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
곽 흥 렬
해가 설핏해지는 가을날의 오후다. 언제나처럼, 서부 시외버스정류장은 왁시글왁시글 쉴 새 없이 들고나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 수선스런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큼지막한 보퉁이를 머리에 인 한 중년의 여인이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클로즈업되어 눈앞에 다가선다. 어림잡아 마흔 댓 가량은 되었으려나. 구릿빛 얼굴에다 마디 굵은 투박한 손, 촌티가 뚝뚝 듣는 허술한 차림새, 마치 이방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인은 방금 도착한 시외버스에서 내려 반대편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아마도 시내버스로 갈아타려는 모양이다. 저 보퉁이 안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제 앞가림도 버거울 어린 나이에 청운의 꿈을 품고서 대처大處로 유학 와 고생하는 자식을 위해 갖추갖추 꾸린 모정의 보따리는 아닐는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차곡차곡 챙겼을 그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요사인 여간해서 보기 드문 낯선 광경에 빨려들 듯 호기심이 인다. 불현듯 삼십여 년 전의 정경이 이마를 스쳐가면서 이내 눈앞이 흐려온다. 이 여인은 영락없는 그 시절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마을에서 오 리도 넘어 되는 찻길까지, 당신의 몸집보다 큰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걸어 나와 기약 없는 완행버스를 기다리셨을 어머니. 당시만 해도 탈것은 또 얼마나 귀했던가.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에돌고 돌아 후미진 내 자취방까지 오느라 고개가 휘어지는 강행군을 어머니는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때 당신의 이마에는 언제나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사는 기쁨이고 보람이라고 하셨다.
아마도 가슴을 헤집으며 파고드는 진한 외로움 탓이었으리라.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을 새겨듣지 못하고 노상 허튼짓들만 해댔다. 본업인 학업은 도무지 뒷전이었다. 영어 공부 하라며 사준 카세트로 공부는 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유행가나 틀어 대었는가 하면, 바둑이며 카드 따위의 놀이와 쓸데없는 공상 같은 일로 날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흘려버린 허구한 나날들, 그걸 그때 어머니가 알았더라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회한의 마음만 더해 간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내로 한세상 늘 힘에 부치어 하다 아직은 초가을인 나이에 져 버린 모정, 어머니도 한 사람의 여자였으니 왜 핸드백 같은 신식 물건이 갖고 싶지 않으셨을까. 당신은 본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셨지만, 그것이 마음에 없는 말이었음을 나는 안다. 대신 불초한 이 아들자식이 그때 어머니에게는 충분히 거기에 값하고도 남을 위안이며 보상이었으리라.
어머니의 머리에는 시시로 큼직한 보퉁이가 얹혀 있을 때가 많았다. 그것은 행복이란 이름의 훗날을 위해 당신 스스로 기꺼이 감내하려 하셨던 삶의 무게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고생 끝에 영화를 보고 싶었을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의 어머니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에야 헤아려 본다. 세월의 강물은 한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는 되돌릴 수가 없는 것, ‘부모불효사후회父母不孝死後悔’란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의 가르침 한 구절에 사무치게 공감하는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철없던 시절, 늙은 소나무 껍질 같은 어머니의 손이 그때는 어찌 그리도 못나 보였을까. 갓 시집왔을 즈음에는 비단결처럼 고왔다던 손이, 서른 초반에 얻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그렇게 볼품없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지금은 특효약이 나와 있어 예전 같진 않지만, 당시만 해도 달리 뾰족한 처방이 없었다. 답답하면 샘 판다고, 류머티즘 관절염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찾아 찾아서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다. 뼈마디에 좋다며 영물이라 불리는 고양이를 고아 먹기도 여러 번이고, 다진 대파를 비닐봉지에 싸서 밤새껏 손목에다 붙인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는 오줌을 받아 모아 거기에 며칠씩이나 담가 있기까지 했으니……. 하지만 그 온갖 신물 나는 처방에도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악화만 될 뿐이었다. 손마디가 옹이같이 툭툭 불거지고 손목은 등나무처럼 비비 꼬여 갔다.
