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 이후 마음이 찹착하고 우울한 마음이 계속되네요.. 이글을 끝까지 읽으실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동안 OOO님을 진심으로 대하며 든 정이 있어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참 많이 안타깝습니다. 먼저 호칭에 대해서 민감하시니 따님도 아니고, 사역자도 아니고 선생님으로 칭하겠습니다(저보다 몇년 앞서 태어나셨으니)
동의하실리 만무하지만 그냥 제 속 이야기 몇 자 적고 이것으로 연락을 가늠하고자 합니다.
1. 호칭에 대하여
사역자님이라고 부르지 않아 많이 분노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르는데 저는 고집스럽게 그렇게 부르지 않아 마음이 불편하셨나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호칭은 여러 차례 선생님이 강조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본인은 직통하고 있고, 국회위원들도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스님들 전도하고, 목사님들 가르쳐 회개시키고.. 이런 저런 사역들을 하니 본인은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사역자라고 소개하셨지요. 누구도 하지 못하는 대단한 일을 하시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동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많습니다.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대개 본인은 하나님과 직통하고, 직접 말씀해주시니 본인이 말하는 게 하나님의 뜻에 맞다는 그런 취지의 이야기들이었지요. 이 말이 참 거슬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기도 하지만, 자연을 통해, 흔들리는 꽃을 통해서도, 길을 걷는 강아지의 '멍~멍~' 하며 짖는 짖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을 하신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왈가불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건 선생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니까요. 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의 개인적인 체험을 일반화시킬 때에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선생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이야기하는 순간 그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가요? 이런 류의 생각을 가진 이들 때문에 역사는 크나큰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가령 예수의 탄생을 경계하며 베들레헴의 두살배기 이하 남자아이들을 학살했던 헤롯왕이 그랬고요,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자신의 생각 이외의 것을 전혀 용인하지 못하는 태도가 이런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게 모두 하나님의 뜻의 전부라 생각하신다면 선생님은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다양한 은총을 제한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직통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처럼 착각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 인식하게 됩니다. 이게 고착화되면 소위 이단이 되는 것이지요. 초기 그리스도교를 흔들었던 영지주의(靈智主義) 같은 이들이 그랬지요. 자신들만이 특별한 지식(계시, 지혜)이 있다 여겼더랬지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발설하는 말이 달라지게 됩니다. 자신의 말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어떠한 여지도 없이 지시하고 판단내려 말하는 확정의 언어를 명령하듯 사용하게 됩니다. 어머니 되시는 OOO님에게조차 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사역자라 부르게 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중 자신은 유기성 목사급 정도 되어야 말이 통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유기성 목사급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도 순간 같은 생각을 했더랬지요. 제가 더이상 이야기할 상대가 아니구나.. 우리 예수님은 대화를 할 때 대화할만한 급을 나누어 선별적으로 대화하시지는 않았으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과는 대화가 불가능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랑을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치고 전해주어야 할 선생이자, 여전히 그 사랑을 받아야 할 제자(학생)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도 틀릴 수 있구나, 나는 여전히 배워야하는 존재구나 하는 자의식이 있어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길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선생님이 말하는 사역자님이란 말이 자꾸 특권의식처럼 여겨져 저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 교회의 치리에 관하여
*** 할머니를 왜 교회에서 강하게 치리하지 못하느냐 하셨지요? 교회는 잘못한 일에 대해 무작정 덮어주는 곳도, 무작정 벌하고 제재를 가하는 곳도 아닙니다. 사람을 그리스도인답게 세워주고 만들어가는 곳이지요. *** 할머니와 OOO 간(아니 선생님과도 연간이 되겠네요)의 문제가 이토록 커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지요? 초기 저는 모르는 선생님과 *** 할머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양쪽으로부터 자세히 들은 바가 없는지라 그 구체적인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때 이후 *** 할머니는 극도로 불안해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선생님이 무섭다고 말한 적도 여러번입니다. 그래서 자꾸 부딪히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으니 될 수 있으면 찾아가지도 말고 이에 대해 자꾸 말하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후에 할머니는 그 원망을 OOO께 돌리면서 두 분의 관계가 소원해지셨지요. 할머니도 잘 하신 일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자꾸 문제가 커지는 것을 경계하며 숱하게 이에 대해 권면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래서 겨우겨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두분이 만나시면 여전히 티격태격 하십니다. 