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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주셨나요?
루시오, 사밀. 두 개의 이름을 지어줬어요.
제겐 둘 다 낯설게 들리네요. 두 이름은 각각 어떤 의미일까요?
‘루시오’ 라는 이름은 파란색을 뜻하는 ‘루’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파란색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루’라고 지었는데,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루’라고 불리더라고요. 조금 다르게 지을 필요도 있겠다 싶어 ‘시오’가 붙게 됐어요. ‘시오’는 일본어로 소금을 뜻하거든요. 둘이 합치면 ‘파란 소금’. 어쩌다보니 ‘루시오’는 그런 뜻이 됐네요.
‘사밀’은 ‘루시오’보단 덜 불리는 이름인데요. 글을 쓰거나 영상을 작업할 때, ‘사밀’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요. 작업을 할 때 마감기한이 없으면 한도 끝도 없이 저 자신을 기다려주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작업을 할 때 그럼 안 되니까. 모든 일이든 2-3일 안에 끝내보자는 마음에서 지어준 이름이에요. 마감기한을 뜻하는 셈이죠.
사밀. 사밀. ‘사밀’이 어떻게 그런 의미가 된 걸까요? ‘시오’처럼 다른 나라 단어인가요?
2-3일을 빠르게 발음하다보니, 삼일에서 ‘사밀’이 된 거예요.
하루를 맞이했을 때, 동력으로 삼는 것들엔 뭐가 있을까요?
전 눈 뜨면 꼭 하는 행동들이 있어요. 제 방 침대 바로 옆쪽 벽에 창문이 있거든요. 눈 딱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개야만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 느낌이 제겐 가장 동력이 되어줘요. 이 행동들을 했을 때 안 했을 때의 차이도 되게 크게 나타나고요.
창문을 열지 않(못하)고, 이불을 개지 않는(못하는) 날은 어떤 상황인가요?
안하고 가겠다는 의지보단, 못하게 되는 상황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급하게 나가야 한다거나, 공사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일찍 깨게 됐다거나. 제가 예기치 못한 어떤 외부의 영향이 있을 때, 흐트러지게 되어 못하게 되는 상황인 거죠.
예기치 못한 하루가 마냥 반가울 순 없는 것 같아요. 그런 하루들이 버거울 때도 있으신가요?
그쵸. 나중에 돌이켜보면, 제가 버거워했던 하루들은 눈을 떴을 때부터 이전의 날들과 다른 균열이 있었어요. 이불을 개지 못하고, 창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도 그런 균열에 해당되고요.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미리 계획을 하는 편이신가요?
모든 일들을 계획하진 않지만, 어떤 건 꼭 해야만 마음이 편해져요. 아침에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개는 것만큼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에요.
요즘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세요?
주기마다 다른 것 같은데요. 요즘엔 유튜브로 타로를 보다 자요.
다음날 내 운명을 알려주는 타로일까요?
아뇨. 다음날을 점쳐주는 타로만 보는 건 아니에요. 앞날이 될 수도 있고, 주간 운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는 타로도 있고. 다양한 주제의 타로 영상들을 보는데, 전 주로 타로를 봐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때문에 자기 전에 보는 것 같아요. 일종의 자장가인 셈이죠.
타로를 통해 알게 된 내용보단, 목소리 자체에만 집중하시는 걸까요?
제가 타로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내용은 담아두려고 해요. 좋은 내용을 흘려보내진 않아요. 그치만 대부분 타로를 봐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집중하려고 해요. 잠들기 전이니까요.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루틴이 무너지는 날들은 어떻게 보내세요?
그런 날들엔 일단 마음이 조급해져요. 뭘 해도 급하게 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고요. 넘어지는 일도 많아요.
어떤 하루나 일을 시작할 때, 실패의 가능성을 안은 채 시작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실패의 가능성. 달리 말하면, 두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궁금해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일단 저 자신이 두려움을 인지하는 데까지 좀 오래 걸려요. 꽤 오랜 시간을 거쳐 두려움을 인지하고 나면, 집중을 분산시키려고 해요. 한 가지에만 몰두하지 않게끔.
현재 운영하고 계시는 나솔글방의 시작이 궁금해요.
나솔글방은 ‘나로부터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라는 의미예요. 저랑 제 친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고요. 시작은 정말 단순했어요. 제가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을 보여줄 곳이 마땅치 않은 거예요. 피드백을 부탁할 이를 찾다 언니에게까지 가게 됐어요. 근데 언니가 계속 글을 보낼 거면 그냥 글방을 열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SNS로 글방 모집을 홍보하게 됐고, 4명이 모여 시작하게 됐어요.
