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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씨족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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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원산 위정철 □ 南北宗氏 7인의 泮村詩序(남북종씨 7인의 반촌시서)
야운처사 위이환 추천 0 조회 14 23.10.05 08:21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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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05 08:21

    첫댓글 (144-084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84일차에도 '선조님의 유작'이 밴드에 게재됩니다.



    [본문내용- 선조님의 유작]/ 무곡

  • 작성자 23.10.05 08:22

    각본에 따라 잘 짜여진 드라마 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명 장면들이 환상적으로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는 진하다'는 징표가 아닐런지요./ 무곡

  • 작성자 23.10.05 08:22

    시대적으로는 미국이 독립(1776년 7월)을 달성한지 2년 정도가 지난 시점인 것으로 보입니다./ 무곡

  • 작성자 23.10.05 08:22

    요즘 시대라면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회포를 달랠텐데, 조선말기 지식인들의 만남이라 글로서 만남의 반가움과 헤어짐의 아쉬움를 표현했네요./ 벽천

  • 작성자 23.10.05 08:23

    예전의 행정고시(지금의 5급 공채) 응시 인원이 대략 2-3만명(7급은 3만 5천) 전후가 됩니다만,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과거에는 몇명이나 응시했을까요?/ 무곡

  • 작성자 23.10.05 08:23

    茂谷(무곡) 위상환 님
    조선팔도에서 모여드는 선비가 꽤(?) 많았으리라고 사료됩니다./ 벽전

  • 작성자 23.10.05 08:23

    위윤기 님
    조선시대 대과의 경우
    최대 2천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답안지를 제출하는 인원은 경쟁률에 아주 많이 미달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과거 최대인원은
    21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과거는 부정이 너무 심해
    갑오개혁때인 1894년도에
    폐지된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무곡

  • 작성자 23.10.05 08:23

    장흥과 함흥으로 2천리 떨어져 사는 종친끼리 과거시험장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글을 남긴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듯합니다.
    종친님들 추석연휴 잘 보내시길 빌며 이곳에나마 글 한줄 남기고 갑니다./ 원곡

  • 작성자 23.10.05 08:24

    1778년 무술년은 정조 2년때 입니다. 이때 존재공께서 정조를 만났다면, '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 23.10.0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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