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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서 갠지즈강 님과 꽃잎향기 님이 혜원스님 차를 타고 대전으로 간다는 전화를 받고
동행을 하게 되었다. 가고 싶다. 사람이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진주-대전 간 고속도로 위에서 몸체를 다 드러낸 덕유산을 바라본다. ‘산의 누드’ 라고 갠지즈강 님이 표현했다. 다 드러내고도 당당한 산의 모습.
갠지즈 강 님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동안(童顔)의 여인. 모닥불 가에서 선보인 손짓 발짓, 그 춤사위가 어여뻤다.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아련한 친근함을 불러 일으킨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덧니가 소녀 같다. 원광문화원에서 한 밤을 자고 일어난 아침, 그녀는 세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인연의 오고 감에 연연하지 않음. 인연의 독한 매듭을 ‘녹인다’ 는 것. 연연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수없는 연연(戀戀)함이 있었을까. 무너짐과 추스림이 있었을까. 언제부터 그리 흔들리지 않는 평정을 지니게 되셨어요. 예의 인터뷰조의 말투로 묻는다. 몇 달 안 됐어. 하하하. 그 말에 둘은 웃었다. 흔들리지 않는다고 흔들리지 않는 것일까??
몇 년 전, 잘못 탄 버스를 타고 해질녘에 남산 고개를 넘은 적이 있다. 언제 내릴까 망설이다 허겁지겁 내린 곳이 남산 도서관 어디쯤이었다. 노을 때문이었다. 산 중턱에 서서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맞닥뜨렸다. 대도시의 고층 빌딩 위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한겨울의 추위에 몸을 떨며 오래도록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 때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2차선 도로 맞은편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몸체가 몹시 흔들렸다. 뿌리마저 송두리째 뽑힐 듯이 몸을 뒤챘다. 그 대책 없이 흔들리는 나무를 뚫어져라 한참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것은 과연 내 마음이었을까?
“지친 회색 그늘에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파도처럼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은 비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유리처럼 굳어 잠겨있는 시간보다 진한 아픔을 느껴“
‘그대로 인해 흔들리는 세상.’ 난 더 큰 흔들림을 예비한 채, 작은 흔들림 들이 두려워 과연 도망쳐 온 것이었을까? 숨김없이 솔직하게 제 몸을 흔들어 보이던 벌거벗은 나무. 바람이 그 곳에 있었다. 나무가 그 곳에 있었다. 흔들림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나는 누구였을까?
꽃잎향기 님은 쇼올 속에 작은 몸을 파묻은 채 잠이 들어 있다. 情感으로 가득 차 있는 여인. 그녀의 넘치는 감정의 물결이 물길을 제대로 만나 소중하게 빛나며 흘렀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내 분수에 넘치는 그녀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참 소중하고 행복한 인연입니다” 습관처럼 글을 쓰고 말하지만, 돌아보면 빚지고 신세 진 인연들이 더 많다. 아마 누군가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어 발길을 돌렸을 지도 모르겠다. 허긴 나조차도 나를 어쩔 수 없을 때가 있기는 하다.
올해는 그녀에게 꽃잎향기를 제대로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짝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조그마한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착하고 순박한 천성을 마음껏 드러내 놓고도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엮어 갔으면 좋겠다.
창밖만 내다 보고 있는 내가 무료해 보였는지 혜원 스님이 가방에 든 책 한 권을 권해 주신다. 달라이라마의 <용서>. ‘가슴에 와 닿는 글들이 많더군요’ 하신다. 그러나 난 글을 읽을 생각은 않고, 티벳 사람들의 자연을 닮은 순박한 얼굴을 들여다 보는데 열중한다. 히말라야라는 닉네임으로 아주 가끔 그러나 잊지 않고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는 스님. 그가 건네는 안녕이라는 말이 때론 나마스떼-그대 안의 신에게 경배. 그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존중합니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인사 건넴이 새삼 감사하다. 책 속에 보석 같은 글들이 가득 있겠지. 그러나 읽고 싶지 않다. ‘좋은 글’ 들은 넘쳐나게 읽었다. 생활 속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굳은 문자들.
