산세로 안양역에서 정상(頂上) 까지는 약 4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천천히 오르더라도 1시간 2~30분이면 충분한 시간입니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서 가시거리는 불량한 상태입니다. 정상에서는 예상치 못한 차량들이 몇 대 있습니다. 화물막이를 옆으로 올릴 수 있는 화물차 위에서 늙수그레한 대여섯의 남녀가 고기까지 구워가며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십 몇년 전에 우리들의 자화상(自畵像)을 거꾸로 돌려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들만의 청정(淸淨) 산행을 구가하던 즐거움이 일순간에 게거품을 뒤집어 쓰는 기분입니다. 막 터져 나오려는 볼멘 소리를 참을 인(忍) 자(字) 세번을 뇌에 입력시키며 심호흡으로 내뱉습니다. 확 트여진 정상에는 우무(雨霧)가 사방의 전경을 삼켜 버리고 있습니다. 안양시내는 물론이며 관악산 모락산 광교산 수리산 등의 수려한 능선들의 정경(情景)은 오리무중일 뿐입니다. 준비한 간식으로는 겨우 수박 한 쪽과 Yogurt 한개로 갈증을 다스립니다. 항상 푸짐하던 메뉴가 두 녀석의 헛바퀴로 초라할 지경입니다. 화물차에서 전개되고 있는 꼴불견을 뒤로 하고 하산을 서두릅니다. 폭포수가 되어 흘러 내리는 계곡 물소리는 노객들의 발걸음을 한껏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들려오는 오토바이 굉음(轟音)이 말초신경(末梢神經)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헬멧을 뒤집어 쓰고 Motorbike를 타고 산을 오르는 몰상식(沒常識)한 여성들입니다. 소음(搔音)과 공해(公害)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볼썽 사나운 모습입니다. 규제(規制)와 법규(法規) 이전에 상식(常識)과 양심(良心)에 따라 공공(公公)을 배려할 줄 아는 시민의식(市民意識)이 필요한 때입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임곡중학교 앞으로 하산을 합니다. 조단서가 잠시 살았던 아파트를 바라보며 비산동 앞의 경수대로로 접어듭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하직 하신 조단서 부친의 마지막 요양병원 앞도 통과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잠시 어르신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편백나무가 쭈욱 쭉 뻗은 평화공원(平和公園)으로 들어섭니다. 피톤치드(Phytoncide)의 향기가 폐포 깊숙하게 스며드는 상큼함을 느껴봅니다. 범계역 근처에 있는 로데오 거리로 들어서니 젊음의 열기(熱氣)가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깔끔한 회식 장소로 자리를 잡습니다. 고기불판에서 화기(火氣)가 오르기도 전에 완샷의 권주가(勸酒歌)가 터져 나옵니다. 짜릿한 알콜이 술잔에서 입으로 침샘을 자극하며 목젖을 넘기면 식도와 위장으로 소장 대장을 거침없이 흘러 항문까지 내립니다. 간(肝)에서 분해가 되며 각 신체 모든 장관(臟管)을 통하여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흡수됩니다. 거듭되는 완샷의 권주가는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모두 풀어 헤쳐 놓게 합니다. 아쉬움을 양꼬치와 소주 맥주를 추가함으로 알콜 농도를 상승시킵니다. 기분 좋은 거나함으로 전철에 몸을 싣습니다. 언필칭(言必稱) 전공노(電空老)라는 전철을 공짜로 타는 노객의 신세가 됩니다. 땀과 비에 흠씬 젖어버린 노구(老軀)에서의 노취(老臭)가 오죽하겠습니까. 소주 맥주 알콜에다가 돼지갈비 양꼬치 마늘 청양고추 상추 깻닢 김치 야채샐러드 된장찌개 고추장 계란찜 미역냉채 양파 부추무침 흰 쌀밥 등을 맛나게 기분 좋게 섭취를 했습니다. 위(胃) 간(肝) 담(膽) 췌장(膵臟) 소장(小腸) 대장(大腸)에서 분비되는 소화액(消化液)으로 분해를 시킵니다. 완전히 소화 흡수되어 배설되기 전(前) 까지 호흡이나 트림 등으로 내뿜는 고약한 악취(惡醉)는 취객(醉客)인 당사자만 모릅니다. 전철 속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승객(乘客)들의 고역(苦役)을 가늠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혈중 알콜농도의 상승으로 지각(知覺) 통각(痛覺) 운동신경(運動神經) 감정(感情) 반사신경(反射神經) 등의 모든 신경과 억제 조절 중추가 기능을 망각합니다. 취노객(醉老客)들의 내노라(?) 하는 궤변(詭辯)으로 언성을 높히면 여타 승객들의 짜증도 정비례(正比例)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노약자 경로석(敬老席)에 앉는 것이 무슨 자랑이며 벼슬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것도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위하여 지대(至大)한 공(功)을 세운 유공자(有功者)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계십니까. 내괘남괘모괘
