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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어린이 문학을 보는 시각
저-김이구 평론집
출-창비
독정-2017.12. 12.
ㆍ비평대상(글이나 행위)에서 그런저런 허울을 벗겨내고 핵심을 뚫어보려는 것이 참다운 비평정신일진대, 그 비평 대상을 둘러싼 이런저런 정황들과 그에 덧붙는 인간관계 등에 좌우되지 않고 알자 그대로만을 놓고 따지는 것이 비평이 본분일 터다. 글쓴이의 주관적 감상을 담은 에세이에서는 글에 등장하는 사람고 자신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호칭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 호칭을 어떻게 선택4하느냐로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친소를 의식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던 논점을 다루고자 하는 글에서는 대상을 철저히 객관화해야 한다. 초칭를 붙이더라도 최대한 중립 호칭을 공평하게 붙이는 것이 비평 글쓰기의 기초다. 필자를 기준삼은 경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 원칙이다. 호칭 방식이 각기 달라 내용에 간섭이 일어나는 현상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ㆍ글은 발표되고 나면 자기 것이 아니다.
ㆍ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생활과 감정과 굼을 그들의 편이 되어 그릭 섯이다고 했을 대 동심주의 경향을 비판하고 현실에 뿌리박은 건강한 아동문학을 제창하는 맥락에서 주로 쓰였다면 이제는 시대성을 넘어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삶을 나날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찬된 인간교육을 추구해야 할 때다.
원종찬이 이오덕의 비평 전반을 체계화해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방향에 서 있다면 이주영은 큰 줄기를 위주로 파악해 올바는 문학정신이라는 윤리적 개념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21세기도 ‘시정신과 유희 정신’이라는 이오덕 선생의 비평 기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ㆍ참된 시 정신을 이원수의 동시에서 발견하면서 시심의 핵이 되는 것은 약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이요, 악을 미워하고 진실 옹호하는 마임이요.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서정의 정신(시정신과 유희 정신)이라고 들어올리고 있다. 이성인은 90년대에 십대 중고등학생들은 달라졌으나 낮은 학년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하였다. 그런데 달라졌다는 말은 가에서 나로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가+나에서 나+다로 되었다는 말이다. 70년대 일하는 아이들은 가이고 90년대 사육되는 아이는 다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환경과 현상 자체가 삶을 구성한다고 본다. 달라진 아이들이란 달라진 사회를 본다는 의미다. 지식대중사회의 도래, 급짅전된 세계화, 환경문제의 전지구적 확산 등 변화의 내용은 뚜렷하다. 그런 변화 속에서 삶의 양깃이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어른인 작가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기 담기는 사회 전망도 새롭게 추구된다. 창작이 아이들을 모사하는 작업도 아니요. 아이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반드시 뛰어난 작품을 쓸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그러나 늘 아이들과 만나고 아이들 문제로 씨름하는 이들의 경험과 생각이 아동문학에 침투할 수 있는 계기들이 많아진다면 창작 현장은 좀더 긴밀하게 아이들 마음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글쓰기 교육을 총해 나온 아이들의 글과 같은 살아있는 자료를 토대로 오늘의 아이들의 삶과 꿈이 무엇인지 함께 파악해보아야 한다.