진정한 자비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줄 아는 마음이다. 그의 고통에 책임을 느끼고, 그를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마음을 기울일수록 우리 자신의 삶은 더욱 환해진다. 타인을 향해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을 키우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것은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내가 웃으면 온 세상이 따라 웃는다 한다. 그러나 그 웃음에 묻혀, 타인의 슬픔을 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수용하고 용서하기가 힘들다. 나 혼자만의 아픔을 위해서는 울지 않으리라 더 큰 아픔을 위해 울리라 결심해 보기도 한다. 쉽지 않다. 다른 이의 행복과 기쁨을 질투, 시기 없이 순수하게 기뻐하기도 쉽지 않다. 문득 거울을 쳐다보니 오랜 우울이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자처한 1년 간의 고립은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소모적인 고집이었을까? 다만, 헛되이 높은 것은 결국 낮아지게 되어 있다는 스승의 가르침만이 떠오를 뿐이다. 다만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제대로 안다면 이처럼 마음이 어둑하지도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자꾸 길어 올려 본다.
대전 시내를 세 바퀴 돌고 돌아 원광 문화원에 도착했다. 예고치 않은 참석이라 뜻밖이다 하는 표정으로, 그래도 스스럼없이, 혹은 마음이 다 밝아지도록 웃으며 반겨주는 다우들. 훈민정음 님, 산울림, 나유타, 흐름이어라, 미류나무, 왕소금... 다들 오래도록 친근하게 불러 보던 이름들이다.
훈민정음 님이 정성껏 준비해 놓은 갖가지 나물들을 넣고 밥을 슥슥 비벼 먹는다. 훈민정음 님. 그러고 보니 그녀의 본명도 정확한 직업도 나이도 알지 못한다.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거의 없다. 언제나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등 뒤로 단정히 늘이고, 복숭아 빛 볼에 엷은 홍조를 띤 채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 밝은 오렌지색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 그 곁에 가만히 앉았으면, 시원한 솔바람 소리, 맑은 별빛 이야기 같은 것들이 전해져 올 것만 같다. 그러나 다회 때마다 내내 소란스럽고 분주했던 내게는 그 고요에 가까이 닿기가 힘들었나 보다. 거기 그렇게 늘 있는 고요를 알아차리기엔 내 오만과 아집의 無明이 너무 짙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4주년 다회 기획과 진행을 책임진 산울림, 보였다 안 보였다 분주하다. 장문(長文)의 진지하고 진솔한 글들로, 한때는 다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 서울 있을 때, '물빛찻집' 으로의 산울림의 초대에 아란도와 함께 달려 간 적이 있었다. 계룡산 더덕 막걸리에 취해, 촛불을 사이에 두고 불러 주던 노래와 사연에 취해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 그 날 아침 물빛찻집 통유리로 흘러 내리던 빗물이며 잇닿은 산능선으로 피어 오르던 물안개가 떠오른다. 어깨에 비를 맞으며 달그락 달그락 그릇을 씻던 그의 웅크린 뒷모습이 생각난다.
머리에 휴지를 둘둘 감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무대를 누비는 그를 본다. 경악에 가까운 즐거운 비명들이 여기저기 터진다. -산울림 하나 망가져서 여러 사람이 즐거웠어. 다회 마치고 나눈 통화에서 그렇게 농담을 건넸더니 조금은 퉁명하게 그가 대답했다. -망가진 게 아니라 원래 내 모습이야. 그래. 그래 . 원래 내 모습. 이렇게 저렇게, 감춰졌다 드러나고 드러났다 숨어버리는 다양한 빛깔의 내 모습.
나유타. 만날 때마다 새롭고 때론 낯설어 놀라움을 주는 여인. 이런 눈빛을 하고 있었던가? 이런 세련된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던가? 가만 생각해보니 화장기 없는 투명한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쓰고 차를 마시던 그녀의 수수한 옆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맑고 투명해서 느껴졌던 어떤 거리감. 어느새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게 되는 사람. 언젠가 아란도가 그렇게 표현했었지. 물빛 느낌의 사람이라고. ‘차맛어때’의 주인장에 울력이라는 닉이 올라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를 하며 어깨가 무겁겠다 라는 내 말에 그녀가 예의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하 재밌잖아. 자잘하고 소심한 경계들은 그만 훌훌 날아가 버릴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전화를 끊고 한차례 시원한 바람을 쏘인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마하...라는 시작의 글에 마음을 놓아버리고... 일체 모든 중생들이 평화롭게 하소서!!!”
