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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교회(1)
2013년 6월 2일 / 대예배 / 고전 12장 4-11절
독창은 멋있습니다. 그러나 합창도 멋있습니다. 합창은 독창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합창’의 사전적 의미는 ‘네 명 이상의 소리가 모여 화성을 이루어 노래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두 명으로 이루어진 부부도 한 목소리를 내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여러 사람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진정한 화합의 의미를 내포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합창을 하는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먼저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모임이 합창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합창이 대단한 것은 이런 어울리기 힘들 것 같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을 이루고, 많은 소리들이 하나의 소리로 화합한다는 점입니다.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보다는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배려와 협력이 더 많이 요구됩니다. 합창을 아름답게 하려면 자신을 내려놓고 남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 교회에는 성가대가 있습니다. 성가대는 여러 사람이 소프라노, 알토, 테너 그리고 베이스 소리를 합하여 냅니다. 성가대에서 성악가 교수라고 하여 독창하는 식의 목소리를 내면 오히려 성가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악가 교수라 할지라도 성가대에서는 합창에 맞는 목소리를 내 주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기 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독창의 목소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린도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가 되라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전 12:13-21 /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를 이루는 우리들 가운데는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습니다. 노예도 있고 자유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를 한데 연결시켜 한 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한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는 침례를 받았고 모두 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14) 분명히 몸은 하나의 지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15)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의 지체가 아니다’라고 한다 해서 몸의 지체가 아니겠습니까? 16)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몸의 지체가 아니다’라고 한다 해서 그 말대로 귀가 몸의 지체가 안 됩니까? 17) 온몸이 눈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또 만일 온몸이 커다란 귀로만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냄새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위해서 많은 지체를 만드셨으며 각 지체를 적절하게 붙여 주셨습니다. 19) 만일 몸이 한 지체로만 되어 있다면 얼마나 이상하겠습니까? 2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많은 지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하나인 것입니다. 21) 눈이 손더러 ‘너는 네게 쓸모없어’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내게 필요없어’ 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꽃 한 송이는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넓은 장소에 혼자만 있다면 을씨년스럽습니다. 튤립꽃은 참 예쁩니다. 그러나 튤립 축제가 있을 때 가보면, 온통 튤립으로 덮여 있는 데 장관입니다. 같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시사철 꽃이 피도록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교회를 만드시려고 독창이 아니라 합창을 위해 그 구성원들을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교제하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교회가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으로 교회를 멀리하거나, 교회에 대해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교회를 찾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교인의 신분은 이중적입니다. 성도(聖徒)이면서도 죄인(罪人)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자세히 관찰해보면 죄인의 행태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모였으니까 죄인의 행태를 발견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그러기에 상식적인 것, 당연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교인들에게 실망해서 교회 못나오겠다.” “나는 교인들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못 나오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꼭 필요한 글이 있습니다. “빌, 이 큰 배는 낡아서 삐걱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린다네. 그래서 구토가 날 때도 있지. 하지만 이 배는 목적지까지 잘 간다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걸세. 자네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일세.” -J. F. 파워스, 푸르게 돋아난 밀 중에서-
왜 교회 가족이 필요합니까?
바울은 교회 안에서 믿음의 식구들끼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알기 쉽게 설명을 참 잘 했습니다.
① 지체가 몸에서 분리 되면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 몸의 지체가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몸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롬 12:4-5 / 우리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에도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 모두가 한데 모일 때 하나의 완전한 몸을 이룹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서로 다른 지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각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좋은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잘린 손가락은 별 가치가 없습니다. 아무리 호수같이 맑고 아름다운 눈동자라 할지라도 몸에서 떨어져 나온 눈알은 흉측스러울 뿐입니다. 아무리 늘씬하고 미끈한 다리라 할지라도 몸에서 떨어진 다리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지역 교회에 속해야 합니다. 교회에 연결되지 않으면 영적인 삶은 시들기 시작하고, 결국 버릴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하면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교회를 멀리 하는 것입니다.