오늘은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 있는 비봉산(飛鳳山, 295m)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34~35℃를 오르내리는 폭염 경보가 수시로 스마트폰에 뜹니다. 장마전선이 오락가락 하면서 오늘도 국지성(局地性) 폭우(爆雨)가 예보된 상태입니다. 구름이 낮게 깔렸지만 집에서 출발할 때는 비는 아직도 구름 속에 머물러 있는것 같습니다. 서류바는 폭우를 걱정하는 가족을 빌미로 불참의 핑게입니다. 위짜추는 며칠 뒤에 있을 이사(移事) 준비로 부득불 참여가 불가하답니다. 1호선 안양역에 도착하여 씨모우 조단서를 만나서 2번 출구로 나옵니다. 하늘에서는 말 그대로 비를 퍼붓고 있습니다. 지기(知己)들의 사전에는 후퇴(後退)란 용납을 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뒤집어 지려는 우산을 부여잡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여듭니다. 몇 발작을 나가지도 못하고 씨모우 조단서가 황급히 역내(驛內)로 후퇴하고 맙니다. 이까짓 비 정도는 무시하고 진행을 하려 하지만 두 녀석은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거리에는 인적은 사라지고 비에 흠뻑 젖은 가로수(街路樹)들도 힘에 겨워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센 빗줄기를 뚫고 전조등(前照燈)을 밝힌 차량들만이 물 폭탄을 휩쓸고 있습니다. 숨 고르기에 들어간 굵은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졌습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비봉산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대림대학교 캠퍼스로 진입합니다. 뒷쪽으로 비봉산과 연결되는 좁은 산길로 올라섭니다.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흥건하게 온 몸을 적시고 있습니다. 비에 젖고 땀에 절으니 비와 땀의 한수(汗水)로 샤워를 하게 됩니다. 자그마한 계곡 마다에는 물폭탄으로 시원한 폭포를 이루고 있습니다. 힘차게 흐르는 물속에 손을 담그며 잠시 더위를 쫒아 버립니다. 산행 중에는 산객이라곤 오직 세명의 노객 뿐입니다. 역시 오늘의 비봉산은 지기(知己)들만의 웃음소리가 산울림으로 돌아옵니다. 산새들과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노객들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고 있습니다. 낮으막한 산세로 안양역에서 정상(頂上) 까지는 약 4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천천히 오르더라도 1시간 2~30분이면 충분한 시간입니다. 후덥지근한 열기에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서 가시거리는 불량한 상태입니다. 정상에서는 예상치 못한 차량들이 몇 대 있습니다. 화물막이를 옆으로 올릴 수 있는 화물차 위에서 늙수그레한 대여섯의 남녀가 고기까지 구워가며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십 몇년 전에 우리들의 자화상(自畵像)을 거꾸로 돌려 놓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들만의 청정(淸淨) 산행을 구가하던 즐거움이 일순간에 게거품을 뒤집어 쓰는 기분입니다. 막 터져 나오려는 볼멘 소리를 참을 인(忍) 자(字) 세번을 뇌에 입력시키며 심호흡으로 내뱉습니다. 확 트여진 정상에는 우무(雨霧)가 사방의 전경을 삼켜 버리고 있습니다. 안양시내는 물론이며 관악산 모락산 광교산 수리산 등의 수려한 능선들의 정경(情景)은 오리무중일 뿐입니다. 준비한 간식으로는 겨우 수박 한 쪽과 Yogurt 한개로 갈증을 다스립니다. 항상 푸짐하던 메뉴가 두 녀석의 헛바퀴로 초라할 지경입니다. 화물차에서 전개되고 있는 꼴불견을 뒤로 하고 하산을 서두릅니다. 폭포수가 되어 흘러 내리는 계곡 물소리는 노객들의 발걸음을 한껏 가볍게 하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들려오는 오토바이 굉음(轟音)이 말초신경(末梢神經)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헬멧을 뒤집어 쓰고 Motorbike를 타고 산을 오르는 몰상식(沒常識)한 여성들입니다. 