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도시, 이태리 코모에 도착했습니다. 큰딸과 함께 떠난 이태리 여행, 이틀 후엔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코모역에서 바라본 호수가 아름답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너무 좋다며 호들갑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맘이 생기지 않습니다. 밀라노에서부터 기관지염이 도져서 한기가 느껴지고 몸살 증상까지 겹친 겁니다. 면역이 약한 사람이 젊은 딸을 따라다니며 자유 여행을 하려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내 상태가 힘들면 다 소용없다는 결론에 봉착하자 심란했습니다. 예전 아팠을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두려웠습니다. 기침이 멎지 않으니 딸도 밤을 지새우며, ‘어떡하냐.’라고 하면서 제 등을 쓰다듬습니다. 엄마와 추억을 쌓겠다고 떠나온 여행인데 너무 미안했습니다. 저는 묵주를 들고 힘없이 성모님만 불렀습니다.
이튿날 딸이 호수 맞은편 산꼭대기에 있는 브루나테 동네를 올라가겠다며, 푸니쿨라를 타러 나갔습니다.
저는 걱정이 태산일 것 같은 딸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 시각, 딸은 산 정상에서 한적하고 고요한 호수를 내려다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을 겁니다.
딸은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작고 예쁜 집이 나와서 셀카를 찍었답니다. 집안이 궁금해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세상에나, 커다란 알로 엮은 묵주가 제대 뒤 벽에 걸려있던 겁니다. 의자 몇 개 놓인 작은 경당이었는데,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은 성화가 모셔진 곳이었습니다. 그 액자 속 주인공은 바로 폼페이 성모님이었습니다. 딸이 뭔가 익숙해서 계속 쳐다보니, 54일 묵주기도책 푸른색 표지 가운데에 그려진 성모자 성화와 같더랍니다. 폼페이에 발현하시어 54일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안내한 성모님이신 겁니다.
딸은 오묘한 이끌림에 감동하면서 엄마를 위해 환희의 신비 5단을 바쳤다고 합니다. ‘왜 하필 지금 엄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모레 아침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의탁일까? 경고일까?’ 그렇게 막 머리를 굴리는 순간, ‘엄마의 병세도 그렇고, 또 내일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 성모님께서 묵주기도라는 무기를 내게 주시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스치더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저는 코모 성모병원 응급실에 가서 꼬박 7시간을 기다리며 엑스레이와 피검사 등 진료를 받았습니다.
딸은 땡볕 아래서 기다리며 성모님이 쥐여주신 무기(묵주기도)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이후에도 귀국이 늦어지고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하는 등 놀랄 일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작은 경당의 폼페이 성모님
성화를 떠올리며, ‘왜 하는 것마다 틀어질까. 지금은 다 내려놓고 기도 먼저 하라고 그러시나.’라고 받아들였던 겁니다. 이로써 17일간의 모녀 여행은, 마지막 순례지인 코모에서 새로운 이름의 ‘폼페이 성모님’을 만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5월 성모 성월도 어느새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