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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균용 목사
(41) 에덴에서 흘러 나오는 네 강(김요셉)창세기 2장 10절-14절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에덴동산에서 네 개의 강이 흘러나왔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그 이름은 본문에서 보는 대로 첫째, 강이 비손이라고 그랬고요. 둘째, 강은 기혼 그리고 셋째가 힛데겔, 넷째가 유브라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이 강이 다 어디에 있는 강이냐, 이거를 알면 우리가 에덴동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을 텐데 현재로 알려진 강은 셋째와 넷째입니다. 힛데겔과 유브라데가 됩니다. 힛데겔을 지금의 이름으로는 티그리스라고 그래요.
그래서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라고 할 때에 첫째, 중국의 황하강 유역 그리고 둘째, 인도의 인더스강, 갠지스강 유역 그리고 셋째가 메소포타미아의 유브라데스 강, 티그리스 강 유역 하는데 유브라데스 강, 티그리스 강이 거기 나온단 말이에요. 그리고 넷째가 애굽의 나일강 유역 이렇게 나오는데 오늘 본문 말씀 보면 이 힛데겔 강을 얘기하는데 이것이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티그리스강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지 않고 구스에 있다고 이렇게 설명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둘째, 강은 기혼인데 기혼이 구스 온 땅에 둘렀고 구스라는 말은 에티오피아죠. 에티오피아. 그러니까 아프리카 거기로 이렇게 둘째, 기혼 강이 그쪽으로 둘렀다. 자 그렇게 설명을 해요. 그러니까 에덴에서 발원해가지고 셋째, 넷째, 강이 힛데겔이고 유프라테스고 그런데 거기로 했더니, 거긴가 하니까 둘째, 강은 기혼이라고 그래 가지고 이것이 구스 온 땅에 이렇게 둘렀다, 그러면 첫째, 강은 대관절 어디냐. 그래가지고 오늘날 학자들이 유브라데스강, 티그리스강이 있는 이 메소포타미아지요. 그것이 세 번째 강, 네 번째 강이 흘러갔던 데라. 그러면 둘째, 강은 저 애굽의 나일강 유역 그 근처 그러니까 나일강이 이 기혼 강이 아니겠느냐 이제 이렇게도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또 강의 이름의 뜻으로 이렇게 보면 첫째 강인 이제 비손이라는 말은 충만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물이 충만하게 흘러간다. 두 번째, 기혼강이라고 하는 말은 급히 흘러간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급히 흘러가는 강이 어디냐 하고 이렇게 찾아보니까 저 인도의 인더스강 이제 그쪽으로 이렇게 치고 또 이렇게 큰 세 번째 강은 힛데겔인데 힛데겔은 넘쳐흐른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넘쳐흐르는 강은 나일강이잖아요. 그러니까 넘쳐흐르는 강은 나일강일 거다. 힛데겔은 나일강일 거다. 그리고 유프라테스강. 유프라테스는 이제 감미롭다고 하는 영어로 sweet라고 하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아주 감미로운 강이다. 아름다운 강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강이다. 다른 강들은 다 강물이 흘러나가는 그런 강을 얘기하지만 이 강은 사람들이 이 강을 보기 위해서 막 모여드는 이런 강이다. 이제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첫째에 나타나는 이 강의 이름 그래가지고 이런 것이 전부 상징적이다. 이렇게 하면은 상징적이라고 할 때에 그 단어의 의미를 우리가 추적을 하는 거죠. 그래가지고 우리는 이런 강들을 비손이라고 할 때에 영문 식으로 하면 피손이죠. 피손강. 이 강은 충만하다 하는 뜻이죠. 그래서 강물이 충만하게 흘러내려간다 그 말이에요. 둘째강은 기혼강, 기혼이라고 하는 말은 넘쳐흐른다는 말입니다. 또는 용출 이렇게 분수처럼 솟아오른다는 그런 뜻도 가지고 있고요. 그리고 힛데겔이라고 하는 이름은 급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유속이 굉장히 빠릅니다. 막 이렇게 흘러가는 강 그리고 넷째, 강은 유브라데, 이거는 향기롭다, 아름답다, 그리고 평안하다, 이런 종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런 강인데 이런 강의 의미를 가지고 우리가 이해를 하는 것이 사실은 진리에 훨씬 더 가깝게 접근할 수가 있겠다. 너무 어느 땅이 바로 여기냐 이렇게 찾지 말고 우리가 바르게 찾아가려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이 네 개의 강이 흘러갔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이것을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 이렇게 해서 그 강이 중국 황하로도 흘러가고 인도도 가고 메소포타미아로도 흘러가고 애굽으로도 흘러가고 이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세상에 그런 강이 어디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거는 그때 에덴동산이 있을 때 그때에는 신령한 강이 이렇게 흘러갔다. 이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겠는데 첫째, 강 비손강은 하일라 온 땅에 둘렀다 그랬죠. 거기에서 나는 금은 정금이고 순금이 나고 베델리엄과 호만노도 거기에 있었다. 온갖 진주가 그런 데서 나왔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상징적으로 생각을 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데 그래서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도 되고 진주 보석과 같은 지혜의 사람이 되고 강물이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어준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내가 정말 영적인 에덴동산에 살게 되면 이 땅에서는 에덴동산이 어딘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신령한 은혜를 받아 이 신령한 에덴동산에 들어가서 사는 천국 생활, 낙원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면 거기에 온갖 믿음, 금 같은 믿음이 생기는 땅이 되고 또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고 그래서 아주 부유하고 형통한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에덴동산 강의 이야기가 창세기 2장이 이렇게 나타나고요.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게 에스겔서 47장이죠.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강물이 흘러나오는데 샘물이 이렇게 흘러나오는데 아니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나오면 억지가 얼마나 나오겠어요? 강물이 얼마나 흘러나가는지 그래서 강에 들어가 봤더니, 1천 척을 측량해가지고 저 성전에서부터 1천 척 지나서 봤더니, 그 물이 어디에 찼다고 그랬습니까? 발목에 찼다고 그러죠. 1천 척을 갔는데 겨우 발목에 밖에는 안 찼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또 1천 척을 측량해 갖고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그 물이 어디에 찼다고 했죠? 무릎에 찼다. 측량했더니, 어디에 갔습니까? 허리에 찼다. 허리에 찼다. 그 다음에 또 1천척을 측량해서 들어가니까. 그러니까 모두 4천 척을 측량한 거예요.