네줄의 음률에 올린 <반야심경> 제목을 단 그녀의 글. 마.하. 어쩌면 거기 다 들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밴댕이 속처럼 좁아지려고 할 때 한 번씩 읊조려 본다. 마하. 마하
‘재미’의 어원은 자미(滋味)라고 한다. 불어난다 滋, 맛 味, 자미- 즐거운 흥취, 멋진 일이 자꾸 늘어가는 것. 그래, 그녀의 말대로 카페-‘차맛어때’에는 자별한 맛이 있긴 있다.
흐름이어라. - 여, 어텋게 왔어~ . 날 보자 그 특유의 어투로 흐름이 반갑게 다가온다. 어떻게 오긴 흘러 흘러 왔지. 그만 나도 모르게 웃고 만다. 흘러야 통하고 통해야 흐르겠지? 전국을 누비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을 트는 흐름. 한때는 그가 나에게 관심 있나 하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흐름의 넘치는 정은 두루 두루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 언젠가 지리산 다회 때, 땀을 뻘뻘 흘리며 삼겹살을 굽던 그의 우직한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 들였던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천사들을 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은 천사의 책임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미류나무. 도대체 무슨 행복한 변화가 그녀의 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내내 추궁해 보았지만 보는 눈이 시원할 정도로 예뻐진 연유를 알 수가 없다. 다회에서 여러 번 만났지만 산새처럼 금방 날아가 버리곤 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마곡사로의 동행이 되어 그 아쉬움을 채웠다. 미루나무. 바람이 불 때, 빛나는 햇살이 쏟아질 때 가장 예쁘게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 중의 하나. 재잘재잘 새들처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주는 그녀. 차 한 잔 따스하게 하고, 화분에 오룡잎을 이불처럼 덮어 주는 그 마음이 그녀를 눈부시게 하는 것이 아닐까?
왕소금. -여기다 모닥불을 피울 거야. 키 큰 소나무가 내려다 보는 문화원 빈터에 모닥불을 피울 생각에 몰두해 있는 왕소금. 산울림과의 인연으로 카페에 가입한 후 참 열심인 모습이 보기 좋다. 멀리 내려와 있어도, 잊지 않고 전화를 하는 친구. 허허로운 저녁 시간에 받은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고백해야겠다. 착 가라앉은 공기를 활기차게 만드는 바람과 같았다 할까. -우리 차맛어때 여자들은 다 이뻐. 이뻐 죽겠어. 그 얘기를 공개하겠다고 놀리면서 하하하 웃는다. 지난 여름, 지리산 민박집에서였다. 삼겹살과 함께 먹은 소주로 얼큰하게 취해 친구 산울림에게 전하는 즉흥시를 읊조리는 그를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벗. 산울림과 왕소금. 이번 生에 그리 살가운 도반을 만났으니 얼마나 부러운 인연인가.