② 교회 가족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서로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서로’라는 말이 50번 이상 등장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권고하며, 문안하고, 섬기며, 가르치고, 받아들이며, 존경하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며, 서로 용서하고, 서로에게 복종하며, 헌신하는 등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서로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족으로서 행해야 하는 책임’이고, 교회에 속해 교제함으로 이루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입니다.
■ 고결한 영혼이라도 홀로 있으면 불붙은 석탄이 홀로 있는 것과 같아서 더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식어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교우들끼리 다툼도 있겠지만, 교우들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러나 떨어져 혼자 있으면 믿음도 금방 식습니다.
③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은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교회를 돕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고전 12:7-8 / 성령께서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 각 사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십니다. 8)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현명할 조언자가 되는 재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연구하고 남을 가르치는 뛰어난 재능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교회를 주인으로 다니는 것과 손님으로 다니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면 져야할 의무와 책임이 큽니다. 그러나 교회의 손님이 되면 져야할 책임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부담이 없는 예배만 드리는 손님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런 모습이 지혜로운 것 같지만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손님에게는 책임은 없겠지만 거기에는 성장도 상급도 없습니다.
④ 교회 가족은 타락의 유혹에서 서로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유혹에 대한 면역이 없습니다. 상황이 되면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히 3:12-13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펴 악에 물들거나 불신앙에 빠져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날마다 서로 일깨워 주어 아무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요즈음 세상은 너무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살다보면 이웃이 없어집니다. 남의 일에 관섭하지 않고 자신도 관섭을 받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기본 윤리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 서로는 형제가 됩니다. 교으들은 영적인 가족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할수록 자기 일에만 관심을 쓰지 않고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바울은 마음들을 열지 못하여 다툼이 있는 빌립보 교우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 마음을 열어 화합할 것을 권면하면서, “자기 본위가 되거나 남에게 과장된 행동을 하지 말고 겸손하게 남을 존중해 주십시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지 말고 남에게도 눈을 돌려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자세를 본받으십시오.”(빌 2:2-5)라고 말합니다.
▶ 에덴동산 같은 완벽한 환경에서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셨듯이, 성도는 신앙공동체에 소속되어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께 속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함께 사역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하늘로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빛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기업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 교회 생활하는 가운데 도움 받기를 꺼려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입니다. 서로 도움을 받고 도와주십시다. 주저하지 말고 연약한 자를 도웁시다. ‘피차(서로) 매일 권면하라’는 것은 명령형으로 ‘서로 사랑하세요’ 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권면하는 믿음(one another type faith)을 말합니다. 혼자 고고하게 독불장군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세우며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믿음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로 성장하는데 모두가 기여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다 활용하여 도움받기를 낯설어 하지 말고 도움 주기를 꺼려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아름다운 교회는?
1. 아름다운 교회는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고전 12:21 / 눈이 손더러 ‘너는 네게 쓸모없어’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내게 필요없어’ 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모든 재료가 다 필요합니다. 특히 시멘트만으로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콘크리이트 배합배율은 1(시멘트):3(모래):6(자갈)입니다. 물은 개어서 사용하기 좋을 정도면 됩니다. 배합이 잘 이루어질 때에 건물은 든든히 세워져 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묵고 있던 마가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기도회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그리고 예수의 형제들과 예수의 어머니를 비롯한 몇 사람의 여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이 기도회는 며칠 동안 계속되었는데 12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들 위에 성령이 임하였고,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초대교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속에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포함하여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었던 식구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여인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초대 교회에 구성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 기차 철로의 비유 / 눈이 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이 철로 위로 걸어갑시다. 아무것도 없어요. 기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은 철로 위를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귀가 몸에게 이야기 합니다. “반대편 방향에서 기적 소리가 저에게 들리는데요.” 눈이 논쟁을 시작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철로 위에 아무것도 없어요. 계속해서 걸읍시다.” 몸은 눈의 이야기만 듣고 계속 걸어갑니다. 잠시 후 귀가 말합니다. “기적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때 다리도 말합니다. “나도 기차가 덜컹거리며 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의 몸을 철로 바깥으로 내려보내는 게 좋겠어요.”