그래서 4대강이 흘러난다. 네 번이 나온다. 그렇게 했는데 거기 가니까 물이 너무 넘쳐서 거기서는 이렇게 걸어갈 수는 없고 거기서는 수영을 해야지만 갈 수 있는 그런 땅이 되더라. 그런데 이런 강물이 흘러넘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 지역에 죽었던 것들이 다 살아나더라.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전부 죽어간다고 하는 거죠.
에스겔 47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성전으로부터 흘러나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에도 참된 성전에서는 이 놀라운 생수의 강이 흘러나간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뭡니까? 우리가 참된 성전을 세워 나가는 거예요. 참된 성전에서는 생수가 흘러나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것이 요한복음 7장 38절 이렇게 나오는 말씀이죠.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라. 내게로 와서 생수를 마셔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네가 나에게 구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7장에서도 똑같이 생수가 예수님의 배에서부터 흘러나간다고 하죠. 그러면서 그거를 설명했습니다.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자 그러다가 이제 계시록에 가서 보면 역시 사도 요한이 쓴 책이잖아요.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생수를 내려주시는데 요한계시록 16절부터 보면 거기에는 이제 대접 재앙 일곱 대접 재앙 중에 여섯째 대접 재앙이 나옵니다. 천사가 여섯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으니까 이 강에 쏟으니까 강물이 말라서 유브라데 강에 쏟음에 큰 강 유브라데에 쏟음에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부터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이렇게 하면서 그 다음에 바로 이어서 여기에 아마겟돈 전쟁, 큰 전쟁을 위해서 왕들을 모으더라. 서방의 왕들이 오는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동방의 왕들도 여기로 다 모여든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해서 큰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아마겟돈 전쟁.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이라고 하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렇게 왕들을 모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종말을 향해서 이렇게 치닫고 있는데, 한 가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에스겔 37장. 47장에 있는 이 말씀이죠. 37장에는 마른 뼈들이 일어나서 큰 군대를 이루는 이야기 그리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통일되는 이야기가 37장의 이야기고 47장의 이야기는 성전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와 모든 죽었던 것을 다 살려내고, 그리고 이 땅을 은혜로 충만하게 하는 이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이 창세기 2장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네 개의 강을 이루는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이 교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가게 해야 되겠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가는 이 생수의 강물이 작게는 우리 원주를 살리고 이 강원도를 살려내고 대한민국을 살려내고 더 나아가서 이것이 세계를 살려내는 큰 역사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7장에서는 이 강물이 뭐라고 그랬어요? 생수가, 제자들이 장차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랬으니 우리가 외쳐야 될 말씀은 여전히 성령 충만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아라 이겁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지 않는 교회는 다 메말라 빠진 교회들 말라가는 저 유브라데강 같은 그래서 전부 죽어가는 강이 되는 것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살려내는 역사를 이루는 강물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 정말 마귀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생수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거룩한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42) 임마누엘(2)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구원의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게 임마누엘입니다. 왜 임마누엘이냐.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를 통해서 700년 전에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는 임마누엘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아니하시고 예수라고 이름을 바꿔서 가르쳐 주셨어요. 그것은 그들을 죄에서부터 구원해내시는, 이 구원이라고 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배고픈 데서도 구원받아야 되고, 병든 데에서도 구원받아야 되고, 전쟁에서도 구원받아야 되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이 큰 환난 속에서도 다 구원을 받아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죄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목표로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도 죄로부터의 구원을 말씀한다고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어요.