나는 어쩌다 어머니가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런 손을 내놓으시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민망스러웠었다. 제발 행주치마 속에다 꼭꼭 감추어 두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매니큐어 바른, 도시 여인의 매끈하게 다듬어진 손보다 거칠고 투박했던 당신의 손이 오늘따라 더없이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대체 어인 일일까. 오로지 자식 사랑이란 일념으로 빚어낸 희생과 헌신의 손이었기 때문일까. 이런 상념에 젖은 채 고개 들어 먼 산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소리 없이 눈자위에 이슬이 맺힌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잠언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책을 나는 좋아한다. 특히나 표제작인 킴벌리 커버거의 시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하는 구절에선 꺼억꺼억 목이 메어 온다. 그때는 진정 몰랐었다,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그렇다. 무슨 일이든 지내놓고 보면 회한이 남는 사람살이의 그 이치 때문인가 한다.
언젠가 봉산동 문화거리의 에스갤러리에서 보았던 서양화가 이동표 화백의 ‘어머니’ 연작전이 떠오른다. 오십여 점의 그림이 하나같이 큼지막한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손으로 아이를 받쳐 업은 고단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담아내 놓았었다. 그것은 지난 시절 모진 인고의 삶을, 오로지 기다림 하나로 살아낸 우리의 전형적인 어머니들이었다. 그 그림들의 영상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하며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자식 위한 희생과 헌신을 세상 무엇보다 크나큰 기쁨으로 여기며 살다 가신 내 어머니의 모습을 꼭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 앞에 영원히 버티고 설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으랴. 제아무리 단단했던 기억일지라도 세월의 폭군한테는 꼼짝없이 허물어진다. 술보다도, 아편보다도 탁월한 효험을 지닌 망각의 약이 바로 이 세월 아니던가. 술이며 아편 따위는 일시적이지만 세월은 지속성이 있는 까닭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일상에서 어머니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일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어쭙잖은 핑계를 갖다 댄다. 그러다 이따금 아내와 단둘만의 오붓한 시간이 주어지면, 세월 속에 풍화되어 거칠어진 아내의 손등을 어루만지면서 불현듯 어머니의 손을 떠올린다. 아내의 얼굴에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져 망막에 어른거린다. 이럴 땐 독한 술 한 모금을 들이켠 듯 가슴속이 아릿해 온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쩐지 마음이 푼푼해지고 다시금 삶의 용기가 솟는다.
세상 어떤 손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어머니의 손, 그 투박했지만 따스하던 손길은 외풍에 흔들리는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버팀목이다.
*이 수필은 십 년도 더 전에 쓴 작품입니다.
어버이의 날을 앞두고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부모라는 이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으면 싶어 지면에 올려 봅니다.(곽흥렬)
첫댓글 어버이를 떠올리면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살아 계실적에 더 잘하지 못한 것이 사무치게 후회 됩니다. 그땐 투박하고 거친 손을 부끄럽게 여기고 비단결처럼 고운 손을 귀하게 대접했지만, 이젠 압니다. 손이 살아온 깊은 사연이 무엇보다 고귀한 것을...
섬섬옥수야말로 게으르거나 얕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니 굳이 고무장갑이나 목장갑을 고집하지 않고 섬세하게 느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돌아보니 이 두 손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하고 살았구나! 싶어요.
좋은 글 감상하니 부모님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이 선생님은 충분히 잘하셨다고 봅니다. 부모님 생전에 아무리 잘해드렸어도 떠나시고 나면 회한이 남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지나치게 겉모습에 점수를 매기는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에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참살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주 돌아보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런 성찰을 수필 쓰기를 통해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전 안병욱 님의 강의속에서 당신 어머니의 손에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듣고 아름 다운 손이라는 것은 잘 다듬고 메니큐어를칠한 예쁜손 보다 질박한 삶속에서 열심히 일하신 손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여지는 외적 아름다움보다 충실한 내면의 삶이 이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죠. 시골 어르신 거의 모두는 손가락 관절염을 앓고 계시죠
가족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다 던져 살아내셨던 훈장과 같으나 못고치는 병 . 어머니의 마음 이.. 참 아름답습니다.
먼저 가신 친정 엄마가 그리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