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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사과 따는 소녀-조선풍속. 일제강점기.
사과는 1906년 서울 뚝섬에 시범 원예장을 설치해 처음 재배했다. 음식문화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메뉴들의 상당수는 그 역사가 깊지 않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음식문화는 변화무쌍하다. 우리가 매끼니 맞이하는 밥상의 메뉴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먹어오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추가루가 들어지만 고추를 사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고추 대신 산초나 후추를 썼다. 육류는 소와 닭, 돼지고기가 아닌 개고기와 꿩고기를 최고로 쳤다. 밀재배가 보편화되지 않아 밀가루가 귀하다 보니 메밀가루가 밀가루의 위치를 차지했다.
정부인 안동 장 씨(1598~1680)가 저술한 17세기 조선 양반가의 음식조리서 <음식디미방>은 생소한 조선음식과 조리법을 소개한다. 정부인은 정2품·종2품인 문·무관 부인에게 내리는 등급이다. 정부인 안동 장 씨의 본명은 장계향으로 안동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장흥효이고 어머니는 첨지 권사온의 딸이다. 19세에 출가해 이시명의 두 번째 부인이 됐다. 6남 2녀를 뒀으며 둘째 아들 현일이 그중 출중해 이조판서를 지냈다. 둘째 아들 덕에 정부인이 됐다.
아들이 쓴 '정부인 안동 장 씨 실기'에 의하면, 장 씨는 행실과 덕이 높아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하고 노인과 고아를 돌봤으며 서화와 문자에도 뛰어나 훌륭한 필적을 다수 남겼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2. 함남 풍산 풍산견. 일제강점기.
삼국·고려시대 불교를 믿었던 우리 민족은 개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성리학의 영향으로 개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음식디미방>에는 유독 개고기 요리법이 많이 등장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인 시대이지만 여전히 개식용은 논란꺼리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고기가 제사상에 올랐고 유교의 창시자 공자도 개고기 애호가였다. 삼국과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신봉해 개고기를 꺼렸다. 조선에 들어와 성리학을 숭배하면서 유학자들도 공자를 따라 개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개 요리법은 탕과 수육, 전골 정도만 겨우 남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요리법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음식디미방>에 등장하는 개요리 중 이색적인 것은 개순대이다.
우선 개를 잡아 뼈를 모두 발라 버리고 고기에 후추, 산초, 생강, 참기름, 진간장을 넣어 만두소를 이기듯 한데 섞는다. 돼지 피가 들어가는 돼지순대와는 달리 개 순대에는 개의 피가 들어가지 않는다.
소를 깨끗하게 빤 개 창자에 넣고 시루에 담아 한나절 정도 약한 불에 찌면 순대가 완성된다. 저자는 개순대를 어슷어슷 썰어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으면 맛이 아주 좋다고 했다.
개장꼬지누르미는 꼬치구이와 유사하다. 개고기를 살짝 삶은 뒤 썰어 후춧가루, 참기름, 진간장을 함께 섞어 뒀다가 다음 날 꼬챙이에 꿰어 굽는다. 누르미는 꿩고기 육수에 장, 기름, 후추, 산초, 생강가루 등을 섞어 데운 즙에 찍어 먹는다.
개 삶는 방법도 낯설다. 먼저 황계 한 마리를 먹여 5~6일 후에 개를 잡는다. 고기를 잘 씻어 맑은 장 한 사발, 참기름 다섯 홉을 타 김이 새지 않도록 봉한 항아리에 중탕한다. 그리고 초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삶아야 한다.
<음식디미방>은 오늘날 먹지 않는 허파와 간 등의 내장을 요리하는 방법도 전한다. 저자는 가장 맛있는 개종류는 황백견, 즉 누렁개라고 했다.
사진3. 좌판에서 국수 파는 여인-조선풍속. 일제강점기.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음식지미방), 현종 11년(1670)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쓴 조리서이다. 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며,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궁체로 쓰인 필사본으로, 표지에는 《규곤시의방》이라 이름붙여졌으며, 내용 첫머리에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써있다. 음식디미방은 한자어로 그중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며,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한국에서 음식에 관한 책은 있었지만, 모두 한문으로 쓰였으며,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반면 음식디미방은 예로부터 전해오거나 장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 및 어육류, 각종 술담그기를 자세히 기록한다. 이 책은 17C 중엽 한국인들의 식생활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귀중한 문헌이다. 현재 원본은 경북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 중이다.