로마서 10장 9절 10절 <네가 만일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내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우리를 찾아와 가지고 <당신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으십니까? 예수님이 당신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아마 <나는 그거 못 믿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교회에 다닌 사람들은 마음으로는 안 믿어도 입으로는 믿는다고 대답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네가 입으로 시인했으니 오늘 이 성경 말씀을 봐라. 여기에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했으니까 당신 구원 받았겠습니까? 못 받았겠습니까?
그러면 당연히 이 말씀 따라서 그대로 나 구원을 받았을 겁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러면 구원을 받았을 것이 아니라 구원은 이미 받았다. 그렇게 믿어라> 자꾸 이렇게 강요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구원을 받았으니까 다시는 의심하지 말고 구원을 받았나 안 받았나 하고 이렇게 의심한다거나 또는 이렇게 불신으로 가거나 그러지 말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라. 누구 앞에서든지 자신 있게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해라> 자꾸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가르치면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겠죠. 그렇게 대답을 할 뿐 아니라 <나는 구원을 받았다>라고 자기가 자기에게 그렇게 말을 자꾸 하고 이것이 자기 최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이렇게 알게 만들어요. 그러나 진짜로 구원받았을까요?
둘째로, 요한복음 5장 2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구절을 읽으라고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이제 물어봅니다. 이 말씀 가지고 한 조목 한 조목을 가지고 묻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예수님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러면 물론 안 들었다고는 못하죠. 다 들었잖아요. 우리가 그러니까 <예 들었습니다> 그러면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 곧 하나님을 당신은 믿으십니까?> 하고 물어요. 그러면은 <예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 계속 보면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을 얻었다고 했습니까? 영생을 장차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까? 그거야 답이 뻔하고 쉬운 거죠. 영생을 얻었다고 예수님 말씀하셨으니까 영생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영생을 얻었습니까? 장차 얻을 것입니까?> 그렇게 물어요.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영생을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겠죠. 그래서 당신은 이미 영생을 받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면 이런 신자들이 그런 설명을 들으면은 <아 그렇구나. 나도 영생을 이미 받았구나> 이제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는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라고 자꾸 이렇게 강조를 해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서 나에게 정말 구원을 내가 정말 구원을 받았나 나에게 이 구원을 받은 증거가 있는가 이렇게 이제 자기를 살펴보게 되고 잘 안 믿어지기도 하면서 이 말씀을 따라서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으니까 이렇게 믿는 척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요한복음 10장 28절 29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이 말씀을 이제 읽도록 만들고 그리고는 묻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내가 너에게 영생을 주노니 예수님이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영생을 주노니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앞으로 줄 것이니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당연히 이 말씀을 읽고 이 말씀대로 하면은 영생을 주노니 그랬으니까 지금 주고 계시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당신이 이 영생을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이렇게 묻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생을 받으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하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다른 자는 아무도 그거를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받은 영생은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 마귀가 절대로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믿으세요> 그리고 <이거 믿으십니까?> 하고 확인하죠.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당연히 <아멘~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겠죠. <당신은 그러므로 이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절대로 의심하지 마세요. 부정하지 마세요. 모르겠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이 확신을 준다고 얘기를 하면 이런 말을 듣고 나에게 정말 구원의 확신이 있나 하고 사람들이 생각을 하게 되겠죠.
