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파일 첨부
DMZ 생명𐩐생태𐩐문화체험(5차) 동행記
양태룡(나를 찾는 論語여행 저자)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11월26일 토요일 07시30분, 약속 장소인 강남보건소에 도착하니 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가족단위로 하나 둘씩 모여 들기 시작한다. 08시05분, 계획된 인원들이 버스 2대로 나누어서 첫 방문지인 강화도의 옥토끼 우주센터로 출발한다. 창 너머 한강 둔치에는 나름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문화체험의 행사 대강은 이렇다. 옥토끼우주센터를 방문하여 견학과 체험을 하고 애기봉으로 이동하여 조강전망대와 평화생태공원을 관람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09시13분 어느새 버스가 초지대교를 건너서 강화도로 들어섰다. 강화도는 서해에서 가장 큰 섬이고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한다. 전쟁과 피난의 땅 강화도는 고려시대 때는 몽골의 침략을 받았고 조선시대 때는 왕들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안내하시는 선생님이 주말에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전展을 다녀온 이야기로 시작한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략-1866년 병인양요-하여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해 갔다.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1979년에 수년간의 연구 끝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도서를 찾아내 우리나라로 반환하는데 노력한 일화를 소개한다.
09시35분 옥토끼 우주센터에 도착했다. 이 곳은 국내 최초의 항공우주과학 테마파크라고 한다. 항공우주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관람자들에게 우주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시 및 체험훈련을 하는 곳이다. 인솔하시는 선생님은 우주센터를 소개한다. “행성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순으로 설명하는데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신이 들린 듯 몸을 날리며 지식을 풀어 놓기에 바쁘다.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전시물을 체험하고 사진도 찍는다. 필자도 체험단과 느낌을 함께하기 위해 중력가속도 체험기구인 G-Force 체험을 했다. G-Force는 우주인들이 지구에서 우주로 향해 출발했을 때 우주 안에서 느끼는 중력가속도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기구다. 2~3분 남짓한 체험인데도 멀미와 어지럼증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이어서 우주생활체험관, 블랙홀 등 몇 군데를 관람하고 2층과 3층으로 올라가 체험장과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학생에게 “오늘의 체험은 재미있었어요?”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은 아니란다. “키가 151cm라 탑승을 못했다”는 것이다. 150cm기준에서 1cm 초과한 것이다. 엄격히 적용한 규정, 원칙이 어린 학생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불편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는 정도正道의 삶과 권도權道의 삶이 있다. 정도란 항상 지켜야 하는 도리로 법, 원칙, 규칙 등을 의미한다. 한편 권도란 현재의 주어진 여건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길가는 여성의 손을 잡으면 성추행 범이다. 반면에 수영을 하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 여성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당연한 도리다. 이른바 상황을 판단하여 조치하는 것이다. 이 기구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융통성을 발휘했더라면 이 학생은 즐거운 체험의 기회를 맛볼 수 있을 텐데….
다음은 보트장으로 이동했다. 가족단위로 보트놀이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온 팀은 아버지가 노 젓는 요령을 설명하고 씩씩하게 노를 저으며 놀이를 즐긴다. 어머니와 아이가 탑승한 팀은 노를 몇 번 젓다가 배의 진입방향을 잡지 못하고 곧장 내린다. 학습이란 것이 이런 차이가 있구나. 노를 저을 줄 아는 아버지와 노를 젓지 못하는 어머니. 보트를 관리하는 쪽에서 무조건 순서대로 보트를 태울 것이 아니라 노 젓는 법을 설명하고 태우는 것이 고객에 대한 배려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공룡관은 때를 잊은 목련이 꽃 몽우리를 피우며 촉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발길을 들어놓는 이가 별로 없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룡만큼 황량하다.
건너편 썰매장에서 환호소리가 들린다. 어린 학생들은 신이 났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속도감과 스릴에 탄성을 짓는다. 역시 아이들은 관람하는 쪽 보다는 몸으로 하는 체험에 관심을 보이고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어느 듯 점심시간이다. 차후 일정을 고려하여 점심을 11시 30분으로 조정했다. 3층 식당에서 돈까스로 식사를 한다. 활동량이 많은 탓에 음식 맛은 그저 꿀맛이다. 몇몇 아이는 한 그릇 더 먹을 수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이제 애기봉을 향해서 이동할 시간이다.
12시35분 버스는 강화대교를 지나 김포로 들어섰다. 버스에는 일상에 지친 어느 아버지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그 곁에는 게임하는 아이, 만화 삼매경에 빠진 아이, 조곤조곤 아이에게 뭔가 설명하는 어머니… 등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인솔하시는 선생님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기지개를 켜라 하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승자에게 <그해 소풍>이란 책도 선물한다. 버스가 애기봉 주차장에 도착하자 관람지역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곁들인다. 출입절차 수속을 밟고 애기봉을 향해 가는 길은 ‘우리는 조국의 창끝, 칼끝. 해병대가 있는 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등 해병대원들의 결기를 다지는 문구들이 보인다. 이어서 애기봉의 전망대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람이 제법 세게 몰아친다. 평화생태전시관으로 입장했다. 이곳은 평화, 생태, 미래 3개의 공간으로 배치되어 있다. 1공간(평화)에서는 조강지역의 역사를 알아보고 애기봉의 평화적 역할과 가치를 향한 조강 평화의 길을 이야기 한다. 2공간(생태)에서는 치유의 공간이 된 조강지역의 생태이야기를 한다. 3공간(미래)은 미디어 아트로 미래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공간 밖으로 나오자 저만치 한적한 곳에 해병대 김포지구 전투전적비가 보인다. 혼자 계단을 뜀박질하여 신나게 올랐다. 전적비에 도착하니 어느 단체에서 갖다 놓은 빛바랜 조화 하나가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시 고개 숙여 묵념하고 표지석을 바라본다. 표지석에는 ‘대몽고 항쟁, 신미𐩐병인양요 등 민족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을 함께 한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학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살려 안보현장견학코스로 같이 연결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애기봉 정상과 생태평화공원으로 가는 길. 해마다 연말이 되면 애기봉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해 왔었다. 언제부터인가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중단했고, 이후 데크길을 조성하면서 당시 설치했던 트리 모양으로 재현했다고 한다.
