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밥그릇 (산문)
가을 어느 날
눈이 내려 온 듯 솜이 하얗게 핀 목화 밭에서
목화를 따던 엄마가 밭두렁 가에 양지바른 대나무 곁에서
놀고있는 나에게로 왔다
엄마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촘촘한 대나무 숲 사이로
얼굴을 대고 한참을 들여다 보고 나서는 "얘, 저기좀 봐봐"
"거기에 뭐가 있어요? 나는 엄마처럼 굵은 대나무 사이로
눈을 갖다 대었다
너무 어두웠다 대나무 밭은 뿌리쪽이 아주 낭 떠러지처럼
깊고 광처럼 컴컴 하였다
조금 지나니까 어둠이 눈에 익고 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하얀 꽃 같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깨진 사기 밥그릇 이었다
사기 조각들 위에서 태양이 대나무 사이로 내리 꽂는 날카로운
실금들을 긋고 사기꽃들은 실금 속에서 비밀을 품은듯 은밀 하게 빛났다.
"엄마, 왜 밥그릇이 저기에 있어요?"
"얘,밥그릇이 저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거란다"
엄마는 어린 나로서는 모를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 부터 비밀을 품고 있는 대나무 숲은
동굴 같은 어둠을 점령하고 겨울이면 댓잎들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면서
귀신들이 전쟁놀이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나의 엄마와 엄마의 시어머니와 그 너머의 시할머니 대까지의 관련 된
비밀을 간직한 곳이란 걸 먼 후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