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김내성 소설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거의 김내성 작품 몰아읽기입니다.
김내성 소설을 읽다 보면
참 재미있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냥 많은 게 아닙니다.
서로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누가 누구의 남편인지.
또 누가 누구와 친구인지.
읽다 보면
잠깐 책을 덮고 생각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했느냐.
A4 용지를 한 장 꺼냈습니다.
그리고 사람 이름을 하나씩 적었습니다.
선을 쭉쭉 그었습니다.
이 사람과 이 사람은 이런 관계.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이렇게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꽤 도움이 됩니다.
저는 원래 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이 많으면 관계도를 그리는 편입니다.
특히 김내성 소설은
그게 없으면 조금 힘듭니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김내성의 애인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조금 특이하게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작품을
두 번 만난 셈입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까
처음 들었을 때와 느낌이 또 다릅니다.
애인은 1954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김내성은 원래 탐정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마인 같은 작품을 쓴 작가죠.
그런데 해방 이후에는
청춘극장이나 인생화보, 애인 같은
연애소설도 많이 썼습니다.
저는 김내성 작품을 계속 읽으면서
이 작가가 참 지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외국어도 많이 나옵니다.
당시 소설인데도
상당히 지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애인을 읽으면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게 있습니다.
1954년에 나온 소설인데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자유롭습니다.
요즘 소설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물론 시대적인 한계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상당히 솔직하게 들여다봅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임지운과 오영심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소식도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집니다.
소설은
임지운의 삶을 따라가다가
다시 오영심의 삶을 따라갑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고.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독자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잠깐만.
이 두 사람이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로
두 사람의 삶이 다시 겹칩니다.
그리고 서로가 아주 멀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설정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잖아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은
엉뚱한 곳에서 다시 만나기도 합니다.
이미 지나쳤는데도
그때는 몰랐던 겁니다.
가까이 있었는데도
서로 알아보지 못했던 겁니다.
임지운과 오영심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잊은 듯 살아갑니다.
각자의 현실도 생깁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납니다.
문제는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현실이 있습니다.
이미 살아온 시간이 있고.
책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
쉽게 모든 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이 애인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현실.
마음과 도덕.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과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삶.
이것들이 계속 부딪힙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선택하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멀어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애인은 바로 그 지점을 계속 건드립니다.
김내성은
사람의 마음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같이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A4 용지까지 꺼낸 겁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은 누구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고.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 편이고.
이렇게 적어가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결국 계속 읽게 된다는 겁니다.
김내성 소설이 그런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은 많습니다.
관계도 복잡합니다.
외국어도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애인도 그랬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만
그 사랑이 현실에서
깔끔하게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감정은
더 큰 갈등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삼각산으로 향합니다.
눈이 많이 내린 산길입니다.
주변에서는 위험하다고 말립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그 눈길을 계속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남긴 채 끝납니다.
저는 이런 결말을 좋아합니다.
모든 것을 작가가 설명해 버리는 것보다
마지막에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놓는 것 말입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함께했을까.
아니면 끝내 헤어졌을까.
그건 독자의 몫입니다.
저는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가 예전에 적어놓은 메모도 생각났습니다.
시간이 날 때
자세하게 줄거리를 적어야겠다고 써놓고는
정작 자세한 줄거리는
안 적어놨더라고요.
참 이상하죠.
그때는 나중에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나중이 이렇게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읽으면서 제대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특히 김내성 소설은
그냥 줄거리만 적어놓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 관계를 같이 적어놔야 합니다.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누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걸 알아야
이 소설이 제대로 보입니다.
저는 그래서
A4 용지를 한 장 펴놓고 읽었습니다.
사람 이름을 쓰고.
선을 긋고.
또 지우고.
다시 연결하고.
그렇게 읽었습니다.
조금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그게 가장 재미있는 독서법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게
그냥 글자를 따라가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머릿속으로 인물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관계를 따라가고.
작가가 왜 이런 사람을 등장시켰는지 생각해 보고.
나는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오래된 소설도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다가옵니다.
1954년에 나온 소설인데도
사람이 사랑하고.
갈등하고.
망설이고.
결국 선택하는 모습은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내성의 애인을 읽으면서
오래된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사람의 마음은
참 오래 변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김내성이라는 작가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관계를 엮어놨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원래 단순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 하나만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현실 하나만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요.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현실은 현실대로 흘러갑니다.
그 사이에서 사람이
계속 선택을 하는 겁니다.
애인은 바로 그 이야기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소설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A4 용지에 빼곡하게 그려놓은
그 관계도를 한참 바라봤습니다.
참 복잡합니다.
그런데 또 재미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요즘 김내성 소설을
계속 읽고 있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