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손자에게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옛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오랜 기억을 되살려 여기에 적어둔다.
지금으로부터 43년전 오늘.
1969년 5월 16일 10시 부산 제3부두에서 온 국민과 부산시민들의 뜨거운 한송을 받으며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포화속 전쟁터 베트남으로 떠난다.
포항 제1상륙사단 5연대 본부 군수참모실에서 연료 담당이라는 좋은 직책을 마다하고
참모를 3개월간 설득하여 마침내 허락을받고 4월 15일 한달간 실시하는 현지적응 훈련을
받기위해 파병부대에 입소하였다.
한달간의 훈련을 열심히받고 출발하루전.
가족 면회가 이루어진다
많은 가족들이와 면회소은 발들일 틈이없다
정성들여 가지고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대화들로 시간이 흐르고
작별의 시간이오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부모형제.친구들과의 마지막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우리는 차에올라 추체할수없는
슬품을 군가를 부르며 울부짓는다.
기약할수없는 이별인지라 보고 또보고 그 모습 마음에 오랫동안 간직하고파
주체할수없는 눈물를 흘리며 소리쳐 외쳐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허전한 마음을 달랠길없어 그저 침묵할뿐이다
그날 저녁 나는 동기생 3명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국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남기고
무사 귀국을 바라면서 마음속에서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면서 말없이 소주잔을 나누었다.
하얀 밤을 지새우고 새벽5시 완전무장을 하고 수송차에 올라 포항역으로 향한다.
모두들 아무 말없이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열차안에서 무거운 침묵을 깨는 군가 소리가 들린다
그재서야 모두들 함께 군가를 부르며 부산항으로 향했다.
부두에는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군악대에 맞쳐 백마와 청룡의
파병가를 힘차게 부르고 있었다
부두에 정박하여 있는 수송선을 보니 왠지 마음이 울적하여졌다.
우리는 비장한 마음과 각오로 배에 승선하엿다
백마는 상갑판 청룡은 후갑판에 배정이 되었다
무장을 선실에 두고 갑판으로 올라와 환송객들과 목이 터져라 청룡가를 부른다.
군악대의 힘찬연주와 환송객들의 함성 파병군인들의 군가소리로 부두는 떠나갈듯 하였다
잠시후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는 서서히 항구를 미끄러지듯 벗어난다
우리는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고 손이 떨어져 나가도록 흔들어댄다
" 삼천만에 자랑인 대한 해병대
얼룩무늬 번쩍이며 정글를간다
월남에 하늘아래 메아리치는
귀신잡는 그 기백 총칼에담아
붉은무리 무찔러 자유지키려
삼군에 앞장서서 청룡은간다."
사랑하는 부모형제. 그리운 고향산천을 뒤로하고 기약없는 전쟁터로 떠난다.
모두들 눈에서는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고파 안달을 했었던 전쟁터. 이제야 실감이 난다.
수송선은 오륙도를 뒤로하고 머나먼 남지나해로 향한다
선실로 돌아와 침대를 배정받고 모두들 침대에 업드려 말없이 흐느낀다.
그렇게 오랜 침묵이 흐르고 밤이오고 해가뜨고 3일째 되던날 망망대해 바다에는
서서히 파도가 거세어진다. 여기저기에서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나도 속이 메스꺼워 선실로 돌아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조금 나은것같았다
다음날은 바다가 잔잔하여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오늘은 항해수당을 개인별로 지급한단다
1인당 약 10불 인걸로 기억이난다
수당 지급이 끝나니 수송선내 p.x가 문을연다
모두들 처음 접해보는 양담배와 초코렛.콜라등을 사서 갑판으로 올라갔다.
모처럼의 밝은 얼굴로 대하들를 나눈다.
잠시후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
당신과 나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남진에 가슴아프개 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단골메뉴다.
그렇게 5박 6일간의 항해가 끝나는 날. 다시 긴밤을 지새우고 먼동이 트기도전에 모두들 갑판으로 올라간다
그 순간 우리모두는 초긴장 상태로 돌아간다
멀리서 들리는 포성소리와 함깨 그곳에는 검불은 화염이 솟아 오른다
잠시후 바람과 함께 화약냄새가 얼굴에 와 닿는다
이제야 우리가 정말 전쟁터에 왔구나 하는 생각에 모두가 긴장하고 침묵할뿐이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니 육지에서는 작은 배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그들은 삶에 현장으로 나가는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무장을 챙기고 하선 준비를 하였다
오늘 이 전우들이 일년뒤 귀국선에서 다 만날수 있도록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본다
한 사람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모두들 몸 조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꼭 그렇게 되기를 눈을감고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동녁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니 갑자기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하선하여 부두에 내리니 아스팔드의 뜨거운 열기가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한다
각 소대별로 부대 이동이 시작된다.
