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바다는 나의 바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오키나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그곳에 서린 비참한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이 섬은 그저 황홀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오키나와의 눈물을 알고 나서 마주친 푸른 바다는 공포스러웠다. 특히 절벽에서 바라본 태평양 깊은 물속에선 여전히 푸른 혼들이 살아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몇 해 전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갔을 때 마주친 그 바다의 아픔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오키나와 여행계획을 짜면서 놀랐던 것은 이 섬에 가장 많은 여행객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푸른 바다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서 이곳을 오고, 그들을 위한 여행 가이드 어디에도 이 섬과 바다에 서린 폭력과 어둠을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녀온 이들의 여행기를 담은 수많은 블로그 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아름다움과 즐거움 뿐이었다. 간간이 언급되는 미군기지 이야기, 그리고 그저 관광지로 소비되는 류큐 왕국 이야기....알고 나서 보니 이 모든 것이 가슴 아팠다.
무엇보다 우리는 옛날 동두천 시대를 비롯해 오산 평택 미군기지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인이며 또 그 무엇보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이 미선이의 나라 아닌가. 그럼에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오키나와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기만 했다. 오키나와가 고향인 이 저자는 얼마나 더 안타깝게 그런 마음을 갖고 있을 건가.
도쿄에서 살았을 때 놀란 것 중 하나는 군 비행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로 근처에 살고 있어서 깊은 밤까지 전철 소리가 들렸지만, 그래도 집이 흔들리는 일도,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직거리는 일도,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도 없었다.
내가 오키나와 출신이라고 하면 오키나와는 좋은 곳이죠, 아무로 나미에(오키나와 출신 가수) 예뻐요, 오키나와 아주 좋아해요, 하고 친근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아, 이런 데서 사는 사람에게 군대와 이웃해 사는 오키나와의 일상적인 분노를 전하는 것은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바다를 주다> 이 책은 오키나와가 고향인 저자가 도쿄에서 오래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바라본 오키나와 이야기다. 20대에 남편이 한동네 살던 이웃 친구와 4년 동안이나 불륜 관계에 있었다는 걸 알고 이혼하게 된 이야기가 처음에 나온다. 한동네에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늘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일상을 나누던 옆집 친구가 남편과 불륜이었다는....이런 이야기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저자는 그 친구에게 묻고 싶었다고 썼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내 집을 드나들고 나와 밥을 먹고 나와 마주앉아 웃었던 거니......그 친구는 이혼을 기다렸지만 하지 않더라며 울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귀찮은 나날"이 있었기 때문에 젊은 여성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썼다.
슬픔이라는 건 아마도 살아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결 작아진 상처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키나와에 있는 류큐대학 교육학부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청소년 문제를 연구하며 십대 여성을 조사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와 소감이다. 대부분 집을 나와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들 십대 여성, 그리고 그들의 애인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미군에 의해 성폭행 후 살해당한 여성의 이야기, 무엇보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가장 큰 이슈인 미군기지 문제들도 다루고 있는데 확성기를 통해 거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미군기지 옆에 살며 일상의 폭력과 피해, 당사자로서 주민 갈등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이런 방식은 한국적 저널리즘 글쓰기로 생각해보면 너무 가볍고 파편화되어있다는 비판을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거대 담론도 이런 이야기로 다룰 때 대중적 소구력을 갖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21년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한국의 글쓰기는 보다 엄중하고 무겁고, 일본의 글쓰기는 가볍고 개인적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근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도 이 책의 따뜻한 정서에 마음이 끌린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제주도 강정에서 미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했듯이, 그러나 아무리 호소해도 해군기지는 세워지고 말았듯이 오키나와에서도 공군기지는 확장되고 있다. 미군기지를 돌아보러 갔을 때 그곳을 관광자원 삼아 전망대를 설치해놓고 공군 훈련을 참관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는 평화기행으로 그곳을 갔지만, 입이 벌어지는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 눈 앞에서 전투기가 이륙하고 착륙을 한다. 전투기 속의 조종사 얼굴까지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비행기가 뜨고 날 때 소음은 어마어마해서 옆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바로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일본 본토에서 차별당하고 무시당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살고 있었다.
미군기지는 이제 후텐마에서 새로운 땅 헤노코로 이전을 한다고 한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거듭 중단할 것을 부탁해도 푸른 바다에는 토사가 투입되고 이 기지를 완성하는데는 앞으로 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영원히 식민의 삶에서 해방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마음 따뜻하게 읽었던 건 오키나와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후카, 오늘 엄마가 너에게 가르쳐준 건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정체 모를 음식이란다. 그래도 나름 맛있고, 오늘 하루 너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지.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3분이야.
앞으로 네 인생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거야.
그중에는 엄마와 아빠가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일도 있지만 네가 오롯이 혼자서 감당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일도 있어. 그때가 오면 네 빈속을 채워주는 음식을, 그날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도 좋으니 어쨌든 너를 버티게 해주는 그런 음식을 네 손으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익혀 둬야 해. 대충 만들어도 되고 얼렁뚱땅 만들어도 좋으니 그 음식을 먹고 괴로운 일을 극복했으면 좋겠어. 만약 네가 궁지에 빠졌을 때 한달음에 달려와서 맛있는 밥을 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네 인생은 어떻게든 될 거야. 아마 제법 괜찮아질걸?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어. 그런 친구 곁에서 사람을 아끼는 법을 배운다면, 네가 궁지에 빠졌을 때 달려와 주는 친구는 네가 살아 있는 한 점점 많아질 거야. 정말이야.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말처럼 이 글이 왜그렇게 따스하게 와 닿았을까....내가 못하는 것....밥 짓는 사람이 되는 것....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는 사람이지 못한 것.....그런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우리 집 상공에서는 오늘도 오스프리와 제트기가 날아다닌다. 접근하는 비행기 소음은 90데시벨이 넘는다고 한다. 90데시벨은 옆에 앉아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시끄러운 공장 안과 똑같은 소리다. 나는 이곳에서 작은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토사가 투입되기 전의 생기 넘치는 생물이 사는 저 깊고 푸른 바다를 생각한다. 이곳은 바다다. 푸른 바다다. 산호초 속에서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거북이가 오가는 교차점, 어쩌면 아직 어딘가에 인어도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방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건넨다.
나는 전철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넘긴다.
나는 강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준다.
이 바다를 혼자 품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에게, 바다를 준다.
그에게 바다를 건네 받았다.
이제 너의 바다는 나의 바다가 되었다.
나는 이 바다에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나....
이 바다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서럽고 무거운 맘으로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