만일 이것이 당신의 몸이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① 나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철로에서 내려올 것이다. ② 나는 몸의 모든 지체들에게 묻고, 투표해서 다수결로 결정할 것이다. ③ 나는 갈등을 모른 체하고 어서 갈등이 없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④ 나는 눈을 믿고 계속 걸을 것이다. 내 눈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일이 없으니까? 아니지요. 가능한 빨리 철로에서 내리겠지요.
위의 문제는 아마도 한심한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에 많은 다른 감각기관과 지체를 주셨습니다. 각 지체가 할 일을 할 때, 온 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몸에서 우리는 다수결에 따라 투표로 결정을 하거나, 갈등을 모른 체하고 넘어가거나 한 감각 기관만을 믿고 다른 기관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이 그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며 또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가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때,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교회는 자신있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아름다운 교회는 모두 다 귀합니다.
고전 12:22-23 / 가장 약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지체가 실제로는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찮게 생각되는 지체를 특별히 소중히 여기고 남에게 보이기 흉한 지체를 더욱 조심스럽게 보호합니다.
손가락 5개가 다르다는 것은 일하기에 정말 편리하고 귀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컴퓨터로 사람을 만들고 손가락 5개를 모두 똑같이 만들어 일을 시켜 보았더니, 일이 되지 않더랍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선지자처럼 야단을 칠 줄 알아야 하고, 어머니는 제사장처럼 감싸주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서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멋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전 12:27-30 / 말하자면 여러분이 모두 함께 모여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여러분 하나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으나 모두가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지체들이라는 말입니다. 28) 그리스도께서는 또 자신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직분을 두셨는데 그 첫째가 사도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예언자들, 셋째는 교사들, 다음은 이적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 남을 돕는 사람들, 함께 일하는 이들을 지도하는 사람들,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29) 모두가 다 사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모두가 설교자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교사이겠습니까? 모두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30) 모두가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방언의 능력을 주셨습니까? 또 누구나 다 그 방언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역할이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에 직업 종류가 5만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 모든 직업이 다 귀한 직업들입니다. 청소부는 천한 직업입니까? 대통령만 귀합니까? 브라질은 아예 80%를 대학에 못 가게 정책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학에 안 가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다 각기 임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바로 직업 문제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육 문제가 끝이 없습니다. 기독교인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직업관 정립은 필수이겠지만, 영국의 시인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해야 합니다. “내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내 직업을 영화롭게 하리라.”
■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자 식당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모두 셰익스피어에게 경의를 표하며 정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손님들의 관심은 온통 대문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때 식당 현관을 쓸고 있던 청년이 빗자루를 내던지며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습니다. “에이, OOO. 나는 뭐야!” 셰익스피어는 청년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청년! 왜 빗자루를 내던지나?”, “선생님, 저도 선생님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저는 고작 바닥이나 쓸어야 한다는 것이 한심할 뿐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그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도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 나는 펜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네는 지금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청소하고 있잖은가? 결국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 사람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귀한 일과 천한 일을 구분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모든 일에 있어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법입니다.
■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미국의 거리를 쓸면서 백인에 대한 불평불만이 쌓여 있는 한 흑인 청소부와의 대화입니다. 어느 날 한 흑인 청소부가 미국의 거리를 빗자루로 쓸고 있으면서 오만 욕설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길을 가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목격하고는 젊은 청소부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젊은 형제! 무엇이 그리 못마땅하고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서 길거리나 쓸 일이지. 그렇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소?” “아니, 우리는 인간이 아니오? 왜 우리는 백인들이 어지러 놓은 거리나 쓸어야 하고, 백인들이 사용한 사무실, 그들이 더럽혀 놓은 화장실이나 청소해야 합니까? 제기랄, 더러워서 못해 먹겠소.” 그 때 킹 목사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대꾸해 주었습니다. “형제여! 당신은 지금 백인들이 어지러 놓은 길거리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도 잘해야 하고 말도 잘해야 합니다. 말이 곧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이에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합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학가 셰익스피어가 위대하고, 흑인 인권 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앙과 생각하는 것과 말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3. 아름다운 교회는 모두 다 아름답습니다.
