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 유튜브 구독자 수는 의미 없다
*아래의 글은 마르쿠스 가브리엘 저, 오노 가즈모토, 다키다 아키 편역, 이진아 번역으로 베가북스에서 펴낸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에서 그대로 옮겼다.
유튜브에 중독되어 시간을 소셜 미디어에 쏟아 부으며 거기서 주입받은 사실과 거짓을 마구 휘저어 만든 왜곡되고 조작된 뉴스와 담론을 진실로 착각하여 유튜버가 제시한 정의와 선의 잣대로 사람을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는 시대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몇 구절을 올려본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의미 없다
주류 언론이 “아무개에게 몇 명의 트위터 팔로워가 있다” 같은 내용을 보도하곤 하는데, 원래 그런 수치는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고요.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아무개가 칭찬을 받았다” 따위의 보도를 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니까 말이죠.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팔로워 1,000만 명을 모았다는 사실에 무슨 실질적인 의미가 있겠습니까.
출판시장은 그렇습니다. 독일의 과학자가 가운데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된 사람이 책을 펴냈습니다. 원래 이 사람의 저서가 팔리지 않아서,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인플루언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플루언서가 되고 난 후에도 그 사람의 책은 여전히 팔리지 않았습니다. 유튜브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지요. 유튜브 구독자는 영상의 내용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밤에 그저 마음 내키는 비디오를 클릭해서 몇 분쯤 보고는 다시 다른 영상을 클릭합니다. 그것이 시청자의 행동 패턴입니다. 진짜배기 구독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영상의 조회 수가 1,000만 번쯤 되면 그 사람에게 대단한 영향력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유튜브에서 영향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진실과 허구를 혼동하는 것이죠. 주류 언론 매체들이 픽션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언론은 픽션이 아니라 진실을 보도해야 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언론계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계속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좋은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중략
주류 언론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합니다. 저를 예로 들어도 그렇잖아요. 언론을 통해서 진실을 알고 싶으니까, 남독일 신문이 아니라 지역 신문을 먼저 구독하기로 한 것입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저, 오노 가즈모토, 다키다 아키 편역, 이진아 번역,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123,124, 125쪽. 베가북스, 2022년
SNS는 본인이 바라지 않는 자기를 강요한다
소셜 미디어의 문제는 사람을 바꿔버린다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로 사람의 행동이 바뀐다는 것은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자아’를 부여한다는 의미죠.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할 권한이 페이스북에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것에 시간을 쏟기 보다 차라리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으 작품을 읽거나, 친구와 수다를 떠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본래의 ‘나 자신’이 있고, 소셜 미디어에는 ‘뒤틀린 나 자신’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소셜 미디어가 사람에게 본인이 바라지 않는 자신을 밀어붙인다, 혹은 강요한다는 얘기죠. 게다가 프로세스가 불투명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강매해 큰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본래의 자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미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입니다. 그는 또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말로도 유명하고, 그 때문에 현자 중의 현자라고 불리지 않습니까. 그러나 후자의 의미를 그리스어로 풀어보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나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와는 완전히 다르지요. 소크라테스는 자기 인식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확고한 본질이 있다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은 불교를 위시한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정치에도 같은 특징이 있는데, 소셜 미디어는 자신이 본래 갖고 있지 않는 아이덴티티를 강요합니다. 당신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아라거나 백인이라거나, 좌익이라거나 우익이라거나, 나이가 적다거나 많다거나, 환경주의자라든지 그렇지 않다든지, 제멋대로 정해버립니다. 이렇듯 나 자신에게 없었던 정체성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이덴티티를 밀어붙이면 인간은 잘못된 자기개념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학고한 자기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곧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하는데, 저고 동감합니다. 저라는 인간 역시 지극히 복잡한 프로세스,의 덩어리니까요.
마르쿠스 가브리엘 저, 오노 가즈모토, 다키다 아키 편역, 이진아 번역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173,174, 175쪽. 베가북스, 2022년
2023.1.30.월 아침
우담초라하니
* 비고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는 철학자 가브리엘과 일본의 저널리스트 오노 가즈모토와 PHP 연구소가 인터뷰한 것을 오노 가즈모토와 다키다 아키가 편집해서 엮은 것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1980년생으로 29세에 독일 본대학의 최연소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서양철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신 실재론’을 내세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재 본대학교 석좌교수로 인식론과 근현대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의 저서에는 <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생각이란 무엇인가, <나는 뇌가 아니다>, <욕망의 시대를 철학하기>,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신화와 광기 그리고 웃음> (공저),<초예측, 부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