그런데 이제 중요한 문제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느냐 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요한복음 10장은 선한 목자 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두 가지로 설명하세요. 첫째는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시죠. 그러면 우리가 당연히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돼야 돼요.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도 나를 아시고 이 관계가 바르게 맺어져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나를 아세요. 그런데 중요한 거는 내가 예수님을 아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야 4장 6절에 <이 백성들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그래서 무슨 지식을 얘기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거 얘기하는 거죠. 하나님을 알지 못한대요.
사무엘상 3장 1절에 보면 <사무엘이 어려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그 땅에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나타나지 아니하였더라>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엘리가 제사장으로 있었지만 엘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만 하는 게 아니고 2장 12절에서는 <저희는 불량자라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더라>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않기로 아예 작심을 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도 없고 성의도 없고 이렇게 살아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유태인이라고 해도 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제사장이라고 하고 날마다 제사를 집행하고 이렇게 하고 또 백성들이 와서 뭐라고 상담을 하면 상담도 해주고 자기는 하나님 잘 아는 척하면서 하지만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을 알기를 거절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목자와 양과의 관계는 첫째는 안다. 우리는 하나님도 알지 못하면서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이렇게 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야서 1장에서도 너희가 성전 뜰만 밟고 다닌다라고 무섭게 책망을 하셨어요.
또 둘째 관계는 조금 더 들어가서 알기는 아는데 음성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해요. 자기를 누가 불러도 내 목자가 부르는지 다른 사람이 부르는지를 알아서 다른 사람이 부르면 절대로 안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내 목자가 부를 때에만 따라간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따라가느냐 이것이 이제 시편 23편에 다윗의 유명한 그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하는 그 시에 보면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는데 푸른 풀밭으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 둘째는 의의 길로 인도한다 말씀하죠. 그땐 당연히 따라가는 게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셋째는 또 어디로 인도한다고 그랬습니까?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길로 행할지라도 사망의 음침한 길로도 인도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양들은 따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목자라고 하면서 과연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가고 있는가 편하고 좋을 때에는 다 따라가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작 어려운 일 당하면은 눈치 보다가 요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따라갈까 말까 갈까 말까 한참 이렇게 해보다가 결국은 살짝 빠져버리고 안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나에게 합당하지가 않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악인들은 형식적 신앙인들, 그러니까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는 잘 믿는 척하는데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안 믿는 거죠.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된 사람에게 목자와 양과의 관계가 바르게 이루어지는 거고, 이런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 거 찬양하고 이렇게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 거지, 구원받지도 못한 사람, 내가 주님의 양이 되지도 못했는데 양이 됐다고 억지로 믿으라고 한다면 아마 그 사람 앞에서는 <예 믿습니다> 하고 대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진짜로 믿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므로 이 거짓된 선생들에게 속지 말고 참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43) 임마누엘 (3)
첫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거는 왜 임마누엘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안 이루어집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죠.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살 때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산에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벌써 아담은 다 들을 수 있었어요. 우리는 그걸 못 들어요. 하나님이 우리 앞에 오셔서 거닐고 계셔도 우리는 전혀 못 느낍니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 있던 아담은 그거를 다 느꼈잖아요. 그러니깐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어떻게 행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런 거를 깨달아 알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지 한다. 아담이 무슨 죄지었어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이것이 큰 죄가 아닙니까?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한 것이 가장 큰 죄가 되는 거고 둘째 죄는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뱀의 유혹을 받으니까 쉽게 넘어갔어요. 그래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죄입니다. 마귀는 거짓말로 우리를 찾아와서 거짓말을 하면서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말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가르치기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싫어하시는 것처럼 얘기도 하고 마귀의 말을 따르면 큰 복을 받고 행복해지고 영광이 나타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우리를 이렇게 착각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아담이 자기의 아내의 말을 따라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성경에서는 <아내의 말을 따라가라> 그렇게 가르쳐 주신게 아니고 <남편이 아내를 다스릴지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아내가 남편의 다스림을 잘 받으면 되는데 거꾸로 돼 가지고 아담이 하와를 얼마나 사랑했어요.