나솔글방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제가 어딘 밑에서 배워왔기에 운영방식은 어딘글방과 비슷해요. 제가 글감을 나눠주고, 그에 맞춰 일주일동안 각각 글을 써와요. 어딘글방과 차이가 있다면, 각자 써온 글에 대한 격려와 칭찬을 주로 진행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계속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들에게 당근만 주는 글방이라고 해야 할까요.
글방의 시작이 ‘내가 글을 너무 쓰고 싶은데 보여줄 곳이 없어서’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하고 싶은 말들에서부터 시작된 마음이에요. 누가 말려도 이야기를 꺼내야 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절 여기까지 이끈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발화하기 위해서, 연습하고 글을 쓰는 단계인 것 같고요.
하고 싶은 말들을 하기 위해 연습하고 계신 거네요. 그렇다면 앞으로 꼭 쓰고 싶은 글이 있으실까요?
글방에 다니다 보면, 늘 저보다 잘 쓰는 사람이 있어요. 로드스꼴라에서 글방을 다닐 땐, 쭌의 글을 닮고 싶었어요. 나솔글방에선 그냥의 글을 닮고 싶었고요. 닮고 싶은 대상을 찾고, 그만큼 잘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닮고자 했던 대상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제가 독자로서 잘 읽혔고, 그 사람만의 고유성이 담겨있는 글들이었어요. 이 사람 아니면 쓸 수 없는 말들이 담긴 글들에 마음이 동했던 것 같아요.
뭔가를 닮고자 하는 마음을 발견하기까지 마냥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질투심이 들 때도 있고, 좌절을 하게 될 때 어떻게 자신을 대했는지 궁금해요.
질투나 좌절까지 가기 전에, 그 대상에게서 무엇이든 얻어가려고 했어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써온 글을 필사해보기도 하고. 닮고자 하는 대상이 넘지 못할 산이라면 그 언저리라도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다가갔던 것 같아요.
물론 얻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땐 깊은 좌절이 오곤 해요. ‘내가 글 안 써도 누군가는 글을 쓸 텐데, 세상에 나올 얘기는 다 나온 것 같은데’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죠. 내 글에 대한 욕구가 고갈되어버리면, 일단 글쓰기를 놓아요. 그럼에도 글방은 열심히 참석해 피드백을 하죠. 그렇게 계속 글을 쓰는 이들을 보다보면, 손과 입이 근질거려요. 그럼 다시 쓰기 시작하는 거예요. 혼자 블로그에 쓰다, 괜찮다 싶으면 글방에 가져가고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루시오는 현재 학교를 다니지 않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학교 밖이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을까요?
최근 들어서는 학교 밖과 안이라는 구분 자체를 지양하려고 해요. 학교 밖과 안이라는 구분선 자체가 정책적으로 그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학교로 인해 영향 받은 것보단, 비건이란 키워드가 준 영향이 훨씬 크거든요.
학교라는 틀 안에선 비건으로 지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학교를 나온 이후, 비건으로서의 삶에 변화가 궁금해요.
학교 안에 있을 때도 비건으로 살아가긴 했어요. 도시락도 따로 싸가고, 친구들에겐 비건에 대해 설파했었죠. 근데 이게 좀 지치고 외롭다보니 학교를 나오게 됐어요. 학교를 나오고 난 후엔 동물권 단체를 찾아다녔고, ‘DxE(Direct Action Everywhere)’란 단체를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함께 행사나 시위에 참여했고요. 그렇게 알게 된 단체 사람들과 소모임을 만들기도 하며, 계속 비건 공동체 내에서 지내왔어요. 무리가 시들해지면, 다른 무리를 찾아서 옮기고. 이 과정을 이어오며 하자센터, 로드스꼴라로 오게 됐어요.
비건으로서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인지한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기억해요. 같이 살고 있던 언니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시기였는데, 언니가 대학생이 되고 비건으로 살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느날 제게 같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했는데, 그 영화가 <옥자>였어요. 영화를 보고나니 도무지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 이후 페스코 비건으로 살아가며 학교를 다녔어요. 도시락을 싸고 다닐거면, 페스코이건 비건이건 똑같다고 생각해 비건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했고요.
비건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루시오에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바뀌어야 하는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책적인 측면에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법이 제정되었을 때 선언하는 바가 크다고 보거든요. 우리 삶 곳곳에 내재된 차별을 인지하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그렇게 서로를 구분 짓지 않고 우리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아까 하루의 동력과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 나눴잖아요. 하루 말고 좀 더 나아가, 루시오의 일주일 혹은 한 달을 이끌어주는 더 큰 동력이 있을까요?
제게 있어 가장 큰 동력이자 가치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에요. 제가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 하다보면 제 손으로 하는 일이 지닌 영향력이 생각보다 되게 크구나를 절감하게 돼요. 자신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나와 연결된 것들을 헤아리는 일. 그 일이 지금의 제겐 가장 큰 동력이에요.
루시오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들인가요?
