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1. 매력적이지만 차가운, 정열적이고 단호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욕망과 이익과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갖는 인물. 이러한 사람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이중의 관점을 드러낸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의 냉정함과 차가움을 몰염치함으로 비난하지만, 그와 특별한 관계를 이루게 될 때 비난과 미움 속에서도 그에 대한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갖고 있는 뛰어난 외모와 언변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일종의 ‘기술’ 때문이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계획된 행동과 마음을 통해 상대를 조정하고 상대의 마음을 혼돈에 빠뜨리며 결국은 그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그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그러한 그를 증오하면서도 사랑에 빠져 고통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2.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을 보임에도 그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상대들이 갖고 있는 이기심과 허위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1830년대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역, 유럽과 맞닿아 있는 이 곳의 귀족들과 군인 그리고 지식인들은 유럽의 상류층 문화를 흡수하고 그것을 모방하면서 스스로의 고귀함을 내세우려한다.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찬사에는 그것이 갖는 위험성과 관계없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은 지극히 냉정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 ‘페초린’을 통하여 러시아 사회의 허구적 욕망과 욕망을 쫓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들을 냉정하게 조롱하고 있다.
3.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장 큰 목표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며 찬사이다. 특히 여성들은 그러한 인물들의 많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코카사스 지역의 휴양 지역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만화경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펼쳐진다. 페초린은 가까운 장교 친구가 사랑하는 귀족 여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그녀의 마음을 빼앗고 친구를 격노하게 만든다. 하지만 페초린의 이러한 행동은 결코 ‘사랑’이나 ‘결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면의 욕망에 대한 자연스런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그 또한 일기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만 그것은 양심의 합리화일 뿐이다. “왜 나는 유혹하고 싶지도 않고 결혼할 것도 아닌 어린 소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이렇게도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
4. 여인에 대한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하였지만 페초린은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삶은 끝없는 허무와 권태의 연속이다. 하지만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장교는 그와의 결투를 신청하고 그 과정에서 음모가 자행되지만 결국 장교는 죽음을 맞는다. 페초린은 결투 후 여인에게 사랑이 끝났음을 통보한 후 떠나며 그 또한 혼란스런 러시아의 상황 속에서 사라진다. 페초린의 이야기는 소설 속 화자가 우연하게 취득한 그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화자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의 투영물일 것이다. 레르몬토프는 20대에 이 소설을 썼다. 젊은 그에게 드러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은 위선과 과시가 뒤섞인 허위의 세계로 비쳐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듯 이기적이고 냉정한 인물에게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는 찬사를 바친다. 어쩌면 페초린의 일기에 기록된 고백처럼 자신에게 정직했던 인물이었기에 거짓으로 포장하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모습으로 보인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5. “나는 모든 일을 의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경향의 마음이 성격상의 단호함과 충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모를 때엔, 언제나 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죽음보다 나쁜 일은 일어날 수 없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위선과 합리화의 세계가 보여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