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6
현역군인 상병인 둘째만 제외한 가족 모두가 21일 동안이나 뉴질랜드에 다녀 왔습니다.
큰애가 대학시절 마지막기회라며 방학여행을 제의해서 아빠가 정말 큰 용기를 냈습니다.
시간적, 경제적 출혈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긴시간을 여행하는 건 학교때 방학을 제외하곤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엄두가 안나 남편을 설득한 건 저였습니다.
등산을 할 때는 산장에서, 나머진 캠퍼밴이라고 마치 작은 원룸 한 채의 기능을 가진 차에서 함께 자는 겁니다.
첫번 도착지는 오클랜드입니다.
오클랜드공항에 도착한 건 오전 8시50분..
남섬으로가는 국내선공항으로 옮겨가야해서 조바심이 나는데
그만 남편 신발에 묻은 흙때문에 말썽이 되었습니다.
미리 얻은 정보로 물로 씻기까지 했는데 신발 틈새에 흙이 끼다니...
(뉴질랜드는 아~주 엄격한 세관이나 통관 검사 기준을 적용합니다. )
시간이 없어 제가 잘못을 얼른 인정 했습니다.
벌금 200불을 바로 각오 했죠...
사무실에 다녀 오더니 '요번 한번은.. ' 하고 넘어가더군요,, 엄한 얼굴로 경고하고...
아마 일센티도 안되는 작은 흙덩이라서였을 겁니다.
안도할 틈도 없이 국내선 공항으로 옮겨가서 퀸즈타운행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여유가 생겨서
"오늘 200불 벌었다!"
원인 제공자인 남편은 비로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남섬의 가장 멋진 도시 퀸즈타운입니다.
한국에서 출발해 퀸즈타운에 도착한 건 세계 3 대 트래킹 코스라는 밀포드 트래킹과
행글라이더, 그리고 곤돌라를 타고 가서 한다는 룻지를 타 보자는 거였습니다.
곤돌라를 타고 산에 올라 시내전경을 찍었습니다.
점심으로 멕시코음식...
저녁은 터키식으로..
큰일입니다. 남편이 향신료때문에 힘들어해서
케챱을 조금 더 얹어 주는데 1불을 내고 겨우 도착 당일 두 끼니를 때웠지만
처음부터 음식때문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기와 생선이 흔해 값이 싸다는 정보는 잘못된 정보인 듯 합니다.
2인분에 135불이면 거의 12만원, 네명이니 24만원, 하루 세끼 작게 잡아도 3~40만원..
이렇게 20일간을 세 끼를 먹으면?
그건 아니죠!!!!
물론 우리가 간 곳이 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유명한 장소이기도 했겠지만....
여행정보지에 나온 것을 신봉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는 내내 비행기에서 공부까지 했는데....
식비의 예산이 나오니 여행경비가 여간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고 간 고추장과 레토르트식품, 그리고 김, 깻잎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짐이긴 했지만...
우리는 등산배낭 하나씩을 각자 지고 자기짐을 넣은 캐리어도 하나씩 끌고 다니는 형편이었습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도 있던데
요즘은 어딜가나 내집만큼 편한 곳은 없다는 걸 새삼 절감합니다.
2010. 1.7
일단 걱정 다 잊고 퀸즈타운에 있는 청옥빛 와카티푸호수에 바람을 쐬러 걸어갔습니다.
외국에 온게 실감이 났습니다.
한가한 느낌의 이국적 풍경.. 맑고 푸른 하늘.. 물빛..
주변 사람들은 색색의 얼굴을 하고, 낯선 체형의 사람들도 넘쳐 났습니다.
쩗은 바지 조각, 티셔츠가 비일비재하고..
근데 전 자꾸 춥게 느껴졌습니다.
알고보니 정말 그 나라 사람들은 추위를 별로 안탄다네요.
거의 방에 난방도 안하고 살더군요...
높은 세율에 국민들은 돈도 없고, 실제 추위도 덜 타고...
전 잔뜩 껴 입었는데도 오슬오슬한 날씨였습니다.
남극과 가까운 위치니까요..
우리와 반대로 여름이라지만 이상기온으로 최고 온도가 4~5도.. 근데도 핫팬츠라니...
하긴 더울 땐 25도까지 올라 가는 게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한 도시에 한 activity! '
라는 캣치프레이즈로 아이는 본격적으로 놀이에 돌입했습니다.