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로다> 이렇게 기뻐하고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오히려 이것이 올무가 돼 가지고 하와가 하는 말을 거절하지 못하고 이렇게 인정에 끌려서 사는 거죠. 마찬가지로 지금도 마귀는 우리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나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려고 하고 이런 마귀의 역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아담은 그렇게 회개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이렇게 오셔서 처음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가복음에서는 <때가 작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기본적인 메시지 우리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부자, 하나님 없는 권세자, 하나님 없는 행복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고난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당하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순교까지 하게 되는 이런 불행한 자리에 나아갈 것인가? 어느 것을 택할 것입니까? 우리는 그래서 여기에서 하나님이 오늘 이 마지막 시대에 예수님을 믿노라고 교회에 찾아나온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것을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행복을 택할 것이냐?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난을 택할 것이냐?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셨어요. 다윗은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니는 이 길을 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세가 <하나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어떤 고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각오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하시기를 사모해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리 위에서야 된다고 하는 거죠. 진리 위에 서지 않으면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는 항상 천사의 모습을 하고 가장을 해서 우리에게 찾아오고요. 우리에게 달콤한 칭찬의 말, 우리를 높여 주는 말, 우리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말을 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귀에게 속아서 오히려 멸망의 길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지만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이런 감격을 가지고 살고 확신을 가지고 살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전부 자기 힘으로 살고 자기의 지혜로 살고 이렇게 자기의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니까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다 멸망이고 잘되는 것 같아도 오히려 곤두박지를 치게 되고 이런 큰 불행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의 사도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나 하는 거를 생각해 보세요. 마태복음 10장에도 나오고 우리 누가복음 10장에도 나오고 복음서에서 계속해서 말하지만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내보내셨습니다. 둘씩 짝지어서 내보내실 때 그냥 사람들 둘만 보내시는게 아니고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같이 주셨어요. 그래 가지고 가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하는 이런 능력의 역사를 이루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전도하러 갔다. 와 가지고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우리가 가서 기도했더니 병자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기도했더니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할렐루야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승리하고 전도하고 왔습니다> 하고 좋아했지만, 그러나 사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요한복음 7장 39절 말씀이죠. 아직 그들에게 성령 내리신 일이 없었다. 성령이 내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비록 내가 가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의 역사를 이루어서도 성령으로 했습니다. 내 힘으로 한 건 아니고 성령으로 했어도 나에게는 성령이 없었다고 하는 얘기예요. 그런데 언제 성령이 오시느냐?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내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그다음에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고 승천하셔서 열흘 만에 드디어 이 땅에 오순절 날 되었을 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는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 전에 전도하러 가서 갔을 때에는 잠깐 능력이 임했던 거고 갔다 오게 되니까? 능력이 없었죠. 그러니까? 변화산 아래에 찾아온 이 간질병자 청년 하나를 못 고치지 않았습니까? 능력이 없으니까? 못 고치는 거예요. 그 전에는 능력이 있을 때는 고쳤는데 그러니까? 성령이 있을 때에는 되는데 성령 없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다가 제자들이 드디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이렇게 능력이 생겼습니다. 능력만 생기는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했는데 얼마나 유식한 설교를 합니까? 아, 요엘서에 있는 말씀, 시편에 있는 말씀, 막 종진으로 성경 말씀을 다 들어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자, 이게 지식의 말씀이고 동시에 그는 지혜롭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혜,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그다음에는 믿음, 그다음에 능력 행하는 거, 병고치는 거 막 이런 능력들이 나타나잖아요. 그래서 영을 분별하고 방언을 말하고 방언을 통역하고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이 성령과 함께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성령 충만함을 가지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는 큰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다가 도마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렇게 와서 우리 한국 옛날 신라에까지 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래 가지고 우리 한국 사람들도 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한국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정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면서 이 믿음 가운데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말씀인지 우리 마음에 다시금 깊이 새기고 우리 주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하루하루의 삶 속에 임마누엘의 새 역사를 이루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눈만 뜨면 예수님 어디 계신가 얼른 찾고 어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를 늘 확인하고 살고 두리번 두리번 하면서 주님이 어디 계신가 잘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주님과 떨어져서는 안 된다. 1분 1초라도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되겠다.이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44) 땅끝까지 ( 나균용 목사님 )