고전 12:23-24 /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하찮게 생각되는 지체를 특별히 소중히 여기고 남에게 보이기 흉한 지체를 더욱 조심스럽게 보호합니다. 24) 그러나 보여도 괜찮은 지체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지체가 더 귀중하게 다루어지도록 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울은 다르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 똑같으면 아름다울 것이 없습니다. 다르니까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꽃을 보십시오.
창 1:11-12 / 하나님께서 “땅에서 파릇파릇한 풀이 돋아 나거라. 또 낟알을 맺는 식물과 온갖 과일 나무도 자라나거라.” 하고 명령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에서는 푸른 풀과 낟알을 맺는 온갖 식물과 과일 나무가 자라났다.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무척 흐뭇해하셨다.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여름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여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가을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겨울에 피는 꽃도 있습니다. 동백은 대표적 겨울꽃이며, ‘동백(冬柏)’이라는 이름은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운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동백꽃은 12월~4월간 개화(開花)하며, 한겨울이라도 며칠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 꽃을 피웁니다. 이 꽃이 지면 저 꽃이 피면서 일 년 내내 거의 쉴 틈 없이 꽃이 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4. 아름다운 교회는 각 자의 일을 합니다.
고전 12:25-27 / 이것은 지체들이 행복하게 되고 그 지체가 서로 돌보아주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6) 그러기에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7) 말하자면 여러분이 모두 함께 모여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여러분 하나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으나 모두가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지체들이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모두가 필요한 것이고, 모두가 귀중한 것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여야 한다고 바울은 <지체신학(肢體神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다른 이들로 성격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출신지가 다릅니다. 급한 성격의 소유가 베드로와 성격이 차분한 요한이 같이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은 늘 같이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열심당원 시몬이 있었습니다. 세리 마태도 있었습니다. 로마에 충성하는 마태와 로마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는 시몬은 거리에서 단 둘이 만났으면 살인 사건이 일어날 만도 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같이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5병 2어를 들고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합창단원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 소리를 내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다른 것은 못하여도 항상 기도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그 분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 전쟁터에 나가서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 때 모세는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 전쟁하는 군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저런 사람들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전도’ 소리를 내는 일군도 필요합니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전도의 사명을 받아 늘 전도하는 소리를 내는 일군이 필요합니다. ‘헌금’ 소리를 내는 물질 일군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항상 물질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디어’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생각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서 교회에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낙심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권면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권사라는 말은 권면한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에는 청소하는 일군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늘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는 일군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대로 일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 합창에서 가장 중요한 분은 지휘자입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합창하는 연주회에 갔습니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손에 들고 열심히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저 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합창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는 소리를 막대기를 들고 저어서 섞고 있는 거에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 성도들이 내는 소리를 저서 섞으십니다. 그리고 합창소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지휘자가 없는 합창단은 존재하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교회(2)
2013년 6월 2일 / 오후예배 / 고전 12장 4-11절
5. 아름다운 교회는 다 같이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 교회생활의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교회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란 말이 교회란 뜻인데, ‘함께 모인 우리 성도들, 함께 모인 곳’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구주이신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한 목적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마 16:18 / 내가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 어떤 죽음의 세력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네가 땅에서 잠가 둔 문은 어떤 것이든 하늘에서도 잠길 것이고, 땅에서 열어 둔 문은 하늘에서도 열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직, 수많은 공동체 가운데, 교회만큼 비효율적이면서도 또한 교회만큼 독특한 공동체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회사처럼 이익 창출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는 대학이나 연구소처럼 지식 전달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연구기관도 아닙니다. 교회는 친목단체처럼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를 주된 목적으로 삼는 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자선단체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고 구호사업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구호기관도 물론 아닙니다. 