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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소위 ‘뷰(view)’만 좋다면 서향집이든 북향집이든 크게 관계치 않는다. 근대에 이르기까지만 해도 서향이나 북향집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들 했다. 옛날에는 집은 물론, 마을도 남향인 것이 보통이었다.
남향인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집터 자투리 공간을 놀려두는 법이 없었다. 대개 감나무나 살구나무 같은 유실수를 심는다. ‘참죽나무’도 있다. 흔히들 ‘가죽나무’로 잘못 부르는 나무인데 유실수는 아니다. 그럼에도 집집마다 돌담 부근에 참죽나무를 심었다. 어린 순을 따다가 부각을 만들거나 고추장 장아찌를 담기 위해서다. 사랑채 부근에도 심는데 그 까닭은 뒤로 미룬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불행히도 참죽순부각은 먹어본 적이 없다. 간을 한 찹쌀풀을 참죽순에 발라 말린 다음 튀겨낸 것이라 하니 가히 맛은 짐작이 된다. 그것으로 됐다. 고추장 장아찌는 자주 먹어본 적이 있다. 아는 스님이 잊을 만하면 가끔 보내주신다. 채식하는 스님들이 먹는 나물이라 하여 ‘가중나무’라는 별칭도 있다.
입맛 없는 여름날, 물에 만 찬밥에 참죽순 장아찌를 ‘처억’ 걸쳐 먹어보시라. 짭짤하고 들큰한 고추장 맛과 더불어 참죽순 특유의 향기가 입과 코를 자극하니 가출했던 입맛이 바로 돌아온다. 간단한 여름 반찬으로 치자면 아이들 말로 ‘게임 끝’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가죽나무 장아찌’나 ‘가죽나무부각’은 사기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참죽나무순 장아찌’요 ‘참죽나무순 부각’이라고 해야 옳다. 순을 먹는 나무는 가죽나무가 아니라 참죽나무이다. 참죽나무 잎은 향기가 좋아 먹을 수 있지만, 가죽나무 잎은 향이 너무 강해서 식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역한 빈대 냄새 때문이다.
허나, 꼭 참죽나무라는 표현이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로 불러오곤 했는데, 내가 나고 자란 경상도에서도 그러했다. 진짜 가죽나무는 개가죽나무라 했다. 고로 순을 먹을 수 있는 한, 참죽나무라는 표현은 옳고 가죽나무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뭐, 내 생각이 그렇다.
참죽나무와 가죽나무에서 ‘참’은 진짜, ‘가’는 가짜란 뜻이다. 나무에 무슨 진짜와 가짜가 있겠냐만, 사람들은 본디 자기들이 써먹을 것 많은 나무에 ‘참’자 붙이기를 '참' 좋아했다. 참꽃도 그러하다. 특히 식용 관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참이요, 먹을 수 없는 것은 가짜였다.
두 나무는 무척 닮았다. 구분하자면, 참죽나무는 멀구슬과이고 가죽나무는 소태나무과로 종이 다르다. 참죽나무 잎 가장자리의 톱니가 고르게 발달되어 있으나 가죽나무 잎에는 톱니가 없다. 참죽나무 윗부분에 새로 나온 잎은 옻나무처럼 붉은빛을 띠지만. 가죽나무 윗부분 잎은 보통의 나무가 그러하듯 연록색이다. 꽃모양도 열매도 서로 다르다. 내가 사는 동네 작은 동산에 오래된 참죽나무 두 그루와 가죽나무 몇 그루가 우뚝 서 있어서 이젠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참죽나무나 가죽나무 모두 매우 높게 자라는 편이다. 오래된 마을에 가면 큰 키의 참죽나무나 가죽나무를 볼 수 있다. 새들이 둥지를 짓고 새끼들 키우기에 적합한 나무들이다. 나의 마음속 스승 이문구 선생의 소설에도 큰 키의 참죽나무가 나온다. 쓸쓸한 내용이다.
