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읽는데 애매한 단어가 나온다. 문맥을 읽고도 뜻을 짐작할 수 없는 생소한 낱말이다. '바투보기.' 선뜻 넘어가지 못하고 사전을 찾는다. 사전 옆면에 박힌 색인索引을 따라 비읍 글자에 도달하기까지, 습자지같이 얇은 종이가 찢어질 듯 파르르 떨린다. 넘길 때 마다 팔락거리는 종이의 감촉이 좋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말을 모으고, 또 그와 관련된 언어 표현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에서, 얼른 '바투보기'를 찾아 뜻을 읽어 내려간다.
2. 이 단어는 발음 때문인지 몽골의 '울란바토르'가 먼저 생각난다. '바투르'는 영웅을 뜻한다. 몽골과 같은 알타이 계열이라 뜻이 통하는 단어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바투는 순수 우리말로 두 개의 대상이나 물체 사이가 아주 가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투보기는 눈앞에 가까이 두고 세밀하게 보는 것을 말하며, 의학적으로는 가까운 데는 잘 보여도 먼 데 것을 잘 보지 못하는 근시近視를 뜻하기도 한다.
3. 의미까지 알고 나니 이 단어가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적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삶의 방식이나 형태를, 멀리 보지 않고 가까운 테두리 안에서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모습은 추운 겨울 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떠가는 뜨개질과 같다. 코를 놓치지 않으려 손 안의 작은 움직임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실과 바늘의 짜임으로 정성스럽게 완성되어 가는 물건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작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바투보기의 마음과 연결되는 것 같다.
4. 여고시절, 멀리서 지켜보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한 번도 화를 내는 걸 본 적이 없고 어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웃으며 다정하게 대하는 아이였다.
"쓸개가 하나 빠진 거 아냐? 맨날 실없이 웃고 다니게."
나는 다른 친구에게 그런 소리를 떠들고 다녔고, 늘 웃고 다닌다는 게 본심과 다른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앉고 싶은 자리에 맘대로 앉으라 했을 때, 생각지도 않게 그 애가 내 옆으로 왔다. "앉아도 되지?" 하면서 이를 드러내며 또 웃었다. 심란한 사춘기 변덕을 나는 그 애에게 툭하면 쏟아냈다. 세상 불만이나 속상함이 마치 그 애 잘못인 듯 열렬히 성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네 말이 맞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라며 변함없는 미소로 나를 수굿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말은 힘들었던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5. 그 애 부모님은 명문고와 여고를 나온 재원이었다. 주위의 축하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결혼했지만, 연이은 사업 실패로 아버지는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엄마는 속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셨고, 생활비와 공납금은 친척에게 도움받는 실정이었다. 그런 불안한 상태에서도 그 애는 늘 웃고 다녔다. 괜찮음으로 자신을 붙들었고,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주변인 나에게도 희망을 놓지 않게 했다.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에서 살피고 찬찬히 들여다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진심이나 인품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걸 느꼈다.
6. 이 기회에 바투보기의 삶을 내 주변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진 일에 열중하면서, 가까운 주변을 살피는데 마음을 쏟고 싶은 것이다. 앞 길이 창창한 청춘들이야 이상은 높이고 꿈을 멀리하는 게 마땅하지만, 살 만큼 산 나이는, 버거운 먼 곳까지 내다 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과거의 노력과 수고가 한데 모여 지금이 된 것이다. 지금을 즐길 충분한 자격이 있다. 현재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건 아마도 걱정 때문이리라. 노후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걱정, 건강문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걱정할 일도 물론 있겠지만, 걱정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걱정이 많단다. 걱정한다고 해결된다면 애초에 걱정이 아니며, 걱정의 대부분은 사실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걱정은 접고 이제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소박한 삶에 집중할 것이다.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작고 세밀한 삶으로.
7. 최근 내게도 가까이 두고 세밀하게 살피고 싶은 일이 생겼다. '풀꽃'의 시인은, 자세히 보고 또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 하지 않았나. 내가 막 시작한 수필 쓰기도 그렇다. 세상 일을 세밀히 살피고 쪼개어 오래 보아주는 일이다. 적절한 단어를 문맥에 맞춰 다듬고 어루만지는 일은, 수필 쓰기의 정석이리라. 수필의 소재를 찾아 나서거나 여행을 다니는 일도 조금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야에 담는 모든 것을 허투루 보지 않고 꼼꼼하게 바투보기해야 한다. 면밀한 관찰과 안목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그런 다음, 심중에 남아있는 사유나 철학적 편린들로 주제에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이다. 수필은 세상을 바투로 보고 쓰는 작고 섬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8. 책을 읽다 만나게 된 한 단어. 이리 오래도록 생각에 여운이 남을 줄 몰랐다. 세상이라는 멀고 거친 몸피를 여린 속살로 어루만지듯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바투보기의 시선이 아닌가 한다.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시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걸음 바투로 다가서 사람을 살피는 눈, 사물이나 자연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이라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을 바투로 보는 일이야 말로, 삶을 가장 또렷하고 정확하게 사는 게 아닐까.
첫댓글 바투보기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순 우리말이 아름답군요.
깊은 뜻이 있네요.
글의 내용이 작년보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계속 발전하길 바랍니다.
스님~제 2의 교수님처럼 댓글로 지도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가까이 보자는 건 물리적 거리도 있지만 두 사람 사이를 제대로 보자는 뜻이 더 강하겠지요.
우리도 바투 보려고 노력 해야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