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도 같은 삶
文 熙 鳳
인생사는 마치 날씨와도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맑게 개인 날만 계속되기를 바란다. 허나 날씨라는 것은 그렇지 못해 가끔은 태풍도 불고 비바람, 눈보라도 보내 인간을 시험한다. 일년 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도 단풍이 들어 결국에는 바람 따라 하산하면서 생을 마친다.
하지만 어떤 태풍도 한 달 이상 계속 되지는 않는다.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도 여간해서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소멸된다. 살다 보면 풋마늘 고추장에 찍어가며 혼자 찬밥을 먹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보따리마다 서둘러 챙긴 저당 잡힌 세월이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밤이면 기침이 폭탄처럼 터져 나올 때도 있다.
설령 몇 달 동안 계속 햇빛만 내리쬐는 맑은 날만 계속 된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일 날씨가 좋아 햇살만 내리쬐면 그 땅은 이내 사막이 되어버려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폐허의 땅이 되고 만다.
비바람과 폭풍은 귀찮고 혹독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씨앗은 싹을 틔운다. 그렇게 틔운 싹을 잃기도 하고 잘 키워내기도 한다. 우리네 삶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다. 색종이 접어 비행기 날리던 시간 물감으로 품어내며 아코디언 주름 같은 내 몸통에도 데칼코마니 같은 추억이 펼쳐지지 않는가?
견디기 힘든 시련과 아픔이 삶의 여정 중에 왜 없겠는가? 짙은 검은 눈썹 같은 어둠이 들어차고, 꽁꽁 언 겨울하늘이 파르라니 떨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면 놋대야처럼 무거운 우리의 시름은 더욱 짙어만 간다. 때로는 지조처럼 높은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두터운 잿빛 구름이 낮게 내려와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련과 아픔은 필히 인간이라는 거목을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슬픔도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체한다. 촌스럽게 생긴 사람이지만 활짝 웃는 잇속은 희고 깨끗하다. 살다 보면 미끄러져 손끝에 붉은 꽃이 피기도 한다. 굵은 못으로 사정 없이 그어댄 주름 속에 어려웠던 세월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수도 있다. 물결이 뺨을 때려도 끄덕 없던 바위를 닮아보는 것은 어떨는지?
삶은 오늘 내리는 비바람과 폭풍우 속에서 맑게 갠 내일의 아침을 엿볼 수 있는 사람의 몫이다. 창밖의 세상은 평온하다. 인생은 며칠 만에 끝마칠 수 있는 패키지 여행이 아니다. 간밤의 고단함이 기미처럼 눈 밑에 퍼져 있어도 그걸 자스민 향기 같은 웃음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면 좋은 삶이다. 인생은 탑 쌓는 일이다. 큰 돌, 작은 돌, 네모난 돌, 넓적한 돌을 가지고 탑을 쌓는 일이다. 탑을 쌓기 위해서는 사이사이에 잔돌 괴는 일이 중요하다. 돌과 돌 사이, 사이사이, 빈틈이 없이 틈을 메워가는 일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산마을 아낙들 평퍼짐한 둔덕에 산수화 전시해 놓는 것도 구경할 수 있으리라.
달이 빈 방으로 들어와 누추한 생애를 속속들이 비추면 좀 어떤가? 열심히 갈고 닦으며 사는 정성을 보이면 그 달도 감동할 것 아닌가. 신축성 없는 마분지 같은 얼굴도 얼마 아니 가서 분칠한 환한 얼굴로 변할 것이다. 대관령 젖소한테서 초코우유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승용차 안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도 신호등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젖은 추억이 조금씩 증발하고 극에 달한 고통은 박제되기 마련 아닌가. 편지함을 채우고 돌아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게 들리는가? 어우렁더우렁 살 일이다.
풍요 속에서는 타락하기 쉽다.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알전구 아래 저녁 밥 달게 먹던 아이가 환한 얼굴로 웃고 있다.
한 그루 미루나무에서 자라던 잎새들은 후에 이발사가 되고 변호사도 된다. 마음이 따뜻한 이불 같은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