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妾薄命(첩박명) : 박복한 첩
첩박명(妾薄命)은 박복한 첩이란 뜻으로
“증남풍(曾南豊)을 위하여 지었다.” 하였다.
증남풍은 증공(曾鞏)이며 진사도(陳師道)의 스승으로,
곧 스승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인바,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에 빗대어
스승을 기리는 자신의 심정을 애절하게 읊었다.
主家十二樓 一身當三千 古來妾薄命 事主不盡年
주가십이루 일신당삼천 고래첩박명 사주부진년
起舞爲主壽 相送南陽阡 忍著主衣裳 爲人作春姸
기무위주수 상송남양천 인저주의상 위인작춘연
有聲當徹天 有漏當徹泉 死者恐無知 妾身長自憐
유성당철천 유루당철천 사자공무지 첩신장자련
임의 집 열두 누각에
이 한 몸 삼천 명의 총애 독차지하였네.
예로부터 첩은 운명이 기구하여
임 섬기어 일생을 다하지 못하였네.
일어나 춤추어 만수무강 빌었더니
남양(南陽) 무덤길로 주인을 보냈다오.
차마 임이 주신 옷 입고
남을 위하여 고운 자태 지을 수 있으리오.
소리 내 울면 마땅히 하늘에 이르고
눈물 흘리면 마땅히 구천(九泉)에 이르리라.
죽은 자는 아마도 알지 못하겠지만
첩의 몸 영원히 그대를 슬퍼하리라.
* 一身當三千(일신당삼천) : 장한가(長恨歌)에
“후궁에 아름다운 여자 삼천 명이었으나 삼천 명의 총애
한 몸에 있었다오.” 하였다.
* 南陽阡(남양천) : 남양(南陽)은 지명이고 천(阡)은 무덤으로 가는 길로
한(漢)나라 때 유협(游俠)인 원섭(原涉)의 선영(先塋)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장례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落葉風不起 山空花自紅 捐世不待老 惠妾無其終
낙엽풍불기 산공화자홍 연세부대노 혜첩무기종
一死尙可忍 百歲何當窮 天地豈不寬 妾身自不容
일사상가인 백세하당궁 천지기불관 첩신자불용
死者如有知 殺身以相從 向來歌舞地 夜雨鳴寒蛩
사자여유지 살신이상종 향래가무지 야우명한공
낙엽 지는데 바람은 일지 않고
산은 비었는데 꽃은 절로 붉구나.
늙음을 기다리지도 않고 세상을 버리시니
첩의 사랑함 끝을 보지 못하였네.
한 번 죽음은 오히려 참을 수 있으나
한평생을 어찌 이렇게 견딜런가.
천지가 어찌 너그럽지 않아
첩의 몸 하나 받아드리지 않는지요.
죽은 그대가 알아주시기만 한다면
이 몸 죽여서라도 그대 따르리라.
옛날 노래하고 춤추던 곳엔
밤비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만 싸늘하군요.
* 山空花自紅(산공화자홍) : 산중에 소나무와 측백나무,
기(杞)나무와 가래나무, 경남(梗楠)과 예장(豫章) 같은
아름다운 재목이 있으면 동량(棟樑)으로 쓸 수 있거늘
산이 이미 비었으므로 오직 들꽃만 절로 붉게 피어있을 뿐이니,
조정에 장상(將相)의 재목이 없어서 나라가 이미 텅 빈 것과 같다.
* 向來歌舞地(향래가무지) 夜雨鳴寒蛩(야우명한공):
{爾雅(이아)}에 이르기를 “蟋蟀(실솔:귀뚜라미)을 蛩(공)이라 한다.” 하였다.
主家三千妾 妾身恩寵極 千金粧翠髮 百金調顔色 恩深恃蛾眉
주가삼천첩 첩신은총극 천금장취발 백금조안색 은심시아미
不暇誦女則 但恨色事人 不如事以德 萋斐竟寧前 佳穀生螟螣
불가송녀칙 단한색사인 불여사이덕 처비경녕전 가곡생명등
終然不可目 擲置九衢側 假令守婦順 安能遭此酷 後悔諒無由
종연불가목 척치구구측 가령수부순 안능조차혹 후회량무유
一朝禍不測 在上烏鳶嚇 在下螻蟻食 雖爲束縛去 亦得埋荊棘
일조화불측 재상오연혁 재하루의식 수위속박거 역득매형극
蛩鳴晴昊泣 月落千林黑 主恩到處厚 脩夜長相憶
공명청호읍 월낙천림흑 주은도처후 수야장상억
임의 집 삼천 명의 첩 중에 이내 몸 은총이 지극하였네.
천금으로 머리를 단장하고 백금으로 얼굴을 화장하였지.
은총이 깊으므로 자색만 믿고 여자의 도리 외울 겨를 없었다오.
다만 자색으로 사람을 섬겼으니 덕으로 섬기는 것만 못하였네.
참언이 잇달아 이르니 아무리 좋은 곡식도 벌레가 생기는 법.
마침내 눈길을 끌지 못하여 큰길에 버려졌다오.
가령 婦人의 도리를 지켰더라면 어찌 이런 참혹한 일을 만났겠는가.
후회해도 진실로 소용없으니 하루아침의 화를 예측할 수 없네.
위에는 까마귀와 솔개가 소리치고 아래에는 땅강아지와 개미가 파먹으니,
비록 속박에서 떠나려 하나 또한 가시나무 속에 묻혀있네.
풀벌레 울음소리 개인 하늘에 들리고 달이 지니 숲속이 깜깜하구나.
임의 은혜 곳곳마다 두터우니 긴긴밤 길이 그리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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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공(曾鞏, 1019년-1083년) : 북송의 산문가이다.
자는 子固(자고), 시호는 文定(문정). 建昌(건창) 南豊(남풍)에서 출생.
왕안석(王安石)·유종원(柳宗元)·한유(韓愈)·소순(蘇洵)·소식(蘇軾)·
소철(蘇轍)·구양수(歐陽修)와 더불어 당송팔대가로 일컬어지며
증조(曾肇)·증포(曾布)·증우(曾紆)·증굉(曾紘)·증협(曾協)·증돈(曾敦)과 더불어
南豐七曾(남풍칠증)으로도 일컬어진다.
세상에서 南豐先生(남풍선생)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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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도(陳師道) : 북송 인종 조정 황우 5년~1101년,
북송 휘종 조길 건중정국 원년. 중국 송(宋)대의 시인.
호는 후산 거사(後山居士).
젊어서 증공에게서 배웠고 뒤에 소식(蘇軾)의 추천을 받아
태학박사(太學博士)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로서 일하였다.
일생 동안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사망했을 때는 친구가 관을 사주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그의 시는 두보를 본보기로 하였고 슬픔과 애수에 잠긴 시가 많았다.
그가 시를 지을 때 생각이 떠오르면 아내와 자식들을 이웃에 보내 놓고
방석을 덮어쓰고 시를 지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