소음(搔音)과 공해(公害)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볼썽 사나운 모습입니다. 규제(規制)와 법규(法規) 이전에 상식(常識)과 양심(良心)에 따라 공공(公公)을 배려할 줄 아는 시민의식(市民意識)이 필요한 때입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임곡중학교 앞으로 하산을 합니다. 조단서가 잠시 살았던 아파트를 바라보며 비산동 앞의 경수대로로 접어듭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하직 하신 조단서 부친의 마지막 요양병원 앞도 통과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잠시 어르신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편백나무가 쭈욱 쭉 뻗은 평화공원(平和公園)으로 들어섭니다. 피톤치드(Phytoncide)의 향기가 폐포 깊숙하게 스며드는 상큼함을 느껴봅니다. 범계역 근처에 있는 로데오 거리로 들어서니 젊음의 열기(熱氣)가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깔끔한 회식 장소로 자리를 잡습니다. 고기불판에서 화기(火氣)가 오르기도 전에 완샷의 권주가(勸酒歌)가 터져 나옵니다. 짜릿한 알콜이 술잔에서 입으로 침샘을 자극하며 목젖을 넘기면 식도와 위장으로 소장 대장을 거침없이 흘러 항문까지 내립니다. 간(肝)에서 분해가 되며 각 신체 모든 장관(臟管)을 통하여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흡수됩니다. 거듭되는 완샷의 권주가는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를 모두 풀어 헤쳐 놓게 합니다. 아쉬움을 양꼬치와 소주 맥주를 추가함으로 알콜 농도를 상승시킵니다. 기분 좋은 거나함으로 전철에 몸을 싣습니다. 언필칭(言必稱) 전공노(電空老)라는 전철을 공짜로 타는 노객의 신세가 됩니다. 땀과 비에 흠씬 젖어버린 노구(老軀)에서의 노취(老臭)가 오죽하겠습니까. 소주 맥주 알콜에다가 돼지갈비 양꼬치 마늘 청양고추 상추 깻닢 김치 야채샐러드 된장찌개 고추장 계란찜 미역냉채 양파 부추무침 흰 쌀밥 등을 맛나게 기분 좋게 섭취를 했습니다. 위(胃) 간(肝) 담(膽) 췌장(膵臟) 소장(小腸) 대장(大腸)에서 분비되는 소화액(消化液)으로 분해를 시킵니다. 완전히 소화 흡수되어 배설되기 전(前) 까지 호흡이나 트림 등으로 내뿜는 고약한 악취(惡醉)는 취객(醉客)인 당사자만 모릅니다. 전철 속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승객(乘客)들의 고역(苦役)을 가늠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혈중 알콜농도의 상승으로 지각(知覺) 통각(痛覺) 운동신경(運動神經) 감정(感情) 반사신경(反射神經) 등의 모든 신경과 억제 조절 중추가 기능을 망각합니다. 취노객(醉老客)들의 내노라(?) 하는 궤변(詭辯)으로 언성을 높히면 여타 승객들의 짜증도 정비례(正比例)합니다. 나이가 많아서 노약자 경로석(敬老席)에 앉는 것이 무슨 자랑이며 벼슬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것도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을 위하여 지대(至大)한 공(功)을 세운 유공자(有功者)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계십니까.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도 힘에 겨워서 삶에 지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낙방(落榜)의 고배(苦杯)로 내일은 또 어느 곳에 취업원서를 내야할지 실의(失意)에 젖은 청춘(靑春)도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혹여 건너편 앞 자리에서 내 며늘아기와 손주 녀석들이 이런 추태(醜態)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괘씸한 내괘남괘가 아니라, 내가 해도 괜찮고, 남이 해도 괜찮으며, 모두가 괜찮으면 더 괜찮은 사회 즉 내괘남괘모괘의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나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 누가 말했던가 취중망언(醉中妄言)이 아니라 취중유골(醉中有骨)의 말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2017년 8월 4일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