저한테 ‘우리’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존재들을 아우르는 말이에요. 물론 지금의 제가 모든 걸 사랑할 수 없고 미운 존재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아직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기 어려워, 지금의 제가 사랑하는 ‘우리’들만큼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해요. 동시에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넓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기도 하고요.
손으로 하는 일이 되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루시오의 손을 거친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뭘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보단, 최근에 제 손이 가장 많이 한 일이 떠올라요. 요즘 제가 목공방에 다니고 있는데, 사포질을 계속 하거든요. 사포질이 목공의 기본이다 보니, 오일을 바르거나 조립을 하기 전 꼭 거쳐야하는 단계예요. 거친 원목을 매끄럽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고, 손으로 한 작업 중에선 가장 많이 한 일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아요.
보통 몇 번의 사포질을 해야, 나무가 매끄러워지나요?
사포질을 횟수의 개념보단, 거친 정도를 나타내는 방으로 세요. 숫자가 작을수록 거친 정도를 나타내는데, 100방부터 4000방. 점점 사포 방 수를 키워가며, 나무를 매끄럽게 만들어요. 손으로 원목을 만져가며 계속 체크해야하고요. 계속하다보면 손이 정도를 기억하는 것 같아요.
매끄러워진 나무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 궁금해요.
일단 매끄러워진 나무 하나로는 아무 감정도 안 들고요. 여러 개 쌓여야 이만큼 했다고 인정해줄 수 있어요. 그마저도 지쳐서 아무 생각도 안 들 때는, 옆에 있는 직원분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셔야 저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요.
루시오가 자기 자신을 인정해줬던 순간들은 언제였나요?
저 스스로에게 가치 판단을 내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굳이 가치 판단을 거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저 자신이 해온 것들이 보이면 좋았어요. 요즘엔 혼자 가꾸는 텃밭을 볼 때 기분이 좋아요.
루시오가 지금 축적하고 있는 과정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텃밭을 가꾸고, 목공에서 일을 배우고, 활랩이라는 곳에서 요리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어요. 그리고 영상 작업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기획서를 쓰고 있는 중이고요.
기획 중이신 다큐멘터리엔 어떤 이야기가 담길 예정인가요?
제 어머니 ‘윤옥’에 관한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윤옥께선 삼십 년 동안 가사 돌봄 노동자로 사셨음에도, 당신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신 적도 인정을 받으신 것도 없어요. 전 돌봄 노동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마땅히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에요. 돌봄에서 시작되어, 독립과 의존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은 존재이자, 돌봄을 수행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어떤 이의 위치에선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가하면, 또 어떤 이의 위치에선 숙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현재 루시오에게 돌봄은 어떤 의미인가요?
몇 달 전, 제가 코로나에 걸려 방에서 자가 격리를 했었거든요. 가족이 다 같이 사는데 한정된 공간에서만 생활을 해야하다보니, 누군가는 제게 음식을 조달하는 등의 노동을 수행해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그걸 제 어머니 윤옥께서 해주셨는데 제게 툭 한 말씀 하고 가시더라고요. “나중에 내가 아플 때도 이렇게 해줄 거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순간 그 말을 듣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동시에 이 의문이 드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했고요. 그 생각들을 잇다보니, 제가 누군가를 돌봐야 할 때 필요한 기술들엔 뭐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저 자신이 대비할 수 있는 기술 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비와 연습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권, 돌봄, 성소수자, 일본군‘위안부’ 시위. 루시오는 목소리를 내야하는 순간 늘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아요.
좀 타고난 것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함께 목소리 내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즐겁고 제 삶 자체에 있어 큰 낙이기도 하거든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을 땐, 훌라 춤을 배워 무대 위에 올라갔어요. 집에 돌아오니 윤옥이 저한테 너무 잘했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필요하잖아요.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만큼은 잘 해낼 수 있기에, 올라가 신나게 제 목소리를 내요.
오늘 인터뷰는 루시오에게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난 시간이기도 하고요. 저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고요. 훗날 말씀드렸던 계획이나 동력이 더 커지면, 오늘이 있었구나 돌아볼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그 덕에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다음 주 계획이 있으시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음 주엔 활랩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에 가, 게더링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제주도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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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방 멤버들과 달리, 루시오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오전 10시에 만나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까지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음에도, 루시오는 연신 내 눈을 피했고, 난 공백을 메꾸기 위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일찍 만났건만 효과는 미비했다. 더이상 미룰 수 없어 녹음기 버튼을 누르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루시오에게 질문을 이어갈 때 마다, 내 앞의 루시오가 선명해졌다. 언뜻 보이는 이 사람의 삶이 너무도 반짝거려 뽑아온 질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약 두 시간 남짓한 대화 끝에, 감히 루시오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럼에도, 감히 루시오를 명명해본다.
'사랑을 동력삼아 부유하는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