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칼빈의 믿음론, 기독교강요 제3권 1장 3(1559년 라틴어 최종판 완역, 문병호 옮김, PP.34-36)
3. 성령(聖靈)의 칭호(稱號)들
여기에서
우리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전체적 회복(回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경이 제시하는 성령의 칭호(稱號)들에 주목하는 것은 유익함이 없지 않다.
첫째, 성령은 "양자(養子)의 영(靈)”이라고 불리신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위하여 우리를 안으시는.
거저 베푸시는 사랑의 증인이 되시고,
우리가 생기(生氣)를 얻어 기도에 대한 신뢰를 갖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롬 8:15: 갈 4:6)라고 부르짖게끔 그 호칭을 말씀해 주시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성령은 우리 기업에 대한 "보증"이며 "인(印)" (고후 1:22: 참조, 엡 1:14)이라 불리신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로부터 이 세상의 나그네 길 가운데서 죽은 자와 방불하게 살아가는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의 구원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자기의 "의(義)”로 인하여 “생명"(적용. 롬8:10)이라고 불리신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자기의 은밀한 물 댐으로 우리를 비옥하게 하셔서
우리가 많은 의의 싹을 내도록 하신다.
따라서 그는 자주 "물"이라고 불리신다.
이사야는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 55:1),
또한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 44:3)라고 전하였다.
이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부합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때때로 성령은 죄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계시므로 그렇게 인용되시는바,
에스겔서에서 보듯이, 여호와는 자기 백성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맑은 물"(겔 36:25)을 약속하신다.
또한
성령은 자기의 은혜(恩惠)의 즙(汁)을 섭취하게 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생명의 활력을 배양시키시므로
“기름”과 “기름부음"(요일 2:20, 27)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신다.
한편 성령은 우리 정욕의 사악함을 끊임없이 졸이고 태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건에 대한 열심을 우리 마음에 불붙게 하신다.
이러한 효과로 그는 또한 “불”(눅 3:16)이라고 합당하게 칭함을 받으신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자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모든 부(富)를 우리에게 머물게 하시는 “샘”(요 4:14)으로서,
혹은 자기의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행 11:21)으로서 기술되신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신적 생명으로 호흡하게 하시고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스스로 행하지 않고
그의 행하심과 기동하게 하심에 따라 다스림을 받게 하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은 그의 은혜의 열매이다.
그가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은사는 마음의 어두움과 심장의 부패가 될 것이다(참조. 갈 5:19-21).
이미 분명히 설명했듯이,
우리의 마음이 성령께 몰두(沒頭)되기 전까지
그리스도는 어떤 의미에서 쉬고 계시는 분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우리 바깥에 계신 분으로,
참으로 멀리 떨어져 계신 분으로 냉랭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오직 그리스도가 그들의 "머리"(엡 4:15)가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하여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9)이 되어 주신 자들,
요컨대
그리스도로 “옷 입은"(갈 3:27) 자들에게만 성령은 은혜(恩惠)를 베푸신다.
우리에 관한한,
오직 이러한 연합(聯合) 가운데서만 그는 구원자의 이름과 함께 유익하게 나타나신다.
같은 취지에서,
우리가 그의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로서
참으로 그 자신과 하나가 되는 거룩한 혼인에 비추어
그의 작용이 말씀된다(엡 5:30).
그리스도를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聖靈)이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아우르시고
동시에 우리가 그를 소유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의 은혜와 능력에 힘입어
그리스도의 지체(肢體)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