교회가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역할을 크고 작게 감당하고 있지만, 이러한 역할보다 먼저 우선되는 교회의 목적인 예수님께서 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교회의 궁극적 존재 목적은 바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9-20에서 ‘교회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① 가서, 모든 족속으로 ②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③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④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일명, ‘지상대명령(The Great Commission)’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4개의 중요한 동사를 원어 성경에서 보면, 4개의 동사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본동사는 바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으로 나머지 3개의 동사들은 구체적으로는 제자를 삼는 방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① 가서 전도 / 선교하고, ② 세례를 주고, ③ 가르쳐 지키게 하는(교육 / 양육) 것을 통해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제자를 통해 예루살렘에 처음 세워진 교회는 지난 2천 년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바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는 막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지금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 땅 가운데 실현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사람들에게 집중되었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의 영혼도 소홀히 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교회 역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존재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만약 여기에서 교회가 조금이라도 벗어나 있다면, 아무리 교회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해도, 아무리 교회의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어도 그리고 아무리 교인이 많아도 그 교회는 결코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궁극적으로 먼저 죄악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참된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곧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것은 단지 믿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복음을 몰랐을 때, 우리 역시 예수님과 전혀 무관했던 불신자들이었고, 결국 이 땅에서 허망하게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직까지 예수님을 모르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그 관심과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게 하신 목적은 바로 잃어버린 한 영혼, 죽음으로 치닫던 한 영혼, 죄악 가운데 머물렀던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으로 회복시키고, 하나의 대등한 지체로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신 ‘잃어버린 양의 비유’(눅15:4-7),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눅15:8-10), 그리고 ‘잃어버린 탕자의 비유’(눅15:11-32)가 담고 있는 주된 내용입니다. 특이한 것은 각각의 비유를 마치실 때마다 비슷한 의미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것은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32)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의 존재 목적에 충실한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회복시키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전도하는 공동체’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복된 한 영혼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온전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도록 하는 ‘제자 삼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2. 아름다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만을 추구합니다.
모든 세대, 지금도 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택하신 사람들 위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인 선지자, 제사장, 왕, 사도 등에게 당신의 뜻을 말씀하셨고 저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림 이후에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케 하시려고 하나님은 믿는 사람의 속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체가 다른 지체를 필요로 하도록 몸인 지역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계시하는 데 있어서 온 몸을 통해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개인을 통해 교회에 말씀하실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몸인 교회에 이야기해야 합니다. 각 지체가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는 말씀을 나누면, 몸 전체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그 분의 시간표에 맞추어서 교회에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각 개인의 의견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매우 중요합니다. 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지체들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의 각 지체가 제구실을 하도록 인도하실 수 있으면, 온 몸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한 몸이고 모든 지체는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지도자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그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외칩니다. 그 지도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교회를 설득시키려는 노력이나 무조건 자기를 따르라고 회중에게 말하는 것보다 교인들로 하여금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가서 확인을 얻으라고 격려합니다. 그러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시간표에 맞추어 자신의 뜻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때 온 몸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한 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 교회가 자신들의 첫 건물을 지을 땅을 사기로 동의하였습니다. 목사님은 한 부동산 소개업자의 약속에 의해 땅을 매입하도록 하였습니다. 계약이 끝났을 때, 그 부동산 소개업자가 그가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교회는 재정적인 문제에 빠졌고, 모든 사람들은 건물 짓는 사업 자체에 대해서 용기를 잃었습니다. 최후에 목사님은 온 교인들을 모아서 현재의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인 중 두 명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그 부동산 소개업자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전에도 우리와 사업상의 거래를 할 때, 우리를 속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목사님의 계획에 반대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은혜로 문제는 곧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화는 교회가 한 몸으로 기능을 발휘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지체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지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 교회에 지시를 내렸을 때, 대개의 경우 하나님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리셨습니다. 대다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지시를 명확하게 느끼는 교인들로부터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며,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인도하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도록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누가 그것에 대해서 찬성을 하고, 누가 반대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닙니다. 회의에서 아름다운 교회는 절대로 “몇 명이 찬성이고 몇 명이 반대입니까?” 라고 물으며 투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교회 분열의 가능성을 안게 됩니다. 올바른 질문은 “하나님이 명확히 우리에게 이 방향으로 나가라고 인도하고 계시다고 느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입니다. 중대한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아름다운 교회는 절대로 그 문제를 토론한 바로 뒤에 투표에 부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의 취지를 이치에 맞게 관철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없애줍니다. 토론이 끝난 뒤 기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예수님의 마음을 찾는 기도를 합니다.