선두에는 다연발 기관총으로 무장한 짚차가 서고 후미에는 앰불런스와 통신차가 따른다
하늘에서는 헬리콥터가 이동차량을 캄보이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배에서 내린곳은 베트남의 제2도시 다낭 이라는곳이다. 우리나라의 부산이다
다낭에서 호이안시 부대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안전하게 부대에 도착하여 1주일간의 현지 적응 훈련을 받기위해 숙소에 무장을 풀었다
다음날 첫훈련이 시작 되었다..나는 그날 교관의 첫 말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안는다
" 땀 흘리는자 피 흘리지 않을것이며 훈련을 열심히 받는자 살아서 돌아 갈것이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전투수영.여러가지 총기 사용법.방카 짓는법.응급 처치법등
실전에서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마쳤다
다음날은 우리의 생사가 좌우되는 부대 배치가 있는날이다
모두들 위험한 부대로 배치되지 않기길 바라면서 촉각을 곤두새운다
맨 처음 1대대.2대대.3대대.5대대.포병부대.그리고 본부중대 순이다
그런데 포병부대까지 배치가 되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지않는다
나는 보병이라 당연히 예하 대대로 갈거로 생각했는데 . 이상하다
모두들 떠나고 몇명 남지않았는데 잠시후 내 이름이 호명 되었다
여단 본부 경비중대 란다.그러니까 청룡부대를 경비하는 중대란다
이건 하늘이 보살핀 운명이라나?
그렇게 부대 배치가 끝나고 전선에서의 생할이 시작 되었다
주된일은 주간에는 벙커작업에 부대 정비.
야간에는 매복과 초소근무를 번갈아한다
전쟁터 인지라 항시 위험은 뒤 따르고 언제 어디서나 생명의 위험은 도사린다
그러던 어느날 국내 최고의 가수들이 연예대로 파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대본부에가니
남진.진송남.태원.이명진 4명의 가수가 청룡으로 전선으로 왔다
몇일뒤 식당에서 태원이가 나에게 다가와 묻는다
" 혹시 여기 한국식당이 없습니까? "
나는 어이가 없어 " 이봐요 박수병 여기는 전쟁터 입니다 정신차리시요 "
태원이의 본명은 박태원이다. 리나박이 누나이고 작곡가 김희갑씨가 매형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남진의 본명도 김남진이다. 남진의 자라온 과정과 많은 이야기들를 남진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우리랑같이 베트남에 오면서 알수있었다
하지만 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기서 남기지는 않겠다
전선에서의 생활도 차츰 적응이 되어가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상사와 선.후배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며 생활해야지 시간도 잘가고 즐겁게 보낼수 있어서이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지열로 움직일수가 없어서 주로 이른 아침이나 해그름에 일를 많이한다
밤에는 모기와의 전쟁을 해야한다. 베트남 모기의 사정거리가 모포3장 이라니 짐작이 갈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밤에 이루어진다. 낮에는 더워서 잠을자고 밤에 작전이 이루어진다.
밤마다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보면 여기저기서 포성과 함께 검붉은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지금 저곳에선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겠지?
이국땅에서 오직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이슬과같이 사라진다
전쟁은 비극이고 전쟁은 멸망이다. 지구상에서 어떠한 명분으로라도 전쟁은 없어야한다.
그렇게 뜨거운 건기철를 보내고 우기철로 접어 들었다
날씨가 시원해서 좋기는한데 비온뒤의 후덥지근함은 짜증 그자체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어느날밤. 우리는 매복을 서기위해 목표지점으로 이동하였다
청룡부대는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는 큰강이흐른다
우리는 강으로 헤엄쳐 올지모르는 베트콩을 막기위해 강가에서 매복을 서야한다
갈대가 2미터가 넘는 강주변은 비무장 지대처럼 습지로 되어있다
건기때는 앉거나 잠시 누울수도 있지만 우기때는 밤새도록 무거운 철모에 후덥지근한 판초.
거기에 방탄복에 수류탄과 M16 소총을 들고 밤을 꼬박 새워야한다.
혹시 모를 베트콩의 침투가 있지않을까 잠시도 긴장을 늦출수가없다
무사히 밤을 지새우고 본부에오면 긴장이 풀리면서 그대로 쓰러진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녁에 강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통신병이 본부에 무전으로 상황보고를하고 본부지시로 사격 준비를 하였다
잠시후 조명탄 발사를 신호로 무자비한 사격이 시작되었다
약 5분간의 사격이 끝나고 조명탄아래 건너편에는 적막만이 흘렸다
날이 밝아 건너편 정글에는 어제 아무일 없었다는듯 조용하기만하다
아마 베트콩들이 사살되었어도 강물에 떠내려 갔을것같다
그 현장에는 우리가 들어 갈수가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어느듯 6개월이 흘렀다.
첫댓글 역시 대한의 건아다! 훈련하면 나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나 퍼마실때는 사정없지만 쳐박혀 정진과 움직이지 않을때는 몇 달이고
해내는 것은 그 지긋지긋한 특별난 나의 훈련기가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참 세영이도 고생깨나 했네그려!
손자에게 귀감이 될 이야기가 될 것이다. 카페지기
남운.오랫만일세...사실 이글를 여기 남겨야하나 많이 망설였는데 좋은 의미로 평가해주니 다행이라 생각하네.
다른 친구들도 좋은 의미로 봐 줬으면 좋겠다....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좋은 계절에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되길 바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