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언어나 문자로 가두어둘 수 없다...
성경의 요한복음 6장 63절에 나오는 " 살리는 것은 영이요 , 육은 무익하니라 "라는 표현은 사실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와는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은 말이다...
한국말로 사과와 영어의 애플은 다른 말이지만 사실 같은 사물을 지칭하는 의미이듯이... 표현이나 언어가 달라도.. 하나의 진리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다른 종교이더라도...
진리를 논하는 사람들이 사과가 애플과 같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한다면 같은 의미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사과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또는 애플이 어떤 것을 설명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문자나 표현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일수록 활자나 언어의 기원에 권위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다...
현재도 여전히 차원을 높여가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이들이 있다... 범용 되어 쓰이는 문자가 아닌 난해한 고대어를 해석하는 것이 마치 진리의 권위자라도 되는 것처럼...(물론 전부가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며 극히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불교의 진리를 초기불교의 경전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그것이 왜 지금의 불경의 뜻과 다르냐 하면서 설파하기도 하면서... 내용보다 형식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독교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말 성경이 미국의 영어성경에서 번역되었고... 영어 성경은 원문인 히브리어나 헬라어에서 번역되었기에... 그 과정에서 해석과 의미의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원어성경의 원문에는 어떻게 표현되었고... 지금의 성경과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하고 나름의 중요성을 설파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지나치게 문자와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며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칠 수 있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진리가 단지 몇몇 표현의 오류나 의미의 오전달로 인해서 퇴색될 수 있을까?
물론 원문과 비교해서 좀 더 분명하고 설득력 있게 잘못 표현된 부분을 바로 잡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진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라는 것이 그렇게 표현이나 언어에 포위될 만큼 나약한 것이 아니다..
특정 표헌이나 문자에 갇혀있을 만큼 무기력하지 않다...
진리는 모든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면서.... 모든 것으로 표현되지 않는 침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진리란 문자를 떠나 있고...표현을 떠나 있다....
진리는 어떤 문자나 어떤 종교에만 극한 되어 표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더 넓고 광대하며... 문자나, 종교가 있기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문자밖에 있다...
문자로 해석하려 하지 말며, 표현으로 가두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진리가 그대들을 자유롭게 하리라...
삼계가 어지럽게 일어났으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들어가니, 앞의 부처와 뒷부처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시고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였다고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셨고..
부처님 또한 여명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지... 경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다...
학인들이여...
부처가 무엇입니까?
과거, 현재, 미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