애기봉(154고지)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접경지역에 우뚝 솟아있다. 애기봉의 전설은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와 애첩의 이야기다. 안보의 최첨단에 한가한 사랑 놀음 같지만 이산가족의 한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애기봉에서 주변을 조망한다. 전방지역이 휑하니 조망하기에는 제격이다. 저 멀리 좌측으로 문수산성이 보이고 서해로 유입되는 물줄기와 예성강. 그 앞에 조그마한 섬, 유도留島.-이 섬은 1996년 홍수 때 북한지역에서 떠내려 온 수소를 미끼로 제주도의 우도에서 데려온 암소와 교미하여 평화의 소, 통일염원의 소 등 남북 연결고리를 삼으려했던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아래 조강이 흐르고 우측으로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을 넘어서 서울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한반도의 허리인 조강은 강과 강이 만나서 바다가 되는 곳이다. 육지에 비해 사람과 물자 쉽게 옮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삼국시대 때부터 탐욕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하여 백제 고구려 신라가 돌아가면서 패자覇者가 되어 지배했고, 6.25전쟁 때는 남과 북이 치열하게 전투했던 곳이다. 6.25전쟁 이후 ‘한강하구중립수역’으로 선포되어 남과 북이 상호 왕래가 있었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실상 DMZ가 되어 조강을 생활기반으로 하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오늘에 이르렀다. 조강전망대 앞에는 북한의 선전마을인 문화주택과 군 초소, 농경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쌍안경으로 보는 전방지역은 무리지어 자유로이 날고 있는 물새 떼들이 식별된다. 인간에게 미물처럼 보이는 새들은 남과 북으로 금을 긋지 않고 자유로이 왕래하며 날 수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금을 그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을까?
쌍안경을 제켜두고 머리를 돌리니 한 어머니가 어린 시절 이곳을 다녀갔다면서 아이에게 나름 설명을 하려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손을 끌어 잡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을 권한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이곳 방문의 추억과 안보의 현실을 이야기 해 주고 싶은 것이고 아이의 관심은 딴 곳에 있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전방 접경지역에 오면 북한의 잔악무도함을 듣고 타도의 대상 공산당, 멸공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교육을 받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굶주린 북한의 주민에 대한 동정심이 앞서는 것 같다.
전망대 한 쪽에는 접경지역 작가들의 교류전이 열리고 있다. 눈이 머문 곳은 <등가교환等價交換>이라는 작품이다. 손과 손목을 조각한 작품으로 엄지와 중지사이에 탄두를 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평화는 실탄 한 발만 없으면 교환이 가능하다는 의미일까?
잠시 이동하니 애기봉비碑와 망배단 그 옆에 평화의 종이 있다. 평화의 종은 탄피와 철조망과 트리 잔재물을 녹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고통과 아픔을 쇳물로 녹여서 화합하고 소통하여 평화를 이루자는 셈일 것이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포연이 스쳐간 자리에도 꽃이 피고 생명과 평화는 깃들기 마련이다. 생명𐩐생태𐩐평화의 주제에 맞춰 강의를 진행한다. 강의의 대강은 지금 지구는 끓고 있다. 영구동토층이 녹아 매탄가스가 배출되는 현실에서 지금보다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위기가 닥친다고 경고한다. 서기 2300년이 되면 생물종의 1/2가 멸종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소시민으로서 할 일은 생활 속의 실천만이 답이다. 자동차 덜 타기, 1회용 쓰레기 줄이기, 전기사용 줄이기, 전자제품 사용 덜하기 등.
이어서 00모 선생님이 DMZ 생명생태관광협회의 모토인 ‘사람과 사람간의 갈등, 사람과 자연의 갈등, 자연과 자연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사람과의 갈등은 <장자 산목편>의 ‘빈 배 이야기’로 대체하고 싶다. 배로 강을 건너다가 배가 부딪히면 상대방을 살펴본다. 그런데 부딪힌 쪽에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노를 잘못 저은 것을 탓한다. 사람이 ‘빈 배 이야기’처럼 자기를 비우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사람과 자연의 갈등이다. 인간이 사물을 지배할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생명체도 귀하게 존엄하기는 마찬가지다. 만물은 같다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원리’를 적용하면 너와 나, 옳고 그름, 삶과 죽음조차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이론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수양과 통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자연과 자연의 갈등이다.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인간이 자연의 문제에 개입한다는 것이 만물제동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번식능력이 강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준다고 판단하는 악성(?)식물에 대한 제재, 흔히 말하는 생태교란 종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다. 이것 또한 인간중심의 사고이니 이쯤에서 판단을 멈추자.
행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는 길. 한 어린이와 손잡고 동행했다. 북한이 못사는 이유를 물으니 독재 권력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독재 권력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개인 권력유지에 안달이다. 아울러 공산주의 대비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15시30분 일정을 마무리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도로가 꽉 막혔다. 아이들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듯하다. 차 안에서 2시간 30분을 보냈으니 답답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인내라는 말 대신에 인대忍待라는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생각한다. ‘참고 견뎌내는’ 인내가 아니라 ‘참고 기다림’의 인대의 시간으로.
짧지만 긴 문화체험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추억여행이었다. 오늘의 새로운 경험은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길은 가면 만들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