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만난 제자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재단 사역자 한 명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더작은재단은 서울 안국동 북촌에 있다.
여기에는 헌법재판소, 정독 도서관, 현대건설, 중앙고, 덕성여고, 재동 초등학교 등이 있다 또한 북촌뿐만 아니라 인사동, 적선동, 서촌, 종로, 광화문, 경복궁, 한옥마을 등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유명한 관광지다. 그래서 먹을 곳이 많고 볼 곳도 많다. 실제로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학생들도 체험학습 시간을 활용해 북촌을 많이 찾는다.
아침부터 가고 싶은 음식점이 있었다. ‘온미관’이라는 한식 음식점인데, 깨끗하고 음식이 정갈하다. 함께 가는 재단의 ‘이든’ 사역자도 좋다고 했다. ‘
장마철이라 한참 미친 비가 쏟아지더니, 이내 가녀린 여인의 허리같은 가랑비로 조금씩 내리는 시간이었다. 혹시 손님이 많지 않을까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앉을 자리는 있었다. 음식을 주문해 먹으며 이든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든과는 주에 한 번씩 말씀 나눔을 하고 있었기에 성경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진 것 같았다.
식사를 다하고, 계산대에 섰다.
그 때 나를 보던 직원인듯한 청년이 내가 내민 카드를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최관하 선생님?”
내 이름이 한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순간 흠칫 놀랐다. 이든도 그 청년을 함께 보았다. 나는 순간 이 의젓하고 잘생긴 청년이 ‘제자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또는 ‘어디에선가 만난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교회와 다양한 공동체에서, 전국의 여러 곳에서 사역을 하다보니 그동안 예상치 못한 만남을 해왔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청년의 이름이 잘 생각 나지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청년은 웃음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맞으시죠? 저, 영훈고 졸업한 찬혁이요.”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금세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졸업 후에 처음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혁이’, 제자들의 이름과 폰번호를 모두 가지고 있는 나는 잠시 카톡을 이용해 찬혁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아!, 찬혁이. 잠시만~.”
2017년 영훈고 1학년 학생 찬혁이, 영훈고에 첫 채플을 진행하던 2017년 그 해 입학한 아이였다. 그제서야 성실하고 착했던 고등학생 찬혁이의 모습이, 현재의 청년이 된 모습과 오버랩 되었다.
“우와, 찬혁아! 생각났어. 오랜만이야. 여기서 일하고 있는거니?”
“네, 선생님. 대학 다니는데 방학 중이라 8월말까지만 알바로 근무하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찬혁이의 삶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찬혁이는 이어서 말했다.
“저, 체대 다녀요. 선생님,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되네요. 퇴임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좋아 보이세요.”
나는 옆에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든을 소개했다.
“그래, 찬혁아, 나도 기쁘다. 옆에 있는 분은 우리 재단 직원이야. 나 없어도 여기 밥 먹으러 올 수 있으니까 기억하렴. 그리고 선생님을 모른 척 할 수도 있는 건데, 알아보고 인사해주어 참 고맙다. 너,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같아 무척 기뻐. 잘 지내다가 또 보자~~.”
나는 찬혁의 눈을 보며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찬혁아, 선생님 이제 가야 하고 너도 일해야 하는데, 고등학생 때처럼 선생님이 기도 한 번 해도 괜찮니?”
찬혁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식당 계산대 앞에서 찬혁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찬혁이와 그 앞길에 가득 넘치길 축복하며 기도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함께 기도하는 스승과 제자에게 가득 넘치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기도한 후 나는 찬혁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찬혁이와 헤어진 후 돌아오는 길에, 이든이 이렇게 말했다.
“사길 저는 정말 놀랐어요. 사실 제자 입장에서는 옛날 선생님 만나면 피할 수도 있고, 자기가 변했으니까 모른 척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먼저 선생님 알아보고 인사하고, 와~ 감동입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지? 너무 감사해. 그리고 이든도 지금 그런 청소년 제자들을 만나고 있잖아. 또 그 제자들이 훗날 이든에게 찬혁이처럼 이렇게 다가올거야.”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갑작스런 만남이었지만 제자와의 만남은 이렇게 항시 즐겁고 기쁘다.
식당에 들어올 때 가랑비가, 조금 굵어진 빗줄기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