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니, 욕망(欲望)을 떠나
항상 허공(虛空)처럼 한가로운 곳에 살며
선정(禪定)을 깊이 닦아
오신통(五神通)을 얻습니다.1-58
우견이욕 상처공한 심수선정 득오신통
又見離欲 常處空閑 深修禪定 得五神通
1-미륵보살이 타방세계 보살이 선정바라밀 닦는 일을 보고 노래하신 것이니,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중에 세간선(世間禪)인 근본선(根本禪)을 물었다.
2-오신통(五神通)은 1-천안통(天眼通). 2-천이통(天耳通). 3-타심통(他心通). 4-숙명통(宿命通). 5-신경통(神境通-신족통(神足通)).
3-이 게송은 넷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사견(四見)이다. 첫째 이욕견(離欲見). 둘째 공한견(空閑見). 셋째 선정견(禪定見). 넷째 신통견(神通見). 이다.
4-사견(四見)을 일승석(一乘釋)에 입각해 풀이하면, 사견에서 사(四)는 중생이고, 견(見)은 구식(九識)을 가리키는 말이다.
5-우견이욕견(又見離欲見)은! 이욕(離欲)은 욕망을 버린다는 뜻이니 계율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편의 가르침은 반드시 부처님의 모든 계율을 지켜야 조금의 이익이라도 얻게 되나, 법화(法華)에 와서는 부처님의 모든 방편의 계율을 버릴지라도, 그 계율에 있어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것 자체만 가지고 일승계(一乘戒)라 하니, 이를 일승이욕견(一乘離欲見)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방편의 계율을 닦아 불도(佛道)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법화경의 일승계(一乘戒)를 닦아야 불도에 이름을 알 수가 있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너희들이 피로에 지쳐 쉬게 하려고 화성(化城)을 만든 것이니,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보소(寶所)에 가는 것이니라.”하심은 일체의 계율이 모두 방편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화성은 방편의 계율이고, 보소는 진실의 계율임을 알 수가 있다.
또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아란야에서 헐고 떨어진 옷을 입고 마치 공(空)을 깨달은 아라한인 것처럼 하지만, 모두 증상만의 사람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니라.”하심은 온갖 계율을 지킬지라도 법화경을 읽고 외우지 않으면, 모두 잘못된 수행을 하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6-상처공한견(常處空閑見)을 일승석(一乘釋)에 입각해 풀이하면, 다시 상락아정(常樂我淨) 넷으로 나누어지니, 첫째 상(常)은 상(常)이요! 둘째 처(處)는 낙(樂)이요! 셋째 공(空)은 아(我)요! 넷째 한(閑)은 정(淨)이다. 이를 묘법공한견(妙法空閑見)이라 한다.
법화경의 사람은 묘법상(妙法常)을 얻어 묘법처(妙法處)에 머물러 묘법공(妙法空)을 깨달아 묘법한(妙法閑)에 이르고 보면, 지용(地湧)의 사대보살(四大菩薩)과 함께 할 수가 있다.
지금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며 남에게 알려주는 모든 행위는, 모두 지용의 사대보살이 공한(空閑)에 머물러 상처(常處)함이 함께 하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만약 문수든 미륵이든 관음이든 법화경을 닦을 당시에, 사대보살이 공한(空閑)과 함께 함을 알지 못하였다면, 지금도 방편의 보살에 머물러있어야 한다.
지용보살이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이란!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며 남에게 말해주는 것 외에, 따로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이 없음을 알아야한다.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이 사바세계에서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중생과 함께 하겠습니다.”하시었다.
7-심수선정견(深修禪定見)은! 온갖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가 무량한 천만억 겁의 과거와 미래를 보게 될지라도, 법화경의 글을 읽고 한 번 수희(隨喜)한 공덕보다 못하니 이를 연화선정견(蓮華禪定見)이라 한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삼천대천세계를 가령 어떤 사람이 가루로 만들어, 오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삼천대천세계를 지나 한 개의 가루를 떨어뜨리고, 이렇게 반복해 이 모든 세계를 지나면, 그 지나온 세계의 수를 알 수 있겠느냐!”하심은, 무량한 천만억 겁의 과거와 미래를 보는 능력보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수희한 공덕이 더욱 커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보처(補處)에 보살인 미륵보살의 경지에서 이 지나온 세계를 헤아릴 경우, 한 개의 먼지가 떨어진 세계도 헤아릴 수 없다. 따라서 미륵보살이 이르시길, “저희들의 능력으로도 조금도 알 길이 없고 그냥 무량무변(無量無邊)할 뿐입니다.”하신 것이다.
지금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등의 사람은, 지금 현재 법화경과 함께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심수선정(深修禪定)임을 알아야한다. 부처님이 이르시길,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것 자체가 바로 육바라밀을 가장 잘 닦는 것이니라.”하심은 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니, 따로 다른 곳에서 가르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진실을 버리고 방편을 취하려는 것이니, 법화경의 사람들은 이러한 손해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8-득오신통견(得五神通見)은! 만약 천안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법화경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 무명안(無明眼)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법화경을 읽고 있다면 이를 두고 진정한 경전천안(經典天眼)이라 한다.
천이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이는 방편의 천이(天耳)일 뿐이나, 법화경의 가르침을 들었다면 이를 두고 진정한 천이의 경전천이(經典天耳)라 한다.
타심통에 셋이 있으니, 첫째 자심통(自心通). 둘째 타심통(他心通). 셋째 불심통(佛心通). 이다. 자심통과 타심통은 방편심통(方便心通)이고, 불심통만을 가지고 진실심통(眞實心通)이라 한다.
일체중생의 마음과 일체보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모두 방편심통이라 하나, 불심(佛心)을 읽을 수 있으면 이를 진실심통이라 한다.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며 남에게 말해주는 것은, 모두 불심통을 깨닫는 수행법이니, 이를 두고 경전신통견(經典神通見)이라 한다.
팔만사천의 모든 가르침에 안에 소승(小乘)은 성문심(聲聞心)이고 대승(大乘)은 보살심(菩薩心)이고 법화경은 불심(佛心)이다. 따라서 법화경을 제외하고 대승의 경전 안에서 불심(佛心)을 찾고자 하는 것은, 마치 옆집 아저씨를 보고 제 아버지라 부르는 불효(不孝)를 저지르는 것이다.
-偈頌-
법화경을 읽고 있다면
이미 우견이욕(又見離欲)의 경지요!
법화경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상처공한(常處空閑)의 경지요!
법화경을 닦고 있다면
이미 심수선정(深修禪定)의 경지요!
법화경을 수희(隨喜)하고 있다면
이미 득오신통(得五神通)의 경지입니다.
-寶雲法師 神通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