을춘네가 이사가기에 앞서 뒤꼍의 참죽나무 두 그루를 베어 읍내에서 농방 하는 사람한테 팔았다. 그 때 을춘이는 베어 넘긴 참죽나무 빈 까치둥지를 떼어내어 속을 들여다보았다. 둥지 속의 보름자리를 그러내보니 검불만 해도 한 삼태기가 넘는데…(중략)… 을춘이가 떠난 뒤 동네사람들은 “심뽀두 참, 받으면 몇푼 받는다고 참죽나무를 홀랑 벼서 팔구 간디야? 자식 키우는 이가 그러면 쓰간? 자고루 짐승들헌티 몹시 허든 집치구 뒤끝 없든 집 못 봤는디, 글씨 긔네는 워떨는지….” 하고 수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나무는 모두 중국이 원산지다. 참죽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춘(椿)'이다. 어쩐 일인지 옛날 중국에서는 참죽나무가 오래 사는 나무로 통했다. 《장자(莊子)》에서는 참죽나무가 무려 8천 년을 살았다고 했다. 장자의 말에는 과한 데가 많다. 거리나 크기에서도 가당찮은 수치가 자주 등장한다. 장자 잘못이 아니다. 옛날 중국사람들이 대체로 뻥이 좀 셌다.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인 ‘춘부장(椿府丈)’도 참죽나무가 장수나무라는 전제하에 나온 말이다. 춘부(椿府)는 아버지란 뜻이고, 장(丈)은 어른이란 뜻의 한자다. 곧 장수하시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사랑채에 참죽나무를 심은 것도 이에 연유한다.
동아시아 3개국 중 일본에서만 춘(椿)자가 동백나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를 직역하여 ‘동백꽃 여인’ 즉 ‘춘희椿姬’라고 불렀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도 일제강점기 때 굳어진 일본식 표현인 ‘춘희’라고 나와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베르디도 원작자인 소설가 뒤마도 모른 채 ‘참죽나무 여인’이 한국 땅에서 새로이 탄생하게 된 거다. 차라리 그냥 ‘라 트라비아타’ 또는 ‘동백꽃 여인’이라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긴 이런 일본식 용어 사용(방랑하는 화란인 등 뜻이 왜곡된)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가죽나무의 한자는 ‘저(樗)’이다. 중국에서도 가죽나무는 대접받지 못했다. 저(樗)에는 쓸모없다는 뜻도 있다. ‘저력지재(樗櫟之材)’란 성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가죽나무와 참나무 재목이 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오호라! 철저한 ‘중국뽕’ 조선조에서 겸손은 곧 미덕이 아니었던가. 심지어 스스로를 낮추어 ‘저산(樗散)’이라 하면 “고놈 참 예의가 밝네.”라는 칭송이 따랐는데, 그 뜻이 다음처럼 참으로 맹랑하다.
“소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입니다.”
《장자》에도 혜자(惠子)에 의해 가죽나무가 쓸모없는 나무로 인용된다. 혜자라는 인물, 종종 등장하여 그의 어리석음으로 장자에게 구박받는 캐릭터인데, 장자 자체가 그러하듯 가상인물일 확률이 높다. 아무튼, 장자에게 말로써 구박받는 것이 달갑지 않았는지 절차탁마한 다음, 기고만장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나한테는 큰 나무가 있소.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로 부른다오. 그런데 크기만 컸지 옹이가 많고 둥치는 구불구불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에 서 있는데도 목수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오.”
쓸모없이 크기만 한 가죽나무를 예로 들어 장자의 말이 풍성하지만 실속없다며 비꼬는 말이었다. 역시 연습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 말을 혜자는 혼자서 수백 번이나 읊조리지 않았는가. 속으로 “이겼다!” 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장자 눈치를 살폈는데 웬걸, 장자의 표정에 변함이 없다. 장자, 잠시 침을 삼키더니 바로 혜자가 가엽기라도 한 듯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조곤조곤 말한다.