55%의 교인들이 “예,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방향으로 나가라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을 느낍니다.” 라고 투표했다고 가정합시다. 다른 45%는 “우리는 하나님이 분명히 이 방향으로 인도하신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라고 투표했다고 가정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절대로 일을 착수하지 않습니다. 위의 결과는 저에게 두 가지를 예기해 줍니다. ① 하나님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것 같이 보인다. ② 머리가 몸의 모든 나머지 지체들에게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우리는 우리 중의 55%가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방향으로 인도하심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45%는 아직 그것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맞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일하며 주시했습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분이 우리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기 원하시는지를 이해시켜 주시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셨고, 우리에게 같은 마음과 뜻을 가져다주시려고 임재해 계셨습니다(롬 15:5-6. 고전 1:10).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을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언제나 100%의 찬성표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한 명이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주님과의 교제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부러 불순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거의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저는 몸의 다른 지체들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주님과의 교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이 저를 사용하셔서 어떻게 그들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인지를 알아볼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이것에 대해서 깊이 기도하고, 오로지 주님이 저를 인도하시는 대로만 반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하나로 합하도록 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롬 15:5-6 / 인내와 끈기와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 서로가 한 마음이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하시듯 여러분 또한 서로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그렇게 해야 우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한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교회에서 시도해 보아야 할 방법은 먼저 교인들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목사는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 들어가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가 무엇이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물으라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았을 때 한 가지의 선택은 순종뿐이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이 명확히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나 영향력 있는 지도자나, 위원회나, 저 자신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도록 노력하십시오. 성령님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동기를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교인총회는 교회생활 중에서 가장 신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교인총회에서 하나님의 지시와 활동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교인총회에 참석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과 길들을 우리 교회에 계시하시는 짜릿한 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하나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모든 믿는 자들을 인도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가르치고 도우실 것입니다.
3. 아름다운 교회는 예수의 지체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요 15:5-8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안에 살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6) 만일 누구든지 나를 떠나면 필요 없는 가지처럼 버려질 것이요, 말라서 다른 것과 함께 묶인 채 불에 태워질 것이다. … 8) 내 참제자가 된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처음부터 12명뿐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처음에는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예수님을 존경해서 끝까지 따르며 배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1-2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떠나 버리고 남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 잘 다니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집단적으로 교회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너무나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기 때문에 시험에 들었든지, 혹은 말씀이 너무 없어서 말씀이 있는 교회를 찾아서 떠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그런 문제들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질을 요구하신 적이 없고, 예수님께 들을 말씀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그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떠났을까요?
요 6:56-63, 66-69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모두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안에 있다. 57)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능력으로 내가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내 능력으로 살 것이다. 5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이다.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그런 떡이 아니다. 이 떡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59) 예수께서 이 설교를 하신 곳은 가버나움(가장 많은 기적을 배푸셨던 곳) 회당이었다. 60) 그러나 제자들조차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씀만 하시는구나. 어느 누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61) 예수께서 제자들이 불평하며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62) 그러면 인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볼 때는 어떻게 하려느냐?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66)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를 떠나갔다. 67) 그러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69)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떠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내가 너희에게 생명의 떡과 참된 음료로 주겠다. 너희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말씀들이 도무지 이해도 안 가고 현실성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솔직히 자기들이 원하는 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해주시고 엉뚱한 말씀만 하시니 이해도 되지 않았고, 쓸데없는 말로만 들렸기 때문에 떠난 것입니다. 하기야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이 한 말도 이와 다를 것이 없으니 그들이 떠난다고 하여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습니다. 사실 이때에 제자들이 말한 ‘로마로부터 해방’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합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께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행 1:6-7 /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에 사도들이 물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가 언제인가는 아버지께서 정해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상관하시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령이 임하셨고 모든 일이 그렇게 진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행 1:8 /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교회에 나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내게 닥쳐온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는 그런 의식주 문제들을 가지고 교회에 나옵니다. 이것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근본적으로 의식주 문제를 완벽히 해결해 주지 못하지만 내세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며 “죄가 있으니 자기를 깨끗케 하라, 경건하게 살라,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들을 때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거나 쓸 데 없는 소리로만 들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에서 저들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생할 수 있는 길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6:30-34 /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 32)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33)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했던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제자 중 여럿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아시고 인간의 심리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는데도 이들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이 예수님의 잘못이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할 줄을 몰라서 그들이 이해를 못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네들이 바란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를 닫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길가에 뿌려진 씨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마귀가 와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는 말씀만 하셨다면 그들의 귀가 번쩍 뜨였을 것입니다. 아니 그럴지라도 마귀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지 않고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웰빙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자녀 교육법을 이야기하면 어렵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며 우르르 몰려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 설교자들이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원하는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사람들을 많이 모아 성공적인 목회자로 인정을 받을 것인가?”