146가지 음식 조리법이 담긴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
<음식디미방>에는 현재 양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추가 나타나지 않는다. 고추는 임진왜란 때 전래되고 17세기 초반부터 재배되기 시작했지만, 17세기 말에 쓰인 이 책에는 전혀 언급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상도 북부 지역에서는 고추를 키우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대신 향신료로 산초와 함께 후추, 마늘, 파가 단골로 등장한다.
조선 중기 양반가에서는 만두를 메밀가루로 빚어 먹었다. 저자가 책을 쓸 시기에는 밀 재배가 일반화하지 않았다. 만두를 만들기 위해서는 메밀을 빻아 가는 모시나 비단에 거듭 쳐서 이 가루를 죽처럼 풀로 쒀야 한다. 이 풀로 반죽을 해서 만두피로 썼다.
끓인 메밀풀로 만두피를 만드는 게 무척 특이하다. 오늘날 만두소는 두부, 부추와 돼지고기를 주로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무를 무르게 삶아 덩어리 없이 다지고 꿩고기를 으깨어 간장에 볶은 뒤 잣, 후추, 산초가루와 함께 넣어 빚었다. 꿩고기가 없으면 쇠고기를 넣기도 했다. 만두는 삶아서 초간장에 생강즙을 혼합한 소스에 찍어 먹었다.
꿩고기로는 김치도 담았다. 오이지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제거한 뒤 먹기 좋게 한치 길이로 도톰하게 자른다. 꿩고기를 삶아 잘라놓은 오이지 크기로 썰어 오이지 국물에 소금 등을 넣고 나박김치처럼 삭을 때까지 둔다.
책에서 쇠고기는 개고기나 꿩고기 등의 다른 고기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처럼 기술되고 있다. 늙은 닭과 함께 쇠고기가 질긴 고기로 분류해 연하게 만드는 법이 소개된다.
쇠고기는 산앵두나무, 뽕나무잎 스무 장, 껍질을 벗긴 살구씨 대여섯 개 등을 한데 넣고 뽕나무로 불을 때 삶으면 고기가 부드러워 진다. 돼지고기 조리법 역시 멧돼지 고기 삶는 법, 집돼지 볶는 법 정도만 간략하게 다루고 넘어간다. 돼지고기도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빈대떡도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녹두를 갈아 기름을 부어 지진 뒤 그 위에 꿀로 반죽한 팥소를 얹고 다시 녹두반죽을 부어 잘 익힌다. 녹두와 돼지고기 등을 섞어 굽는 지금의 빈대떡과 비교할 때 그 모습은 차라리 붕어빵이나 호떡에 가깝다.
중국에서 진미로 꼽는 곰발바닥 요리도 언급된다. 물론 중국 요리법과는 전혀 다르다. 먼저 곰발바닥을 불로 그을려 털을 태운다. 가죽을 벗기고 깨끗이 씻어 무르게 삶는다. 곰발바닥은 다 힘줄로 돼 있어서 약한 불로 오랜 시간 고아야 한다. 다 익으면 간장기름을 발라 다시 한 번 굽는다.
여름 과일 복숭아를 한겨울에도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 비법도 일러준다. 밀가루 풀을 쑤어 소금으로 간을 해서 깨끗한 독에 넣는다. 그리고 갓 딴 복숭아를 밀가루 풀 속에 넣고 단단히 봉하면 한겨울에도 제철 과일처럼 싱싱한 복숭아를 즐길 수 있다.
수박도 오랜기간 저장할 수 있다. 깊은 광주리나 큰 독에 쌀겨를 넣고 거기에 수박을 묻어 얼지 않는 방에 간수하면 썩지 않는다.
안동 장 씨는 자식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이 책을 썼다.
그녀는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이 책을 썼으니 그 뜻을 알고 이대로 시행하라.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해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로 끝맺는다.
[출처] : 배한철 매일경제신문 기자 :<배한철의 역사의 더께> - 50.조선이 개고기에 빠진 것은 공자 때문? [음식디미방] / 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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