“그대는 큰 나무를 심어놓고 쓸모없다고 유감스러워하고 있는데, 어찌 나무 밑을 소요(逍遙)하다가 지치면 그늘에 누워 낮잠이나 잘 생각은 하지 않소?”
장자에게 오히려 ‘참교육’을 당했다. 자유롭게 이리저리 거닐며 돌아다니는 소요는 장자가 추구한 인생관이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을 통해 소요의 단계에 이르는 것을 장자는 간절하게 바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혜자가 한쪽으로만 보고 있음을 장자가 지적한 점이다. 혜자가 부끄러워했을까? 《장자》에서는 더 이상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향사(觀鄕射)〉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범생이’ 자공이 연말 제사 광경을 보고 있는데 제사라기보다는 축제 분위기였다. 공자가 자공에게 볼만하냐고 물으니, 자공이 답하기를 “온나라 사람들이 모두 미친 듯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만, 전 왜 그리 즐거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백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하루 즐기는 것조차 넌 이해를 못하느냐? 당기기만 하고 느슨하게 풀지 않는 것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도 하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느슨하기만 하고 팽팽하게 당기지 않는 것도 문왕과 무왕이 하지 않았던 일이다. 한번 당기면 한번 느슨하게 한 것이 문왕과 무왕이 천하를 다스린 도리였다.”
문왕과 무왕은 부자로서 상(商)나라를 멸하고 유가(儒家)에서 이상국가로 여기는 주(周)나라를 세운 인물로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기도 하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이십억이는 출가하여 오랜 기간 발에 피가 날 정도로 수행을 해왔지만 깨달음의 경지를 얻지 못했다. 어느 날 이십억이는 출가를 후회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는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요 모양 요 꼴이지만, 내가 그래도 세속에서는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 아닌가? 차라리 집에 있는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낫지 않은가?’
이십억이가 평소에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부처님이 이십억이에게 물었다.
“이십억이야, 네가 잘 탔다는 리라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소리가 잘 나느냐?”
“아닙니다. 너무 팽팽하면 소리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줄을 아주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잘 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수행도 리라와 같단다. 지나치게 몸을 핍박해서도 안 되며, 너무 게을리 해서도 안 된다. 수행자는 극단에 떨어지지 않고 중도를 취해야 하지.”
장자가 보기에 혜자는 경직되어 너무 한쪽으로만 보고 있었다. 공자가 보기에 자공은 너무 조이고 풀 줄 몰랐다. 부처님이 보기에 이십억이는 중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관계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너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다. 더러는 조이고 더러는 풀면서 알맞게 조율해야 한다. …그렇다고들 한다. 가죽나무가 대신 전하는 말이다.
첫댓글 표의 글은 한 더위에 막걸리 마시는 것 처럼 시원하고 감미로운데
그 지식은 요사이 챗GPT에 묻는 것 보다 더 풍부하니
참으로 감복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자주 글을 올려주고
가내가 다 평안하시기 기도합니다.
표의 글은 향기롭다
동. 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함과 작은 부분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섬세한 터치는 글의 메끄로움을 더 해주고
읽는이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는구나
건강 잘 챙기시고 더욱 정진 하시시를 .....
표의 박식함에 다시한번 놀란다.
내가 대학교 다니면서
화공과에서 여러 천재들과 지내봤는데 표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거 같아 .
뛰어난 머리와 박식한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도록 건강과 환경이 허락되길 바란다. 생애의 걸작을 기대한다.
요즘 문중카페에 수준 높은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참 보기가 좋습니다.
아마 태운아재가 시를 올리면서 분위기가 좀 up 되는 것 같습니다.
춘강아재 글, 태운아재 태원아재 시에
표의 맛깔스럽고 지혜가 번득이는 글까지 올라오니
이 글들을 잘 모아두면 후대의 자손들에게 좋은 유산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종손아재, 정무아재, 소설가 기현이 등 더 많은 족친들이 참여해 주기길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표의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