ㆍ아동문학의 상업주의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소비자와 구매자가 동일한 일반 상품의 상업주의와는 양상이 다르라. 아동문학(책)의 판매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각종 선정도서요. 부모와 교사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뇌스틀링거는 “아동문학의 평가는 ‘좋은 책’이라는 것에 매달려 있다. 오늘날에는 ‘좋은 책’이라는 것에 대해 옛날과는 다른 것을 기대하지만 ‘문학’이기를 거의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1985년 무렵 독일 상황을 꼬집은 말인데 우리 상황에서도 그렀다. 그동안 시민독서운동은 자기 관점을 갖고 아동문학의 건강한 흐름을 가꿔왔으며, 출판과 구매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정작 아동문학 내부에서는 문학 현장을 움직일 함한 ’좋은 책‘ 평가도 ’문학의 눈‘도 거의 내놓지 못했으니 문학의 매력을 제대로 찾아주지 못한 것이 문제다. 비 평 행위는 구체 실물들을 놓고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와 출판사, 그밖에 상업과 연관된 여러 관계에 얽혀들 수밖에 없고 늘 객관성과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요인들을 안게 된다. 현실주의 비평 맥락에서 눈길이 뻗치지 못했던 판차지 장르와 역사소설, 생태주의 계열의 동식물 서사, 여러 장르의 혼합을 보여주는 양상들, 새롭게 대두한 그림책 장르 들에도 아동문학의 영역에서 응당한 조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ㆍ세계 초베스트셀러의 명성을 업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가 영화고 되면서 팬터지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읽혀온 팬터지 소설의 고전 <<반지의 제왕>>도 영화를 좀더 편안한 대중 매체를 통해 폭발적 관심을 모은다. 이런 열풍은 팬터지에 대한 탐닉을 제한된 매니아의 영역에서 보동사람들의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눈에 띄게 되었다. 군사독재가 무너진 후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아동문학의 주류에 대한 인식이 현실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 계열의 동화들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됨에 따라 창작동화가 새롭게 개척할 영역으로 오히려 팬터지 기법이나 양식이 주목 받는다. 이런 관심은 이전에 도‘동화 상상력’이나 팬터지 도입으로 상찬되던 제도권의 창작 경향들이 실은 정직한 현실 대면을 회피하고 불의와 부패와 타협하는 알리바이로 몇몇 동화적 특질들을 이용해왔던 것과는 단절된 자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팬터지를 추구 하는 관심 자체를 잘못된 창작방향으로 보거나 현실 도피로 간주하는 태도는 넘어서 팬터지가 뻗어나갈 길을 좀더 두렷하게 열어놓은 것이 창작 발전에 도움 될 것이다.
판타지는 서사장르의 하위 장르의 하나로 팬처지 소설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오즈의 마법사>>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 <<고양이 학교>> 같은 작품들이 현실세계와는 다른, 작가가 창조한 제 2의 세계가 주된 현실이 되고, 활동 주체들은 이 제 2의 현실 속에서 자기를 신현하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이 2차세계는 1차세계가 그렇듯 나름의 작동 원리, 즉 내적 리얼리티를 가져야 한다. 사실주의 소설이 인간사회를 단순히 모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를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듯이 팬터지 장르는 1차 셰계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2차 세계으 작동원리를 풍부하고 설득력있게 창안하여야 한다. <,오즈의 마법사>. <<한반중 톰의 정원에서>><<이상한 나르이 엘리스>>등 대부분 작품은 서두에 1차세계에서 2차 세계로 건너가는 관문을 두고 2차세계의 초자연과 초현실을 작중 주체들이 현실로 받아들여 행동하게 한다. ><<오즈의 마법사>>나 <<고양이 학교>>처럼 1차세계가 차지하는 서술으리 분량과 내용 비중이 작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헤리ㅣ 포터>>시르즈나 <<밥데기 죽데기>>처럼 1차세계와 12차세계가 중첩된 현실로 나타나는 작품도 있다. <<반지의 제왕>>처럼 아예 1차 세계의 삶이 2차 세계를 도입하는 계기로 등장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판타지 열풍은 혁명이 거세된 시대, 유토피아에의 지향이 희미해진 시대에 길을 찾는 모색의 일환이며 판타지 세계는 그런 시대에 구성해보는 황홀한 가상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제도로서의 아동’을 구현하는 ‘제도로서의 아동문학’이 좀더 분명해지는 공간이 판차지의 공간이다.이런 자리에서 과연 파타지가 어느 정도 해방 기능을 행사할 수 잇을지는 깊이 고뇌해볼 과제다 .
ㆍ팥타지 공간- 객관 현실의 논리와 다른 논리가 성립하는 세계를 판타지의 공간으로 본다.
다음으로 서사적 자질, 표현 기법으로서의 팬터지이다. 사실주의에 충실한 작품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초자연, 비현실, 초현실적 계기를 포함한다. <<학교에 간 할머니>>에서 손녀 대신 학교에 가 공부하는 할머니를 선생님이 놀라 돌려 보내지 않는 것은 비현실 설정이나. 이를 전제로 이야기기가 전개된다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엄지소년 닐스(린드그렌)>>에서는 아이의 심리적 환상, 또는 공상이 전경화하하여 스토리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야기를 짓고 들으며 즐기는 행위는 현실 억압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충동을 본질로 갖고 있다. 모방이 문학 창조의 원천이듯 다른 현실을 꿈꾸는 것 또한 서사의 원천이다.
