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나 봐요. 막내의 분홍장갑을 만들어놓고요. '지상의 램프를 껐다'는 말이 가슴아프게 다가옵니다. 눈을 감으면 늘 엄마 생각이 떠오르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엄마의 냄새입니다. 분홍장갑을 만지며 막내동생은 놀아요. 엄마에 대한 기억은 분홍장갑 뿐입니다.
온종일 어린겨울과 놀았어요 어느 눈 내리던 날
장롱 위에서 잠든 엄마를 꺼내 한 장 한 장 펼쳤죠 (우리 막내는 왜 이렇게 손이 찰까)
그리우면 손톱이 먼저 마중 나가는
어린, 을 생각하면 자꾸만 버튼이 되는 엄마
눈사람처럼 희고 셀러리보다 싱싱한 이제는 나보다 한참 어린 엄마
종일 막내동생과 놀았어요. 손을 호호 불며 놀아겠죠. 그리곤 엄마가 보고싶어서 사진 한장을 펼치는군요. 엄마는 저세상에 있지만 막내 걱정입니다. (우리 막내는 왜 이렇게 손이 찰까) 엄마의 마음이 시인에게 옮겨온 것 같습니다. 그리우면 손톱을 물어 뜯을까요? 그런 동생을 생각하면 엄마가 자꾸 생각납니다. 이젠 내 나이보다 더 어린 엄마가 사진 속에 있습니다.
소곤소곤 곁에 누워 불 끄고 싶었던 적 있어요
그녀 닮은 막내가, 바닥에서 방울방울 웃어요
놓친 엄마 젖꼭지를 떠올리면 자장가처럼 따뜻해지던 분홍
그녀, 마지막 밤에 파랗게 언 동생 손가락을 털실로 품은 걸까요
누구나 어릴 땐 엄마 곁에서 자고 싶죠. 엄마와 나란히 누워 옛이야기하며 스르르 잠드는 밤을 꿈꾸죠. 막내만 떠 올리면 엄마의 분홍 장갑이 생각납니다. 엄마는 죽기전에 막내의 분홍장갑을 뜨신 걸까요?
반쯤 접힌 엽서를 펼치듯 창문을 활짝 열면
어린 마당에 먼저 돌아와 폭설로 쌓이는 그녀
더는 이승의 달력이 없는, 딸기 맛처럼 차게 식은
별똥별 나의 엄마
'어린 마당'은 막내겠죠. 막내 생각에 눈으로 쌓이는 엄마는 더 이상 이승에는 없습니다. 제목이 외계인이니까 '별똥별'을 불러왔습니다.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아이스크림 이름이 도치되어서 '별똥별 나의 엄마'로 돌아왔습니다. 어떨 땐 '엄마'가 들어간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죠.
꼬리 긴 장갑 속에서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든 동생의 손이
주머니 속 캥거루처럼 쑥쑥 늙어가요 장갑이 막내의 손보다 좀 컸을까요? 손을 집어넣어도 한마디만큼 여유가 있어서 막내의 손은 그 속에 캥거루처럼 들어앉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절히 보이는 시입니다. 이 시가 적힌 날은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이었을 거예요. 분홍장갑만 보면 엄마 생각, 동생 생각이 절로 나는 겨울밤이었겠지요. 동생과 시인만 남기고 일찍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을 거예요. 이젠 아마 시인에게도 아이가 있지 싶어요. 아이에게 분홍장갑을 짜 주었는데 분홍장갑이 헐거워서 손가락 몇 마디만큼은 공간은 있었을 테지요. 그 공간이 캥거루의 주머니처럼 보였나 봐요. 시인의 관찰력이 대단한 부분이죠. 이젠 젊은 엄마의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든 시인은 별똥별이 된 엄마와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잘 수 있다면, 하는 소원을 빌어 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처럼 너무 짧습니다. 안타깝지요. 그러나, 그런 사랑이 있으므로 우린 또 살아갑니다. 담담하게 남 얘기하듯 하지만, 시인의 그런 자세가 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좋은 시는 긴 여운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