카페에 발길이 뜸했다가 예고 없이 참석해서일까. 예전과는 달리 낯설고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 채훈님.. 고민이 많으신 분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얼굴이 참 좋으시군요. 고민있는 얼굴은 아닌데요. 내 곁에 잠시 앉았던 화통님의 말에 순간 당황한다. 귀향 후,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몰라보게 살이 찌긴 했지만 그런 발언을 접하니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영 당혹스럽다. ^^
원광 문화원 소리꾼들의 공연이 한창일 때, 서울에서 이스크라, 아란도, 파아란 님이 도착한다. 드디어 짝패가 나타났다. 아란도와 나의 으슥한 곳에서의 몰래 데이트는 다회 틈틈이 지속되었다. 문화원 뒤뜰 후미진 곳에서, 때론 짙은 어둠이 깔린 솔밭 나무에 기대... 달도 밝고 별빛도 초롱하다. 공기도 이쯤이면 쾌적하다. 아란도. 너무 할 말이 많아 할 말이 없는 친구. 새벽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다 눈 내린 거리를 좋아라 뛰어 다녔던 기억. 그녀와 지샌 밤들이 수 없다. 우리들이 쏟아 놓았던 세월, 사랑, 가족, 카페, 살아서 기쁜 이야기들, 살아서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들, 살다가 깨닫게 된 이야기들. 가끔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보며, 김광석의 <너에게>를 목청껏 부르며 그리움으로 아쉬움으로 떠올려 보는 친구. -나 다회 후기 쓰고 있다. -야, 후기 마감 끝난 거 아냐? -틈틈이 쓰다 보니 언제 끝날 지 모르겠다. - 한 달 후에 올려라. 사람들이 잊을 만 할 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부디 날 참이름으로 불러 다오> 서점에서 우연히 팃 낫한 스님의 시집 제목을 읽고 감전된 듯이 서 있은 적이 있다. 진.정.한 나 아닌 것들, 혹은 나이고 싶지 않은 것들이 풍문처럼 떠도는 것이 괴로운 적이 있었다. 순수한 호감과 관심이 때로는 ‘사람 욕심’으로 불리워질 수도 있고, 그 말을 오해했을 때 내 마음은 한순간 차갑게 닫혔다. 그러나 내가 무엇으로 명명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낱 스쳐 지나가는 헛된 이름들이라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가, 제대로 묻고 있는가를 살펴야겠다. ‘불러 다오’라 요구하기 전에 제대로 부르고 있는가를 의심해 보아야겠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존귀한 무엇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사는 일의 혹은 관계 맺기의 지난(至難)함이여.지복(至福)함이여.
이스크라. 오랜만에 만난 이스크라. 서울 다회 있을 때 자취집으로 다우들이 우르르 몰려가 곡차를 기울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이리저리 신세를 많이 졌다. 집안 오빠처럼 든든하고 참 착한 심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람. 못 본 사이에 그는 더욱 유쾌해지고 편해졌다. 그의 코믹한 제스쳐와 재치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 사람이 이런 면이 있었나 낯설게 바라본다. 카페 게시판에서 그의 글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 네줄의 음률을 읽다 보면 딴 세상 사람들 얘기 같아. 그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회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그는 게시판 글을 통해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힘들었다고 얘기했다. 다우들이 자신의 글을, 혹은 의도를 곡해할까 저어되어 단어 하나 고치기 위해 먼 길을 되짚어 온 나그네 님 이야기도 있지만, 열린 공간에다 글을 쓰는 일이 사실 부끄럽다. -차맛어때는 내 일기장. 후박나무 님의 말이다.삶의 기록과 흔적을 일기처럼 그렇게 남긴다. 이스크라는 다회를 통해 문자가 아닌 실체로서 사람들 마음에 훈훈한 따뜻함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는 모닥불 가에서 기분 좋게 마신 막걸리에 얼굴이 상기된 채, ‘불나비’를 같이 부르자고 가까이 몸을 기대고 툭툭 친다.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 버릴 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 버릴 것 같아
친구야 가자 가자 자유 찾으러 다행히도 난 아직 젊은이라네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넓은 들을 찾아갈테야
어눌한 말투 뒤에 감추어진 그의 순수한 열정을 나는 본다.
파아란 님. 여전히 시원시원한 음성, 깔깔깔 즐거운 웃음 소리. 서울 있을 때, 그녀가 팽주로 우려주는 차도 많이 마시고, 차에 대한 지식 창고도 그녀로 인해 풍성해졌다. 요즘도 가끔 차를 마신 후 자사호 속에서 이파리를 꺼내 들여다 보는데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들여다보던 다양한 이파리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3년 전, 얼결에 서울 운영자가 되어 도봉산 다회를 꾸린 때부터 진주 내려오기까지 아란도, 이스크라와 함께 서울 다회의 든든한 후원자이지 버팀목이던 그녀.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는데...’ 마음의 길은 끊어진 적도 사라진 적도 없을텐데 안개 속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나겠지?