사도행전 1장 6절-8절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40일이 되어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가 되어서 승천하시려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는데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제일 궁금했던 것을 물었어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 그러니까 젊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민족적인 소망이 있었다는 거죠. 그게 뭐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가 이때입니까?> 하고 물었던 건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들과는 전혀 뜻밖입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너희 그런 거 자꾸 묻고 따지고 그러지 말아라> 아브라함부터 2천 년 동안을 내려오면서 그 사람들의 소망이 사실 다 깨질 대로 다 깨진 거죠. 그런데도 아직도 때와 기한을 찾고 있느냐 하는 것을 책망하시면서 그것은 아버지에게 속해 있는 거야.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문제고 너희가 정말 해야 될 일은 무엇이냐? 이것을 가르치신 게 8절 말씀이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래서 너희는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걸 강조하신 거죠. 때와 기한을 찾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을 찾아라. 이렇게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되느냐?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가지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되는데 너희가 이 거룩한 일에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오늘 8절에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 말씀했어요. 그래서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는다.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서 나의 증인이 된다> 권능 받아야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아야 권능 받고 권능 받아야 증인이 되는 거고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죠. 성령 받으면 내가 볼 때는 세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권능이 임한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 말의 반대는 능력 없는 사람 되는 거죠.
둘째는 지혜를 말씀하죠. 지혜가 임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보면 이게 성령의 은사 장인데 8절부터 설명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는데 첫째가 지혜의 말씀이다. 둘째 지식의 말씀이다. 셋째가 믿음이다. 그다음에 능력이 나타난다. 또 병 고치는 은사가 임한다. 이렇게 해서 아홉 가지 은사를 쭉 설명해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능력과 지혜가 임한다고 하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1장 23절 2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냐?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은 지혜와 능력 이 두 가지를 항상 내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오느냐? 우리가 성령 받아야지만 온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이 없으면 능력도 없는 사람 되고 성령이 없으면 지혜도 없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불행한 자리에 떨어지고야 맙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셋째로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게 인생의 행복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는 거예요. 돈이 많아야 행복한 거 아니고 권세가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고 세상에서 명예가 있고 인기가 좋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그거는 일시적으로 반짝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고요. 진짜 행복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에 오는 것이라. 혹시 인생이 고달프지 않습니까? 인생이 너무 실망스럽지 않습니까? 인생 살아가는 동안에 너무나 불평스럽고 원망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누가 이기느냐? 이것은 누가 행복할 수 있느냐? 이것은 오직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만 임한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는 이 증인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증인. 대관절 증인이라고 하는 게 무슨 뜻일까? 이 증인이라고 하는 말을 헬라말 원어로 보면, 증인이란 말은 마르투스라는 말입니다. 마터, 마르티어, 마터입니다. 그래서 마터가 뭐예요? 이게 순교자라고 하는 말이죠. 그래서 증인이라고 하는 말은 순교자라고 하는 뜻이다. 그래서 증인에는 중요하게 세 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훌륭한 증인은 세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첫째가 뭐냐? 첫째는 사실적 증인, 사실 증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직접 체험한 증인, 내가 직접 본 사람, 들은 사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첫째의 증인 자격은 사실적 증인, 사실인, 체험적 증인. 내가 내 눈으로 보고 듣고 확실하게 아는 이런 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게 첫째 중요한 사실이고요. 둘째는 순교적 증인이라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증인이라는 말의 원래의 뜻하고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마르투스라고 하는 말이 영어의 마터, 순교자. 목숨까지도 걸고 이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증언할 수 있어야 돼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첫째 사실 증인이어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을 전하는 사람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본 사람이래야 된다는 거죠. 내가 내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만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이렇게 들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보내시는데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일을 하게 하셨어요. 셋째는 윤리적 증인이라고 그렇게 말해요. 증언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신용이 없는 사람, 남들이 볼 때 저런 나쁜 놈 저거는 믿을 만 못 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증언은 판사가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증인이라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절대로 소홀히 여기면 안 되는 말씀이 땅끝까지라고 하는 말이에요. 땅끝까지. 대관절 땅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 그래서 땅끝이라는 말은 중요하게 이것도 세 가지의 개념을 가지고 우리가 이해할 수가 있어요. 첫째는 지리적인 개념에서의 땅끝입니다.
