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깨달음은 1초면 충분하다
제1편. 깨달음은 언제 찾아오는가?
다음 날 아침,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밤새 원고를 펼쳐 놓았지만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창밖은 이미 밝아졌고, 식어 버린 커피에서는 희미한 쓴 냄새가 났다. 책상 위에는 철학과 불교에 관한 책들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어제 읽었던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여백에는 자신이 적어 놓은 질문들이 빼곡했다.
그러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민석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음을 억지로 다스리기보다 먼저 바라보라는 말.
과거의 잘못을 책임지되, 과거가 자신의 미래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말.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이 자기 삶의 전부라고 믿지는 말라는 말.
작가는 그 말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면 마음이 흔들렸고, 정성껏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자신에게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이 실패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책을 읽어 왔다. 선과 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을수록 새로운 질문이 생겼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은 평생 수행하면서도 작은 일에 쉽게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뜻밖의 순간에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가?
깨달음을 얻으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 하나를 내려놓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때 방문이 열렸다.
민석이 들어왔다. 그는 책상 위에 쌓인 책들을 바라보다가 작가의 얼굴을 살폈다.
“작가님, 어젯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습니까?”
“생각이 많아서 그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셨습니까?”
작가는 책 한 권을 들어 보였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 수행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깨달음은 한순간에 찾아온다고 하더구나.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민석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작가님은 깨달음을 얻으려면 얼마나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행하는 사람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
“그렇다면 30년 동안 수행한 사람이 1년 동안 수행한 사람보다 반드시 더 많이 깨달은 것일까요?”
작가는 잠시 생각했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 오래 공부했다고 해서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더 오래 배우고,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작가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석은 책 한 권을 펼쳤다. 책에는 마음을 비우는 방법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었다. 그는 몇 줄을 읽다가 다시 책을 덮었다.
“작가님,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속상해하고,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렇겠지. 책에서 배운 대로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책을 읽는 동안 이해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말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일까요?”
작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겠지. 적어도 자신이 왜 괴로워하는지 돌아볼 기회는 얻었을 테니까.”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알아차리는 것, 그것도 깨달음의 시작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는 민석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1초면 충분하다는 말이냐?”
“어떤 순간의 깨달음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깨달음대로 살아가는 데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민석은 책상 위의 물컵을 가리켰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작가는 컵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작가님이 실수로 이 컵을 떨어뜨렸다고 해 보겠습니다. 컵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날 수도 있겠지요. 왜 조심하지 않았을까, 왜 하필 아끼던 컵을 깨뜨렸을까 하고 자신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잠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 보십시오. 컵은 이미 깨졌고, 아무리 후회해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계속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깨진 조각을 치우고 다음부터 조심하는 일이 아닐까?”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말을 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탓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생각을 바꾸는 것이지요. 사건은 그대로인데 그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말이냐?”
“깨달음의 작은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컵 하나를 깨뜨린 일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다릅니다. 큰 상처나 상실을 단순히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끝없이 비난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행동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순간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작가는 물컵을 바라보았다.
그는 얼마 전 중요한 원고를 잘못 저장해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일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실수 자체보다 자신이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며 화를 냈다. 몇 시간 동안 자신을 탓했지만 잃어버린 글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남아 있는 자료를 확인하고, 기억나는 부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을 비난하던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민석아,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실제로 알아차리는 일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후회스러운 일을 겪으면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민석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순간에는 그 차이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천천히 되뇌었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찾아올 수 있지만, 깨달은 대로 살아가는 것은 평생의 일이다.”
“그렇습니다. 한 번 깨달았다고 해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고,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지요.”
작가는 미소를 지었다.
“불교에서는 이런 순간적인 깨달음을 돈오라고 부르기도 하지 않느냐?”
“예. 돈오는 단번에 깨닫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불교의 여러 전통에서는 깨달음과 그 이후의 수행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한순간에 진리를 깨닫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과 집착이 모두 저절로 사라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깨달았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겠구나.”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잠시 웃었다.
작가는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그가 찾았던 것은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해 줄 완전한 답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민석의 말을 듣고 나니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깨달음은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꺼번에 이해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는데, 다른 사람의 말을 다시 들어 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짧은 순간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깨달음이 시작되는 순간과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 내는 시간은 서로 달랐다.
작가는 그 차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