ㆍ어제를 돌아보는 일은 오늘을 충실히 살기 위함이고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ㆍ 아동문학은 특성상 성인문학과는 달리 작가-비평가- 독자의 3각구도에서 독자가 연령상 어리다는 점 때문에 독자층이 자연스럽게 담당하는 비평과 감시의 역할이 한결 약하다고 하겠다. 그런만큼 전문비평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크지만 아동문학비평으 기능은 미미하다. 이오덕 선생의 <<시정신과 유희정신>>이 유일하다.
ㆍ밥데기 죽데기는 전통 유형의 판타지다. 판타지 논리 <<샘마을 몽당깨비>>도 전래 도깨비 석ㄹ화에서 발상. 현대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판타지의 요소가 황당무계하지 않고 주제와 잘 조화된 작품이다. 이런 전통 유형 판타지들은 거의 근대아동문학의 초창기부터 우리 작품속에 지속되었다. 김옥의 ㅡ<<모래마을 아이들>>은 현실의 억누름과 괴로움을 감내하며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이들 소망을 자연스럽게 상상 세계로 이동하여 표현핸 낸점이 뛰어난다. 무엇을 위한 판타지인가하는 기본적인 작가 정신을 가져야 더욱 튼튼한 현실탐구가 이루어진다.
ㆍ아동문학은 아동에 대한 고려가 으뜸이다. 아이들 눈높이로 아이들의 생생한 현실에 적중할 때 문학이 된다.
ㆍ카라따니 코오진은 아동문학 확립을 근대문학제도와 함께 이루어져 아이와 어른 구분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라 한다. 서구에서도 일본에서도 어느 시기가지 아이는 아이로 취급되지 않고 단지 작은 어른으로 교육되었다. 아이로서의 아이는 어떤 시기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아이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놀이나 문학은 없었다.
ㆍ이오덕은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동심천사주의를 부정하고 일하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부모를 따라 일을 해야 하고 살아가는 걱정을 그들대로 하는 것이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아이들의 참모습이다. 우리가 쓰는 작품을 익을 이 땅의 아이들은 회비와 책값을 걱정하면서 의무교육을 마치지만 그 반수가 겨우 중학교에 간다. 모든 아이들은 허영과 겉구밈과 억울하면 출세하라식의 질서 속에 이기를 익힌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권총놀이와 유행가와 욕설과 독소가 든 과자의 해골바자가지 만화와 벌거벗은 어른의 나체 영화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골목대장엑 동전을 바치는 삶의 수단을 일겨, 살아가면 위로는 굽히고 아래 것은 짓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철학을 체듣하는 것이 이 땅 아이들이다. 식민 시대 짝짝꿍 동요에서 60년대는 자연 관조 및 농혼 풍경 완상의 동시, 70년대에는 감각 언어기교의 동시와 난해동시‘로 이어졌다. 이 동심주의의 국권상실기에 동심이라는 특별한 세계를 만들어 무작정 귀엽고ㅓ 아름다운 것만 찾ㅂ는 초창기 애상 동요를 대체했는바, 일본 아동문예지 <<아까아토리>>의 기조를 이룬 동심주의의 모방에서 비롯되었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을 읽고 이오덕은 이 일기문이 그 불행한 체험의 정직한 기록으로 하여 가슴을 압도해온 것이 동심의 승리다고 했다. 동생이 잡아온 매 새기가 못 살고 죽을까봐 동생에게 죽어버리문 죄 받눈다며 어미새가 데리고 가게 잡아온 곳에 갖다 놓아주자고 하는 이런 윤복이의 그 순수한 인간정신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 아동에게 이런 타고난 인간정신이나 동심은 대개 소멸되어버린다. 교육과 문학은 그릇된 환경에 소멸되어 인간 내부 순수정신, 곧 동심을 일개워서 살아나게 하고 이것을 키워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럴 땐> 임길택
김을 맬 때도
고추를 딸 때도
어머니는 밭이 작다 하고
나는 엄청 크다하고
순이랑 수영하러 가고 싶은ㄷ[
다음 장에 옷 사준다며
일 더 하자 하고
난 아무렇게나 하는데도
호미질 잘한다며
시집 보내도 되겠다하고
빨리 놀고 싶은데
착하다 하고
일을 할 때마다
어머니 말에 꽁꽁 묶여
나는 그만 꼼짝을 못한다.
임길택은 아이들이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존중해준다. “나는 내가 쓴 이야기들로 아이들을에게 무엇으 가르쳐 보겠다는 욕심은 없다. 시골에서 살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 농촌 어른과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아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곳곳의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넓은 생각을 갖기를 바랬다. 내가 쓴 이야기도 하나의 역사라 여긴다. 역사책에 나오는 큰 사건들도 중요하지만 그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가꾸어 나가는 정서 또한 중요한 역사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여긴다.