다회 끝나고, 마곡사로 가는 일행이 급조되었다. 도해 님 차에는 나, 갠지즈강 님, 꽃잎향기 님, 미류나무가 타고 남해바다 님 차에는 훈민정음 님, 이자오, 동방미인, 부용공주 님이 탔다. 훈민정음 님 댁까지 짐을 실어 드리고 정체중인 도로를 빠져 나와 마곡사로 향한다.
도해 님은 지난 경주 다회 이후로 구면이다. 모닥불 가에서 선보인 음주가무 솜씨-두 손가락과 독특한 스텝의 춤과 놀라운 트로트 꺽기-로 앞으로‘술맛어때’를 빛낼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확인한다. 마곡사 아래 마을에서 피어 오르는 저녁 연기를 보며 유년 시절의 기억을 살짝 얘기하는 그의 모습 위로 얼픗 추위로 두 볼이 발갛게 언 순박한 시골 소년의 모습이 겹쳐졌다.
법당의 싸리 나무를 끌어안고 소원을 빌고,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법당 단청을 배경으로 이자오와 한 컷. 오랜만에 본 이자오는 여전히 여걸의 풍모를 지닌 채 호탕한 웃음소리를 선보인다. 함께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여자. 그 시원시원한 팽주 실력은 여전하다. 멋진 일을 꾸리고 있다는 풍문을 들었다. 조만간 신나는 소식이 들려 오지 않을까?
남해바다 님은 처음 뵙는다. 서울에 있었다면 새벽별 보기 다회에서 여러 번 만났음직도 한데 말이다. 낯가림하느라 말 한 번 못 건넸다. 한 번씩 툭 내 던지는 코멘트가 촌철살인이다. 도해 님의 표현에 의하면 정 많은 이라 하는데, 그가 만든 맛깔스런 음식에서 그 정감을 이미 만난다.
저녁을 먹고 나오며 부용공주 님이 동방미인 님의 엉덩이를 슬쩍 더듬는다. 동방미인 님, 질겁을 하고 부용공주 님 짖궂은 웃음을 짓는다. 밥 먹기 전과 밥 먹고 난 후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너스레를 떠는 부용공주 님. 큼지막한 미소가 화통해 보인다.
동방미인 님, 3년 전, 2월 대전 다회 때 처음 만났다. 경주 기림사 앞 찻집 ‘옹기종기’에서 열린 다회에서의 폭발적 무대 매너로 유명했던 그녀를 그 때 처음 보았다.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녀와 별 말을 주고 받은 기억은 없다. 난 실은 낯가림이 심한 도망쟁이인데, 그녀 또한 부끄럼쟁이였던 모양이다. 호탕할 것 같은데 그녀가 그렇게 부끄럼쟁이인지 이번 다회 때 처음 알았다. ^^ 혼자 무엇인가를 해 본 적이 없기에 그리 해 보려고 경주 다회에 용기 내어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눈 맞추게 되기까지 어언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만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녀. 서로 아는 노래 불러주기 내기를 하면 몇 날 밤을 새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회 끝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황차를 마시다 마곡사에 갔던 이야기가 나왔다.
- 그 절 가려면 다리를 안 건너더나?
- 다리? 글쎄? 다리를 건넜나?
- 절 옆으로 계곡이 안 있더나?
-응, 있었던 거 같다.
-그럼, 그 큰 계곡을 다리를 안 건너고 어찌 절에 들어 갔노?
도대체 뭘 보고 다니는 거냐 너는!
글쎄, 참 내가 도대체 뭘 보고 다니는 것일까? 제대로 보고 다니기는 하는 걸까?
반가움도 잠시 금방 가셔서 아쉬웠던 무심초 님, 나그네 님과 인도로 가신 후박나무 님,모닥불 가에서의 열창이 인상적이었던 별이 내게로 오다 님, 진지하고 깊이있는 사유로 놀라움을 자아냈던 노루막이 님, 소녀같은 눈동자가 기억나는 소로 님, 수고한 산울림에게 다기를 선물하신 행운의 구슬 님, 건축물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각이 기억에 남는 혜월 님. 다우미님, chayou 님, 예쁜돼지 님, 자운 님, 시골풍경 님 소중한 만남, 한 번 더 말을 걸고 눈을 맞출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합니다.
