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예쁘게 물들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울긋불긋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를 보니 가을 속을 걷고 싶었다. 계절이 주는 풍성함 때문인지 도시에 머물러 있는 모든 것이 예쁜 빛으로 반짝거린다. 날씨가 좋아 반려견 애플과 함께 집 근처 가까운 산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나무가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코발트색 가을 하늘이 날 빨아들였다. 한참 동안 넋을 놓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발밑으로 “툭” 소리를 내며 나뭇잎이 떨어졌다.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소리다.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운 생각이 든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새순을 피워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피며 나뭇가지에 물을 올리고 나뭇잎을 풍성하게 피워내며 살아있음을 알린다. 햇빛과 바람 물로 자신을 지탱하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광합성을 하며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간다. 참 고마운 나무다. 뜨거운 여름 햇빛에 지쳐갈 무렵 가지를 뻗어 그늘을 만들어 안식처를 준다. 하늘 향해 팔 벌려 손짓하며 구름과 인사한다. 듬직한 나무를 보며 문득 쉘 실버스타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이 떠올랐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나무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나무는 소년에게 주는 것이, 행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어린 소년이 그네를 매달아 놀 수 있도록 가지를 내어주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사과를 주고, 집과 배가 필요하다고 하자 가지와 줄기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준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다.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무에 남은 것은 밑동밖에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이 찾아왔다. “얘야. 미안하다. 이제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사과도 없고.” 나무는 한숨을 지었다. “무언가 너에게 주고 싶은데······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나는 그저 늙어 버린 나무 밑동일 뿐이야. 미안해······!”
한편의 동화를 통해 부모와 자식 관계를 보는 듯하다. 1950년 전쟁 세대 부모는 어렵고 힘든 시대를 만나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마음껏 써보지 못했다. 몸과 마음을, 가족을 위해 내놓았다. 부모는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처럼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내 것을 다 내어주어 손에 쥔 것이 없어 자식에게 기대고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쥐었던 손을 펴 빈손이 되어도 본인은 항상 괜찮다고 말한다. 주고도 더 이상 줄 것이 없는데도 더 못 줘서 죄인 같은 마음으로 미안하다고 한다. 왜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존재일까. 아마 그건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한 생명을 길러내는 인간의 숭고함이다.
요즘은 환경이 좋아지고 과학의 발달로 인해 백세시대를 살아간다. 이제 부모는 자식에게 다 내어주는 삶보다는 노년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녀로 인해 부모에 대한 봉양과 미안해하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이제 나의 돌봄이 필요하다. 저출산 고령화에 접어든 대한민국이다. 유소년 청년층보다 노년층이 많아진 시대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답은 스스로 돌봄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 세월을 비켜 갈 수 없기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어릴 적『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을 때 난 소녀였다. 어른이 되어 읽으니 어느덧 나는 나무가 되어있었다. 어린 난 든든한 나무가 필요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일찍 하늘에 별이 되셨다.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며 아이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바람막이도 되어주는 나무로. 나무처럼 잘 버티고 서 있어서 그런지 아들은 고맙게 별일 없이 잘 커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기 몫을 잘 해내고 있다.
이제 내 곁에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가 동행하고 있다.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애틋한 마음과 사랑하는 맘이 생긴다. 하나의 생명을 만나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해준 귀한 아이다. 인연의 끈으로 묶었으니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게 살아보려 한다. 애플과 발을 맞춰 낙엽을 밟으며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린다. 과감하게 나뭇잎을 아래로 떨구어 낸다. 나무에서 제행무상을 배운다. 무성했던 잎을 떨구어 내는 나무를 보며 난 무엇을 쥐고 무엇을 버리고 있는지 되돌아보았다. 버려야 추운 겨울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나무는 안다. 욕심을 내지 않아야 다시 봄에 채울 수 있음을 나무는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껍질을 벗고 거듭나는 것은 자연 앞에 순응하는 나무의 자세다. 나무 앞에 서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는 미덕을 배운다. 나무는 자연이 주는 만큼만 취하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올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잠시 눈을 감고 회상해 본다. ‘인생무상’이라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았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없는지. 나와 타인을 사랑하며 살았는지. 배려하는 삶을 살았는지. 쓸데없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았는지. 행복했는지. 무엇을 향해 열심히 달렸는지. 버리고 버려도 채우려는 욕심으로 살지 않았는지. 나무를 보며 되돌아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