ㆍ채인선은 아이들이 경험하는 달라짐(성장)은 안정된 삶의 태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대응력의 강화를 의미한다. 아이가 된 아이, 자본주의 근대사회의 세계로 틀지어진 삶의 양식과도 잘 어울릴 줄 안다.
ㆍ다음 동시, 동요가 노래하는 세계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비추어준다. 동화, 소설처럼 풍부한 묘사와 구체 세목은 없지만 지난 연대 우리 겨레의 살림살이와 거기 깃들인 정서가 오롯이 나타난다.
<버선본> 윤동주
어머니
누나 쓰다 버린 습자지는
두었다간 뭣에 쓰나요?
그런 줄 몰랐더니
습자지에다 내 버선 놓고
가위로 오려
버선본 만드는 걸(1936년)
<가을 밤> 이정구
강 건너 공장에는
우리 언니 밤
쇠소리 기계 소리
잠 소 자는 밤(1929년)
<해바라기 씨> 정지용
해바라기 씨를 심자
담모롱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 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팽이가 꼬리로 다진다.(1927)
<잘 가거라> 이원수
아빠 따라 북간도
가는 동무야
이제 오면 언제 오나
눈물이 나서
아른아른 고갯길도
안 보이누나(1930)
<독립>윤석중
길가에
방공호가 하나 남아 있었다
집 없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거적을 쓰고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아이 하나가
제비 새끼처럼 내다보며
찌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독립은 언제 되나요?”(1946년)
<언니의 언니> 윤석중
난 밤낮 울 언이 입고 난
헌톨뱅이 찌께기 옷만 입는답니다
아, 이 죄끼두 그러쵸
아, 이 바지두 그러쵸.
그리구 이 책두 언니 다 배구 난 책이죠.
이 모자두 언니가, 작아 못 쓰게 된 모자요.
어떻게 언니의 언니가 될 순 없나요? (1933년)
<이삿길> 이원수
며칠만 더 기다려 달라
사정을 해도
집 주인 고집통이
듣지를 않아
우리도 언제나 언제나..... 하며
주먹을 쥐어 보고 또 쥐어 보며
부랴부랴 싣고 가는
우리 이삿짐
다글다글 구루마
비퀴 돌아가듯이
어려운 세상 어서어서 지나가거라. 지나가거라(1932년)
어린이를 향해 조율된 목소리
성숙한 목소리(이원수 작품들)-근대 아동문학사에서 성숙한 목소리로 민족현실 을 담아내고자 노력해온 작가는 드물다
② ①<이삿길-이원수>
설정된 화자 목소리 구체 인물 목소리
③ ④ <언니의 언니-윤석중>
어린 목소리 (윤석중 작품들)
아이들이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용 주체의 시심리 부담감이 적다는 것이다. 옛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즐겨온 것. 이미 완결된 형식이라 처음 접해도 자기 삶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살아 남아 보존, 재생된다는 것은 보편 내용을 다루고 있고, 이야기 구조가 견고하다는 뜻이다.
옛 이야기 전달 방식
첫째는 단순한 재서술 방식이다. 원형을 잘 보존, 당대 언어감각으로 수용자 눈높이에서 다시 서술하는 경우다.
둘째는 예 이야기를 원화로 하여 원화의 어떤 특징은 그대로 보존, 재창조하는 방식 <흥부 놀부>의 놀부를 진보 경제관념이 있는 긍정 성격으로 설정하여 새롭게 서술하는 것과 채해석으 방식, 나무꾼과 선녀에서 선녀가 아아 한 명 낳았을 때 날개옷을 돌려주나 하늘로 가지 안흔 식의 줄거리. 즉 인물 성격, 줄거리, 주제 등을 변경하여 서술하는 경우
셋째는 옛 이야기의 화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방식. 두 번째 방식이 패러디 영역이라면 이 방식은 작가의 완전한 독창 창작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린드그렌의 ‘사장왕 형제 모험’ 등
서구 판타지는 터놓고 수용하지만 동양 판타지는 재활용하지 못한다. 재창조는 오늘의 삶의 혼돈과 그 본모습을 꿰뚫어보려는 작가의 깨어있는 정신이 옛이야기와 만날 대 더 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맥제 될 것이다.
