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이 되었습니다♤
987번째 4월 16일
(2015.12. 27. 화요일)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8반 #김영창학생의 생일입니다.
"우리 영창이요? 순해요.순하디 순해서 쑥맥같은 아이예요.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예요.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악착같은 데도 있어요. 끝까지 해내고 만다니까요."
"영창아, 엄마한테 항상 뽀뽀해주던 아들이 그립고 그립다. 늘 착했고 형편이 어려워도 불만 없이 혼자 헤쳐나가려고 애썼던 듬직한 아들이었는데, 너를 이렇거 떠나보내서 미안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지만 항상 엄마 곁에 영창이가 있다고 믿어.
우린 운명이잖아"
#지금부터_노력하면_나중에_꼭_성공한다"
8반 5번 영창이의 좌우명입니다.
건축학과에 진학하여 건축가를 꿈꿨던 영창이는 이와 같은 좌우명을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던 아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장난감을 사주면 설명서 없이도 잘 조립했고 게임기나 집안의 가전제품을 모두 뜯어 보고 똑같이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잘 안 돼도 궁리궁리해가면서 밤잠을 안자고 밤을 꼬박 새서라도그날밤으로 해내야지 안그러면 못자는 아이였습니다.
영창이는 네살터울 여동생이 있는 맏아들입니다.
동생과는 가끔 티격태격했지만 늘 져주는 다정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영창이 거라고 사 준 것도 동생이 탐내고 갖고 싶어 하면 동생에게 줘버리고 고장나면 고쳐주고, 해 달라는거 다 해 주고, 동생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든든한 오빠였습니다.
영창이는 운동은 축구를 좋아했으며 음식은 뭐든 잘 먹는 아이였지만 햄버거나 갈비를 좋아했답니다.
과일은 사과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세월호 침몰후 영창이는 부모님의 애타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남 진도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아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세월호가 침몰한 지 16일이 지난 5월 2일 아침,
기다리다 못한 엄마와 아빠는 다시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영창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사과를 놔두고 영창이에게 빨리 나와달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아니면 사과를 먹고 싶었을까요,
그날 오후 거짓말처럼 영창이는 227번이라는 번호표로 엄마, 아빠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휴대전화 가방 등 다른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영창이는 주머니에 학생증을 넣고있어서 아들임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창이의 손톱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민간잠수사의 증언에서 알 수 있었듯이 영창이도 마지막까지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벽을 긁고 위로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썻습니다.
엄마, 아빠는
" 마지막까지 무엇을 그렇게 긁었을까" 하시며 울먹이셨습니다.
결국엔 차가운 몸으로 돌아온 영창이...
영창이 아버님은 삭발을 하셨고 온 몸으로 영창이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하셨습니다.
1주기때 광화문에서, 노원경찰서에서 뵌 아버지의 모습과 교실남천화분에 물을주시던 애틋한 부정이 떠오릅니다.
영창이의 자리에는 여동생의 오빠를 향한 글도 있습니다.
2분단 #김응현선생님의 교탁 바로앞에 자리했던 영창이는 지금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친구님들
영창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김영창을 기억하여주십시요.
#1111분향소전광판무료문자
영창이의 생일케잌은 #유은옥님이 보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