그렇다고 얼굴을 완전히 붉히지는 않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서로 챙겨주시고 조금씩 조금씩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다가도 늘 말 실수는 있는 법이라 서로 뭔가 이야기를 잘못하면 또 티격태격하시지요. 사람이 변하는 데에는 단시간이 걸리는게 아닙니다. 다 아시잖아요? 저희가 판단하기에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전화를 받게 된 것이지요. 가족이 못나오게 하시면 저희로써도 어찌할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기도하면서 쌓인 정이 있기에 많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OOO도 다른 교회로 옮기시는 것에 대해 같은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교회에 오시는 것을 워낙 고대하시고 좋아하셨던 터라... 어쨌든 왜 교회에서 단호하게 치리하지 않느냐 하셨는데, 그동안 교회식구들이 두분을 얼마나 위해 애쓰고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교회의 치리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관심하며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잘못했다고 바로 내치는 교회라면 교회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못나고 죄 많고 실수투성이인 이들이 모인 곳이 교회 아니던가요? 왜 기다려주지 못합니까?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게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도 모르신 채 왜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을 치리하지 않느냐 하시면 저는 어찌 해야 하는지요? 사실 이렇게 분노하시는 분은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저희 교회 식구들은 두분의 상황을 다 아시지만 다들 넉넉히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단지 선생님이 지금의 상황을 못견디고 계실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가족이시니 보내지 않는다면 저희로서도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3. 어머님 OOO에 대해
제가 제일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딸에게 조차 늘 꾸중을 들으시며 주눅들어 계시니 살맛이 날까 싶습니다. 그동안 심방하며 선생님 가정의 가족사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잘못된 모든 가족사의 원인을 어머님 OOO께로 돌렸습니다. 사탄이 엄마 속에 들어가서 다 행한 것이라고요. 그런데도 아직도 엄마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요.. 이 이야기를 매번 들어야만 하는 어머님 OOO의 심정이 어떠실까 감히 가늠조차 어렵습니다. 부모님들이야 원래 자식들 잘 못된 것에 대해 본인을 책임이라 여기시는게 일반이나, 거기에다 대고 다 엄마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고 수없이 반복을 한다면 어머님 OOO은 숨쉬기조차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어머님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그리 됐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여전히 그 일을 끄집어 내어 때마다 수시로 어머님에게 말한들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보통의 자식이라면 그 일로 인해 크나큰 부담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계실 부모님을 그 끝없는 과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해보자고, 내가 어떻게든 본인이 해보겠노라고 할 것만 같습니다. 자식인데.. 그리고 내 부모인데...
선생님은 자식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사역자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목사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게 되면 그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 됩니다. 누구에게나...
말이 길었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속에 있는 말 두서없이 꺼냈습니다. 아직 할 말은 더 있으나 부질없다 여겨져 이제 그만 줄입니다. 부디 두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OOO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 많이 힘드셨겠어요. 새삼 끊다와 접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인연을 끊는다, 인연을 접는다...
살다보면 참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을테지요.. 각자의 삶을 존중하나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의 삶을 옥죄는 삶이라면 한번쯤 들춰내 그 실상을 알게하는 것도 좋지않나 싶어요..
많은 사람들 중 종교인들이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신념을 하늘의 뜻이라 굳게 믿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이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고집스럽더군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종교지도자들이 그랬지요..
암튼 저분 덕분에 인생공부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 세밑입니다.. 올해 제곁에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인연 이어가며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그러니 내년에 더욱 힘을 내시길, 건강이 발목잡지 않기를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희망의 빛이 스미는 복된 새해 맞으시길 빕니다!^^
💌 감사합니다, 목사님.
인격자에게는 악인도, 감옥도 인생공부를 하게 해줍니다. 저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는 반면교사 역할을 했다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답니다.
새해에도 목사님과의 소중한 인연이 끊기거나 접힘 없이 이어지고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Many Many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내년에 제가 서울 올라가거들랑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따순 밥한끼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