곁다리로 저도 용기를 내 보았죠..
속도감에 자꾸만 겁이 나서 두번이나 서 버리긴 했지만 도착점까진 잘 왔습니다.
산위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서 타고 내려오는 '룻지'라는 놀이기구입니다.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뉴질랜드 특산물인 청옥이라는 돌을 닮은 와카티푸호수의 물색이 푸르고
타샤의 정원에 나오는 디기탈리스가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어니서나 그렇지만 길가에 핀 꽃은 초원에 가득이라고 표현하는 게 마땅합니다.
어디 한군데 이렇게 핀 게 아니라 들판 가득이거든요..
우리나라 세 배 넓이에 인구가 겨우 십분의 일, 400만이라니...
나라 전체가 마치 이사 나간 휑한 집처럼 도시가 아니면 사람 구경이 힘이 듭니다.
그러니 뭐 돈 될 일을 할 수나 있습니까?
장사를 해도 살 사람도 없고, 또 만들 사람도 없고..
며칠 지내다보니 '참 멋진 풍경 속에 싱겁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겠구나' 싶어
아옹다옹 수선스럽게 사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도시라 해도 한 시간 돌면 그게 전부니까 싱거워진 우리는 호수주변을 산책했습니다.
민들레 사이로 말갈기처럼 바람에 날리는 꽃사이에서 사진도 찍고
정말 한가로이 대낮에 남편과 산책을 할 때도 있었네요...
늘 바삐 살다가 그런 호젓한 시간이 낯설어 어색했지만 무위의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무념무상...
조급함 속에 쫓기듯 살아 왔음을 실감했습니다.
구름과 눈에 덮힌 산이 너무나 아름다워 호텔 문앞에서 사진도 찍고..
여행 다녀오면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니까
게다가 아는 언니말로는 지금보다 조금 더 지나면 사진 찍기도 싫고 보고 싶지도 않다더군요..
자신의 노추가 인정하기 싫어져서...
그러니 아직 덜 늙은 오늘 한장이라도 찍어 여행기에 올려 보는 거죠.
호숫가에는 바다 갈매기가 있습니다.
누군가 빵부스러기를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떼지어 와서 사나운 소리를 지릅니다.
갈매기가 생선을 먹으니 잡식조류이긴한데 사나워보인 건 요번이 처음입니다.
음식 앞에선 서로를 견제하고 들고 선 사람에게도 위협적인 존재라 음식을 주어서는 안되겠더군요..
한번 주면 달아나지도 않고 동그란 눈을 뜨고 눈치를 보는데
마치 낚아채려고 노려보는 것 같아 무섭습니다.
다음날 낮엔 길가에서 햄버거를 샀는데 크기가 점보입니다.
다행히 입에 맞아 안도하고 바닷가에서 먹으며
행글라이더 예약상태를 확인했더니 바람이 너무 강해 취소되었답니다.
다시 퀸즈공원을 산보했습니다.
아이들이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있던데 그런 놀이터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한 아이가 갈매기에게 먹이를 줍니다.
정지한 듯 비행하며 아이와 교감하는 게 아름다웠습니다.
아이의 순수함은 동물과의 친교가 가능한 모양입니다.
저녁엔 한국식당에 가서 낙지전골과 김치찌개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토종인 우리 가족에겐 특히 큰 위로가 되었지만
여름옷을 많이 가져왔는데
올 때 짐이 될까 입고 출국한 등산복을 벗지 못하고 계속 입어야 할 모양입니다.
날이 제법 찹니다.
이게 여름이라니.. 다들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해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남편이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고...
호텔은 난방이 잘 되었고, 전기장판까지 깔아 주었습니다.
여독을 충분히 풀자고 더운 목욕을 하고 편히 쉬었습니다.
와카티푸를 떠다니는 유일한 증기선에 승선하고 호수유람을 했습니다.
양떼목장을 관광할 수도 있는데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전 11시에만 가능하다니까...
우린 내일 밀포드 트래킹을 하기 위해 이곳 퀸즈타운에 머무르고 있는 겁니다.
오후엔 트래킹에 필요한 것들을 설명 듣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배낭과 몇가지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 가이드도 있는, 그들 주장에 의하면 고급트래킹입니다.
코스를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는 사진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가장 기대되는 여행 일정 중 하나라 놓치지 않고 보고 싶었는데..
그만 또 영어가 짧아서....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정도.. 들을 수는 다 있는 정도....
또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