땅끝이라는 말의 둘째 의미는 땅이라고 하는 게 뭐냐, 흙입니다. 흙으로 하나님은 짐승들도 만드시고 사람도 만드셨어요. 사람의 육체는 흙입니다. 이건 땅입니다.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으니까 짐승은 그걸로 끝, 육체로 끝이고 사람에게서 끝은 마음이요 영혼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이 사람에게는 그냥 육신으로만 들려지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목표하시는 것은 영혼에까지 들어가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영혼에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 육체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너희가 나를 입술로는 공경하는데 마음은 내게서 멀구나> 예수님이 탄식하셨어요. 성령을 받아야 우리 마음에까지 울려지고 영혼에까지도 울림이 오고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깨달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땅끝이라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느냐? 예수님이 천국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 13장에 일곱 가지 비유가 나오죠. 그런데 첫째 비유가 뭡니까? 이게 씨 뿌리는 비유예요. 그래서 씨를 뿌리는데 네 가지 밭에 씨가 뿌려진다. 씨는 뭐냐? 이게 복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복음이다. 그리고 밭은 무엇이냐? 밭은 사람의 마음이다,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그다음에 가라지 비유도 전부 이 밭에 대한 얘기죠.
사도 바울은 비밀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바울 서신에 보면 비밀이라는 말, 헬라말로 무스테리온이란 말, 이거를 영어로 하면 여기서 미스터리라고 하는 말이 나왔죠. 이 미스터리, 신비다, 비밀이다, 이런 말을 바울은 아주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1절에도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시죠. 또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내 편지들을 읽어 보면 내가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줄을 알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비밀을 가진 사람이 되었느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다 보니까 이 말씀의 깊은 속에서 비밀을 찾아냈어요.
땅끝까지라고 하는 말은 이렇게 성경이 땅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 한국의 유명한 신학자 한 분이 쓴 그 설교집을 보니까 설교집 제목이 땅에 묻힌 하늘입니다. 그 본문이 어디냐? 마태복음 13장 44절 45절.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이것을 가지고 이분은 해석하기를 땅에 묻힌 하늘, 하늘이 저 위에만 있는 게 아니고 땅을 깊이 파보면 그 속에 하늘이 있더라, 하늘의 보화가 있더라, 이거를 깨달은 거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화를 캐내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보화를 만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이번에 이렇게 사도행전 1장 8절을 설교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새롭게 깨달아진 사실 하나는 땅끝이 어디냐? 아까 얘기했습니다.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한국. 그러니까 한국까지 복음을 전해라. 그래서 한국에 드디어 복음이 들어왔어요. 복음이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때는 돌아서 다시 되돌아서 이렇게 오게 되겠죠. 출발지가 어딘데? 출발지가 예루살렘.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을 새롭게 뒤집어엎어 놓아 구원시킬 그러한 백성이 어디냐? 한국에 복음이 들어와서 활짝 피고 전 세계가 복음이 자꾸 약해져 가고 식어갈 때 한국에서 활짝 꽃피어난 이 복음이 능력 있게 다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전파되어서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고 저 아프리카 남미 전 세계를 복음으로 뒤덮어 놓을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새 역사가 이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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