▶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희생당하신 것을 믿어 심판을 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몸이 건강하게 되는 것이나, 부자가 되는 것이나, 평안을 누리는 것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하면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말씀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 인생은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은 손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내 인생은 철저히 나의 것이고, 하나님은 손님이고 구경꾼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무엇인가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주면 되는 분이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저만큼 멀리 물러나 있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간섭하시는 것은 사람들은 표현은 하지 않지만 매우 싫어합니다. 다만 내가 부족하여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할 때만 응답하고 도와주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만 전하니,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고, 듣기도 거북할 뿐 아니라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얼마동안 참고 교회를 다니다가 결국은 떠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내게 손님이 아니라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고 나의 생명과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며, 이 후에 상벌을 주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구경꾼이 아니고 주관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고, 나를 위하여 그분이 세우신 계획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만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셨습니다.
눅 12:32-34 / 그러므로 작은 무리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 이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된다. 하늘에 쌓아둔 재물은 없어지거나 좀이 쓸 일이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과 생각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과거에 방영했던 ‘용의 눈물’을 재방영 하는데 그렇게 위세당당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태조 이성계도 잠깐 동안에 세월이 지나가 한줌의 흙이 된 지 옛날이 되었고, 더욱 허무한 것은 이성계 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무생 씨도 죽어 이제는 형체도 찾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시편 90편 10~12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70살, 80살을 산다고 해도 새가 날아가듯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하면서 인생의 년수가 전광석화와 같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권세가 있어도 소용없고 재물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수십 년 전 이란의 팔레비 왕은 당시 우리나라 예산의 3배를 가졌으나 축출당해 미국 시카고에서 암 병 수술을 받고 수술비용을 못 내 시달리다가 죽었고,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그 당시 500억 불의 재산을 가졌지만 하와이에서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가졌고 큰 재물을 가졌다 해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 땅에서 천 년, 만 년 살 줄 알고 속아 살고 있습니다.
4. 그러므로 아름다운 교회 성도는 이렇게 사십시오.
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는 말씀대로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사는 것은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함께 끝나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요일 2:15-17 / 이 악한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만일 이런 것들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6) 이런 세속적인 일들, 이런 악한 욕망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욕에 미치거나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나 다 사고 싶어하거나 재산이나 지위를 자랑하는 따위의 욕망들은 모두 이 악한 세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17) 이 세상은 사라지고 이런 악한 욕망도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순교자 Jim Eliot은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 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 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옳습니다. “이것이 내게 유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를 먼저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의 정욕’이란 먹고 마시는 것과 성적 욕망이요,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요, ‘이생의 자랑’에서 자랑은 pride인데 ‘허풍, 자랑’(braggart)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모든 허풍과 자랑은 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서로 영예를 누리고자 다투면서도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예에는 관심 없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② 영성을 위주로 하는 삶
크리스천은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잘 될까 생각하며 영성을 위주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먼저 잘 되는 길을 택해야 되고 또 영혼이 잘 되면 모든 것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③ 보화를 하늘에 쌓는 생활
크리스천들은 기회 있는 대로 잠깐 있다 없어지는 재물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령(救靈)사업을 위해 쓰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쓰고, 구제를 위해 주의 이름으로 쓴 것은 하늘에 쌓아둔 것이 되어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서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재물은 언젠가 다 놓고 떠나거나 하나님이 거두어 가십니다. 기회 있는 대로 성령의 감동이 오는 대로 순종하여 영원히 남는 천국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물질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가 돈 쓰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십니다.
아름다운 교회 교우들에게 한 번 더 강조합니다.
눅 12:32-34 / 그러므로 작은 무리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마 25:31-46). 이것이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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