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현역 군인뿐 아니라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이라면 별 셋, 스리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안다.
별셋이 떴다 하면 전 부대가 얼음이 되고 사병 장교 할 것 없이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으려 몸을 사리게 된다.
이런 별셋이 무릎을 꿇고 소령에게 꽃다발을 전달, 박수가 터져 나온 일이 지난달 말 강원도 육군 A군단에서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훈훈한 로맨스가 아니라 훈훈한 리더십을 보인 현장이었다.
자신을 "20년간 군생활 끝에 이번에 원사로 진급한 아들을 둔 아버지"라며 소개한 B씨는 지난 10월 31일 A 군단에서 보았던 감동적 장면을 도저히 혼자만 보고 넘어갈 수 없다며 4일 군관련 제보채널인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전해왔다.
B씨는 "그동안 아들의 진급 행사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연차휴가를 내어서 아내와 함께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에 갔다 왔다"며 "30일 오후 6시 경남 김해에서 출발, 오후 11시반에 아들 부대에 도착했다"고 했다.
이어 "다음날 오전 9시 반까지 군단 본부 행사장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 내외, 아들부부, 손주 3명과 차 2대에 나눠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고 했다.
B씨는 "진급 대상자는 대령, 소령, 원사인 우리 아들까지 8명이었다"며 행사 시작 전 스리스타 군단장을 보고 "저 역시 얼어 있었는데 우리 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 김해에서 왔다고 했더니 '참 멀리서 오셨네'라고 편하게 말을 건네주더라"고 했다.
B씨는 "군단장이 왼쪽 어깨에 진급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오른쪽 어깨엔 배우자에게 직접 '달아주시라'고 배려하고 또 배우자에게 '무릎을 꿇고 고생했다며 사랑고백처럼 꽃다발을 꼭 그렇게 전달해 달라'고 하더라"며 진급행사 장면을 소개했다.
B씨는 "소령으로 진급한 분의 경우 가족이 아무도 안 왔더라"며 "그분의 진급 계급장을 왼쪽 어깨는 군단장, 오른쪽에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분이 달아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급한 소령에게 축하 꽃다발을 줄 사람이 없었는데 군단장이 직접 꽃을 들고 나와서 소령 앞에 무릎을 꿇고서 축하 꽃다발을 드리더라"며 "행사장에 있는 모두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에 놀라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고 했다.
이에 B씨는 "진급행사 때 좋은 모습을 만들어준 부대원들과 군단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그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했다.
(1).세상도 군대도 산업화와 민주화에 의해서 그동안 변했다. 본인이 1969년도 5군단 통신대대 본부중대장으로 근무하자마자 월남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부대대장(소령)이 자기집에 쌀이 떨어졌으니 사병 식당에서 쌀 한 말을 보내라고 한 걸 불응했더니 나를 보직해임을 시켰다 (이때 당시 대대장은 공석중이었음),
(2). 1978년 7월경 운천 1기갑여단 소령 통신중대장으로 3개월 근무하자 여단장(준장)이 자신의 몇 달 전에 새로 이사한 서울 영등포 아파트에 민간 전화기(당시 백색 전화기 한 대 값이 지금 보통 아파트 한 채 값 정도)를 내 돈으로 달지 않았다고 부대지휘결함으로 보직해임에 처벌까지 당한 걸 생각하면 (이때 참모장은 육사 14기 허순 대령) 40, 5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 군대도 그동안 변한 것 같다. 5군단 통신대대 부대대장 1년을 마치고 1979년 7월 바로 의정부 한미야전사로 전출될 때 통신 대대장이 내가 육사출신이면 여단장이 나를 그렇게 보직해임을 시켰겠냐 라고 독백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