김광석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조각 구름과 빛나는 별들이 끝없이 펼쳐있는
구석진 그 하늘 어디선가
내 노래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음...
나의 정원을 본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피어있는
언제나 그문은 열려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음...
나의 어릴적 내 꿈 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오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오면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꺽어줄께
나의 어릴적 내 꿈 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오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오면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꺽어줄께
첫댓글 너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대로의 네가 느껴지는 듯하다.. 모닥불가에서 부른 네 노래, 떨리던 음성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은것 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채훈..채훈..채훈.. 그냥 가만히 불러본다. 보고싶은 친구..
그렇치.....우리는 서로의 꽃이 되어야 한다.서로에게 꽃이되지 않을때는 남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 꽃이 되어주는거...그것이 친구이고 차맛어때의 일이다.1년의 시간이 허상이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되돌아 오는구나,^^나 이글 읽고 울뻔했다.있을때 잘하자라는 말이 실감나네...^^서울에 있을때
더 잘해줄껄...그러면 더 기억이 많았을텐데...허나 사람은 아마도 그때 자기가 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을거야..다들...이글을 읽다보니 왜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지.....^^..너무 순수하고 꺽이지를 못해서 아프고 사랑스러운 채훈...행복하게나..내내..^^
세월을 뛰어넘은 시간은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채훈의 글을 읽노라니 생각의 저편에서 피어나는 차향기 그때는 차맛도 차향기도 모른채 술맛만 알았을때 처음으로 서울에서 그리고 양평에서의 차한잔의 만남과 인연 그것이 지금까지 흘렀구나....
그때 촌넘이 길 잃어 버릴까봐 전철역까지 배웅해준 옛된 모습의 채훈 그러나 지금은 너무 멋진 채훈 진짜루 관심 있었는데..착각은 아무나 하나..ㅎㅎㅎ 봄날은 간다 다시금 술,차 한잔 할날이 있겠지 오늘도 참 좋은 하루이길........
감동... 감동... 새벽별보기... 좋지요. 그날을 기다리지요.^^
도망쟁이 채훈에게 부끄럼쟁이 동방미인 말걸다....^^*
정이 담~뿍 하다... 사랑해~
낯가림이 다소 심한 편이라 내편에서 먼저 손을 내밀거나 말을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두 세 번 얼굴을 마주하고나면 한결 나아지는데, 채훈님은 작년 서울다회에서 한 번 뵈었지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발걸음은 자꾸 주춤거리게 되네요. 다음 번엔 좀 더 용기를 내보지요.
그대들이 남긴 글들을 읽으며 눈물이...웃음이...행복이... 바람은 차지만 오늘 하늘이 참 맑아요. 촉촉해진 마음의 차 한 잔 전해요. 행복하세요들. ^^
후기 쓴다더니 수고한 정성이 함뿍 봄기운과 함께 들려오는 듯 싶어요.
순수하고 속깊은 채훈!^^*가끔씩 보자오..^^
채훈님..감기조심...()...(벗)...!
채훈, 참 따듯해지네!^___^ 한 사람 한 사람이 글 속에서 마치 신화 속의 인물얘기인 양 살아나네. 그 다북한 시선과 그 따사로운 불러줌 속에 인물을 꽃피워주는 정성이란... 참 감사하네! 이렇게 어느 소설 속의 무대 속의 인물인양 케릭터인양 불리고싶으면 다우님들 채훈님에게 다가가세요! 아이 좋구나! 하하하 _()_
그대의 그 마음은 한 글자 한 글자 읽어가다 보면 잠시 숨을 쉬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지.. 채.훈. 우리가 앞으로 쌓아가야할 정이 더 많음이야~ 사랑해♥
'차맛어때' 좋은 사람들의 만남. 헤어져도 잊혀지지 않는 이별. 떠나도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곳. 잘 읽었습니다.
이 아름다움을 무슨글로 보태야 하나 썼다,지웠다가 여러번이다...이곳에서 이리도 좋은 도반들을 만났으니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먼...아침이 따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