<바나나가 뮈예유?> 김기정은 허풍과 능청, 풍자가 황금비로 어우러진 새로운 화법이다. 기절할 만믐 맛있는 바나나를 실은 트럭이 뒤집히면서 마을사람들은 바나나를 맛본다. 먹는 방법을 몰라 간장독에 넣고 김칫독에 넣고 가마숱에 삶고 잿속이 묻고 바나나가 익기를 기다린다. 경찰은 사라진 바나나를 찾아 마을로 들어오고 ‘맛없는 바나나를 아궁이에 넣고 태워버리자 연기에 취한 뻐꾸기가 ’뻐내너 뻐내너!“하고 울었다는 황당한 소도으 우리 사회가 거친 근대화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압축한 작품으로 민중의 이야기 전통의 한 맥을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있다.
ㆍ소년 소설 장르는 현실과 부딪쳐 싸우면서 적응해가는 소년들의 진취적 의지와 모험을 적극 옹호할 대 선택된다.
ㆍ나는 아이들이 아끼는 장난감에 마음이 되어 깃드는 알갱이 요정이빈다. 천사들이 날갯짓을 할 때 그 광채 부스러기에서 때대E대로 생겨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지만 중요한 임무을 띤다. 아이들이 사랑하는 곰둘이나 장난감 자동차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것들이 마음도 가지지 않은 , 단지 헝겊, 플라스틱일 뿐이라면 얼마나 쓸쓸한 일일가까요? 그런 쓸쓸한 일이 생기기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알갱이 요정들의 임무죠. 마치 위험팻말이라도 붙은 것처럼. 요정을 마음대로 써먹는 편리한 리포터로 부릴 것이 아니라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생명을 주는 것이다.
ㆍ기교밖에는 말할 수 없는 시대, 기교의 연찬으로도 길을 찾을 수 있건만, 기교로든 정신으로든 물고기가 물을 나와 비상하는 길을 트는 자.
<노래를 잃어버린 까치>는 까치 처녀 까순이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강점기 정신대 조선 처녀 운명을 그렸다. 그러나 새들 나라다운 상황과 사건이 없다. 군인들이 배를 타고와 식량을 약할하고 어린 암까치들을 잡아 배애 태워간다. 까마귀들의 왜 날아다니지 않고 배를 타고 다닐까? 심지어 트럭까지 등장, 무리하게 읜인동화를 시도했다.
<메리트 공주님>
메리트 마음이 어더한지 직접 설명되는 일은 젖ㄴ혀 없고 메리트의 행동과 주변 아이들의 반응을 통해 드러날 뿐 메리트의 희생이 너무 순수해서 절절하게 독자 가슴에 와 닿는다. 아이들은 너무 슬펏지만 곧 잊어버리고 새 둥지를 찾아 가버린다. 하지만 메리트 공주를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그려놓고 있다. 린드그렌 동화의 아이들은 정말 아이답게 행동한다. 아이로서 느끼고 행동한다. <난 뭐든지 할 수있어>의 로타는 쓰레기 봉지 대신 빵봉지도 버리고 온 도시에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용 전나무를 얻는 행운도 얻는다. <,봐. 마디타, 눈이 와!>>에서는 썰매를 몰래 탔다가 집에서 멀리 벗어나버린 리사베트가 눈속을 헤매는 위험에 처했다가 간신히 집에 돌아오는 이야기 <<누가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까>>에서 다리가 부러져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눕는 이야기 <<벚나누 아래에서>>는 엄마를 집시들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안내의 몽상이 잘 담겨 있고 <<팔레의 가출>>은 부모에게 섭섭한 꼬마 펠레의 귀여웅 반항심리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아이들다운 아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봐, 마디타, 눈이 와!>>의 결말은 부모가 사라져버린 아이를 찾으러 간 사이 아이가 돌앙ㅇ오고 절망한 부모는 한 침대에 붙어자는 아이를 발견한다. “달랑 한 아이가 있는 것과 두 아이가 있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찾아 헤맨 아이가 집에 와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가.
ㆍ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하고 싶은 얘기를 써야겠다.
ㆍ<<도망자 고대국>>은 오락실에 간 고대국을 데려오러 간 아이들이 고대국과 오락 시합을 하는 것도 아이들답다. 오락실에 선생님이 나타나는 장명 등 뒷부분에 생략이 심하다
ㆍ<<물 따르는 아이>> 끝까지 읽고 나면 어려운 현실은 희미해지고 하나가 참 좋은 일을 하는 아이라는 것만 강조되어 있다. 결국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